(中) 외국인 근로자 2세들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인 순보(17·몽골인)는 공장에 다닌다.

지난달부터 안산의 한 가방공장에서 원단을 자르는 일을 시작했다.

회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지내며 받는 돈은 월 60만원 남짓.순보는 5년째 공사장과 식당에서 고생하는 부모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공장 일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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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보가 몽골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건 2002년 말.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6개월간 한글을 배운 뒤 중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 잘 적응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는 3개월 만에 무너졌다.

같은 반 아이들은 말이 서투른 순보를 멀리했고 그는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다고 느꼈다.

마지못해 입학을 허가했던 학교도 무관심했다.

순보는 가출을 반복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타고,컴퓨터 게임에도 빠졌다.

"학교 생활 3개월이 3년 같았어요.

계속 다니고 싶었지만 기댈 사람이 없었죠.외계인처럼 대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순보는 "국적이 다르지만 어렵게 한국에 정착하려는 나 같은 아이들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이 '한국' 국적을 갖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 데 반해 순보 같은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은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채 거리에서,공원에서,PC방에서 방황하는 이들은 잠재적인 사회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순혈주의에 매몰된 한국 학교의 울타리는 이들에겐 넘기 힘든 벽이다.

아직도 많은 학교는 이들의 입학을 꺼리고 교사와 학생들은 '지구촌 친구'를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다.

서울대 조영달 교수가 지난해 법무부와 교육인적자원부 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2005년 외국인(불법체류 포함) 중 취학 연령대인 7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은 1만7287명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7800명을 뺀 약 9500명 중 재학생은 157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8000여명이 학교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조 교수는 "8000여명에 이르는 학교 밖 외국인 청소년 중 적어도 3000명은 돈벌이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고 나머지 5000명은 그냥 빈둥거리는 것 같다"면서 "학교에 다니는 1500여명도 학습 부진과 정
체성 혼란,집단 따돌림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밖 외국인 아이들이 양산되는 것과 관련,교육 당국의 준비 부족을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2003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교장 재량에 따라 입학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학생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학교들은 이들을 '잠재적 문제아'로 인식해 입학 허가에 소극적이다.

실제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외국인 부모를 대신해 자녀들의 입학을 상담하면 "다른 학교를 알아 보시면 안 될까요"라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초등학교는 4∼5곳,중·고등학교는 20곳 이상을 찾아가 설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자매의 입학을 교장 선생님이 꺼리기에 '언론에 알려지면 큰일 난다'고 말해 아이들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렵게 입학해도 학교생활은 험난하다.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학교에 입학한 러시아인 스파니슬라프(15)와 스베틀라나(8) 남매.이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자 결국 본국으로 돌아갔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정문순 팀장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부모에게 한시적으로 특별 체류자격을 줬던 것과 같은 소극적인 대책을 고민할 게 아니라 취학 대상 자녀가 있으면 비자를 주는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외국인 근로자 아이들의 기본적인 교육권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법·제도와 교육 환경이 정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천의 신흥초등학교 5학년 2반 학생인 파키스탄 국적의 메리는 부반장,마흠이는 부회장이다.

이들 자매의 남동생 알리도 같은 학교 3학년이다.

한국에 온 지 10년째인 메리는 "한국에서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은 게 꿈"이라고 했다.

담임인 신은섭 교사는 "반 친구들은 이슬람교도인 메리와 마흠이가 급식 반찬으로 돼지고기가 나오면 왜 고기 대신 야채와 과일을 더 받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외국인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이해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0∼18세 아동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 등을 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1991년 가입했다.

"협약 가입국임을 당당하게 주장하려면 메리 남매와 같은 아이들을 이곳저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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