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구자민 기자] 2008년 02월 05일 (화)
 
▲ '투쟁버스' 우리는 이 버스를 타고'버스순회투쟁'에 동참했다
ⓒ 구자민
지난 1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하 공공노조)은 하루 동안 버스를 타고 청구성심병원, 송파구청, 홈에버 면목점에 들러 해당 사업체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이른바 '공공노조 버스순회투쟁'을 벌였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두 명이 버스에 동승했다.
[낮 12시, 청구성심병원 앞]
"병원은 사람 살리는 곳, 죽이는 곳 아니다!"
▲ 청구성심병원 앞 시위하고 있는 공공노조 조합원들
ⓒ 구자민
공공노조가 '버스순회투쟁'의 첫 목적지로 택한 곳은 청구성심병원. 이 병원에서는 지난 2003년 노동조합 조합원 8명이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로 집단산재를 인정받은데 이어 지난 1월 21일에는 한 간호사가 그전 16일에 이어 두 번째 자살기도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청구성심병원노동조합은 2003년 당시 노조활동을 하다 당한 폭행과 폭언으로 8명이 집단정신질환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다시 시작된 병원측의 노조탄압으로 한 여성조합원의 정신질환이 재발했고 결국 자살기도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노조가 '버스순회투쟁'의 첫 목적지로 이 병원을 택한 것도 그만큼 노동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날 청구성심병원 앞에서 열린 집회는 병원측에 '부당해고 철회, 성실교섭 촉구,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지부장 최윤경씨
ⓒ 구자민

이날 집회에 연사로 나선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최윤경 지부장 은 "병원 측이 자살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며 병원측을 비난했다.
이 집회에는 50명 가량이 참석했는데 이 중에는 송파시설관리공단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서울시설관리공단 장애인 콜택시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국민체육공단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스 안에서]
다음 장소는 송파구청. 그런데 행선지가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으로 바뀌었다. 행사주최측에 따르면 송파구청측과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측 간에 잠정 합의를 봤다고 한다.
복직예정된 송파시설관리공단 해고노동자들
ⓒ 구자민
송파시설관리공단은 재활용 수집업무를 1월 1일자로 민간에 위탁하기로 하면서 5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런데 이날 공단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올 8월까지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소식을 전했던 공공노조 서울본부 진기영 사무처장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결코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복직하기로 잠정합의했지만, 전에 했던 그 일로 복직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버스는 장애인 콜택시 해고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설관리공단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12월 30일에 해고된 백복균씨와 한수경씨가 있었다.
위:백복균씨와 인터뷰하고 있는 홍현진 인턴기자 아래: 엘레베이터 안, 피켓을 들고있는 구자민 인턴기자
ⓒ 구자민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본부와 경정본부에서 발매원으로 일하던 이들은 작년 9월 말 발매직전과 직후 해야 하는 총 36번의 인사가 '전시 행정'이라며 한국노총 비정규직 노조(국민체육진흥공단 일반노조) 위원장에게 이를 시정해줄 것을 건의했고 위원장은 3일간 '형식 인사 생략 운동'을 지시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한수경씨
ⓒ 구자민
그러자 공단은 "업무지시 거부"라며 노조 연락책임자 18명(백씨와 한씨 포함)에 대해 견책에서 정직 2개월 등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지시를 내렸던 노조위원장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
한국노총 비정규노조를 '어용노조'라 판단한 백씨와 한씨는 공단 일반노조를 나와 민주노총 공공노조에 가입했고 그로부터 4일 후인 12월 30일 해고되었다. 또한 이에 동참했던 240여 명의 조합원들은 출퇴근 왕복 4~5시간 거리의 지점으로 전보 조치됐다.
백복균 비정규지부장은 "노동자들이 다 같이 뭉쳐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측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들 투쟁하기를 두려워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백씨와 함께 해고된 한수경씨는 경륜장이 생길 때부터 13년을 매표소에서만 일해 왔는데 공공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됐다고 한다.
"사측으로부터 연락받은 적도 없어요. 그냥 발령처에 내 이름이 없으니 없나보다 했죠. 곧 바로 퇴직금이 날아오고…. 정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라고요. 자다가 새벽에 깨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 13년을 다닌 직장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솔직히 난 복직돼도 다시 안 다니고 싶어요. 근데 너무 억울해서…다시 나오라고 할 때까지만 싸우고 싶어요." [낮 2시 30분, 서울시설관리공단 앞]
"투쟁하는 사람들,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시설공단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공공노조 조합원들
ⓒ 구자민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서 장애인콜택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9명은 "공단 측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지각, 복장불량 등을 이유로 '계약해지'됐다.
장애인콜택시 해고자 표성한(61)씨는 "주차 한 번 잘못했다고 해고당했다. 경고인 줄 알았더니 곧바로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고 말했다. 표씨에 이어 또 다른 장애인콜택시 해고노동자가 나와서 이야기 했다.
"예전에는 피켓 목에 걸고 중앙청사 앞에 서있는 사람들 이해 안 갔어요. 근데 내가 이렇게 되고 보니까 이제 그 사람들이 이해가 가. 사람을 이래 힘들게 할 줄은 몰랐어요. 진짜 여기 나오고 싶어서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뜻한 방에 있고 싶지 않겠습니까? 근데 저는 도저히 억울해서 안되겠습니다."
[다시 버스 안]
일행은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앞좌석에 앉아 자신을 장애인 콜택시 해고 노동자라고 밝힌 권경숙(63)씨는 "해고된 후 작년 12월 28일에 복직했지만, 12월 31일이 되자마자 또다시 계약이 종료됐다"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장애인콜택시 해고 노동자 권경숙, 표성한씨(왼쪽부터)
ⓒ 구자민
"신호위반을 한번 하긴 했지만, 그에 따른 벌금은 지급했어요. 택시운전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씩 겪기 마련인데…그래도 한 달 전도 아니고 하루전날 해고 통지하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이제 정년이 다 됐지만, 앞으로 일할 젊은 사람들은 다른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투쟁버스 운전기사 천성옥씨
ⓒ 구자민
가는 도중 버스기사가 승객들에게 '쌍화탕'을 선물로 돌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기사님께서 감기 걸리지 마시라고 쌍화탕을 협찬으로 주셨습니다"라고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나강산 여행사 소속인 천성옥씨는 이전에도 '버스순회투쟁'에 여러 번 참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버스운전기사로 말이다.
"(버스순회투쟁으로) 전주도 가고 부산도 간 적 있어. 투사를 이끌고 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 그런데 여름보다 겨울에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애. 거리에 있을 때는 추운 게 아무래도 더 힘든 게지."
버스가 홈에버 면목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운전기사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생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오후 4시, 홈에버 면목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홈에버 입구 앞 시위하는 단체들
ⓒ 구자민
버스에서 내리자 시위진압용버스가 5대가 서있다. 홈에버 입구 앞에는 홈에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200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지금 이랜드 노동자들은 작년 여름부터 7개월째 기나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과부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우리가 가서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공공노조 조합원이 말했다.
생계 때문에 복직을 했다는 한 홈에버 일반 노조원은 눈물을 흘리며 "생계투쟁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늘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대량해고! 홈에버에! 가지말자!"
"추석 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설날 전에도 가열차게 투쟁하자!"
오후 5시 '맹호운수연합', '전국해고자복직위원회' '이주노동자조합' '다함께' '성균관대 학생회'등 여러 단체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어느새 홈에버 입구는 노동단체들의 깃발들로 찼다.
홈에버 앞 시위현장의 밤
ⓒ 구자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