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의헌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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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를 앞세운 이명박 정권의 저돌적 반노동자적 행보가 무자비한 자본독재를 예감케 하는데 조직적 분열로 치닫고 있는 민주노동당 사태는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진전을 위해 사심 없이 헌신해온 민주노조운동 동지들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선투쟁에 앞장섰던 우리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조운동 동지들을 더욱 절망의 구렁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20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또 함께 한 단병호 의원의 민주노동당 탈당 및 총선 불출마 선언을 아픈 가슴으로 지켜보면서 권영길, 심상정 두 분 의원님께 간곡히 호소하는 마음으로 촉구합니다.

민주노총 출신 의원 동지들은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을 잘 못 이끌어 온데 대해 역사적 책임을 기꺼이 지셔야 합니다.

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지난 8년간 특히 2004년 총선 승리 이후 당의 진보정치가 빠르게 의회주의로 경도되어 온데서 기인합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현 사태 원인을 우리 운동에 어른 즉 지도력이 없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도력은 역할을 맡아서 그 일에 성과를 냄으로써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물러갈 때를 알고 자신을 비우는 것을 잘 함으로써 더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수차례에 걸쳐 지도력을 키워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략적 책무를 지고 선두에서 당을 이끌어 온 세 분의 노동자 의원들에게 특별히 그러한 기회가 주어졌지만 정치적 판단 오류와 잘못된 역할로 일을 그르쳤습니다. 그 책임은 막중합니다. 전체 당원 수의 절반에 이르는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과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의 힘을 업고 있는 노동자 의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재작년 비정규악법 강행 통과시 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국회의원직을 버림으로써 당의 정치적 생명을 확장 강화했어야 했습니다. 최소한 민주노총위원장 출신 비례대표 의원인 단의원은 노동자 국회의원답게 국회의원 뺏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단의원은 그 상황에서도 어떠한 분연한 정치적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향한 정치적 기개를 잃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 당 창당주역으로서 권 의원은 대선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뒤로 물러나 당과 진보진영의 단결된 대선투쟁을 보장하고 대선 이후의 당의 전진을 뒷받침하는 향도로서 남았어야 했습니다. 또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더라도 대선패배에 대해서 정치 생명을 걸고 책임을 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권 의원은 당 안팎의 조건이 바뀌었음을 보지 못하고 김대중과 룰라의 대권 3수를 말하며 허무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당원들의 단결된 대선투쟁을 가로막았습니다. 또 대선패배에 대하여 제대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당을 분열의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세 번째, 비대위 위원장으로서 심의원은 살얼음을 딛고 선 것처럼 조심스런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중립적 위치에서 낮은 곳에 있는 당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아래로부터의 수습책을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심의원은 위기 수습의 역할을 위해 주어진 권한을 일방적 정치기획을 세워 밀어부침으로써 당권장악을 위한 권력투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 결과 당은 위기의 수습이 아니라 위기의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자신을 비우는 마음으로 상식적 판단과 실천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당의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 의원은 노동자 정치인으로,
권 의원은 한국사회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심 의원은 젊고 유능한 새로운 지도자로,
자신들도 살고 당도 살리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1천500만 노동자들에게도 힘을 주는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 분이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힘도 다 잃고 말았고 당도 분열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앞이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이를 보지 못했거나 보았지만 자신을 비워 진보정치 성장과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앞당기는 역사적 역할을 결단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세 분 모두 올곧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당권장악과 정치적 출세욕에 찌든 386 전업 정치활동가들이 주축인 정파세력들의 패권주의적 준동에 맞서 과감하게 대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대선참패에도 당의 분열에도 지역구 승리와 신당 창당 운운하며 정말로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분열하는 민주노동당도 문제지만 정말 문제는 민주노총입니다. 무엇보다 분열의 불길이 민주노총으로 옮겨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의원님들의 책임 있는 행동이 절실합니다.

현재와 같은 분열 상태에서(두개의 당으로) 총선에 임한다면 대선참패로 중병에 걸린 진보진영 모두가 죽고 맙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그 간의 노력은 완전히 유실될 것이고 민주노총도 더 이상 조직적 대오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는 87년 이후 20년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역사적 성과가 한 줌의 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두 세력이 총선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8년 전 민주노동당을 처음 만들면서 가슴 속에 함께 품었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이상과는 전혀 무관한 권력정치만 남게 될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끌어온 민주노총 의원님들이 역사적 책임을 지고 이를 막아야 합니다. 세 분 의원님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1천5백만 노동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여야 합니다. 특히 권 의원은 대선참패의 책임까지 함께 지고 정계 은퇴선언으로 책임을 다해야 하며 심 의원은 민주노총을 분열로 몰아가는 신당창당에 앞장설 것이 아니라 자숙하며 반성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역사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하방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마음을 비우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자주 말씀하셨던 870만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하겠다던 말씀들이 진실이라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아직 가지고 계신다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인 민주노총이 당의 분열과 혼란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막는데 의원님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20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성과들을 노동자 정치인인 의원님들이 앞장서서 허물어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민주노총 의원 동지들은 조승수와 김창현 그리고 노회찬 의원, 이들과는 처신이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분이 그렇게 처신하신다면 정치적 허무주의로 빠져드는 수많은 소박한 조합원들의 마음도 조금 누그러지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서 우선 민주노총을 위기에서 구해놓읍시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총선이 가까이 오고 그에 따라 분열된 정치로부터 자기정립을 못하고 있는 우리 민주노총 내부는 더 갈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박한 열정으로 함께 해왔던 민주노총의 많은 평당원과 조합원들은 진보정치로부터 노동자정치세력화로부터 멀어져 갈 것이고 그 결과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무력화와 조직적 분열이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 두 분 의원님들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중적 주체인 민주노조운동의 동료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총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갖가지 명분을 내세우며 지역구 출마와 신당 창당에 연연하는 것은 당을 말아먹고 민주노총의 분열을 획책하면서까지 자신들의 권력연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민주노동당 내의 적대적 경쟁을 이제 총선공간에서 전체 노동자 민중을 더욱 치명적인 적대적 경쟁으로 몰아가면서 진보정치를 ‘이기는 쪽이 적자’라는 허무의 정치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앞장서서 이끌어 온 민주노총 정치지도부로서 역할을 해왔던 의원 동지들의 역
사적 책임행위는 우리 노동운동의 동료로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정치행위입니다. 부디 민주노총을 분열로 몰아가는 역사의 죄인이 아닌 노동운동의 근본적 혁신과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성원으로 남아 주시기를 간곡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촉구합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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