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8934



마이리틀히어로, 인생의 출세.가치기준에 대해 생각케하며, 삶의 교훈이 되네요.

최근 2013년 봄에 개봉된 한국영화 '마이리틀히어로'는, 필리핀 혼혈소년이 주인공이며,
뛰어난 가창으로 케스팅 되어 뮤지컬 진출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혼혈에 대한 차별을 넘어 다문화가정을 이해하고,
사회의 한구성원으로서 서로 자연히 어울려 살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만능주의나 학력우선주의와 기회를 위해 비열함이 존재하는 사회,
언제부터 진심은 없고 허상만 존재하는 모습 이런 부분도 이야기되며,
우리 인생의 출세나 가치의 기준은 무엇이어야되는가를 생각케하는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보면, 허세의 뮤지컬 음악감독 유일한이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차,
국내 대규모 아역 뮤지컬 오디션 행사를 맞이하게됩니다.
그래서 한번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가창력있는 순수한 이주소년 김영광과 함께 파트너가(멘토) 되어 시작하는
이 영화는, 130여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김영광과 유일한이 함께하고 가까워져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입니다.
오디션 장면을 보면, 보이스코리아와 슈퍼스타K의 요소가 어느정도 섞였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노래실력 빼고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비주얼, 춤실력, 빽, 어느 하나 잘난 것 없는 영광이.
한편 최종예선에서 ‘조선의 왕, 정조’의 주연 배우를 뽑는 오디션에 얼굴색까지 다른 영광이 못내 탐탁지 않은 유일한은
일등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강훈련식 하드트레이닝을 시키고, 영광은 묵묵히 교습을 견뎌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주로 이지수편곡에 천상의 목소리 성태현군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며, 지대한군의(스리랑카 다문화가정으로 현12세이며,
다니던 안산이주민센터에http://www.migrant.or.kr 찾아온 영화기획사를 통해 케스팅됨)
실제 노래목소리로 착각할정도로 가창묘사가 완벽합니다..

참, 주인공 김영광의 스토리를 보면, 환경은 다르지만 나의 삶이 오버랩되는듯합니다.
배두나처럼 저도 약간 이국적인 외모여서, 참한 김영광군의 외모를 보면 저하고도 약간 닮았어요.
특히 목소리와 성격(행동)이 어렸을적 저와 거의 비슷하여,
아마 김영광군이(지대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저와 같지않았을까 생각도 되네요.
영화스토리에 김영광군은 혼혈인에 아빠는 무슨사유가 있어 자식을 외면하고
회피한체 따로 살고 있는등해 상처를 안고 자란 불우한 환경이었듯이,
저또한 배경은 다르지만 집안이 여의치않고 화목치 않아 순탄치 않은 유년시기를 보내었습니다.

고향하면 심신을 달래주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야하겠지만, 저에겐 그러지아니했습니다.

 

△ 좌측은 나의 20대때, 우측은 30대때의 사진입니다(300만화소 스냅사진)
(우측에 함께하신분은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해외협력단에 참여하시는 재미한인이십니다.)

 

제 소개를 자세히 하자면 1971년생에,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내기마을),
3남2녀중 장남으로 가난한 농가의 전쟁고아 집안입니다.
부친이 집안 과거에 대해 예기 잘 않하셔서 자세히는 모르나 어림짐작해 대략적인 정황으로보자면,
원래 본 고향은 한국전쟁전후까지만해도 나주시 노안면 금동마을로
당시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집터만해도 마을에서 좀 큰편에 속했었고, 아름드리 감나무가 수십그루 이상에 텃밭과 작은야산등으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조상땅찾기기준;논밭 40~50마지기, 야산임야 60마지기, 실제; 논밭 20마지기미만, 임야 2천평 수준)
그런데 한국전쟁때 어느날 저희 할아버지는 북한무장공비로 추정되는 괴한에 의해 납치.실종을 당하셨다고하며,
할머니는 전쟁 후유증에 지병까지 겹쳐 끝내 일찍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하여 제 아버지는 어렸을때 뒷 마을(내기마을) 고씨성의 부자농가에 의해 자라났고,
후에 내기마을에서 독립은 하셨으나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훗날에 추측해 알았지만 가문의 재산을 본가 '금동마을'의 (큰형)큰아버지가 대부분 물려 받았으나,
문중이(특히 당숙들) 큰집의 유산을 편취해가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모르나 지금은 고인이된 아버지는 어렸을적 당시 친지나 이웃에게는 좋게 다정히 대했지만,
어머니나 자녀들에겐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KBS2 아침드라마 '삼생이'에서 나오는, 사기진이 삼생이를 하대하듯
자식들에겐 무뚝뚝하거나 좀 쌀쌀하게 대하였고, 자주 학대를 하며 칼부림까지 하기도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부부 싸움도 잦았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간혹 자녀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등 가정이 오붓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유년시기에) 집안의 부부싸움 며칠후, 제가 어머니에게 무슨 투정을 한것도 아니었는데,
(당시 어렸을적 좀 의젖하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투정같은건 잘 않했고요, 우리 친동생들도 대략 그랬어요.)
집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뭐라 짜증을 내며, 저에게 맞아 죽거나말거나 막무가내로 부억칼을 던지었고,
그칼이 그대로 머리에 맞아 꽂히어 피가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하여 갑작스런 어머니의 칼던짐에 머리부상이 돼 사경을 해매야 했으며, 부상 휴유증과 적지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머리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머리에 쑥이나 지혈제, 연고를 몇번 바른게 전부였고,
그때부턴가 뇌의 30% 가까이가 죽거나 기능이 마비되다시피하여, 사고후 머리부상은 아물었으나
기억상실증, 앞면장애, 정신착란증까지 생기기도해 꿈과 현실을 구분못하기도했어요.
어느날 꿈에서 아버지가 이웃마을 '장등'으로 심부름 시킨것을 현실로 착각하여,
잠결에 일어나 맨발로 비몽사몽 장등으로 걸어가 생판모르는 낮선집을 서성이는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달려온 누나에 의해 등에 업혀 다시 되돌려온 기억이 아련히 납니다.

그이후 정신착란증은 가셨으나 기억상실증이나 앞면장애는 휴유증마냥 간혹 있어서,
그러다보니 사고와 기억력에 있어, 지금까지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면서 자녀를 학대하며 괴롭히기 일수였고,
어머니는 그러지않으셨어야하는데 어느날 칼을 맞는 극단적인 경우를 격고나니,
정신적 충격으로 그때부턴가 어느덪 부모님 모두에게 마음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한편 다녔던 초등학교나(삼도남) 중학교에서도(평동)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가관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중 일본순사마냥 스파르타식 막무가네 교육을 시키었는데,
학생들이 좀 맘에 안든다싶으면 회초리가 아닌 어떨때는 몽둥이까지 들고 학생을 후려치며 하대하듯 체벌을 했습니다.
어느날 회초리로 머리까지 후려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의 경우 머리를 빗나가 맞아서 다행이었지
까닥하면 다친곳을 맞아 큰일 날뻔도 했어요.
중학교 2학년쯤 되자 집안에서 자녀들 등록금을 다 내기가 버거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고(학교 다니는 남매가 여렇인지라),
아버지는 누나와 동생의 학비를 미루는한이 있더라도 저를 끝까지(고등학교) 가르치려했으나, 제가 고사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도 때리니까 못다니겠다는 사유로 자퇴서를 쓰고 그만두었어요.
(당시 사건으로 그 평동중학교는 맹붕이 되어 체벌이 줄어들었다고도합니다.)
속내는 가정의 불화도 끈이지않으니 너무 힘들어서,
이래저래 얼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겠다며 생각하던차,
86년 그때 어느날(여름) 그렇게 결정하고,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기구한 운명인건지 유신의 잔재가 남아있었던건지,
스팩을 위해 형편상 간혹 옮기어 다녔던 업종 대부분(90년대 중반까지),
직장 상사들이나 사장이 아랫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거의 깡패와 비슷하는등 이회사 집단 또한 가관이었습니다.
인간사는 냄새나 삶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삭막함과 착취, 무한경쟁속,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사회였고,
어느덪 그 한복판에 서서 막닥뜨리고 홀연히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직업은 금속가공업에 98년까지 한동안 종사하였고, 이후 매일경제 보급소에서 차로 신문보급업무를...)

 

명절이 되면 직장생활에 찌든 맘을 달래주는 고향이 되야하지만,
이미 집안 또한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전에 잘살다 전쟁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서라한다해도, 오붓한 정감이 오가야되는데,
아버지는 별로 반기지 않으셨고, 돈이나 많히 벌어왔는지 하는 눈치였습니다.
88년 설명절때 일단 번돈 약50만원 정도 아버지께 드렸었는데, 별로 탐탁치 않으셨고
"이것도 돈이라고 벌어 왔느냐?"며 뒤로 돌아서서는 핀잔을 주었어요.
누나도 중졸후 바로 취직했는데, 명절때 누나에게도 돈이라도 벌어왔는지 하는 눈치였고,
돈을 얼마 않가져 온것을 보시고는, 어머니마저도 등뒤에다 대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어머니만큼은 차마 저에게 아쉬운소리를 잘 않하는편이었는데,
누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게되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올게요.
만일 돈 못벌어오면 앞으로는 오지 않을게요.."

 

이후 오래전(2002년) 어머니와 누나의 매형과 전화통화한것 그것이 마지막 통화로,
그후 만나지도 못한체 어느덪 10년이 지났습니다..

"만호야, 명절에 집에 좀 자주와"
"어머니 죄송해요, 돈이 없어서요.. 그리고 반기는 사람이 없어서요.."

"...매형, 죄송해요. 고향에 자주오고 싶지만 심적으로 힘들구요,

위안보다는 마음이 힘들어 피로만 쌓여서요..."

 

 

당시 초라한 초가집이었던 고향집이 90년대후 기와집으로 새로 지으면서 진빚이 좀있었는데요,
"고향집에는 못가지만 돈부치는걸로 대신할게요"하고, 300만원 정도 송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는 편지로 "앞으로는 고향에 영영 못 올지도모르니 내 장자권을 둘째 (경호)남동생에게 이양하고자한다.
얼마 않되는 집안 재산이겠지만 부모님 사후 이거라도 너희끼리 물려받아 고향을 책임졌으면 해"
하는
마지막 서신을 보내고, 고향을 마음속에 묻었습니다...

87년 이후 몇년에 한번씩 명절때 고향에 들리다, 이후에도 고향땅에 왔지만 차마 집에 들어갈 엄두가안나,
금동마을 저수지 정류장 인근에서 혹은 복굴과 고향마을 사이에 있던 신동교(삼형제다리) 근처에서 고향집을 바라만보다,
눈물만 흘린체 상경하곤 했습니다. 이렇듯 부모든 친지든 세상사람이 다 남남이라는걸 막딱드린체, 쓸쓸함과 고독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으니 그 희망으로 근근히 삶을 버티어오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어렸을적 노안성당을 다니던 송계에 살던 이기현친구를 통해,
그리고 송학장로교회에 다니던 윗집의 이숙경 할머니, 이숙경,이홍섭 후배, 송학에 살던 김준택 친구를 통해,
주님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되었고,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존재함을 희미하게나마 느낄수있었습니다.
이후 군복무때(92년) 생활정보지사에 일이있어 광주시를 들리다
거기서 근무하는 서부침례교회에 다니는 열정적인 집사님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사랑을 자세히 알게되었고 그 이후로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서민이지만 형편이 되는데로 불우한 이웃을 돕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삶에 있어 알뜰히 아끼며 나눔과 봉사를 소중히 여기면서 잔잔히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 2009년 커널뉴스(현 팩트티브 http://cafe.daum.net/facttv) 취재 현장에서

(긴 사연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28호 소식지>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기자, 신만호 후원인
http://cafe.daum.net/supportingworkers/5nKc/75 (http://blog.daum.net/chmanho/16883506)

자린고비 생활수기 전격공개- 박봉 자수성가기
하늘자산;5천만원이상, 땅자산;1억원이상 달성
짠돌이카페 베스트선정 원문 : http://cafe.daum.net/mmnix/7mn8/7890


*2009년 MY사회기부 통계(NGO,복지기관,인터넷언론 후원)
http://blog.daum.net/chmanho/16883623

*초절전 난방법 전격 공개, 자린고비 수기
( 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 cafe.daum.net/mmnix/5SuV/166883 )

*진보여 민주시민이여, 대성찰(대각성)를 하여 빛이돼 나아갑시다!
http://blog.daum.net/chmanho/16883705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https://cafe.daum.net/10in10/DrC3/396087

http://cafe.daum.net/CS11/9bMl/2627

 

 

명절에 오랫만에 친지나 이웃사촌과도 덕담을 나누지요.
덕담중에 경기가 장기간 침체(불황)이어서인지 임금인상은 저조하고 생활비는 올라가고.. <= 여기까지는 괜찬으나, 그런데 혹시 이런 예기는 자제하고 금하심이...
> 둘이사는데 공과금 전기세 3만원이상, 난방비 5만원이상, 핸드폰1인당 5만원가량드니.. 왜 국민들이 박근혜를 선택했을까? <  ??
왜 국민들이 박근혜를 선택했냐고요? 죄송하지만, 일단 우리 민주시민의 정신상태가 어떤지도 먼저 돌아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네요.
진보도 알고보면 무능하더라, 남탓만더라 하는말 아직도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제 주변을 봐도 그렇고 우연이 아니드라고요.
짠돌이카페를 돌아보면 주택을 가지고있지만 2인가정에 전기세 2만원정도, 난방비 3만원선, 이동통신비 둘이합해 3~5만원선 이렇게 산다던 시민도 있습디다.
오래전 아프리카 망치부인방이나 최근 촛불방 챗창을보니 알만한 민주시민이던데, 자기집 난방비가 10만원 이상 나오고 세상살기 힘들다느니 하는, 이런 어이없는 예기가 오가더군요.
간혹 집있는 사람중에도 장기경기 침체로 세상이 힘들어 지고 있는것을 알고있기에 난방비 3만원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 마당인데, 서민이면서 어찌하다보니 10만원이상 들었다는게 이건 무슨 자랑도 아니고 이건 좀 그렇죠.
저또한 독신이지만 전기세 1만원선, 난방비도 1만원선, 이동통신비 1~2만원선으로, 아끼려고 하면 아끼어집디다.(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참조)

근데 민주시민이라면서 자신의 씀씀이는 돌아보지 않고 세상탓을 하고 가진자나 국민탓을 하는게 가당키나 한것인지요.
그런데도 부자놈들은 잘먹고 사는데 서민만 허리띠 묵어라 이리 생각하시는분 있습니까?

참 태평한 발상입니다. 이지구상에 에너지는 유한하고 석유,가스,석탄등 점점 고갈되고 있습니다.
저 배부른 부자 못마땅해 같이 에너지를 펑펑 쓸때 지구 자원의 수명은 더욱 단축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부지수나 봉사지수는 또 어떻습니까?

민주사회단체.시민단체 제정은 또 어떻습니까? 대부분 늘 적자에 허덕이지 않습니까? 

국가에서 제정을 지원해 주어야 하는데 않그래서 적자라고요? 아니 시민단체가 무슨 앵버리나 아니면 말고 단체입니까? 마냥 국가에다 손을 벌리게요. 이런건 충분히 우리 민주시민의 힘으로 제정을 충당할수 있습니다.

민주사회가 재정신이라면 무슨 제정난이 있을수도 없는일인데, 안타깝게도 현실인 상황입니다.

사례를 보자면, 가진자들이 더한다더니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생기고 가진 노동자들이 더한 경우가 많습니다. 연봉 2천만~5천만 이상 받고 있는 노동자가 어떻게 된것이 2천만원 이하를 받는 노동자에 비해 기부지수가 적거나 엊비슷한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 한편 개인적인 사례지만 정치시민사회단체에서 닥치고 연대니 통합이니 해서 연대하고 통합에 동참했드랬습니다. 저야 정파로는 진보신당쪽에 가깝지만서도 사민주의.계량파(쁘띠브루조아)쪽 통합진보당(현 진보정의당).민주통합당에 가까운 대안언론에 후원과 동참도 했었지요.

그런데 통진.민주당팬의 친노이든 비노이든간에 그래도 나보다 인맥으로보나 노선으로보나 가까우면서도 후원은 저조한 경우가 허다합디다. 그러면서도 인맥이 있어서인지 현장에서는 대안언론 관계자와 아는척은 잘하고,(아는척 했으면 뭐좀 해주겠지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후원은 신통치 않고...
이렇듯 자신의 마인드나 씀씀이는 돌아보지 않고 세상탓을 하고 남탓을 하는건 가당치도 않는것입니다. 

어떤 페친(페이스북 친구)분께서 "스스로 성찰하고 혁신하고 주민들과 어떻게 친해질까 주민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진보정치가 좀 나은 상황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시던데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이웃주민을 위한것 찾아보면 좀 있구요. 인사 자주하기는 권해주고싶지않네요.
바쁜 현대사회니 인사 실어하는 사람 많거든요. 인사할 재간 있거든 그시간에 마을 주변을 청소해주거나 분리수거하지않고 무단 버리는 쓰레기들을 대신 분리수거하여 정리해 치워주는 이런것을 하면 좋겠습니다. 말보다 실천(행동)이니까요^^
제 사례를 보더라도 수십년간 내가사는 반경 500미터 근방에 이런 실천하는 민주시민이 저하나 달랑 하나이거나 간혹 본인 이외에 한명더해 2명정도 민주시민이 있으나말랑하고 그 많던 민주시민 다 죽었습디다.
 정치때는 식당가 정좌에 민주노인도 참여해 둘러앉아 "박근혜보다는 그래도 문재인이 낳지" 하는 소리가 오가고 하니 머 참 좋기는 했으나,
정작 그런말하던 민주시민들 이웃주민을 위해 뭐 봉사한거 있나 찾아보면, 간혹 주민에게 인사하는것 외엔 실천행동 찾아보면 개털입니다ㅠ

이런거 보면서 어찌나 참담한지..

민주사회도 이러하니 투표 부동층(중도보류층)이 마냥 범야권후보를 찍어주리다던 보장이 있습니까?
설령 찍어줘도 찜찜한 상태로일거고 지난 진보정권의 무능함을 익히본봐 그리 기대않하는 경우일테고, 혹은 새누리로 역선택을 하는등, 그것이 현상으로 일부 표출된 결과이기도하지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했습니다.
우리민주시민에게 있어 수신제가가 더욱 필요한 시기라 생각이 듭니다.

"진보정치의 재구성, 필요 넘어선 생존의 문제"
[좌담] '빅텐트'로는 '도로 민주당' 될 것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00723090858§ion=01

 
 빅 텐트론, 무엇이 문제인가?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http://cafe.daum.net/unijinbo/LfNE/1242

 

진보대통합이냐 빅텐트냐    블로그2010.07.22
http://blog.daum.net/jinbodang21/18255853

 

 

'빅텐트'는 틀렸다 프레시안 정치(연합정치를 말한다. 손호철 칼럼)  2010.08.31 (화) 오전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831111637


최근 진보진영의 최대의 화두는 '연합정치'이다. 연합정치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로 상징되는 냉전적 보수세력의 부활 이후 반MB연합과 반신자유주의연합을 둘러싸고 그동안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연합정치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 이후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제외한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의 반MB연합이 이루어지고 이 같은 연합이 외형적으로 성공을 이루면서 다양한 연합정치론이 최근 들어 봇물 터진 듯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과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으로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진보세력이 '빅 텐트' 안에 하나로 뭉치자는 '빅 텐트론' 내지 '개혁-진보 연합정당론'으로부터 민주당을 제외한 군소 진보·개혁정당이 합치자는 '군소 진보-개혁연합정당론'(또는 '비민주 진보-개혁연합정당론'), 복지국가 진보대통합론, 전통적인 진보정당 통합론, 반신자유주의연합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연합정치론이 지방선거의 외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에는 자유주의진영과 진보진영의 위기의식(자유주의세력의 경우 과거와 달리 단독집권이 어렵다는 위기의식, 진보진영은 이대로 가다간 한국정치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고립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 다양한 연합정치론들을 몇 차례에 걸쳐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같은 비판적 검토는 지난해부터 필자와 필자가 공동의장으로 있는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교연)'이 주장해 왔듯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노위 등 반신자유주의적 진보정치세력들이 먼저 진보대연합을 만들고 자유주의세력을 압박해 민주당의 사회경제정책의 좌경화와 탈패권주의를 조건으로 민주대연합을 만들어가는 '선 진보대연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의 입장에 기초할 것이다.

다만 본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이를 발전시켜 민주노동당의 분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등 진보세력내의 핵심쟁점으로 작동해온 북한문제와 패권주의(당내민주주의) 문제, 그리고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한 반MB연합 등 자유주의세력과의 연합문제 등 세 가지 문제에서 기본노선에서 합의를 볼 수 있다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그리고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단순한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을 넘어서 반신자유주의 진보통합정당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나갈 것이다.

 

1) 빅 텐트론,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살펴볼 것은 빅 텐트론 내지 개혁-진보 연합정당 건설론이다. 이 주장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보수양당, 보다 정확히 표현해 자유주의정당과 보수정당이 대립하는 미국식 정당체제이다. 구체적으로, 여러 특수성 때문에 독자적인 진보정당이 존립하지 못해 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정당의 빅 텐트에 진보세력과 노동운동 등이 들어가 있는 미국처럼 한국도 여러 이유로 진보정당의 독자생존이 어려운 만큼 빅 텐트를 만들어 그곳에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이 같이 공존하며 한나라당의 대표되는 냉전적 보수세력과 대립하는 양당구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미국 예외주의'와 '한국 예외주의'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진보정당 내지 노동자 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보수양당이 지배해온 예외적 나라이다. 이 같은 예외성은 맑스도 일찍이 주목한 '신세계'라는 미국의 특성, 그리고 이민국가와 사회유동성에서 오는 계급형성의 특수성에 크게 기인한다.

우선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미국에 있어서의 '전통'의 부재이다." 즉 봉건적 유제를 물려받은 유럽과 달리 인디언들을 말살하고 거의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건설한 미국은 봉건주의로부터 자유로웠고 그 결과 개인주의, 자유방임, 반국가주의가 팽배하고 계급정치가 발달하기 어려웠다.

 

둘째, 미국은 계속적인 이민으로 이루어진 이민국가로 노동자계급이 인종적으로 계속 분할되어 단결이 어려웠다. 셋째, 흔히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 신분상승의 기회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집단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해결을 추구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의 예외주의는 어떠한가? 우선 모두 다 알겠지만, 분단과 이에 따른 반공주의이다.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통해 '고맙게도'(?) 진보운동을 부활시켜 주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분단 때문에 오랫동안 진보운동의 불모지로 남아왔다. 이후 많은 금기가 깨어지고 반공주의는 약화됐다고 하지만 분단과 반공주의가 아직 진보정치 발전의 장애로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 지역주의이다. 진보정당 발전의 장애인 반공주의가 약화되자 등장한 것이 바로 지역주의에 기초한 지역정당체제이다. 거지서부터 재벌까지 영남은 모두 '영남당'을, 거지서부터 재벌까지 호남은 모두 '호남당'을 찍는 '초계급적 지역정당체제'는 진보정당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이다. (이밖에 높은 교육열에 기초한 높은 사회적 유동성도 계급정치 발전의 장애였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제는 계급구조가 고착화하여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사실 빅 텐트론이 현재 민주화운동진영에는 호남과 친노, 진보세력이라는 세 가지 세력이 상수로 존재하는 바 이들을 한 텐트 속에 묶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지역주의라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빅 텐트론은 지역주의 등 한국의 냉엄한 정치현실에 대해 깊은 고민에 기초한 고뇌의 산물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호남과 친노, 진보세력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화두이다.

그러나 빅 텐트론이 보지 못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과 한국의 선거제도의 차이이다. 미국의 경우 독자적인 진보정당이 불가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의 여러 요인보다도 반민주적인 선거제도이다.

우선 대통령선거의 경우 선거인단이라는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는데다가 각 주의 승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전부 차지하는 승자독식주의라는 반민주적인 제도가 버티고 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진보정당이 모든 주에서 10%의 지지율을 얻어도 선거인단은 1명도 확보할 수 없다.

우리의 국회에 해당되는 연방의회 선거도 마찬가지다.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유럽과 달리 미국의 의회는 비례대표의석이 한 석도 없고 전부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최대득표자가 의석을 차지하고 나머지 패자의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에 기초한 지역구뿐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모든 선거구에서 10%를 얻어도 의회에 한 석도 진출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진보정당이나 제 3당이 성장할 수 없고 진보세력이 민주당이라는 빅 텐트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미국도 20세기 초기 미국사회당(The American Socialist Party)이 1912년 선거에서 6% 라는, 신생정당으로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비민주적인 미국의 선거제도 때문에 한 석도 차지하지 못 했다. 그러자 지지자들은 사회당에 대한 투표는 사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사회당을 외면하게 됐다. 또 이 같은 선거제도 때문에 민주, 공화 양당을 제외한 제 3당이 의회선거에서 연거푸 두 번 이상 5%이상의 지지를 획득한 것은 19세기 말 민중당( The People's Party)이 유일했고 그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최근만 해도 2000년 민주, 공화 보수양당독점체제에 반기를 들고 시민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만든 녹색당도 유럽의 녹색당과 달리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도 미국처럼 단순다수결제를 채택하고 있었다면 유의미한 진보정당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따라서 빅 텐트론의 주장대로 진보세력이 자유주의정당과 연합정당을 만들어 한 분파를 형성하는 것이 옳은 전략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단순다수결의 소선거구하에서 진보정당이 전국적으로 울산, 창원 등 진보벨트를 중심으로 3-4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의 경우 뒤늦게나마 2000년대 들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해 유럽정도는 아니지만 진보정당과 같은 소수정당이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분적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1%를 획득해 지역구 2석에, 비례대표 8석 등 총 10석의 제 3당으로 부상한 바 있다.

이후 여러 행태적 오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과 분당사태로 인해 그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진보정당이 2008년 총선에서도 8.62%(민노당 5.68%, 진보신당 2.94%)를 획득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그 지지율이 다소 회복되어 10.87%(민노당 7.35%, 진보신당 3.13%, 사회당 0.39%)를 얻었다. 그리고 의석도 아직 6석을 가지고 있다. 사실 10.87%의 지지율이면 독일과 같은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진보정당이 3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구성해 캐스팅 보드를 행사하는 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지율이다.

이와 관련,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그것은 2004년 13%대를 기록하며 제 3당으로 부상했던 진보정당이 2008년 지지율이 후퇴하는 등 침체를 겪은 것을 한국진보진영은 한국정치를 보수양당제를 넘어서 보수 대 중도(자유주의) 대 진보의 3분 구도로 나아가게 하는데 실패했음으로 자유주의세력과 연합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거로 보는 입장이다. 이는 잘못이다.

물론 진보정당이 2004년을 피크로 해서 지지율을 올리는데 실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필연적이거나 구조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행태적 오류에 기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2007년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로 이미 두 차례나 출마했던 민주노동당의 대표정치인이 특정정파가 요구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생뚱맞은 대선공약을 수용하고 이들과 손을 잡고 대선 3수에 나서는 대신 과감하게 세대교체에 앞장섰더라면 진보정당은 지지율 후퇴와 분당대신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 했고 진보정당은 그 후유증으로 분열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은 아직도 1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독자적인 생존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이 민주당이라는 신자유주의세력의 빅 텐트로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미국의 진보세력도 선거제도가 우리처럼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있고 1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면 민주당이라는 빅 텐트에 들어가지 않고 당연히 우리처럼 독자적인 진보정당 노선을 유지해 갔을 것이다). 다르게 말해, 독자적인 생존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이 민주당이라는 신자유주의세력의 빅 텐트로 들어가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이미 다른 글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보다 사회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 것이 김대중, 노무현정부와 자유주의세력이었다. 한미FTA를 추진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고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이 결사반대하는 가운데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비정규직 확대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현재 MB의 4대강사업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지만 노무현 정부도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의 목숨을 건 삼보일배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사업을 강행했다. 그 예는 끝도 없다.

다만 민주당내의 좌파의 경우 과거의 신자유주의노선을 반성하고 반신자유주의노선을 명확히 한다면 같이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신자유주의 진보연합에 민주당 '좌파'를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과연 이들이 민주당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진보세력과 진보연합을 할 것인지, 특히 민주당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나와(아니면 민주당을 접수해 민주당 우파를 몰아내거나 제압하고) 진보세력과 당을 같이 하려고 할지는 의심이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의 2007년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의원이 최근 민주당 당권도전에 나서면서 '담대한 진보'라는 화두와 함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자유주의 세력 중에서는 가장 '완벽한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사실이다. 즉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용기가 없어 신자유주의정책에 반대하지 못했고 2007년 대선에서 반신자유주의노선을 명확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고 사회복지 부유세도입 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정 의원은 민주당의 기반인 호남지역주의와 관한 한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최근 정계복귀 과정에서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 지역주의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그의 이번 반성문과 구상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반성문이 진심이라면 그는 민주당내에서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민주당 좌파'로 변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변신은 빅 텐트론이 주목하는 호남, 친노, 진보세력이라는 세 자원 중 호남이라는 중요한 민주주의의 자원과 관련해 호남의 정통성을 민주당 좌파, 나아가 반신자유주의세력 쪽으로 어느 정도 끌고 와 호남과 진보진영을 매개해주는 중요한 매개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정 의원과 친노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고려할 때 빅텐트론이 주목하는 또 다른 자원인 친노와의 연합문제는 남는다. (친노와의 연합문제는 결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친노의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는 다음에 논의하고자 한다).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빅 텐트론에 반대한다고 민주당과 연합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빅 텐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조직적 기반을 가지고, 필요한 경우 민주당, 국민참여당과 같은 자유주의세력과 유연하게 연대해 나가면 된다. 4대강 반대투쟁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지난 지방선거처럼 필요하면 자유주의세력과 연합공천 등 선거연합도 할 수 있다(물론 그것은 누차 주장해 왔듯이 진보세력이 먼저 연합을 하고 그 단결된 힘에 의해 자유주의세력과 연대하는 '선 진보대연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이어야 하지만).

다시 말해, 호남과 친노, 진보세력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빅 텐트론의 고민은 이해가 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빅 텐트라는 단일정당일 필요는 없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단일정당으로서의 빈 텐트론은 틀린 것이지만 반MB, 반한나라당연합으로서의 빅 텐트론은 진보대연합을 전제로 맞는 이야기이다

물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거제도 개악 움직임이다. 얼마 전 물러난 김형오 전국회의장이 국회의장 시절 만든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헌법개정안으로 비례대표를 없애고 그 의석으로 양원제를 도입하는 안, 즉 미국식으로 국회선거제도를 개악하는 안을 추천한 바 있고 원로국회의원들의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가 자신들의 밥그릇(신설되는 상원)을 위해 이에 매우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선거제도가 미국식으로 개악되는 경우 우리도 빅텐트론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다.

오히려 이 같은 퇴행적 움직임을 저지하고(빅텐트론자들도 빅텐트론이 대세가 되도록 우리의 선거제도가 미국식으로 개악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제도를 더욱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사표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꾸도록 투쟁해 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해 사표가 최소화되는 독일식 소선거구 비례대표제로 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희연 교수는 최근 빅 텐트론에 반대하는 이유로 재미있는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한국정치의 민주주의가 어느 면에서는 미국을 넘어서 있어 미국 민주당식 빅텐트론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선거제도와 진보세력의 지지기반이라는 면 등에서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낙후한 나라이며 한국은 미국보다는 훨씬 앞서 있다. 따라서 빅텐트론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자라(진보정당이 실패한 미국)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한국 진보정당의 어려움) 보고 놀라" 이미 미국보다 앞선 한국정당체제(지역정당체제는 빼고)와 정치를 미국정치 수준으로 후진시키려는 퇴행적 주장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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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전면시행 반대한다, 선별적 급식지원 바람직
 
정치권 일부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면적인 학교 "무상급식" 추진이 의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MBC '백분토론'(100분토론)에서도 이를 주제로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무상급식의 취지나 결과는 물론 좋은 것이지만, 전면적인 무상급식은 현재 국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학교 급식의 보편화

요즘에는 예전과 달라서 중, 고등학교에서도 도시락을 싸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자식들 굶기지 않기위해 도시락 1, 2개씩 싸주던 어머니들의 모습은 벌써 옛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학교 급식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학교 급식을 받으려면 학교에다가 월간 얼마씩 내야 하겠죠? 급식업체에게 경비를 지급해야 하니까요.

이 학교급식비를 국가,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전면적으로 지원해서 무상급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이번 '무상급식'의 취지로 알고 있습니다. 


2. 아직도 굶주리는 학생들 있다(많다)

그렇다면, '무상급식' 논의는 왜 나왔을까요? 


잘 사는 것 같지만, 여전히 배를 주리는 결식아동, 결식/결손가정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계속되는 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그 사연이야 많겠지만,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의무교육 환경에서 누구나 중, 고등학교까지는 다니는 마당에,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해주면, 청소년기를 지나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는 적어도 밥을 굶어서, 굶주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무상급식'의 취지입니다. 


3. 소득계층에 따른 무상급식의 상대적 효용 달라

 그렇다면, 전면적인 '무상급식'은 도입이 적절할까요?

먼저, 도입의 효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한 학생의 학교의 한 달 급식비가 10만원이라고 가정하고 논의해 보겠습니다. 

[중산층, 고소득층의 경우]
소득이 많고 부모(또는 보호자)가 보살피는 학생들의 가정은, 월 10만원 정도의 급식비가 별 부담이 없으며, 가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합니다. 
그래서, 고소득 집안에서는 무상급식비를 지원해 줘도 그만이고 아니어도 그만이지만, 지원해 준다고 '효용', '만족감'이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저소득층, 결식가정의 경우]
반면에, 저소득이고, 보호자가 온전하지 않은 결손가정의 학생들은, 월 10만원의 급식비 지원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소득이 없어서 밥을 굶게 생겼는데, 무상급식을 실시해 준다면, 그 '효용'이나 '만족감', '필요성'은 절대적일 수 있습니다. 


4. 무상급식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하나?

따라서, 필요에 따라(in need case) 급식비 지원은 국가의 '공공성'과 '사회복지'의 증진, 국가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상급식을 '전면적'(all case)으로 시행할 필요가 현 시점에서 있을까?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급식비 지원의 상대 효과 - 소득에 따른 '한계효용' 체감]
위의 예에서 살펴본 바, 중산층/고소득층에서는 급식비 지원의 기대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자식이 미워서, 자식을 신경 안써서, 급식비를 고의로 안주는 자녀 유기, 학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급식비 지원이 꼭 필요하고, 만족감을 주고, 개인적, 사회적으로 '효용'을 주는 집단은 저소득계층과 결식 청소년, 아동들입니다. 

즉, 계층에 따라 급식비 지원의 '필요성', '효용', '만족감'이 다른 마당에, 필요하지도 않은 계층에게까지 그런 혜택을 남발하여 재정 지출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족감을 줄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는 계층에게 국가 복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이고, 국가 복지 정책 수행의 '비효율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학교 급식의 경우 선별적 급식 지원이 바람직

결국, 학교 급식의 경우에는 필요한 인원만 급식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예컨대, 한 학급의 학생이 40명이라면, 학급의 결식 아동을 학교나 (담임) 교사의 재량으로 파악해서, 학급당 대체로 4~5명 정도의 급식비 지원 대상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무상급식이 필요한 학생수가 학교의 대다수도 아닌 마당에, 꼭 필요한 인원들만 확인하여 지원해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지원에는 학생들의 '자존심'이나 '존재감'을 해치지 않도록 사려깊은 방식으로 선정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예전에도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몇 몇 학생에게 지원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학생들이 저마다 도시락을 싸왔고, 결식 학생들은 교사 식당에 가서 선생님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너무나 눈에 띄기 때문에, 
'아...저 얘는 식사 지원을 받는구나...'하고 눈치가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교 급식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무상급식 지원이더라 하더라도, 급식업체에 해당 학생의 식사대금을 대신 납부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행해도, 학생들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습니다. 


6. 국가 예산의 다양한 활용 가로막아

만일,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실시한다고 해 봅시다.
중, 고등학교에서 전면 실시한다고 치고, 한 학년당 약 50만명의 학생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월간 10만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6개 학년 X 50만명 X 10 만원 X 연간 약 9 수업개월 = 2조 7,000억원,

즉, 연간 약 2조 7,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가계(가정)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부가 대신함으로써 엄청난 정부 재정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재정은 가계에서 세금으로 거둬 들여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부담으로 되돌아 옵니다.

만일, 필요한 학생들에게만 지원을 하고, 그 비율이 1/10이라고 한다면, 필요 국가 재정은 약 2,7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나머지 예산을 다른 다양한 복지 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무상급식'은 완벽한가?

또한, 혹여나 '무상급식'이 전면 시행되더라도 이 제도가 그 취지를 살려낼만큼,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학교는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가지기 때문에, 이 방학 기간동안에는 학교가 급식을 시행할 수가 없고, 결식 학생들은 1년중 몇 개월간 방치되는 결과가 여전히 발생합니다.
방학 기간인데, 밥 먹으라고 학교 나오라고 할 수도 없고, 몇 몇 학생 챙겨주기 위해 급식업체가 움직인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또한, 학교 급식은 점심만을 챙겨줄 수 있을 뿐,
아침이나 저녁은 챙겨줄 수 없습니다.

한편, '무상급식'은 오후 수업이 계속되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대상이기 때문에, 결식 초등학생들은 여전히 방치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8. '무상급식' 다른 식으로 확대 가능하다. '결식 가정(가구)'의 점검

학생들이나 자녀들의 '밥'을 챙겨주는 것은 성장하기까지 '부모', '보호자'의 의무이고, 결국 '가정'에게 1차적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나 '가정'이 이런 1차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대상 학생들, 결식 청소년들에 대해서, 학교에서 밥 굶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무상급식'의 취지입니다. 


따라서, '학교 무상급식'은 '결식가정'에 따르는 연장선 상에 놓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제대로 밞을 먹을 수 없는 학생들이, 당연히 학교 가서도 굶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학교에서 무상급식으로 점심 지원을 해 주어도, 그 학생들은 '가정'에 돌아가면, 다시 저녁이나 아침 끼니를 걱정해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즉, '결식가정' 대상 청소년, 학생들에게는 '무상급식'으로 학교에서 점심 한 끼 챙겨주면서 생색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식 가정'이나 '소외 청소년'에 대한 '가구(가정)' 단위의 일상적인 '지원'이나 '점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침-저녁, 방학기간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무상급식'은 절대적이지 못합니다. 

한편, 한 '가정'이 모두 밞을 굶는 '결식 가정'이라면,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그 중에 한 명만이 점심을 챙기고, 나머지 식구들은 계속 밞을 굶어도 괜찮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따라서,  '가정(가구)' 단위의 결식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정단위별로 '결식 가정'을 파악해서 1년 365일 체계적으로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업체에 시키든, 자원 봉사로 하든 넣어주어야 하고 이런 경우에 예산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학교 무상급식의 전면적인 확대 시행보다는 차라리 그 예산이면 진짜로 필요한 '결식 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전국적인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출처:
http://assetguide.tistory.com/1218)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335900


NGO-시민정치연합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자!!

2월 7일 쌀쌀한 초봄의 날씨에 용산역 7층 시민정치연합이 웨딩컨벤션에서 출범식이 있었다.



2008년부터 2010년의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과의 정면 대결도 해 보았고 온갖 탄압을 당하면서 "어떤 방법 가장 효과적일까" 하는 고민은 많이들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단체를 들자면, 촛불시민연석회의, 민전시(민주전역시민모임), 386과 시민들, 진실을알리는시민들(진알시),  815평화행동단, 애국촛불천국연대, 전대협, 혁명, 각 지역 촛불, 안티2MB, 언소주 등등이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정권 3년 차를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시민들 또는 국민들에게 그리 크게 부각된게 별로 없었지 않은가 싶다. 그와중 여러 단체들이 방법론중 하나로 모든 국민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투표를 통해 "현 정부의 부당함과 수구세력을 심판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 오고 있다.

그래서 시민정치연합은 합법적인 방법인 투표를 장려함과 동시에 투표를 하더라도  자본과 권력을 지향하는 인간들이 아닌 그 지역과 국가를 진정으로 생각하며 일하는 인물이 당선되도록 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더불어 현 정권의 독선과 독재를 막기 위해 이번 6월 선거에서만은 분열되어 있는 야권 정당에게 "단일화" 및 "연대"를 요구하여 "더 큰 힘을 내서 여당 세력에게 승리해 보라"는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민정치연합은 아래로 아래로 다시 시작하는 풀뿌리 정치의 근본을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서두는 이쯤하고...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 가고자 한다.

먼저 우리의 현실부터 좀 짚고 넘어 가 보자.

우리 촛불 그리고 진보라고 하는 단체 시민단체들..이런 조직들은 "연대나 연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라는 것을 물어 보고 싶다. "이명박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때문에 잘 뭉쳐지고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전혀 뭉쳐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08년도 부터 지금까지 촛불을 들었거나 "촛불"이라고 말하는.. 아니 촛불이 아니더라도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이들의 공통점은 " 나잘난 사람! 나만 옳아! 니가 뭔데 나한테 지적질이야?" 라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동지"라고 생각하며 같이 행동해 온 사람들에게 조차 배려하는 자세가 부족했던게 아닐까 싶다. 이런 독선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그 많았던 사람들이 상처를 주거나 받았는데, 서로 으르렁 거리는 현실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 대한 단일화의 압박이 먹힐까?

정치권 특히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아마도 시덥잖은 떨거지로 생각하거나 그저 몇 퍼센트의 표 계산만 해서 이용 수단으로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희망사항(야권 단일화)은 하늘 향한 공염불로만 끝날 공산이 커지게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단일화 압박을 정치권에게 가하고 싶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뭉쳐져야 하는데.. 끼리끼리 모여서 각자 자화자찬만하고 있으니... 답답함이 그지없다. 그러면, 우리는  아니 "촛불"이라 하자. 그러면 촛불들은 연대와 연합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는가?

386 모임, 민전시, 진알시 그리고 이번에 출범한 시민정치연합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뭔 사업이니 하는 행사니 다 때려 치우고 모두가 뭉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보라. 여기서도 '나잘난 박사'처럼 "난 이렇게 하는데 저쪽에서 안 움직여주니 미치겠다" 라고 핑계만 댈 것인가.


나를 먼저 버리고 나를 먼저 낮추어서 다가가면 안 되는가.

이 시점에서는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필자를 포함해서 솔직히 "촛불"이라는 사람들이 " 그렇게 잘 났다고 생각하는가. 뭐가 그리도 잘 났는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는가. 한 마디 하고 싶다. "꼴깝 떨지 마라". 나도 조~~옷도 잘 나지 못 했고, 어디 내세울만한 인물도 능력도 안 된다.  그렇게 못난 내가 이런 말까지 할 정도면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고 답답하겠는가 말이다. 

필자는 자본도 없고 뭘 조직하거나 이끌만한 인물은 더더욱이 아니기에.. 주변에는 온통 안티들만 득실득실 하는데, 차라리 욕을 하더라도 뭉칠땐 어떻게 해서든 뭉쳐 주고 이 싸움부터 승리하고난 다음에 서로 쥐어뜯고 싸웠으면 싶다. 필자의 넋두리는 이 정도만..

간단히 말해 촛불들도 못 뭉치는 주제에 무슨 정치권에 압박이니 단일화 요구를 한단 말인가. 무엇이 우선인지 기본적인 순서도 모르는 것 아닌가. 현 실정에서 주구장창 "야당 단일화"만 떠들면 "오~ 대단하오. 잘 하고 있군요"  할 것 같은가.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진짜 묻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자! 여러분들은 NGO로 출범한 "시민정치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시민정치연합을 두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문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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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시민정치연합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하려는 것 아닌가. (정치 할려고?)
 두 번째, 왜 하필 구설수에 오르내리던 멤버가 주축이 되었는가.
 세 번째, 시민정치연합을 위하여 촛불을 이용만 하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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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질문한다. 원론적인 답변은 접어 놓고 직설적으로 답변해 주기 바란다.

1. 이런 비판이 나왔을 때, 시민정치연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위에서 나온 소문 이외 시민정치연합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또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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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시민정치연합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3가지.

1. NGO 시정연(시민정치연합)이 정치출마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입장을 확실히 못박아 주길 바란다. (장엄하거나 길게 말고 딱 짤라서 "한다. 안 한다")

2. 시민정치연합이 몸을 낮추어 촛불 단체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최우선으로 해주기 바란다. (지금 내세울만한 게 뭐가 있겠는가.. 각 단체를 위해서라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기를...)

3. 정당 정치권을 배제해라.. 가까이 하면 탈날라~~! 무엇때문에 조직하게 된 것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를...(고양 무지개연대를 롤모델로 벤치마킹하길 바란다. 현재 고양 무지개연대가시민정치연합보다 더 호응이 좋은 이유가 먼저 출발한 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권 완전 배제"라는 말 그대로 시민이 중심이 되었기때문에.. 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민정치연합에는 시민과 정치권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둘러 보기 바란다. 시민보다 정치권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지.. 만일 정당쪽이 가깝다면 "탈날라" 된다.. 타의든 자의든 혹시라도 정당 정치권에서 돈라도이 유입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아무튼.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야권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정치권을 압박해야 할 시점에서 그들과 함께 하게 된다면, 그게 독이 될 것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관련 글 >>>
- 시민정치연합

- 고양 무지개연대
-
경기 도지사, 야권 단일화 하면 박빙 승부

- http://afreeca.com/mikidi
- RBC 혁명방송 MOON군  mikidi@hanmail.net

 

추천링크

고양무지개연대 주최 시민공약 공모대회(02.08~02.22)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335962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DJ와 노무현의 유훈통치를 넘..한겨레
'한홍구-서해성의 직설'2010.06.10 20:15:30
  

김대중, 노무현의 실패한 길을 좇는 사람들 
[기고]
누가 뉴민주당플랜을 지지하는가?
민중운동의 일부가 뉴민주당플랜과 정책적 공유감을 느끼고 나아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 / 임필수(사회진보연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열사 명단] 42명 열사와 892명 구속자를 말하지 않는 김대중 추모는 위선 .. (한국인권뉴스 기사옮김)

http://www.k-hnews.com/home/bbs/view.php?id=newest&no=1704

 

노동운동,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 - 노점노조연대

 

 

용산에는 대통령이 없다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대통령이라는 망자와 철거민이라는 망자이득재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4271

 

김대중 ''국장'과 노무현 '국민장'... 그 차이점과 공통점

http://www.bbsi.co.kr/news/inside_view.asp?nIdx=410431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한반도 긴장 완화 vs 북핵 위기햇볕정책 역사 평가에  2009.08.18 () 오후 10:59이는분명 '김대중평전(評傳)'기록돼야과오들이지만, 그렇다고그가이룬크고굵은업적들을상쇄할수는없다. 보다...실패한것은군부독재를연장시켰고이는커다란과오로지적된다" "김대중대통령혼자만의잘못은... 한국일보 정치 박석원기자

 

 

 

진보는 정책이 없고 보수는 철학이 없다.

http://www.mediamob.co.kr/HeadLineView.aspx?ID=6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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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펌글]

 

추모의 감정을 넘어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제안하며

  http://cafe.daum.net/candlearrested/OmgN/168

 노무현의 충격적인 죽음은 전체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무수한 논란과 투쟁을 낳고 있다. 나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이제 잠시 동안 자제했던 할 말을 하고자 한다. 내가 노무현의 죽음 이후에 글쓰기를 자제했던 것은 내가 쓴 짧은 글을 두고 탈퇴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최소한 죽은 ‘인간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그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노무현에 대한 나의 정치적 입장과 평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노무현의 충격적인 죽음으로 인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쟁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분들은 또 다시 노무현의 추모기간이 지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이러한 논란을 반복할 것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고인의 충격적인 죽음이라는 이유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뒤로 미룰 수는 없다. 이미 추모행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치행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치행위에는 반이명박 투쟁이라는 진보적인 요소도 있고, 이명박을 반대하는 이유가 고 노무현에 대한 지지, 또는 이를 통한 민주당에 대한 지지라는 퇴행적 요소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평가도 아니고 단순히 지나간 시절에 대한 맹목적 향수나 과거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저 무도한 이명박정권에 대한 투쟁과도 연관이 돼 있고, 촛불투쟁의 정체성과 이후 전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계급적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많은 얘기를 하지 않고 일단 논쟁과 토론을 위한 화두만을 던지고 이후 더 많은 얘기를 할 것이다.
 

과연 인간 노무현과 그의 정책이 별개인가?

진보진영의 논객인 진중권은 “인간 노무현과 그의 정책은 별개”라고 했다. 많은 진보진영의 정치세력과 노사모, 노무현을 추모하는 분들은 고인이 된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예우를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법이야말로 말이 안 되는데,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비판했지, 인간 노무현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감정 뒤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정책과 별개로 인간 노무현을 말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지 말고 차라리 '정치적 인물'이었던 노무현에 대한 솔직한 자기 입장을 말해야 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노무현같은 인물이야말로 격동의 정치의 한 가운데에 있던 인물이 아닌가?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예우를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전두환이 죽는다면 똑같이 “인간 전두환과 그의 정책은 별개”라며 그를 애도할 할 것인가? 만약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인간 전두환과 노무현을 비교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전두환과 다른 인간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인격화된 자본”이라 했다. 자본가 개인은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또는 어머니이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일 수 있다. 아니면 반대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가 자본가인 것은 그의 개인적 인격과 도덕성, 품성과 상관없이 그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본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목적은 잉여가치의 추구이다. 자본의 인격화된 화신으로서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노동자의 임금을 깎고, 복지를 후퇴시키고, 자본의 위기 앞에서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해서 살아남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기업 대한통운이 박종태열사를 참혹한 죽음으로 몰아놓은 원인이 됐고, 한국타이어에서 수많은 노동자를 기업살인이라고 하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이 되며, 인간 이건희가 자본의 화신이 되어 무노조 정책을 쓰며 노동자에 대한 감시와 억압, 테러와 납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노조파괴 행위와 노동탄압을 자행하는 원인이자 추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노무현과 그의 정책이 별개인가? 노무현은 한때 민주주의 투사로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열성적으로 같이 하고,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나 집권자로서 노무현은 노동자민중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집권자로서 노무현은 인간 노무현과 서민적 풍모와 다르게 농민을 백주대낮에 때려죽이고, 철거민과 노점상을 탄압했다.

노무현정권은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법을 개악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정리해고 하고, 전체 노동자를 공격했다. 또한 그것의 연장선으로 한미FTA를 체결하고 미제국주의의 하위 동맹자로서 군대를 파병했다. 자이툰에서 노무현은 파병 군인과 얼싸안고 서민적 풍모와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반복해 보며 노무현을 추모한다. 그런데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김선일씨는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언론에서 유포한 인간 노무현의 인간적 풍모 뒤에서는 김선일씨의 비참한 죽음이 있고, 미제국주의의 동맹자로 군대를 파병한 노무현의 정책이 있다. 언론이 만든 인간 노무현에게 열광하는 모습은 이런 점에서 맹목적인 것이다. 파병을 하고 군인과 얼싸안는 노무현의 서민적인 풍모와 이명박이 시장을 방문해 시장상인과 얼싸안는 이명박의 서민적 모습은 본질적으로 다른 게 무엇인가?


노무현의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정책은 노무현이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이었기 때문에 발생했던 문제인 것이다.

 

촛불투쟁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나는 노무현에 대한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추모행위는 노무현에 대한 지지도 포함돼 있지만 이명박의 잔학무도한 민주주의 파괴와 억압정책에 대한 분노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추모는 이명박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에 대한 제대로 된 투쟁을 위해서 우리는 노무현에 대한 추모가 가진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 한다. 그것은 촛불의 이후 전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파괴, 노동자민중의 억압에 대한 탄압,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추모마저도 폭력으로 가로막고 있는 이명박에 맞서 단결해서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촛불을 촛불로서 통일성을 유지하게 하는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과거 노무현 집권 시절의, 열린우리당의 민주주의로, 지금 민주당으로 집결해 있는 민주당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하는가?

 
평화적인 촛불투쟁은 이명박의 거대한 폭력 앞에 무릎 꿇었다. 거대한 다수의 촛불투쟁은 이후 소수 헌신적 촛불활동가 사이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다. 이들 촛불 활동가들은 언론통제에 맞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지역촛불로, 또는 비정규직 투쟁과 연대했다. 용산 철거민 학살이 다시 촛불투쟁을 부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이 또한 이명박의 무자비한 투쟁으로 작년과 같은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촛불투쟁이 민주주의 일반을 위한 투쟁에서 더 나아가 비정규직 투쟁과 결합하고 용산철거민 학살 같은 민중투쟁에 결합하는 것에서 촛불투쟁의 전망을 보았다. 이 촛불투쟁이 노무현의 죽음으로 다시 타오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촛불투쟁이 작년과 같은 거대한 투쟁으로 나아가려면 이명박정권의 폭력적인 거대한 물리력을 뚫고 나가야 한다. 촛불의 무정형적인 100만은 명박산성 앞에서, 아니 우리 스스로가 만든 비폭력이라는 프레임 앞에서 주저앉았다. 이명박은 이 틈을 타서 국가권력의 거대한 폭력으로 촛불을 진압했다.


지난 5월 16일 화물연대의 투쟁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결사적으로 투쟁한다면 저 잔학무도한 공권력에 밀리지 않고 제대로 투쟁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반면 노무현의 죽음으로 이명박정권에 대한 타오르는 분노는 수십만이 모인 영결식 이후 이명박정권의 물리력 앞에서 또 다시 차벽에 부딪히고, 경찰 몽둥이 앞에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주의 투쟁을 외치는 촛불투쟁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민주주의, 현재 민주당의 민주주의를 넘어야 한다는 점, 전술적으로는 비폭력 평화투쟁의 한계를 넘어 이명박정권의 공권력의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투쟁과 연대해야 한다는 점. 이것이 촛불투쟁이 다시 부활하고 노무현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딛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살리고 싶은 노무현은 누구인가
[기자의 눈] 인간이 아닌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살리고 싶어 한다. 많은 이가 살리고 싶어 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일까. ...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9.05.28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3210


 
노무현, 바보 전태일과 ‘벌거벗은 용산’
[기고]‘인간적인 것’에 관하여
이광일(성공회대)  / 2009년06월18일 17시03분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nid=53559

... 오백만 명 이상이 추모한 ‘정치인 노무현’의 ‘인간적 것’은 무엇입니까. 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진 자유주의정권 10년 동안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명분아래 진행된 ‘신자유주의개혁’의 도상에서 죽어간 노동자들, 농민들, 가난한 자들에게 그 권력은 분명 ‘살아 있는 권력’이었습니다. 지금 그 바통을 이어받아 파시즘화 경향을 확대, 심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경찰국가 이명박정권의 구조적 폭력 때문에 죽어나가고 있는 이들처럼, 그 당시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적자’라는 것을 내세우며 그 주검들에게 내뱉은 언술들을 깨끗이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여기에서 그 목록들을 다시 조목조목 읊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경쟁력을 위해 그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어찌되었든 그 언술과 행태들이 ‘인간적인 것’이었나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인간 노무현’의 그 어떤 언술과 행동에 호감을 지니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가 속했던 정치세력이 집권이전이나 이후에 가난한 대중에게 준 멸시, 억압과 삶의 고통을 상쇄할 만큼 그토록 ‘인간적인 것’이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인격화된 자본과 권력’에게 ‘인간적인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많은 경험들을 통해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들도 권력 이전에, 대통령 이전에, 정치인 이전에 인간들인데’라며 기대를 버리지 못하다가 삶 자체를 빼앗긴, 혹은 빼앗기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 ‘인간적인 것’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거기에 대고 지금 ‘인간적인 정치인, 인간적인 대통령’ 운운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만일 그것이 실존의 차원에서 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국 노무현정권 시대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것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혹은 그 정권에 대한 객관적 비판을 무디게 하고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집권기에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느니,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느니 말하면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정도로 여기고 탄압하더니 지금 와서 다시 그것이 ‘역진’하였다고 한탄하며 이미 폐기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고 말하는 것이 정말 ‘인간적인 것’인가요. 이른바 ‘인간적인 것’이 ‘그 어떤 상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언술과 행태야말로 정말 비인간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지금 그 ‘인간적인 것’ 운운하는 것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노무현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이니 그 자체에 대해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정치적 자유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이명박정권을 지지하는 수구, 혹은 파시스트들이나 할 수 있는 편협한 행태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프레시안의 칼럼니스트 박동천교수처럼 망자 앞에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각하라고 외치겠다.”고 말하는 것이 머 그리 큰일이겠습니까. 그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또 김기협씨처럼 “그래 보수면 어때?!”라고 커밍아웃하며 노무현정권을 옹호하는 것이 머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그가 ‘보수’라는 것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어찌됐든 ‘자신들의 인간적, 정치적 군주’를 잃은 그 애통한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기에, 그리고 최소한 실존적 죽음 앞에 명복을 비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적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다소 격한 감정을 토해대며 분노의 화살을 ‘진보’에게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정중히 말씀드린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 그치지 않고 억지 논리와 해석, 천박한 지식으로 ‘진보’를 조롱하고 그것도 모자라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에게 “협잡꾼”이라는 딱지마저 붙여 진보를 도매금으로 넘기니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자신들이 지지한 정치세력의 재집권 실패의 원인을 정치적 이념과 전망을 달리하는 진보의 탓으로까지 돌리는 그들의 언술을 접하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며 오히려 이런저런 연민이 증폭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놈현씨에 대한 잡설| 덜 지저분한 글  [말걸기]

 http://blog.jinbo.net/diary/?pid=425

 


★ 좌빨은 왜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나요?? 

 http://blog.jinbo.net/picotera/?pid=300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구르는돌]

http://blog.jinbo.net/rollingstone/?pid=109 

 

 

 저승에서는 미안하다고 말하길   [배여자]

 

 

[알려주세요] 아~! 노무현, 집권중 발생한 열사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는가?

 

http://cafe.daum.net/stopcjd/c1K/16359 

2003년

▶◀ 박상준 열사 - 4월 28일
화물연대 포항지부 소속 조합원, 투쟁승리 염원하며 음독 운명

▶◀ 송석창 열사 - 8월 4일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 '국민연금제도 개선’ 호소 유서 남기고 자결

▶◀ 이현중 열사 - 8월 26일
세원테크지회 문화체육부장, 구사대 폭력에 두괴골 함몰ㆍ안면뼈 골절 중상, 수술 부위에 암 발생 운명

▶◀ 이경해 열사 - 9월 10일
전국농민단체협의회 고문, 제네바 WTO본부 앞 단식농성, 할복

▶◀ 김주익 열사 - 10월 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고공크레인 농성 중 자결

▶◀ 곽재규 열사 - 10월 30일
한진중공업 문화체육부장,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에 괴로워하던 중 도크 바닥에 투신 운명

▶◀ 이용석 열사 - 10월 31일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 '비정규직 철폐' 외치며 분신

▶◀ 이해남 열사 - 11월 17일
금속노조 세원테크 지회장, 극심한 노동탄압에 저항 분신


2004년
▶◀ 박일수 열사 - 2월 14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협 결성 시도, 비정규직 차별철폐 유서 남기고 분신


▶◀ 정상국 열사 - 5월 26일
장흥교통 버스 노동자, 막가파식 해고 노동탄압에 음독 자결

▶◀ 김춘봉 열사 - 12월 27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사측의 계약 연장 거부에 저항 자결


2005년
▶◀ 김태환 열사 - 6월 14일
한노 충주지역지부장, 레미콘노동자 투쟁중 사측 고용 대체차량에 치어 운명


▶◀ 류기혁 열사 - 9월4일
현대자동차ㆍ부경기업 노동자, 일방적인 해고 노동탄압에 자결

▶◀ 김동윤 열사 - 9월 10일
화물연대 회원, 유가인상과 유류보조금 압류 등 극도의 생활고에 분신

▶◀ 정용품 열사 - 11월 11일
한농연 회원, 쌀수입개방 반대와 농업정책 비판 유서 남기고 자결

▶◀ 오추옥 열사 - 11월 17일
성주군 여성농민회 문화부장, '쌀개방 반대' 유서 남기고 음독 자결

▶◀ 전용철 열사 - 11월24일
보령농민회 주교면 지회장, 전농대회 참가 경찰의 집단구타 원인 운명

▶◀ 홍덕표 열사 - 12월18일
농민, 전농대회 참가 경찰 폭력으로 중상 33일간 투병하다 운명


2006년
▶◀ 하중근 열사 - 8월 1일
포항건설노조원, 포항 형산강 로터리 집회에서 경찰폭력으로 뇌 손상 운명


2007년
▶◀ 전응재 열사 - 1월 23일
우창운수노조 부위원장, 임금삭감과 활동가 해고에 반대 분신 운명

▶◀ 허세욱 열사 - 4월 15일
한독택시 노조원, "한미FTA 반대"외치며 분신 투병중 운명

▶◀ 이근재 열사 - 10월 11일후 (추정)
노점노동자, 고양시의 노점상 폭력단속에 집 나간뒤 시신이 되어 돌아옴

▶◀ 정해진 열사 - 10월 27일
상신전기 노동자, 영진전업사앞 집회 중 단체협약체결 요구하며 분신 운명

출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 새역사

 

盧전대통령 '비망록'공개.."모든 꿈 접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검찰 수사 등과 관련해 심경을 토로한 `비망록'이 뒤늦게 공개됐다. 노 전 대통령 참모 출... 연합뉴스 | 10.07 11:07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편지' 파장 서울경제 | 10.07 11:25

MEM0 : 본 글은 민족반역자처단 전국연합(http://cafe.daum.net/kjw7003)에 올린 글입니다.

기고문 출처 :  http://cafe.daum.net/kjw7003/5roY/34 

                           http://cafe.daum.net/antimb/HXck/164868 

 

 민처협 사태를 보며, 각 시민사회단체도 도약이냐 후진이냐는
기로에 선 현실이라 보며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녕하세요.

민처협 초창기때 잠시 회원활동하다 지금까지 그곳을 가끔 지켜보았던 회원입니다.

(지금은 민처협이(http://cafe.daum.net/kokoin 좀 그래서 일단 탈퇴했습니다.)
민처협 사태에 있어서 좀 적적해 사색의 사설을 한번 써 봅니다.

 

기존 민처협이 강령?취지?에 민족이냐 민중이냐에 있어서,
어찌하든 민족 어쩌고하는 단체이기에 민족의 이름을 더 밝히어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맞는 판단인듯 하면서도 꼭 그것만이 답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민중인가 민족인가?는 닭이 먼저냐(민중 => ) 알이 먼저냐(민족 => )라고 할수있지요.

만약 생존 기로에 있어서 암닭 한마리와 닭앍 하나 중 어느것을 선택할것이냐하면
암닭일수밖에 없습니다.(암닭 하나라도 여러 개의 알을 낳을수 있지만, 닭알 하나가지고는 부화될지 않될지 하는 확률에 부딪치니..)

자고로 백성인 민중이 있어야 민족이라는 군락이 형성됩니다.

민족속에는 백성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백성이 모였을때의 예기이고,
혹은 과거처럼 각 지역 혈통만을 중요시할 때 그리 말하는 예기입니다.

현 대세인 열린민족주의처럼 백성이 범민족화를 꾀한다면 그 백성을 민족의 틀속에만 가둘수 없는 이치이듯이,
좀 깬 백성을 지칭하는 민중에 있어서는 민족 민족하는건 고리타분한 예기인 것이지요.

현 민족주의의 정도란, 한민족 국가라는 틀거리속에 애국을 강조시할 때 민족을 거론하면서
자긍심을 심워줘 대사를 행해나가는 정도이면 충분하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런데 자긍심이 지나쳐 너무 민족.민족하다보면 자칫 민족 패권주의가 가미된 무슨 우월주의로 변질되,
어떤 국가는 각 나라와의 분쟁의 소지를 낳게 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흥사단.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좋은 취지의 민족주의를 꿈꾸는 단체였다면,
국학원, 한류열풍사랑 등은 그 취지에 약간 벋어나 지엽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 좀 흐르고 있는 상태이지요.


후에 2003년경 민족반역자처단협회(민처협) 온오프라인모임이 생겼는데,
그 목적은 민족반역자 처단 사업(친일파 청산) 및 친일파작업(친일인명사전) 사수,
 
추모사업 등이었고, 주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사역을 행해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상충되듯 다양한 의견이 있어왔고 계속 토론을 거쳐가며
삐걱되며 이어오다 결국 갈라져 각자의 방법대로 꾸려 나가야하는 실정이 된 모양입니다.

 (1) 민처협 맴버중에는 큰 스케일의 민족반역자 처단 사업은 일단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곳에 맡기고,
우선 민족반역자 문제에 있어서 온라인 여론을 형성하고 친목을 도모해  홍보전 및 친일인명사전 사수,
추모사업 정도로 차츰 해나가자는 의견이 좀 있었습니다.

(2) 반면 열성있는 의열단원.광복군단원 및 지도부중에는 시작은 미약할 수밖에 없으니
모임 몇년까지는 그렇다치고 여력을 모아 그 이후에는 좀더 전진되어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이(그렇다고 친일인명사전 같은 것을 직접 편찬하자는 것은 아님) 큰 스케일을 가지고 사역을 해나가자.
예로 홍보전을 조직적으로 확대하자. 또한 홍보에 있서 연대도 확대화자.
그리고 뉴라이트(수구보수)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인 대책과 개몽실천을 해 나가자.
등의 의견이 있었다고 봅니다.

촛불정국시(2007년말~2008년하반기) 열성맴버의 의견이 흥쾌히 받아 들여졌는지는 알수없으나,
민처협도 촛불집회때 판넬선전전을 하며 연대활동을 함으로써 국민에게 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촛불정국시 제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은 현제 민처협에서 강퇴당해서 새로운 민족반역자처단모임을 꾸릴수 밖에 없었던 (http://cafe.daum.net/kjw7003)
회원들이 주로 당시  촛불집회때 선전전을 하며 연대의 활약을 해 왔다고 생각됩니다.

설령 기존 민처협이 홍보활동을 하고 그랬으나 활동은 지지부진하여
민주시민에게 인식된 민처협은 그냥 깔짝깔짝 대는 모임이더라 였습니다.

하여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데, 문제는 기존 민처협에는 제정이 투명치 못하고 비민주적인 구태가 좀 있고,
하다보면 어련히 뭐가 되겠지 하는 좀 느긋한 면이 있는듯합니다.

그러나 http://cafe.daum.net/antimb/HXck/164496(광복군님이 안티2MB 카페에 올린 글)에서 알수 있듯이
현실은 늘 느긋해 할만한 상황은 아니라는것이었습니다.

 

도약이냐 현상유지냐는 기로에 선 현실이라 봐집니다.

이러한 고민은 비단 민처협만 그런 것이 아닌 현 촛불단체도 마찬가지이고
운동권이든 시민사회단체이든 어떠한 도약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즉 투쟁한다고는 했지만 지략과 준비성.헌신의 미비로 어떠한 대안을 보여주었으나 그에 대한 믿음은
어정쩡하게 내 보여 주었을 뿐 일반 국민이 납득할만한 신뢰를 뚜렷이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좀더 열의 있는 자세와 초연한 마음 가짐으로 민중과 민의에 다가가는 투쟁과 사역이 되어야 한다고 봐집니다.

민처협이 지금은 나뉘게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잠시가 되었으면 하며,
향후 언젠가는 다시 화합해 대사를 이어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시점은 기존 민처협이 쇄신했을 때 일것이며,
그것도 아니라면 화합은 요언하겠지만 말입니다.

 

민처협 사태를 보며, 지난 안티2MB와 함께 활동을 동참했던 안티2MB경인연대가

기존 안티2MB의 비민주성과 재정 불투명성을 들어
동참을 끊고 따로 활동한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안티2MB경인연대가 위의 이유로 따로 갈라설수 밖에 없었나보다고 생각됩니다만

지금까지의 경과를 뒤돌아보면, 이제 재정의 투명성 및 민주성이 어느정도 확보가 된 마당에 그때는 그랬었더라도 지엽적인 연대를 넘어 지금은 동참에 전격 합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화합에 기초한 제대로 된 연대 활동이 필요하심)

단체활동범위를 보면 안티2MB경인연대가 홍보활동과 지역집회와 지역연대 등을 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수도권안티2MB의 범국민대회 성사에 비해 활동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안티2MB경인연대가 무슨 큰 집회를 조직하기는 좀 버겁더라도 주말에 지역홍보전을 한후, 수도권 가두시위에 동참을 해야하는데, 잘 그렇지도 않은 모습을 볼때, 도대체 왜 분파를 했는지 명분이 퇴색되었다할만큼, 좀 실망스러운 경우이니 말입니다.

모조록 민족반역자처단.전국연합은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촛불시위가 한참일때 어떤 민주시민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합니다.

"내가 전에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활동한적이 있는데, 관변단체가 구태라고하지만 정작 자신들도 생각하는게 편협하며 끼리끼리 근성에다 비민주적이고 제정도 불투명 하는등 하더라.

이런 시민없는 시민단체의 모습을 보고 신경을 끊었다가 촛불집회로 다시 자주 나와봤다.
그런데 시민단체를 둘러보니 광우병대책위나 안티2MB나 경인안티2MB나 그나물에 그밥이더라.
후에 강성촛불이라던 애국촛불전국연대를 보니까 제정도 바닥이고 투쟁의 동력도 약해졌더라.
참, 입만살은 온건촛불이 문제인 반면, 도대체 나 강성이요라는 단체가 제정난에 허덕이는걸보면 그 강성들도 자본주의적인 삶인것 같고 문제가 있는것 같다.
이런 온전한 헌신의 미비로 재정이 없어 투쟁에도 지장이 있다고하니.. 도대체 아니면 말고식 참여이거나, 지 성질에 못이겨 무대뽀 투쟁만 할줄 알았지,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있기는 한건지 걱정이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이냐..."

 

 

 

 

1999년 시위의 목적은 알다시피 시애틀에서 열리는 WTO회의를 무산시키는 것.

이를 위해 목적을 달리하는 여러 단체가 한데 모여서 오직 한가지 목표 회의의 무산을 위해 시위를 시작했다.

외부인이 약 5만명 정도가 시애틀에 모였다.

어쨋든 시위가 시작되었고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회의장을 둘러싸고 회의국의 입장을 막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센터를 경호하던 경찰 병력 일부가 시위대 내부에 고립되버렸다.

결국 시애틀 경찰은 고립된 경찰 병력을 구하고 회담장 안에 이미 들어가있던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강경 진압을 선택한다.

최류탄, 고무탄 등이 사용된 강경 진압과 체포는 하지만 시위를 더욱 격화시켜버린다.

특히 요새 국제 규모의 시위에 항상 등장하는 무정부주의 단체 블랙 블록이 방화 등의 과격 시위를 시도하는데

그렇다해도 이 시위 역시 비폭력(자기 방어를 위한 바리케이트, 물리적 저항 수준의) 기반이라

시위대에서의 자체 제어에 나름 성공한다.

비록 야간 통행 금지와 도시 전역에 비상 경계령이 선포되고 시위 금지 구역이 설정되었지만 밤사이에 과격한 충돌은 자제되었다. 어쨋든 이런 시위를 통해 WTO 회의를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진압의 결과로 경찰 서장은 해임되고 다음해 시애틀 시장도 낙선한다.

그리고 법정 투쟁에 들어가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위 금지 구역 바깥에서 체포된 157명에게는

불법 체포를 이유로 25만불을 배상해준다.

그리고 2007년 시위 금지 구역 내의 (바깥이 아니라 금지 구역 안이다)

공원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연좌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175명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나 확실한 증거 없는 불법 체포였다는

이유로 100만불을 배상하고 체포 기록도 삭제되었다.

뒤의 판례는 법원에서 경찰의 진압 자체가 수정 헌법 4조의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는데

사실 100만불 배상은 시애틀 정부가 가입한 보험 회사와

시위대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시애틀 정부는 항소를 포기한다.

 

가끔 미국은 폴리스 라인 설정해 놓고 넘어오면 다 때려 잡는다느니 발포해 버린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때에 따라서다.

그게 가능하려면 현실된 위협의 존재와 그걸 증명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가난한 시위대나 반항자(특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그리고 아시안)들이 별 이유 없이 총 맞고,

그러고도 경찰에게 무죄가 나와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설픈 변호사와 부족한 증거 확보라는 점도 있다.

시애틀 정부도 물론 이런 서류 작업의 미비 때문에 패배했고, 그걸 아쉬워했다.

 

결국 시위대와 경찰 및 정부 양쪽 다 증거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경찰 중대장이 횡단 보도 막고 '내 맘이다' 따위의 대답을 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어쨋든 이외에도 다른 몇차례 소송에서 시애틀 정부는 80만불 정도를 더 배상했다.

 

미국이 개인의 권리를 소송에 의해 보장하며 유지하고 있는 나라라는건 확실해 보인다.

돈이면 하여튼 다 되는걸 보면(변호사 마련도, 증거 확보도 다 돈이다) 웃기는 나라인거 같기도 하고,

적어도 그 시스템 안에서는 돈만 있다면야 완벽한 나라인거 같기도 하고.

 

 

 

 

과연 정부가 말을 들을까? 만약 안듣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단은 위 시애틀의 예처럼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이나

절차법 위반 사항에 대한 고소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경찰 간부급의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있어야

시민들이 불법적으로 당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http://macrostars.blogspot.com/2008/07/1999.html

 

 

 

 

 

덤으로 '할미새'님 글중 좋은게 있어서 퍼와봅니다.

 

 

촛불이든 투석전이든 시위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사람들이 재밌다며 웃으며 구경합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거름과 물도 안주고 나무가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성질급함. 투지만 있지, 앞뒤는 모르는 답답함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다고 언론에 알려집니까?  그저 까십정도로 보여지지 않습니까?

 

아직도,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밀접한 일인지 전국을 깨닫게 할 방향으로 나갈 생각이 없습니까?

 

전국민의 머리 속에 , 아, 이것이 나의 일이구나'라고 느껴져야 여러분의 뜻이 정부에 전달되고,

정책이 바뀌고 사람이 바뀔 것입니다.

그때에야, 경찰과 공무원들도 생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신적인 존재들도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개구리는 뛰기 위해 움츠린다고 했습니다. 움츠릴줄도 아십시오.


작년에 촛불을 향해 방송하던 여경 기억 안납니까?

제법 멋진 말과 논리적으로 방송을 한답시고 떠들다가는,  중간 중간에 지들끼리 히히덕 거리면 놀다가 ,

마이크들고 또 몇마디 하다가, 또 히히덕 거리다가, 그게 그들의 실제이며,  나태입니다.

그들에겐 촛불들의 함성과 쉬어가는 목소리가, 몽둥이에 터지는 머리가, 처맞는 여자아이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월급을 제대로 받고 쫓겨날 일이 없는 행정공무원이라 피볼일 없습니다. 다치는 경찰들이 있어도 자기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하고 안락한 겁니다. 그 마음이.

반면,

전경과  실제 투입경찰은 명령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따라야하기에 생각할 여가가 없습니다. 그들에겐 그저 일처리일 뿐입니다. 촛불은 지겹고 짜증나는, 자신의 잠과 하루 일과 후의 술과  개인생활을 포기시키는 존재들일뿐입니다. 그들은 독재가 되든, 일제시대가 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현재위치가 그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바꿀정도로 홍보 되지 않는다면, 계속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것입니다.

 

거의 모든 촛불의 힘을 알림, 홍보에 쏟아야 뒤늦게라도 이루어지는 게 있을 겁니다.

의지,투지만으로는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지, 투지만으로 모든 걸 이룬다면 이 세상에 독재라는 나라는 없을 겁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예전처럼,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싶은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학생들은 관심없어 합니다. 대체, 아니 아주 기절할 정도로, 젊은이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젊고 이기적이어서, 타인의 일에 무관심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차차 그들까지 끌어안으며,

진정 민주적으로 무언가 이루려면, 그것과 관련된 순서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와 중년들이 일부를 제외하곤 경찰과 촛불을 보며 웃습니다. 재밌어 합니다. 아예 대놓고 신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촛불을 대놓고 욕하는 청년들,노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겐 촛불이 정말로 나라를 뒤집으려는 존재로 읽혀집니다. 언론이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현실인데도,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모든 흉악한 사태가  남의 일입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런 말하면 나도 알바취급당하겠지만,  적어도 이것이 더 중요하고, 애초에 그걸 먼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계광장 안에서 근 6개월 촛불을 들었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못 들은 채 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로 뛰쳐나와 우리의 말에 귀기울여 달라고 했지만, 결국 사람들만 다쳤습니다. 1년간이나 다쳐왔습니다.
십만, 백만이 길거리로 나와 외치면 무언가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자그마치 백만이 모였지만, 대체 뭐가 변했습니까?

 

과거, 독재에 항거하던 그 수많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처럼 그렇게 피터지게 항거할 사람들 대체 몇명입니까?

대체 몇명입니까?   그 방법이 싫다면, 다치기 싫고, 다치게 하기 싫다면!!!!!!!!!!!!!!!!!!

민주적으로 의사전달을 하기위해 촛불을 들었다면, 촛불을 든 이유를 전 국민이 더 많이 알게 해야 할겁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제 촛불이 있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촛불 시위를 현재 하고 있는 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왜 촛불을 드는 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그들은 아고라에 와서 글을 읽거나 쓰지 않습니다.
그저 출근하고 퇴근하고 tv뉴스보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술먹으면 현정부나 과거정부나 안주거리로 재밌거리로 이야기합니다.
분노를 느끼는 사람도 참여하진 않습니다. 남의 일이니까.

자신의 생활 이외에는 관심없는 그들에게 촛불이란, 그저,

저것들이 간첩이라서, 빨갱이라서, 미쳤으니까, 정부를 전복하려고, 별 쓰잘대기 없이, 이해는 하는데 나까지 갈 일이야 없지,  나라가 망하면 나도 나가지, 이런 존재입니다.


왜 피흘리며 쓰러지고, 공포에 떨면서 그런 욕까지 먹고 있는 겁니까?

적어도 피흘리며 쓰러질때는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에게 바른 것에 대한  소중함, 그 무언가가 가슴에서 우러나게 되어야 정상이 아닙니까.

 

 촛불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싸움이든 전쟁이든 항상! 시원하게 이길 수는  없는 겁니다. 강경모드로 나가지 않을 거면, 강경모드로 나가지 않는 만큼의 다른 것을 뿌려서 더 많이, 재미있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느끼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머리가 아프군요. 가슴이 아프군요. 이게 뭡니까!!!!!!!!!!!!!!!!!   미안합니다. 욕을 먹든, 뭐든 ...답답하군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515969&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아고라 자유토론방 //쥐독한노래님의 다른글보기

 

 

 

 

 

 

 

출처 :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글쓴이 : 민심은 천심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http://cafe.daum.net/supportingworkers/5nKc/75

<구속노동자 28호> 박한삶의현장에서연대를실천하는 시민기자, 신만호후원인

 (편집인)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사무국장   08.05.19

  

 

 

 

<구속노동자 28호>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기자, 신만호 후원인
- 소식지中 전문(수정본) -

신만호 후원인(필명: 채널만호)과 만나기로 약속한 5월 3일 오전.

전날 급작스레 이주노조 토르너 림부 위원장과 소부르 부위원장이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시며 그리로 오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긴급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으로 가니 신만호 님이 계셨다. 시민기자인 그는 취재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영등포로 이동한 후 늦은 점심과 함께 유쾌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자연스레 이주 노동자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신만호 님은 최근 극심해지고 있는 이주노조 조합원 표적단속에 걱정과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의 표적단속을 막고 이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연대 단위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맛있게 비우시는 신만호 님. 그는 이른 새벽부터 신문 보급소에서 배달 일을 시작하고 있으며 끝나고 나면 핍박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투쟁현장을 바삐 뛰어 다니며 인터넷 시민기자로 활동한다.

어떤 계기로 구속노동자 후원에 동참하시게 되었는지를 묻자, 신만호 님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죠”라며 허~허 하신다.
그는 오래전부터 10여 군데의 노동․사회 단체에 매달 후원을 하고 계셨다. 잠시 통장을 꺼내보여 주셨는데, 들여다보니 전비연,평통사,철폐연대,전해투 등 사회단체들의 이름이 빼곡이 찍혀 있었다.
최근에는 학습지노조에도 후원금을 보내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투쟁하다 구속된 노동자를 후원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돈 걱정 없이 투쟁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메이데이 집회에서 1천원 짜리 얼린 생수를 팔고 있던 이랜드 노동자들을 언급하며 투쟁기금을 염려하시는 말투에서 훈훈함이 묻어나온다.

그에게 구노회 상근자들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구노회를 알게 된 건 이주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구노회 활동을 지켜보면서 조용하지만 진실 되게 활동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고 하셨다. 열심히 사명감을 갖고 활동하는 구노회 활동가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투쟁에 더욱 자주 연대하기 바란다는 소중한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끝으로 구속노동자 동지들께 안부 인사 좀 하시라고 말씀 드렸다.

“용기를 잃지 말고 진보․해방 세상을 꿈꾸고 노력하신다면 언젠가는 그 길이 열릴 것입니다. 상황은 어렵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극복해 나갑시다. 저의 연대가 큰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믿으면서 함께 갑시다!” 

-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신만호 후원인께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터뷰 정리\ 구노회 김진석 상임활동가)


 



 

 

[MB정부 1년 좌담] "성찰하고 소통하라, 아니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

기사입력 2009-02-25 오전 11:13

 

경제위기의 한파, 남북관계의 악화, 사회갈등의 심화. 정권 출범 1년을 즈음해 이명박 정부가 처한 현실은 가히 총체적 위기다. 대통령 지지율은 간신히 30%대를 맴돈다. 보통사람이 체감하는 오늘의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객관적으로 드러난 경제·사회 지표 이상이다.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정권 말기에나 나올 법한 단정적 평가들이 쏟아진다. 애당초 그가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이었느냐 비판적이었느냐를 불문한다. 여기엔 잘못 끼운 첫 단추를 풀어 다시 여밀 의지와 자세가 대통령과 집권세력에게 과연 있을까 하는 체념까지 서려있다.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이 연속 기획한 '이명박 정부 1년 평가와 2년을 위한 전망'의 최종편인 결산좌담도 환멸이 기대를 압도한 자리였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의 사회로 손혁재 경기대 교수(정치전문대학원), 정상호 한양대 교수(제3섹터연구소),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 지난 23일 2시간 동안 벌인 토론을 싣는다. <편집자>

퇴행의 1년

"대안 없는 보수정권"으로 이명박 정부를 성격 규정한 손혁재 교수는 "과거 정부에게는 최소한 자기가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가치공동체가 권력을 형성했다기보다는 기득권 집단이 기득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합한 정권"이라고 혹평했다.

정상호 교수도 "쿠데타 같은 불법통치가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개발하고(신개발주의), 권위주의를 하고(신권위주의), 보수주의적으로 작동이 가능하다(신보수주의)는 것이었는데, 이제 '신'은 없고 보수주의, 권위주의, 개발독재만 남아있다"고 퇴행을 지적했다.

'실용'을 표방했음에도 유연함과 세련된 면모가 있는 보수정권이라기보다는 구보수의 올드패션이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연철 소장은 "본래적 의미를 갖는 단어들 가운데 한국에서 제일 고생하는 단어가 '보수'"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에서 소외됐던 보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부활이 지금의 난맥상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했다.

이같은 철학의 빈곤과 더불어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는 소통 장애, 이 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 등이 국정운영을 경직시킨 핵심이라는 의견도 일치됐다. 김윤태 교수는 "반대파와 소통과 대화를 하고, 능력 없는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까지도 포용하고 기회를 주는 리더십, 그게 현 정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였고 국민들이 실망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촛불 집회와 용산 참사 정국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일변도식 대응이 대표적이다. 김연철 소장은 "우리사회가 갈등을 조정해나가는 방식들이 정착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데 공권력의 폭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정상호 교수는 "시민사회와 거버넌스가 없어진 와중에 믿고 기댄 건 검찰과 경찰, 국정원 권력"이라며 "거꾸로 가는 추세의 총체적 귀결이 촛불과 용산사태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손혁재 교수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통제와 억압과 회유의 대상으로 본 것"이라며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내각이든 마음속의 명박산성을 없애지 않으면 촛불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북관계의 악화도 이명박 정부의 기계적 대응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김연철 소장은 "1971년 이후 정부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남북 대화를 추진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명박 정부가 '북한이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이렇게까지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보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의 진정성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윤태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보수파를 설득하기에는 유리한 위치였는데, 말로는 실용이었지만 내용이 협소한 반북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비현실적인 상호주의를 적용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손혁재 교수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사회, 경제, 정치적 비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서 그렇다"고 혹평했다.

정상호 교수는 "앞 정권의 모든 걸 부정하다 보니 정책적으로 좋은 방향을 소생시키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게 아니라 사장시키고 있다"면서 "경제 살리기 덫에 빠져서 다른 분야의 전체적인 기능이 저하돼 있다"고 국정의제의 확장을 주문했다.

ⓒ프레시안

"보수도 진보도 대전환 해야"

국정운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엔 이견이 없었다. 정상호 교수는 "국민들이 출범 1년까지는 책임을 외인론으로 양해해주는 경향이 있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내재론으로 평가를 한다"고 집권세력의 각성을 요구한 뒤 "책임정치를 할 것과 갈등적 정치입법에서 민생입법으로 전환할 것, 조·중·동의 '코치정치'에서 전환할 것" 등을 주문했다.

김윤태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이 정부는 민주주의 후퇴를 넘어 정치적 자유를 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리더십과 거버넌스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혁재 교수는 "대통령이 열린 마음을 갖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소통이 없다면 이 정부는 현 상황에서 한발도 앞으로 갈 수 없을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 야당과의 소통, 함께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구성원과의 소통을 통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연철 소장은 "이 정부가 스스로 다수의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한, 그 결과는 대안세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자멸하고 붕괴해 가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며 "지난 정부의 정책이나 공과 과에 대한 면밀한 리뷰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주문 역시 다양했다. 정상호 교수는 각개약진하는 진보개혁진영 싱크탱크의 네트워킹을 위한 '싱크탱크 연대회의' 구축을 제안하며 "진보와 중도가 주요 정책에 대해 단일의제를 만들고 민주노총, 민주당, 시민사회운동의 내부혁신과 쇄신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손혁재 교수는 "어려운 담론적 대안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단계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실질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고민들을 해야 할 것"이라며 "MB악법 저지 결사투쟁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무얼 원하는지를 바탕으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윤태 교수는 진보개혁적 관점에서 지난 10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서민들이나 취약계층들이 원하는 마이크로 정책과 거시적 정치 담론을 결합시켜 국민을 설득해 낼 수 있는 능력, 이게 진보개혁진영에 부족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연철 소장은 "제도권이 담을 수 없는 소수담론들은 NGO의 고유 역할로 남겨두더라도 최소한 국가적 아젠다를 다루는 시민운동 쪽에선 정당정치로 가야 한국 정치가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다음은 지난 23일 오전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 전문.

실용정부인가 이념정부인가?

김윤태 : 이명박 정부는 역대 대선에 비해 가장 압도적인 표차로 등장한 것에 비해 너무 빠른 시간에 지지율이 급락했다. 더욱이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정부에 대한 신뢰나 기대가 많이 약화돼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명박 정부 1년 평가하고 집권 2년차를 전망하면서 우선 이명박 정부의 등장의 의미를 정치사적으로 다시 한 번 되새겨봤으면 한다.

▲ 손혁재 경기대 교수 ⓒ프레시안
손혁재 : 이명박 정부는 처음으로 국민의 경제적 선택에 의해 등장했다. 군정 종식이나 정권교체 같은 정치적 선택이 주가 됐던 과거 선거와 달랐다. '경제 살리기'라는 명제에 국민이 치중한 것인데, 여기에는 국민들이 공동체 전체의 공동선보다는 개별적 경제적 이해관계, 즉 욕망에 빠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개인의 경제적 욕망이 발현된 것이든, 개인의 욕망을 적당히 포장한 것이든, 문제는 경제 살리기에 적합하고 유능한 정부인가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대안 없는 보수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747은 우스갯소리가 됐다. 선거 당시에도 어떤 방식으로 747을 이루겠다는 게 나와 있지 않았다. 경제전문가라는 이미지를 내세우거나 참여정부가 너무 경제를 못했으니 내게 맡겨주면 잘 하겠다는 식의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렀다. 참여정부에 대한 반발과 묻지마 선택의 결과 대안 없는 보수정권이 등장했다고 본다.

정상호 : 군사독재 시절과는 다른 측면에서 민주정부 10년의 국정운영을 국민들이 평가했던 것이다. 지난 10년에 대한 부정적 평가 속에서 또 다른 솔루션을 기대한 것이다. 그것이 신개발이 됐건, 신권위주의, 혹은 신보수주의가 됐건 경제적 비전을 낸 것에 국민들이 다수표를 줬고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나타난 급속한 반전은 무엇이냐. 취임 1주년 시점에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특징이 있다. 지지도가 떨어졌음을 감안해도 '베스트 5'나 '워스트 5'가 있어야 하는데 잘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평가가 너무 많다. 지지율 30% 정도 되면 그래도 잘했다는 항목이 부분적으로 나와야 한다. DJ 정부 때는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도 대북분야에서는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언론개혁이나 지역균형발전 등이 추동력이 됐다. 다른 한편으로 이명박 정부를 지칭하는 단어에 처음에는 '신(NEW)'이 붙었다. 쿠데타 같은 불법통치가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개발하고(신개발주의), 권위주의를 하고(신권위주의), 보수주의적으로 작동이 가능하다(신보수주의)는 것이었는데, 이제 '신'은 없고 보수주의, 권위주의, 개발독재만 남아있다. 그것이 1년을 평가하는 현주소다.

김연철 : 한국에서 본래적 의미를 갖는 단어들이 고생하고 있다. 제일 고생하는 게 '보수'다. 뉴라이트 현상이 그렇고, 최근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프레임은 친북좌파 프레임이다. 역사교과서 개정이나 대북정책 문제, 각종 지식분야에 나타나는 반동적 움직임의 기본 프레임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각에서 보면 한국에는 좌파가 80%가 넘을 것이다. 제일 오른쪽에 서서 자기를 제외한 사람은 모두 좌파라는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대체로 뉴라이트나 신보수 등의 말에서 '네오'가 갖는 의미가 있는데, 실제로 보이는 현상들은 아주 오래전에 봤던 현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그런 현실에 직면한 당혹감, 당황스러움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겠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나타난 남북화해 무드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에서 소외됐던 보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부활이 지금의 난맥상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손혁재 : '보수'란 말이 고생한다고 했는데, 대안 없는 보수정치도 같은 말이다. 보수는 지켜야 할 가치를 말한다. 그러나 현 정부에게 지켜야 할 가치랄 건 없다.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혹은 그 이전의 우파 정부에게는 최소한 자기가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있었다. 일종의 가치공동체가 권력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정책결정을 하는 걸 보면 기득권 집단이 기득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합한 것이지 무언가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의 이익이 중요하고, 그 이익에 반감을 갖거나 줄이려는 사람들은 '좌빨'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집권 세력에게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모독이 될 수 있다. 집권 세력이 가장 오른쪽에 서 있기 때문에 죄다 왼쪽이 되는 것이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부터 좌파, 친북 같은 프레임이 먹히지 않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분야에서는 일정한 효용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들이 그런 프레임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좌파라고 지칭된 사람들이 혹시 내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하지만 그런 프레임도 곧 깨지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그 프레임을 가져간다면 지금 유지하는 지지기반마저 무너질 수 있다.

김윤태 : 지난 대선 결과에는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이 붕괴된 것이나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 때 낸 성과에 대한 기대심리도 있었겠지만, 경제 살리는 데에는 CEO 리더십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확산됐던 것 같다. 민주화, 정치개혁, 남북통일 등의 주제가 경제로 간 것은 재테크나 재산 불리기 등이 사회와 정치생활까지 지배하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리더십까지 규정하는 시대적 분위기로 간 게 특징이다. 문제는 경제 살리기의 비전이 있었느냐다. 민영화, 감세, 탈규제를 말했지만, 이건 대처나 레이건 시절 이야기이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철지난 유행가가 됐는데 아직도 그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 변화, 시대 조류를 잘 읽지 못하는 한계가 아닌가 싶다. CEO형 리더십도 이 기회에 다시 봐야 한다. 과연 CEO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 10명의 사원이 있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도 100명이 거주하는 마을의 이장을 못한다. CEO는 이윤을 못 내면 사람 자르면 되지만 이장은 노동 능력이 없는 주민이라 할지라도 마을을 떠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파와 소통과 대화를 하고, 능력 없는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까지도 포용하고 기회를 주는 리더십, 그게 현 정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였고 국민들이 실망한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가 왜 이념갈등이나 정치투쟁에 매달리면서 과거를 고수하려는지 이해가 안 되는 면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보면 실용주의 정부라기보다는 이념정부가 아닌가 싶다.

손혁재 : 실용주의 자체가 이데올로기다. 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것이 크게 두 가지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CEO가 됐다는 것과 갖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 임기 안에 청계천 사업을 이룬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착시다. 첫째는 현대 신화가 이명박 신화인 것처럼 믿은 착시이고, 청계천을 이뤄냈던 추진력이 있으니까 우리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착시다. 폴 케네디는 대기업 CEO는 대통령 되면 안 된다고 했다. 기업원리와 국정운영 원리가 다른데, 기업을 잘했으니 대통령도 잘 할 것이라고 국민들이 잘못 인식했다. 예를 들어 복지비 지출은 기업 CEO 입장에서 보면 쓸데없는 지출이다. 그러나 국가 입장에서는 긴요한 것이다. 현 정부가 복지분야를 줄여나가는 것은 CEO적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CEO로서는 훌륭했는지 모르지만 국가지도자로서는 상당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데, 기본 습성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 정상호 한양대 교수 ⓒ프레시안
정상호 : 이명박 정부는 왜 '베스트 5'가 없을까, 왜 이렇게 못할까를 보면 집단적 능력의 문제 등이 있겠지만 이들이 잘 할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고 본다. '신'자가 붙을 수 있던 지점들, 즉 선진화, 공동체 자유주의, 저탄소 녹색 성장 등의 가치다. 이는 수사학에 불과하고 내용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나쁜 가치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가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함에 있어서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는 건 대화 모색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민주정부는 그나마 대연정이나 노사대협약, 여야 영수회담처럼 대화를 하려는 시도는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편향적 정부이면서 대표성이 좁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는 독재이긴 했어도 정작 국민들은 그 정권에 대한 대표성을 매우 넓게 봤다. 대화와 소통에 관해서 이 정부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그림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런 문제제기를 할 만한 내부 집단도 없다. 시민사회비서관 등 공식 채널조차 없다. 국민소통비서관을 뒀지만 용산 이메일 사건으로 그 성격이 나타난 것 아닌가. 편협한 대표성,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 정당, 시민사회 채널이 동맥경화에 걸린 듯이 좁아지고 있는 게 문제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김윤태 : 이명박 정부가 내건 경제 살리기와 CEO 리더십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집권에 이르렀겠지만 집권 후 이것이 작동이 안 되는 이유는 말로는 실용주의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본다. 녹색성장을 말하지만 토건사업이나 대운하 비슷한 4대강 살리기에 돈을 지출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에 안 맞는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소통을 안 하는 신권위주의, 경제로 모든 걸 보는 신자유주의적인 생각이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한 게 아닌가 싶다.

정상호 : 이 정부의 성격에 '신'자를 붙이면서 이 사람들이 친북좌파라고 얘기할 줄은 몰랐다. 그런 것들을 안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신'이나 '네오', '뉴'가 붙는 것이다. 유신 때도 영수회담은 중요한 국면타개 방식으로 작동했다. 권위주의 정권도 여야 간 대화채널을 기능적으로라도 활용을 했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에서 '신'자가 탈각됐다고 여겨지는 건 그런 지점들이다. 적어도 절차적 제도가 지켜질 줄 알았고 상대방에 대해 이념적 잣대를 씌우려는 낡은 방식은 떠날 줄 알았다. 대운하보다는 세련된 방식을 쓸 줄로 믿고 '신'자를 붙였는데, 1년 동안의 그러한 개념화가 이제 와서는 학자들만의 얘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손혁재 : 누구를 위한 실용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성과를 위해 속도를 중시하고 이념을 탈피한다고 했는데,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밀고나가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런 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역사와 미래, 국민에 대한 성찰이 없다. 실용이라고 내세우는 정책은 모두 1%를 위한 정책이다. 기업 살리기라고 하는데 정작 기업들은 죽어나간다. 1% 대기업을 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친화적이라지만 노동자, 소비자는 죽어나간다. 대기업 오너들만 반길 정책을 편다. 실용이라는 것이 말로는 좋은 것 같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는 1% 실용은 위험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김연철 : 지난 정부들과의 관계, 연속성, 공과 과에 대한 평가나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문제를 짚고자 한다. 인사 정책을 예로 들자면 과거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도 유능하면 툭툭 털고 쓰는 것이 실용 아닌가. 과거 정부에 근무했다고 다 잘라 버렸다. 남북관계도 6.15, 10.4 선언 계승 문제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데, 과거정부가 합의했더라도 좋은 것은 쓰는 게 실용이다.

촛불, 경제위기, 그리고 공권력

김윤태 :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자마자 촛불 정국이 발생했다. 정부가 시민사회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후에도 국가가 경제를 어떻게 관리하고 개입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프레시안
김연철 : 촛불의 이슈는 쇠고기 수입 관련 문제다. 그 문제 발생한 초기부터 다뤄나가는 과정을 보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방식의 차이를 보게 된다. 87년 이후 20년 이상 세월이 흘렀고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민주적 방식이 정착됐는데, 이번에는 87년 이전 과거에 익숙하게 봐왔던 권위주의적 대응이 충돌을 빚은 게 아닌가 싶다. 아고라 광장에 갑자기 선글라스 쓰고 군화발로 나타나 쿠데타를 한 형국이랄까. 미네르바를 신지식이이라고 할 정도로 과거의 전통적 지식인상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 지식을 구하고 소통을 해 나가면서 사회와 정책을 바라보는 수준이 높아진 상황인데, 그걸 획일적으로 통제하면서 발생한 충돌이다. 용산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가 미흡하지만 갈등을 조정해나가는 방식들이 정착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데 갑자기 공권력의 폭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이 시대와 불화를 일으켰다. 그런 방식으로는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김윤태 : 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는 공고화되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사회갈등에서 권위주의 회귀나 민주주의 후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그런 것 같다.

정상호 : 민주주의 후퇴가 틀림없어 보인다.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다수당이 의회에서 절차에 따라 한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이 정부 들어와 실종된 언어가 있다. 본래적 의미가 상실된 언어다. 상실된 언어의 시초는 5공 때 나온 '정의사회 구현'이다. 광주를 거친 정권이 정의사회를 구현한다고? 이 정부에서는 녹색성장이나 공동체 자유주의가 본래적 의미를 상실했다. 또한 시민사회라는 언어도 상실됐다. 시민사회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겪으며 대화의 파트너로 격상 됐는데, 이 정부 들어서 어느 순간 없어져버렸다. 한국사회에는 시민사회가 해체됐거나 분화됐다. 또 없어진 단어가 거버넌스다. 이제는 이 방식 자체가 없어졌다. 그런 것들의 총체적 귀결이 촛불과 용산사태로 나타났다. 시민사회와 거버넌스가 없어진 와중에 믿고 기댄 건 검찰과 경찰, 국정원 권력이다. 거꾸로 가는 추세를 확인시킨 게 촛불사태였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 불렀다는 건 겉과 속이 다른 불일치다. 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이후 나타난 현상은 제2의 촛불이 나타나면 검찰과 경찰로 누르겠다는 게 내부의 결론이 아닌가 싶다. 노무현 정부의 탄핵사태와 이명박 정부의 촛불 사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여론, 혹은 국민 주권에 대한 잘못된 독해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에서 반전된 에너지로 임기 중반부터 개혁 드라이브를 본격화해야 했는데 못했다. 거꾸로 이 대통령은 촛불에서 나타난 여론에 저항하기보다 수렴하는 전환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경제살리기나 녹색성장을 하기 위해서도 시민사회, 거버넌스, 여론과 제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갔다. 검찰과 경찰을 통한 해결로 손쉽게 선회했다는 것이다. 촛불은 대단히 중요했지만 잘못 대응했다.

손혁재 : 촛불시위라는 게 현 정부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좋은 계기다. 그걸 제대로 읽지 못하다보니 문제 해결을 못한 것이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실용에는 국민을 위한다는 게 빠져있고, 또한 소통에도 문제가 많다. 촛불에 대한 대응은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촛불 정국을 쇠고기 안전성 문제로 몰아갔다. 초점을 흐리거나 문제의 범위를 좁혀서 해결하려 했다. 배후에 좌파가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들을 설득하는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통제와 억압과 회유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명박산성은 시민들이 청와대로 가는 걸 막은 게 아니라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과 소통의 길을 막은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내각이든 마음속의 명박산성을 없애지 않으면 촛불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촛불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시민사회는 귀찮은 존재, 배제의 존재가 될 것이다.

정상호 : 시민사회와의 소통 문제도 있지만, 내부적 소통에도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촛불이 가져온 최대 피해자는 당이다. 촛불을 친북좌파들의 음모로 규정하면서 한나라당의 소장파 세력이나 합리적 중도, 보수가 그 이후에 침체되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 지식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문열씨가 '불복의 정치'를 말했다. 친노, 민노 세력의 뒤늦은 역전으로 해석했는데, 나는 놀라웠다. 용산 사태 때도 신지호 의원은 도심테러집단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보수적 지식인들도 대통령이 명박산성 하듯이 좁아졌다. 내부적 견제가 없는 게 이명박 정부의 큰 문제다. 이건 부정과 부패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소장파로 불리는 의원들이나 박세일 교수 등 보수적 지식인들 중에 합리성을 가진 사람들도 침묵의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김윤태 :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단절된 데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대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정치적인 고려도 상당히 원인이 됐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박근혜 대표보다 훨씬 중도, 진보성향을 보였다. 그래서 중도표를 압도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집권 후에는 촛불시위를 분수령으로 훨씬 강경보수로 가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전통적 지지층 등 강경보수 세력에게 더 부합되는 정치 전략으로 선회한 게 아닌가 싶다. 전통적 지지층을 결합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시민사회와의 정면대치하고 충돌을 빚고 있다. 경제위기 실상에 대해서도 고통분담이나 합의를 호소하기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의해 임시방편으로 자신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이 없는 식으로 호도한다든지 낙관적 기대를 하고 있다.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고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기보다는 단기적 선거공학적 계산이 지지기반을 협소하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손혁재 : 이 정부의 실용주의는 성과지상주의다. 속도전이다. 노자에 정치는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해야한다는 얘기가 있다. 센 불에 구우면 다 타버리고 눌어붙으니 맛있게 구우려면 약한 불에 서서히 구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야 하니까 작은 생선이 불에 타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성급하게 구웠구나하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리려 한다. 누가 이렇게 센 불을 가지고 왔어 하는 식이다. 성과 내는데 방해되는 건 모두 막으려 한다. 촛불 집회도 '한미간 현안 중에 하나였던 쇠고기 문제를 내가 해결하고 왔는데 국민들이 박수는 못치고 좌파들에게 놀아나 나를 핍박한다'는 생각을 하고 누른 것이다.

정상호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는 합리적 이미지였다. 중도보수로 설정이 돼 박근혜 전 대표보다 훨씬 개혁적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는 민심이반의 핵심은 수도권, 화이트칼라, 20대다. '신'이나 '네오', '뉴'가 떨어진 것과 이 현상이 결박돼 있다. 제도적으로 단임제 하에선 단기적 성과주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집권 초에 성과를 내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인사정책을 지적하고자 한다. 고소영, 강부자 인사나 인수위 때부터 말 많던 강만수 장관을 기용한 것 등은 협소한 대표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국정지지도의 급격한 하락은 사회경제적 외재론도 있지만, 순수하게 대통령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몫도 크다.

김연철 : 오바마 행정부가 초당적 거국을 구성하고 경쟁자들을 기용한 것이나 정책 추진을 위해 공화당의 협조를 구하는 건 현시점에 갖는 의미가 있다. 겪어보지 못한 세계적 위기상황을 극복해 가야 하는데, 하나의 정파가 이를 극복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책임을 공유하고, 협조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야당의 협조나 국민의 협력 등 위기극복 공유의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유독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환율이나 성장률 문제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왜 한국이 유독 심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는 경제위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손혁재 : 이명박식 CEO 리더십의 한계다. 대통령이 '내가 제일 잘한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장관의 존재를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집행할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올드보이들이 귀환하는 것이다. 강만수가 그렇다. 토건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의 정책을 집행하다 보니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뀐 지금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국내적 위기여서 그나마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외부에서 원인이 온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이다. 70~80년대의 고도성장 패러다임을 적용하려다 보니 경제위기 극복이 어려운 측면이 나타난다. 현재의 경제위기 해법에서 이명박식 CEO 리더십의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김윤태 :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도 반대당인 사회당 사람을 기용하기도 하고 이념의 틀을 떠나서 필요한 정책은 채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정부는 리더십도 협소하지만 이념에서도 편협성에 갖혀 있는 모습을 많이 본다.

손혁재 : 지난해 대선 직후 좌담에서 이명박 정부를 예측하며 세계의 신보수 정권을 보면 가장 오른쪽이 사르코지, 중도적 성향이 메르켈이고 MB정부는 그 중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우리가 예측했던 것이 100% 빗나간 것이다. 예상을 초월해 가장 오른쪽으로 갔다. 인사정책도 그렇다. 인사권은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이지만 국민이 위임해준 권한이다.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이 누구와 함께 일하는가는 대통령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인데 그걸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맘에 안 들면 안 쓰는 스타일을 보인다. YS도 그랬다. 맘에 들면 쓰고 안 들면 안 썼다. 인사실패가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원초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남북관계, 10년 성과를 뒤집은 '잃어버린 1년'

김연철 : 국정을 운영하는 전반적인 철학과 방식은 남북관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이다. 실용이라는 말을 썼지만 대체로 보면 친북좌파 프레임에 맞춰서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합의를 뒤집어 온 게 지난 1년의 과정이었다. 지나치게 국내정치적인 관점으로 남북관계나 외교를 바라보는 게 문제다. 보수결집을 위해 통일교육 지침을 바꾼다거나, 6.15, 10.4 선언에 대한 서술을 바꾼다거나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큰 틀에서 보면 '잃어버린 10년' 프레임이 대표적으로 적용된 분야가 남북관계가 아닌가 싶다. 결정적인 문제는 지난 10년 이전의 역사와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 때 7.4 공동성명이 채택됐고 전두환 정부 때인 84년에는 북한의 수해물자를 받고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노태우 정부도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이렇게 71년 이후 정부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남북 대화를 추진했던 경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이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외교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다보니 한미관계 현안에서 파열음이 난다.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그게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 그런 현안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 든다. 이명박 정부의 대응방식이 장기적으로는 한미관계를 악화시킬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손혁재 : 외교에서도 이명박식 실용주의가 드러났다. 북한의 태도를 상수로 두고 우리가 북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실용인데, 일종의 상호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실용이라고 하지만 대단히 비실용적인 접근이다. 또한 남북관계는 6자회담 등 남북 당사자의 의지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외부적 요인을 고려해서 가져가야 하는데,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준만큼 받자, 퍼줬는데 못 받으니 기다려보자는 식이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 북미관계가 바뀔 텐데 이 정부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미국과의 관계도 대미 일변도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에 잘 보이면 다른 건 문제 없을 것이구나 하고 대미 일변도로 나가는 건 큰 문제다. 한미관계도 실패하고 남북관계도 20,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사회, 경제, 정치적 비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서 그렇다.

▲ 김윤태 고려대 교수 ⓒ프레시안
김윤태 : 과거 10년 민주정부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고 보수 정부이지만 남북관계 진전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역사적 성찰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가 추진한 동서독 간의 상호교류 협력은 집권당이 바뀌어도 지속됐다. 그게 독일 통일의 기틀이었다. 정파를 초월해 일관성을 유지했다. 미국의 닉슨도 공화당이지만 중국과 막후협상을 해 수교를 맺고 전쟁 위험을 줄였다. 미국내에선 오히려 보수적인 공화당이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유리했다. 이명박 정부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보수파를 설득하는데 유리한 위치였는데, 말로는 실용이었지만 내용은 협소한 반북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비현실적인 상호주의를 적용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북한의 협상 태도도 책임이 있지만 10년간 민주정부가 쌓아온 교류협력 기반이 지금 어려움에 처한 걸 보면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들은 상당한 실패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단순히 외교안보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국제적인 한국의 위상에도 불이익을 줄 것이다.

김연철 : 박정희 정부는 독특한 국제질서가 있었지만, 전두환 정부부터 대북정책은 한반도 상황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에서 추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왜 북한과 대화를 했겠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환경에서 새로운 교류관계에 대한 필요가 있어 남북관계를 진전시켰다. 닉슨 행정부가 소련과 데탕트를 하고 중국과 관계개선을 했던 이유도 그런 것이다. 베트남전이 남긴 재정적자 환경을 대외관계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나름의 전략이 발현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 대결은 물론이고 군사적 충돌까지 임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중요한 건 남북문제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외국인 투자자나 경제주체들은 안보가 불안해졌을 때, 즉 투자의 안정성이 보장 안됐을 때 투자하지 않는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이렇게까지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보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의 진정성도 이해하기 힘들다.

정상호 : 대통령의 아젠다 정치를 살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과제들을 정해놓고 가야하는데 싱글이슈로 가고 있다. 경제 살리기로 모든 걸 모으다보니 다른 게 죽었다. 복지가 죽고 외교가 죽었다. 외교는 보수주의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전임정권에서 다져놓은 다자외교, 동북아외교, 자원외교는 단절할 필요가 없다. 기능적으로 발전만 시키면 된다. 그러나 앞 정권의 모든 걸 부정하다 보니 정책적으로 좋은 방향을 소생시키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게 아니라 사장시키고 있다. 지난 10년간 발전돼 온 것들이 폐기되는 것이 '워스트' 목록에 들어갈 만하다. 대통령이 아젠다 정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 살리기 덫에 빠져서 전체적인 기능이 저하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손혁재 : 노동부 같은 경우는 노동자 이해관계를 대변할 사람이 장관이 되는 게 옳다. 현 정부 들어선 경제단체 입장과 똑같은 사람을 장관을 시키니 될 리가 없다. 사용자측 이해 관계는 다른 경제부처가 대변한다. 노동자 이해관계를 대변할 유일한 부처인 노동부장관도 기업 이해관계에 충실하다보니 안 된다.

김윤태 : 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에 외교 철학이나 전략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는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했다. 외교의 ABC는 당근과 채찍이 함께 가는 것인데, 유화정책은 무조건 퍼주기로 생각하면 대화가 안 된다. 미국도 레이건 때 악의제국이라면서도 핵군축을 통해 소련과 대화와 타협을 했다. 현 정부처럼 접근하면 외교안보도 불안해지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외교안보 전체적으로 현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국익을 증진시킬 사람으로 장관을 바꿔줘야 한다.

진보도 보수도 각성하지 않으면 퇴보

손혁재 : 지난 1년을 보면 야만과 광기의 역사가 부활한 것 같다. 너무 심하지 않나? 사라진 줄 알았던 국가폭력이 나왔다. 현 정부가 잘하기 위해선 소통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국민소통비서관을 만들었지만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우리가 잘하는데 왜 국민이 몰라줄까 하는 홍보로 소통을 이해하는 것 같다. 소통이 없다면 이 정부는 현 상황에서 한발도 앞으로 갈 수 없을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 야당과의 소통, 함께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구성원과의 소통….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비판은 금단의 열매가 됐다. 이를 건드리면 보복과 탄압이 뒤따른다. 미네르바 구속에서 잘 드러난다. 반대의 목소리에 족쇄를 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금단의 열매가 된 정부 비판, 부재한 소통이 지속되는 한 현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실용이 갖는 문제, 즉 성과에 매달리지 말고 시대적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내외 정세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이 대통령에 대해 이따금 반대 목소리를 내지만 대통령이 째려보면 바짝 엎드려서 소리가 흩어진다. 하지만 내부 목소리에 대통령이 열린 마음을 갖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외부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 보수적 지식인 책임도 있지만, 진보진영의 지식인들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김윤태 : 소통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이 정부가 민주주의에 대해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은 단순히 투표권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정권교체가 2, 3번 이뤄지면서 권력이 다음에 반대 세력으로 이양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게임의 법칙으로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다수당으로서 집권하면 다수결의 원리를 주장해도 된다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나가면 다수는 선이고 소수는 악이라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가 모든 것을 일사천리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소수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라는 걸 깨닫는 게 시급하다. 국회나 시민사회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가고 점거나 농성, 시위와 갈등으로 나가는 것이다. 미네르바 구속이야말로 민주주의 후퇴를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이 정부는 민주주의 후퇴를 넘어 정치적 자유를 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국정운영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리더십과 거버넌스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연철 : 한국 정치가 비극적이다. 누가 잘하느냐가 정치의 게임이어야 하는데 누가 못하나 게임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보수적 반발과 진보진영의 좌절감이 결합되면서 대중들의 반사적 선택으로 나타났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스스로 다수의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한, 그 결과는 대안세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자멸하고 붕괴해 가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굉장한 불행이다. 이 악순환을 깨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성향과 기호에 따라 정권이 바뀌긴 하는데 곧바로 절망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정부의 정책이나 여러 부분들에 대한 면밀한 리뷰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리뷰는 공도 있고 과도 있다. 공을 계승하고 과를 보안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에게도 지난 정부에 대한 성찰이 대안을 만들어가는 기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논쟁에 참여하거나 작업들을 해야 하는데 없는 것 같다. 최소한 진보개혁진영에서라도 지난 정부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반성, 새로운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상호 : 인식의 전환이 핵심인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용인한다. 도와줄 용의가 있다. 비판하는 세력을 다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 피해자는 서민과 비정규직 시간강사 등 낮은 데로 전가된다. 비판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면서 세 가지 전환을 주문하고 싶다. 우선, 국민들이 출범 1년까지는 책임을 외인론으로 양해해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내재론이다. 우리 정부의 무능력과 책임이 된다. 변명정치가 아니라 책임정치를 해야 한다. 둘째, 갈등적 정치입법에서 민생입법으로 전환돼야 한다. 미디어법 같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1000만 실업자 시대를 감당할 수 있겠나? 갈등적 정치에서 서민복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이전 정부의 386을 비판하는데, 조중동의 '코치정치'에서 전환 돼야 한다. 중요 국면에서 조중동이 유포하는 담론에서 정부가 끌려가고 있다. 또한 일부 측근, 상왕정치, 형님정치라고 하는 좁은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서 보수적 대중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철학은 보수지만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희망의 근거는 없지만 그런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이걸 못하면 실패한 정부가 된다.

손혁재 : 진보진영에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 지리멸렬하면 이 정부가 더 오만과 독선에 빠지게 된다. 이 대통령 지지도 떨어져도 야당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무관심층, 무당파층이 늘어나는데, 이는 현 정부가 싫지만 그 대안도 없다는 인식 아닌가. 이미 좌파는 경제는 무능하다는 게 과거 선거를 관통했다. 그 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을 해야 하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볼 때는 노무현, 열린우리당, 시민단체, 민노당,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경향신문, 한겨레가 다 똑같다고 느낀다. 더 심한 사람들은 김정일까지 똑같다고 한다. 그 프레임을 여전히 깨지 못하는 것 같다. 이유는 경제가 어려워서 비판하기는 쉽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대안을 못 내고 있어서다. 물론 그 대안을 정부가 수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우선 대안을 내고 국민들에게 와 닿도록 해야 한다. 이 정부가 안 받아들여도 국민 호응도가 높으면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려운 담론적 대안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단계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실질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고민들을 해야 할 것 같다. 그와 함께 생활정치가 중요하다. 작년 연말 네덜란드 사회당과 독일 좌파당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공통적 고민이 생활정치였다. 의원들이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대체 나를 뽑아준 사람들은 왜 나를 뽑아줬는지 알기 위해 직접 주민들과 접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더라. 내가 타고 다니는 마을버스가 오지 않을 때 어떻게 제시간에 오도록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더라. MB악법 결사투쟁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무얼 원하는지를 바탕으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장기적 담론도 만들어야하지만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김윤태 : 지난 1년은 현 정부 위기이기도 하지만 더 큰 위기는 진보개혁세력에게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현 정부의 실정과 무능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는 옳지 않다. 진보개혁세력의 비전이나 정책을 제대로 제시 못해서 대안세력으로 인정 못 받고 시간만 허송세월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세력들이 지난 10년간 민주정부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공도 있고 과도 있다. 민주주의 복지 확대 남북관계 진전도 있지만 잘못한 것도 있다. 왜 지지도가 떨어졌고 새로운 대안은 뭔가 하는 것에 대한 평가가 없다. 내부의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어렵다면 학계나 시민사회에 위임을 해서라도 지난정부나 대선에 대한 평가와 백서를 내고 미래를 준비하는 청사진을 내야 한다. 영국 노동당은 선거에서 네 번을 지고 난 뒤 외부의 진보 학자들에게 1년간 연구를 의뢰해서 정권을 바꾸기도 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도 분열돼 있는데 당내 정파갈등을 떠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는 생활정치나 현장에서 마이크로한 정책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거시적이거나 정치적인 담론의 영역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위축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표적인 게 감세다. 증세에 찬성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그러나 감세는 종부세, 상속세, 법인세 인하처럼 소수에게만 혜택이 가고 있고 투자활성화로 이어졌다는 증거도 없다. 정치적 용어로 포장돼서 감세가 자영업자와 근로자들의 이익처럼 널리 퍼져있다. 루즈벨트 시대에는 토목공사뿐만 아니라 노조의 법률적 인정, 사회보장제도 확대 등 가난한 서민과 실업자에게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그게 장기적으로 경제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됐다. 낙수효과가 아니라 분수효과라는 표현이 있다.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인센티브 준다거나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사회 저소득층의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분수효과가 될 수 있다. 현장에서 서민들이나 취약계층들이 원하는 마이크로 정책과 거시적 정치 담론을 결합시켜 국민을 설득해 낼 수 있는 능력, 이게 진보개혁진영에 부족한 부분이다. 시민사회와 당내 싱크탱크의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증세 문제도 그냥 증세는 거부감 있으니 불로소득 즉, 금융, 부동산을 통한 소득에 대한 증세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원확보 차원에서 공감 받을 수 있다. 증세냐 감세냐, 성장이냐 복지냐는 이분법적 논쟁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 정책을 개발하지 못하면 정부의 지지율 하락해도 진보개혁이 집권 대안세력으로 비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정상호 : 아내가 TV를 보다가 진보적 사회단체가 정부를 비판하면 10년 집권할 때 잘해보지 하고 말하더라. 김용익 전 사회정책수석은 집권을 못 할까봐 걱정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집권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진보개혁진영이 개별연구소를 만들어내고 있다. 매일 매일 각개약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진보 싱크탱크 간의 네트워킹 할 수 있는 허브가 필요하다. 조율되는 방식으로 싱크탱크 연대회의가 필요하다. 어떤 의제는 한나라당과 외파 균열선이 있다. 남북관계가 그렇다. 진보와 중도 사이에는 합의가 가능한데, 한나라당과는 안 되는 부분이다. 내파 문제도 있다. 중도와 진보 간의 합의 안 된 한미 FTA 같은 것이다. 경제에 관한 문제, 농업과 환경의 문제, 사회정책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포지셔닝을 가져갈 것인지 진보진영 내부에서 정리해야 한다. 싱크탱크 연대회의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핵심적으로 얘기하는 게 사회협약, 혹은 소통이다. 노사정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내부에서 단일한 의제를 짜오라는 것이다. 주거, 교육 등 5대의제를 말하는데 이에 대해 진보, 중도 진영의 리딩 섹터가 체계적으로 조율된 안으로 정립을 해야 한다. 진보와 중도가 정책에 대해 단일의제를 만드는 것은 좋은 정치적 과정이라고 본다. 인민전선 같은 사회협약의 내부적 실험이다. 내부의 성찰도 필요하다. 민주노총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전교조, 민주노총, 민주당, 민노당 등의 내부 쇄신의 경로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모자이크 방식으로 싱크탱크 연대회의를 만들자. 민생과 밀접한 관련 있는 5대 의제에 대해 싱크탱크 연대회의를 통해 단일안을 만들자. 민노총, 민주당, 시민사회 운동의 내부 혁신과 쇄신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에 착수하자고 말하고 싶다.

김연철 : 최장집 교수가 촛불정국 때 제기했던 문제의식 중요하다. 정당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동정치에는 한계가 있다. 좋은 정당을 만드는 것이 열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구조화시키고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진보개혁진영 가운데 기반과 영향력이 확대돼 있는 시민운동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시민운동이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거나 시민운동은 탈정치, 기계적으로라도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좋은 정당 만들어지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다. 선진국 민주주의가 발전된 원인 중 하나는 NGO가 고유영역이 있지만, 최소한 국가적 아젠다를 다루거나 포괄적 아젠다를 다루는 데에는 제도권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도권이 담을 수 없는 소수담론들은 NGO의 고유 역할로 남겨두고 최소한 국가적 아젠다를 다루는 시민운동 쪽에선 정당정치로 가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그래야 한국 정치가 바뀌지 않을까 싶다.

김윤태 : 이명박 정부의 성격부터 진보진영의 대응까지 포괄적인 주제를 오랜 시간 토론한 것 같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

/임경구 기자(=정리)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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