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언론보도에 대해 “이번 기자실 개혁조치가 마치 언론탄압인양 주장”하면서 “세계 각국의 객관적 취재실태를 보도하지 않고, 진실을 회피하고 숨기는 비양심적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더 나아가 ‘이런 식으로 특권을 주장한다면 원리원칙대로 대응하겠다’고 말해 바로 방을 빼버릴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집주인과 세입자 싸움도 아닌데 왜 갑자기 ‘방 빼!-못 빼!’ 논쟁이 불붙었는지 모르지만 마음은 착찹하기만 하다. 요즘 나는 국정브리핑 홈페이지를 가끔 들어가 본다.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배경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노리는 효과는 무엇인지가 궁금해서이다. 이 부분에 대해 며칠 전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접수했다는 연락조차 없다. 그중에 눈에 띄었던 글의 제목이 <‘황우석 사건’과 출입처 없는 PD들>이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출입처에 죽치고 앉아서 그저 던져주는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는 ‘출입처 저널리즘’으로는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도 없고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2005년 당시 MBC <피디수첩>의 방송으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허위의혹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검증요구가 거셌을 때 황우석 교수에게 막대한 연구자금을 제공했던 과기부는 자신들이 검증할 사안은 아니라며 발뺌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만했으면 됐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사태를 덮어두기에만 급급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줄기세포가 허위였음이 밝혀진 후에도 당시 과학기술 보좌관을 비롯해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했다는 이야길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으로 물러났던 박기영 전 보좌관이 지난해 말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기자실이 없어지고 전자브리핑 제도가 도입돼 취재관행이 바뀌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사건에 있어 실체적 진실이 보다 쉽게 밝혀졌을까? 과기부에 황우석 교수 연구의 실체와 연구자금 지원결정과정, 그리고 사후 검증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요구한다면, 그리고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했다면 솔직히 응답해줬을까? 청와대의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과 김병준씨 등 이른바 ‘황금박쥐’ 멤버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 어떤 ‘전자브리핑’을 했을까? ‘황우석 사건’과 ‘청와대’는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황우석 사건’ 뒤에 “출입처 없는 PD"를 붙이든 “출입처 없이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된 기자”를 붙이든 실체적 진실의 접근이란 측면에선 달라지는 부분이 과연 있을까? 이 글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하고 싶지만 왠지 제 논에 물대기처럼 이 사안을 끌어들인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이 글에서 황우석 사태의 본질이나 당시 정부의 행태에 대한 반성은 없다. 단지 ‘출입처 없는 피디들도 이 정도 하는데 기자들 니들은 왜 출입처 없앤다고 악악대느냐’는 얘길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번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건 기자실 폐지문제와 기자들의 정부부처 사무실 무단출입제한이다. 언론은 이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이고 정부는 언론자유나 국민의 알권리와 기자실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며, 전자브리핑제도와 정보공개의 확대를 통해 언론자유와 국민들의 알권리는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무원 관료조직은 특성상 정보공개제도가 활성화된다하더라도 정보를 순순히 공개하기 보다는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접근 장치마저 막아버리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난 기자실 폐지논란을 보면서 문득 문득 한미FTA 논란이 떠오른다. 여기엔 비슷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선진국’이란 단어도 그렇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단어도 그렇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인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언론이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려면 ‘선진국’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춰 취재지원 시스템도 선진화해야 한다는 주장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미 FTA 협상 때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반대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영화배우 이준기 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길 했다고 한다 “우리 영화인들, 그렇게 자신 없습니까?”라고. 요즘 기자실 폐지논란을 보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향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기자들,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솔직해 집시다. 기자실 없애고 사무실 출입제한 한다고 해서 기사 못씁니까?”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대통령님,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솔직해 집시다. 기자실 그냥 둔다고 언론개혁이 안됩니까? 언론개혁 하려면 기자실 문제보다는 족벌언론의 문제, 자본에 의한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청와대나 정부가 황우석 사건이나 한미FTA 문제에 대해 솔직한 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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