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28일 저녁부터 광화문, 세종로, 종로1가, 안국동 등 전면통제됨

 


△ 며칠전에 철거된 시청 앞 시민단체 천막이 있던 장소들


 


△ 1040일 가까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중인 기륭전자조합은,
보름 이상 단식을 하며 시청 앞에서 동조단식 등 투쟁을 잇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오후 2시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2차 전조합원 총력 결의대회'를 열고,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 시청 앞까지 행진을 하였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2차 결의행동중 행진을 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이날 공무원연금법 개악 저지, 구조조정 저지 및
 미친소 졸속협상 국민기만 홍보거부 등을 외쳤다.


 


△ 시민단체 중, 세종로 일대에서 홍보중인 환경운동연합


 


△ 6월 28일 세종로 앞 '51차 촛불문화제'에 15만여 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 이날의 자유발언 - 촛불소녀,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노동자, 유모차 아주머니부대 등

 


△ 피켓신

 


△ 세종로~광화문 일대 대치는 이른 저녁부터 대치가 시작됐다.

 


△ 51차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저녁 8시 30분경 세종로와 을지로 우회도로 등으로
나누어 행진을 하였다. 행진 중 촛불 참가자수는 무려 2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 6월 28일 밤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 대치 현장

 


△ 이곳에서는 전경의 물대포에 맞서 시민들이 인근 건물에서 물호스를 동원해 맞서는 등
80년대와 같은 막상막하의 실력행사가 오고 갔다.

 




 


△ 6월 28일 밤 안국동 대치현장-
100여명의 일부 아고라 회원들이 연좌시위 형태로 대치하다, 새벽에 종로 대치현장으로 합류했다.


 


△ 종로1가 교보문고 앞 대치현장 - 이곳에도 시위대에게 여러대의 물대포가 뿌려졌다

 


△ 이곳도 세종로 대치현장과 같이 강경진압 對 극렬저항이 있었다.

 


△ 전경의 소화기 분사로 시야가 흐려져 있는 대치현장

 


△ 이날 새벽 (좌)미국인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얼굴이 다쳐 백병원에 실려가 응급수술을 했다.
(우)또 전경은 시민을 인도로 밀치고 고립되어 인도에 있던 시민을 연행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또 한편 29일 새벽 1시경 경찰은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귀가하던
한 관악경찰서 행정발전위원을 '현행범'으로 오인해 강제연행을 시도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 인도까지 올라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근무를 서고 있는 전경들

 


△ 이날 모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촬영중 전경의 물대포에 맞아 고장이 나기도 했다.

 


△ 29일 새벽 2시 30분경 교보문고 앞에 도열해 남아있던 수만여명 이상의 촛불단은,
전경의 진압작전으로 수백미터 뒤쪽 도로로 밀려났다.
그러나 약5천여명은 아침까지 남아 연좌시위를 이으며, 반정부 투쟁의 각오를 높였다.

 


△ 봉쇄 저지선이 뚤린 교보문고 앞 모습

 


△ 세종로 앞에는 교보문고 앞보다 일찍 새벽2시경 해산이 완료됐다. 

 


△ 연이은 경찰의 차벽봉쇄로 촛불단은 차벽들을 밧줄로 끌어 내리고 파손하는 등 했다.
이로인해 막대한 전경차량 수리비와 연행자 속출, 수백여 명의 양측 중경상 부상 속출 등,
청화대 앞도 아닌데 수키로미터 앞에서 미리 과도히 봉쇄함에 대한 실효성이 의문시 되고 있다.
이는 최근 역사드라마 세종대왕과 일지매에서 보듯이, 기습 격쟁을 대비해 수키로미터가 아닌
수백미터 궁골 앞 에서 나장을  배치해 놓은 것과 대조적으로서,
민주성이 지난 왕조시대보다 후퇴됐다는 역사학자의 지적도 있다.

 
포토뉴스 클릭 =>  
6.28 촛불현장-강경진압 對 극렬저항 등, 촛불 반정부 항쟁화 고조

 
 


 △ 6월 26일 택시노조는 청계광장에서 'LPG값 인하'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 이에 앞서 공공운수.화물연대는 지난 6월 13일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 대회'에 참석해,
'
물가폭등 기름 값 폭등 실질임금 하락 보전 대책 제시하라!'를 요구, 파업을 돌입한 바 있다.
(현제 다른 현황업종과 달리 요구사항을 관철시켜 나가고 있다.)
 


△ 지난 6월 13일 대학로에서 열린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 대회' 현장

 


△ 행진 - (앞)비정규직.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요구사항이 담긴 만장 행렬

 


비정규법 전면 개정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촛불행사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 또 한편 이날 보건의료노조는 쟁의조정신청을 하고 산별.총파업을 결의하며 행진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간부, 대의원 3천여명이 장충체육관에 집결,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저지와 병원급식 반대 △의료영리화정책 폐기 △국민건강권 쟁취를 내걸고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포함한 총파업 등 전면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오전부터 세종로공원에서 집회를 벌이다,
장충체육관에 집결해 결의대회를 갖은후, 인근 서울 중심가를 행진하며,
택시 노조원들과 함께 민주노총 총파업 출정식에 합류한 후 촛불집회에 결합했다.


 


△ 이날 26일 저녁 민주노총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관보게재에 반발해,
세종로거리에서 파업출정식을 열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  이날 민주노총은 결의문을 통해, 쇠고기 협상 무효 및 재협상, 한반도 대운하 반대, 물, 전기, 가스, 철도, 교육 등 사유화 정책 폐기, 기름값 물가 폭등 저지 등을 공동 요구로 내세웠다.


 


△ 6월 26일 저녁 세종로 앞에 열린, 광우병.대책국민회의 주최 '촛불문화제' 현장

 


△ 6월 26일 저녁 세종로 앞에 열린, 촛불문화제 현장


 


△ 이날 촛불문화제는 약1시간 정도로 일찍 끝났고, 참가자들은 세종로 앞  서울 시청 앞에서
교보문고 앞으로 행진해 광화문 앞에서 도착, 연좌 시위를 벌였다.

 


△ 광화문 앞에 도착하고 있는 촛불들

 


△ 일부 참가자들은 동화일보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동아일보사를 규탄했고,
이 과정에서 언론노조위원장이 다치고 한 여성이 연행됐다. 

 


△ 한편 세종로 사거리와 서대문 방향을 중심으로 도열해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며, 국민토성을 쌓기 위해 모래를 공수했다.


 


△ (좌) 인간띠를 만들어 모래주머니를 나르며, (우)국민토성을 쌓고 있는 모습

 


 
△ 한편 신문로 앞 골목에서는 전경차를 밧줄로 끌어내는 진입투쟁이 전개됐다.
이날 시민들은 전경의 국회의원 폭행 등, 공권력 남용에 반발해 새벽 3시까지 격렬히 저항했다.

 

출처 : 미디어다음, 미디어몹(민중의소리 베타블로그 연동) 

 
 

 

 

 

 

 

 

 

  

 

 

 

 

 


 http://kr.blog.yahoo.com/chmanho/1006
△ 5분 영상) 6.14 촛불현장

 


6월 14일 서울 시청 앞 '고 이병렬 열사 영결식'에서 참가자들이 추모제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저녁 전주 코아백화점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이명박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분연히 분신한, 이병렬 노동자가 6월 9일 오전12시 30분에 끝내 운명했다.

 


`고 이병렬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는 14일 오전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해
서울 중심가를 거쳐 시청 앞에서 영결식을 갖고 전주로 이동,
분신 지점인 전주 코아백화점 앞에서 노제를 치루고, 광주 망월동 묘역에 하관 했다.


 


△ 고 이병렬 열사에게 바치는 글들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14일 오후 7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일반 시민과 민주노총, 재야 회원 등
3만 5천여 명이 참가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 이날 행사는 지난달(25일) 전북 전주에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고(故) 이병렬 열사에 대한 추모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하며 촛불을 밝혔다.
 

 

피켓신




 


△ '촛불소녀단'의 편지 낭독
(음성 안내) ▷ http://chmanho.ivyro.net/MidiFile/08.5.14촛불소녀단.mp3

 


△ 이날 자유발언에서 유공증이 3개나 있는 베트남참전용사가 민주화를 폄하하며 맛불집회를
시도하고 있는 보수단체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촛불행사에 전우도 함께할 것을 종용했다.

(음성 안내) ▷ http://chmanho.ivyro.net/MidiFile/08.5.14월남참전용사.MP3

 


△ 이날 문화제에서 해고.복직투쟁중인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가 비정규직의 실상을 알렸다.

 


△ 이날 오후 대학로에서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치고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노동자들.

 


△ 참가자들이 율동공연을 함께 참여하고 있다.

 


△ 참가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가자들은 저녁 8시 50분경 덕수궁 앞 태평로에서 남대문을 지나 명동을 거쳐 행진을 했다.

 



 



 



 



 



 


△ 참가자들은 밤 10시경 광화문 앞에 도착해, 막힌 차벽과 마주하고 연좌농성을 진행했다.

 


△ 6월 14일 밤 광화문 앞 모습

 


△ 참가자들은 막힌 차벽을 뒤로하고 그곳에 연좌해 자유발언을 이었다.

 


△ 6월 14일 밤 광화문거리, 막힌 차벽 앞 모습

 


△ 이날 밤 행진단중 선봉대 시민과 뒤이어 온 시민들이 막힌 차벽 10미터 밖에서
향후 행진 일정을 논의했다.

 


△ 일부 행진단이 행진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을 향해 항의하자, 경찰이 자제를 종용하고 있다.

 


△ 이날 일부 행진단이 산발적으로 행진길을 터줄 것을 요구 했다.

 


△ 집요한 요구해 경찰은 일단 차벽만 남겨둔체 경찰대원을 뒤로 뱄다.

 


△ 참가자들은 무리한 행진 강행보다 차벽에 포퍼먼스를 진행하며 이날 일정을 마무리 했다.

 


△ 한 시민이 어린고양이를 가져와 재치있는 깜짝 포퍼먼스를 선보였다.

 


 
△ 한편 청계광장 옆에서 밤늦게 진행한 채식 동호회의 홍보가 촛불단의 눈길을 끌었다.



출처 : 미디어다음, 미디어몹(민중의소리 베타블로그 연동)   
 

 

 



 

 



 

 
 

 





 

 

 


  


 



△ <
10분 영상> 6.7(72시간 셋째날)촛불 국민행동 현장


 


△ 민주노동당은 6월 7일 오후4시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고시철회 재협상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거리행진을 (사진 좌)청소년.대학생단체 및 제야단체와 함께 시청 앞을 향해 행진했다.

 


△ 한편 '2MB탄핵연대' 네티즌들은 시청 앞 근처에서 연일 민간구호 활동을 펼쳤다
또 다음 아고라 회원들과 연대해 서울 중심가 투어 행진을 벌였다.

 


△ 서울 시청 서울광장 앞 촛불문화제를 위한 환경단체 홍보 부스에서

 


△ 6월 7일 저녁 시청 앞 세종로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25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 이날 촛불문화제 자유발언에서는 한승수 총리의 열린토론에서 한총리의 주장을 반박해
(총리를) 쩔쩔매게 했다는 (좌)고려대학생의 익살스런 발언이 있었다.
또 지방에서 온 완도 시민과 (우)제주도 시민의 절절한 발언도 펼쳐졌다.
(음성 안내) ▷ http://chmanho.ivyro.net/MidiFile/08.6.7고려대학생.mp3

 

∇ 7일 저녁 촛불문화제 피켓신들

 
 

 
 


△ 7일 시청 앞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저녁8시 20분경 청화대를 향해 행진했다.

 


△ 행진 참가자들은 청화대를 향해 남대문 -> 을지로 -> 종로 -> 광화문 등을 거쳐 행진했다.
행진 중에는 행진 인원이 무려 30만여명으로 불어나, 참여수 고고행진을 기록했다.

 


△ 촛불행진단이 남대문로를 지나 명동을 거쳐 행진 중이다.

 



 


△ 촛불행진단이 광화문 앞에 다다랐지만, 며칠 전부터 미대사관 앞길은 차벽으로 막혀 있었다.
대부분의 촛불행진 참가자들은 광화문거리에서 마무리 시간을 갖고 귀가했다.

 


△ 한편 약 3만명여명의 촛불행진단은 밤 9시 30분경 청화대 우회도로인 서대문을 거쳐  행진했다.
그러나 독립문 도로(사직터널) 앞에 차벽으로 원천봉쇄 되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참가자들은 그곳 도로에서 한동안 연좌시위를 벌였다.

 


△ 독립문방향으로 간 촛불행진단은 밤 11시를 넘어 다시 광화문로를 향해 복귀행진 했다.

 


△ 행진중 뒤쪽에서 차량 행진단도 가끔 눈에 띄였다.

 


△ 한편 같은 시각 안국동 방향엔 300~600여명의 행진단이 산발적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이곳도 차벽으로 원천봉쇄 되어 진입이 불가능 했다고 한다..

 


△ 다시 대부분의 행진단이 모여있는 광화문 앞에는 아전투구식 격돌이 벌어졌다.
행진단 중 일부는 막힌 차벽을 산발적으로 흔들며 경복궁 방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자 경찰은 소화기를 분사했고, 이에 격분한 행진단 중 몇은 경찰을 향해 소형 물패트통을 던졌다.
이에 질세라 경찰은 무심코 아예 오물석인 패트통까지 포함해 던졌다고 한다.
또 차벽을 올라타는 몇몇 행진단에게 방패로 내리 치고, 다뿌린 소화기를 내던지기도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행진단 중 학생으로 보이는 몇몇 청년이 뜬어낸 경찰 차벽에서 쇠파이프를 해체해
확보하여 방패를 든 경찰과 맞짱을 뜨는등 아전투구식 돌발상황이 연출됐다.
이러저러한 과정에서 시민과 전경 50여 명이 중경상을 입고, 11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 한편 선봉대 뒤에는 지난 6.1 경복궁역 대치현장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아전투구식 격돌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태를 진정시키거나 하지 않고 대부분 안타까워만
하거나 불구경하고 있는듯 있을 뿐, 40~50미터 밖에서는 아예 자고 있는 등 하고 있었다.
그곳 현장 주위에는 총 2만명 이상의 촛불행진단이 있었고, 그중 300~500여명만이 진입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100여명만이 적극적으로 진입투쟁중이었고 나머지 수백명은
번을 갈아 좀 하다 쉬면서 했다. 알고보니 장년보다 미성년을 포함한 대부분 청년.학생들이었다.
당시 예비군들이 선봉대에게 경찰과 맞장뜨지 말고 진정하라고 종용했지만,
대부분 예비군에게 불신이 있는지라 설득이 않되었고, 지도부에게도 좀 그런 분위기였다.
즉 연배있는 시민과 열혈 선봉대와 서통이 잘 않된 안타까운 점이...
어찌됐든 진입투쟁의 수가 이렇게 극소수이고 하니, 지도부나 연배있는 어른들이 나서서
최대한 무력행사가 없는 평화시위를 종용하거나 함께 옆에 있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봉대를 좀 설득하다 않되는다 싶었던지 선봉대 멋대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해 버렸고
급기야 이런 돌발사태가 발생해 버린것이다.

 


△ 8일 일요일 새벽 5시경 경찰은 경력을 2개 방향으로 증강하여
촛불행진단을 방패로 밀치며 도로 밖으로 1차 해산을 강행했다.

 


△ 8일 일요일 6시경 경찰은 2차로 행진단을 교보문고 밖으로 밀쳐냈다.
이날 예비군들은 경찰에게 진압작적 중 진압 수위를 약하게 할 것을 종용하고
시민이 다치지 않도록 선빵을 하고 보호하는 등 전체적으로 역기능 보다 순기능이 컸다.

 


△ 해산작전이 진행될 즈음에도 선봉대와 예비군 및 일부 인터넷 회원과 학생단체,
제야단체(LN) 회원 외에는 대부분 1차 진압때 좀 버티다가 도망치듯 현장을 벋어나 버렸다.
선봉대 왈 "당시 1만명 이상의 대오가 있는걸 감안하면 힘을 뭉쳐 비등한 수치의 경찰과 맞서
해산작전에 완강히 버티면 승산이 있다"고 하던데 그러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천여명은 
시청과 서대문, 종로방면으로 흩어져 복귀 대기하는 인원도 있었다.



△ 8일 새벽 6시를 넘어 행진단은 세종로 앞 인도까지 완전히 밀려났다.

 


△ 한편 이날 새벽 7시경 다른데로 몸을 피한 일부 행진단 천여명은
다시 시청 앞 도로를 지나 세종로로 복귀해 가두시위 하러 나왔다.

 





 
△ 그후 경찰은 행진단이 스스로 해산할 것을 기약하고
일단 원하는 대로 시위하게 놔두고 철수했다.
행진단은 오전에 가두에서 연좌하다 인근 광장으로 이동해 토론하며 쉬면서 다음 일정을 이었다.
 


출처 : 미디어다음, 미디어몹(민중의소리 베타블로그 연동)  

 



 

 

 



 



 

 









 




 

극장 간판식 게릴라전(展) “안전합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정은
▲ 게릴라전(展) “안전합니다” 의 간판식 설치물이 보이지 않게 갤러리 앞을 막아선 경찰차량들    © 일다

삼청동에서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한 갤러리. 최근 경찰차 몇 대가 이 건물 앞을 막아서고 있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때문이다. 전시회 제목은 “안전합니다”.
 
게릴라전(展) “안전합니다”가 열리는 있는 곳은 종로 팔판동에 위치한 ‘갤러리 벨벳 인큐베이터’이다. 갤러리 벨벳 인큐베이터는 전시회를 기획하며 미술인으로서 “촛불을 통한 익명의 지지보다는, 미술인다운 분명한 방식”을 택했고, ‘미술계 사람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극장 간판식 게릴라 전시”를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극장 간판식 게릴라 전시회’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극장 간판에 해당하는 ‘안전합니다’ 간판이다. 바로 그 앞을 경찰버스 네다섯 대가 가로 막고 서 있다. 경찰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감시의 눈빛을 느끼며, ‘안전합니다’ 전시회를 연 작가 연미씨와 얘기를 나누었다.

 
-전시회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가 있겠죠?

 
게릴라전(展) “안전합니다” 작가 연미 ©일다
“청와대에서 잘 보이는 장소이니 위치가 좋았구요. 저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는 거죠. 저도 한마디 하겠다는 건데…. 시위를 하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전경들이나, 시간 나면 한번 구경하고 가시라고.”

 
전시회를 둘러보면 입가로 삐죽삐죽 실소가 터져 나온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신문지 위에 리페인팅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인데,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와 언론의 그릇된 보도 행태를 희화화하는 내용이다.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신문을 보면, 정치인들의 얼굴만 바뀔뿐이지 내용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신문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자’라는 생각해 스트커도 붙이고, 마스크도 씌이는 작업을 한 거죠. 신문을 보면 기사나 전면광고면 있잖아요, 기사도 그렇고 광고도 그렇고 ‘진짜’라고 하지만 가짜고 환상이잖아요.”
 
-전시회 오픈은 어제(3일)이었지요?

 
“어제, 오후 6시에 오픈하기로 하고 준비하는데 4시쯤 ‘안전합니다’를 밖에다 설치했거든요. 그걸 걸자마자 경찰이 올라와서 뭐하냐고 물었어요. ‘의도가 뭐냐’고. 제가 ‘1층 전시 봤냐’고 했더니 봤대요. 그러더니 그 경찰관이 ‘자기가 볼 때 좋은 내용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또, 밑에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이 있는 걸 보고 ‘이것도 달 거냐?’ 묻길래, 그렇다 했더니 ‘청와대 앞이니까 안 달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제가 ‘컨셉’이라고 말했죠. 거의 다 설치할 때쯤 전경차 두 대가 오더라구요. 떼러 온 줄 알았더니 가리러 왔더군요.”

 
<일다>에서 찾아갔을 때 밖에서 전시물을 볼 수 없도록 경찰차 몇 대가 막고 있었다. 사실 차량이 막지 않으면 이곳은 지나는 시민들이나 버스 안에서도 외벽에 설치한 전시물을 보고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다. 연미씨는 경찰 측의 민감한 반응에 놀랐다고 얘기했다.

 
▲ 연미 作 "내용을 몰라서" 신문지에 아크릴채색(2008)
“경찰 중 한 명이 ‘갤러리에서 이럴 줄 몰랐다’, ‘삼청동은 문화의 거리인데, 이미지를 망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안에서 하면 되지 않냐’ 하길래, 전시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불러서 볼 거면 집안에서 전시하지 왜 갤러리에서 하겠냐?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나서 느낌을 얘기하고, 피드백도 받는 것이 작가다, 라고 말했죠.”

 
전시회를 여는 동안 경찰들과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이후 ‘청와대에서 정식 제안서를 보내면 철수하겠냐’고 물어와 연미씨는 ‘철수할 생각 없고, 그럴 거면 영장을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시 삼일 째인 오늘, 건물주인이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전시물을 철거하겠노라 했다는 소식이다.

 
-이 작업에 대해 주위에서 반응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작품 자체로 감상되었을 때 미적인 완성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그러다가 개념이 약해질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작가들의 자기 발언이 약해지고 있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은 (갤러리가) 작품을 판매하는 데 주력하는 추세에서, 이런 작품들은 절대 안 팔리니까 고민도 있긴 해요.”
 
“이 작업에 대해, 오늘 친구에게 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어서, 그리고 전시가 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어요. 작품에 작가의 일상이 반영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작가도 사회인이죠. 내 작품이 뭐 특별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집회에 나서서 발언하는 사람들 생각과 다를 바 없거든요. 제가 아는 정보라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정도예요.”

 
연미 作 "cattle-blue" 혼합재료 가변설치(2008)  ©neolook.com
연미씨가 그런 말을 하는 동안 한 행인이 우연히 갤러리 밖에 설치되어 있는 간판을 쳐다보고는, 연신 웃으면서 지나갔다.

 
전시장에 들어오면 지하에서 검은 봉지를 뒤집어 쓴 동물인형들이 놓인 ‘이미테이션 애니멀’ 전시도 볼 수 있는데, 연미씨가 몇 년 동안 관심 가져온 주제이다. 애완과 식용으로 나뉘는 동물들의 고통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애니멀 작품들과 스티커 작품들은 얼핏 보면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연미씨는 궁극적으로, 소에게 ‘미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현대 문명,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을 만든 인간에 대해 자성을 촉구한다. 30개월 이상이냐 미만이냐를 논할 때, 소는 고깃덩어리로서만 존재한다. 그는 이번 촛불시위가 “지구 생태계는 안전합니다”라는 대답을 이끌어낼 첫 단추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게릴라展 “안전합니다”는 예정대로라면 8일까지 계속된다.
관람시간은 12시부터 8시까지.
갤러리 벨벳_Incubator (02.736.7023)

2008/06/05 [14:11] ⓒ www.ildaro.com

미쇠고기 졸속 재협의, 기만적인 장관고시에 맞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 촛불시위 행렬 줄이어


 

11분) 5.31, 6.1새벽 촛불시위 현장 영상



29일 저녁 서울시 및 전국 광역시에서, 졸속 협의된 미국산 쇠고기 고시를 발표에 반발해
10만 여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벌인 촛불시위가 더욱 상승돼고 있다.
5월 31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대학로에서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최로 'DOWN 등록금, STOP 2MB, UP 공교육' 을 촉구하는 3차 교육공동행동 집회를 개최했다.
대학생들은 이날 새정부의 교육 정책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규탄하며,
퍼포먼스와 함께  등록금 상한제 실현과 국립대 민영화 저지 등을 촉구했다.
한편 같은 시각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서울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사전행사를 열었다.

 

 
5월 31일 늦은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대련의 'DOWN 등록금, STOP 2MB, UP 공교육' 촉구
3차 교육공동행동 집회에 대학생과 인터넷동호회, 넥타이부대 등 시민 만여 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치고 저녁7시에 열릴 시청 앞 촛불문화제 장소를 향해 행진했다.

 

 
△ 행진에 풍물패가 선두에서 굳을 이었다.

 

 
△ 참가자들은 행진하며 "고시 철회, 협상 무효!, 이명박 퇴진!" 등을 외쳤다.

 

 


 


 


 


 

 
△ 31일 저녁 7시 넘어 진행된 서울시청 앞 촛불문화제에, 10만명이 훨씬 넘는 인파가 모였다.

 

 
△ 이날 촛불문화제에도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으며, 지난 거리시위를 하다 경찰에 의해 부상당한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귀기울이겠다던 허와 실을 엿볼수 있다.

 

 

 

 
△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촛불문화제 이후 거리시위를 대비하여 짧은 자유발언과
포퍼먼스를 진행하며,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철회할 때까지 매일 밤 촛불 집회를 열고
6.10항쟁 21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10일 전국적으로 백만 명이 모이는 촛불행사를 열기로 하였다.
한편 이날 서울을 비롯 전국 100여곳에 촛불문화제가 열려 총 15만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 이날 시청 앞 촛불문화제는 9시 넘게 진행됐다.
 문화제 중 사회자가 "현재 이미 청운동거리에 진입하다 다수 연행됐다"는 급보를 전달하자,
 8시경 참가자들 중  5만여명은 청화대 앞 청운동으로 가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차벽에 인도까지 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경찰에 의해 진입이 수올치 않았다.
하여 행진단은 3갈래로 나뉘어 대부분 서대문 방향이나 종로 뒷거리로 우회해 행진했다.
나머지 1만여명은 위 사진과 같이 광화문 우측 인도를 거쳐 진입을 시도했다.

 

 
△ 광화문방향의 경우 경찰은 행진단의 거센 항의가 있어서야 마지 못한 듯 인도를 열어줬다.
길이 열리기 전 사로 밀고 당기는 사소한 마찰이 발생했으나 시민들은 비폭력을 지켰다.

 

 
△ 한편 광화문 좌측 인도로 진입을 시도한 시민들도 있었는데 위 우측 사진과 같이 1명씩 지나가는
틈새가 있는 듯하나 통과할 시 여러 명의 경력이 진입을 저지하려고 있는터라 불가했다.
하여 시민보호를 자청한 행사참여 예비군복 시민들이 미리 통로 쪽으로 들어와 막고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멋모르고 좌측 인도방향으로
들어온 시민들에게 다른 길은 예기해 주지 않고 그냥 길을 돌아가라고만 했다.
또 종종 자초지경도 설명해 주지 않아 어떤 시민은 그 비좁은 틈새를 들어가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다른 통로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대부분 그 주위를 배회하다 뿔뿔히 흩어졌다. 
결국 그곳에서 배회하다 뒤늦게 광화문 우측통로나 뒷통로로 진입을 시도했던 시민들은
낙오자가 된 듯 먼저 우르르 앞서간 행진단에 비해 진입이 수올치가 않았다고 한다.

 

 
△ 이날 밤 청화대 앞 거리는 인적이 없는 듯 촛불행진단도 주민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밤 10시경 촛불행진단이 사직터널을 뚤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경찰도 다급히 급보를 주고받으며, 청화대 앞길(효자동, 청운동)에 비치해 있던
 경력 중 수백여명 이상을 그곳으로 급파하는 등 다른 곳을 지원하는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 서대문로에서 사직터널을 거쳐 효자동 내자로터리와 옥인동길로 돌아온 2만여명의 행진단이
 밤 11시경, 정공법처럼 광화문로를 거쳐 들어와 경봉국 거리에 흩어져 와있던 일부의 행진단과
 경복궁 거리에 도착해 경복궁 촤측(효자동) 도로로 합류 했다.
이어 12시전 종로뒤로 해 안국동으로 돌아온 수만여명도 뒤이어 경복궁 우측 도로에 합류했다.

 

 
△ 경복궁 근처거리 청화대 진입로 좌우를 점거한 촛불행진단은 각각 맡은 자리를 사수하면서
산발적으로 청화대 앞 길을 향해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자 경찰들은 방패로 밀치고 11시 50분경 물대포까지 쏘며, 왕강하게 진입을 막아 섰다.
이에 행진단이 다급하게 대형 비닐루를 구해 물대포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 경복궁 우 인접거리에선 어떤 용감한 중년 시민 몇이 시민이 걸쳐준 사다리를 타고
전경차에 올라타 살수차와 맞서다 몇분후 기습적으로 달려온 경찰에 의해 먼저 연행됐다.

 

 
△ 한편 한참 물대포가 오가는 다급한 대치 속에 경복궁 우측도로에 있던 대부분의 진보신당원은
 좀 하다가 더 이상의 진입은 포기한 듯 대치장소 40미터밖에서 구경하거나 쉬기 시작했다.
또한 대부분의 인터넷동호회 회원들과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탄핵운동본부, 정책반대시위연대, 다음아고라, 민주노동당의 열성적인 일부 회원들과
소수의 급진적인 대학생과 재야단체 회원들만이 열심히 (심지어 어떤 회원은 교대도 없이)
힘이 다 빠지도록 경찰과 대치하며 저지선을 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또 한편 민주노동당원과 다함께 회원은 선봉에서 줄곳 대치는 하고 있었으나 공세적이지 못했다.
이유인즉 대다수의 시민의 의견과 시민을 보호한다던 예비군들의 지시를 수렴하다보니 그랬다는데,
그 예비군들 대다수가 우유부단한 상태로 더 이상의 진입은 삼가하고 이 상태로 대치해 농성하고 있자는 기조인지라, 오히려 그런 의견에 호통을 치고 진일보한 투쟁을 독려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하여 앞에서 선봉역활을 하던 인터넷 회원들은 경찰보다 인원이 2배인데도 단결이 않돼 사수하는데만
급급한 현 상황을 한탄하고, 선봉에 끼여 있던 예비군복 시민들을 향해 "너희들도 프락치이더냐?
마치 경찰의 나팔수인거 같다"며 저 프락치를 끌어내자고 하는 돌발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듯이 이렇듯 뭉치지 못하고 진일보하지 못한 투쟁으로 말미암아
경찰은 6월 1일 새벽 4시를 넘어서 오히려 시민들의 저지선을 뚤고 시민들을 도로코너로 밀쳐냈다.

 

 
△ 6월 1일 새벽 5시경 경복궁 근처 양거리에 있던 촛불행진단은
경찰의 물대포와 방패로 동원된 밀쳐내기식 진압으로 근처 길 밖으로 밀려났다.

 


△ 확실히 이날도 보여준 경찰의 모습은 민주경찰이 아니었다.
그만큼 막무가내 과잉진압을 했음을 증명하듯 시민들은 저만치 밀려나 있는데 경찰들끼리
뒤석이다 못해 서로 채여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들에게 고립당하는 해프닝이 연출됐다.
 
 


 
△ 이날 경찰의 폭력적인 과격진압으로 인도로 밀려나 있던 시민들을 비롯해 남녀 여려 명이
중상을 입었다. 부상자도 수십 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 오후 7시경 안국동 거리에서 경찰은 사복체포조에 이어, 아예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하여
토끼몰이식 진압을 강행, 촛불행진단을 인도로 밀쳐내고
저항한다 싶으면 미란다도 고지하지 않고 인도에 있는 사람 할 것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연행했다.
이로 인해 도망가던 시민들과 인도에 있던 시민들 일부를 비롯해 50명 이상이 연행되는 등,
5.31 밤부터 시작된 이번 촛불투쟁에 200여명 가까이 연행됐다고 한다.

한편 촛불행진단 중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6월 1일 오전 8시 이후 서울역광장 및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못쉬던 휴식을 잠시 취하며 자유발언과 함께 ��이 문화제를 이었다.



출처 : 미디어다음 , 미디어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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