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쇠고기 졸속 재협의, 기만적인 장관고시에 맞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 촛불시위 행렬 줄이어


 

11분) 5.31, 6.1새벽 촛불시위 현장 영상



29일 저녁 서울시 및 전국 광역시에서, 졸속 협의된 미국산 쇠고기 고시를 발표에 반발해
10만 여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벌인 촛불시위가 더욱 상승돼고 있다.
5월 31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대학로에서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최로 'DOWN 등록금, STOP 2MB, UP 공교육' 을 촉구하는 3차 교육공동행동 집회를 개최했다.
대학생들은 이날 새정부의 교육 정책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규탄하며,
퍼포먼스와 함께  등록금 상한제 실현과 국립대 민영화 저지 등을 촉구했다.
한편 같은 시각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서울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사전행사를 열었다.

 

 
5월 31일 늦은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대련의 'DOWN 등록금, STOP 2MB, UP 공교육' 촉구
3차 교육공동행동 집회에 대학생과 인터넷동호회, 넥타이부대 등 시민 만여 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치고 저녁7시에 열릴 시청 앞 촛불문화제 장소를 향해 행진했다.

 

 
△ 행진에 풍물패가 선두에서 굳을 이었다.

 

 
△ 참가자들은 행진하며 "고시 철회, 협상 무효!, 이명박 퇴진!" 등을 외쳤다.

 

 


 


 


 


 

 
△ 31일 저녁 7시 넘어 진행된 서울시청 앞 촛불문화제에, 10만명이 훨씬 넘는 인파가 모였다.

 

 
△ 이날 촛불문화제에도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으며, 지난 거리시위를 하다 경찰에 의해 부상당한
시민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귀기울이겠다던 허와 실을 엿볼수 있다.

 

 

 

 
△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촛불문화제 이후 거리시위를 대비하여 짧은 자유발언과
포퍼먼스를 진행하며,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철회할 때까지 매일 밤 촛불 집회를 열고
6.10항쟁 21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10일 전국적으로 백만 명이 모이는 촛불행사를 열기로 하였다.
한편 이날 서울을 비롯 전국 100여곳에 촛불문화제가 열려 총 15만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 이날 시청 앞 촛불문화제는 9시 넘게 진행됐다.
 문화제 중 사회자가 "현재 이미 청운동거리에 진입하다 다수 연행됐다"는 급보를 전달하자,
 8시경 참가자들 중  5만여명은 청화대 앞 청운동으로 가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차벽에 인도까지 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경찰에 의해 진입이 수올치 않았다.
하여 행진단은 3갈래로 나뉘어 대부분 서대문 방향이나 종로 뒷거리로 우회해 행진했다.
나머지 1만여명은 위 사진과 같이 광화문 우측 인도를 거쳐 진입을 시도했다.

 

 
△ 광화문방향의 경우 경찰은 행진단의 거센 항의가 있어서야 마지 못한 듯 인도를 열어줬다.
길이 열리기 전 사로 밀고 당기는 사소한 마찰이 발생했으나 시민들은 비폭력을 지켰다.

 

 
△ 한편 광화문 좌측 인도로 진입을 시도한 시민들도 있었는데 위 우측 사진과 같이 1명씩 지나가는
틈새가 있는 듯하나 통과할 시 여러 명의 경력이 진입을 저지하려고 있는터라 불가했다.
하여 시민보호를 자청한 행사참여 예비군복 시민들이 미리 통로 쪽으로 들어와 막고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멋모르고 좌측 인도방향으로
들어온 시민들에게 다른 길은 예기해 주지 않고 그냥 길을 돌아가라고만 했다.
또 종종 자초지경도 설명해 주지 않아 어떤 시민은 그 비좁은 틈새를 들어가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다른 통로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대부분 그 주위를 배회하다 뿔뿔히 흩어졌다. 
결국 그곳에서 배회하다 뒤늦게 광화문 우측통로나 뒷통로로 진입을 시도했던 시민들은
낙오자가 된 듯 먼저 우르르 앞서간 행진단에 비해 진입이 수올치가 않았다고 한다.

 

 
△ 이날 밤 청화대 앞 거리는 인적이 없는 듯 촛불행진단도 주민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밤 10시경 촛불행진단이 사직터널을 뚤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경찰도 다급히 급보를 주고받으며, 청화대 앞길(효자동, 청운동)에 비치해 있던
 경력 중 수백여명 이상을 그곳으로 급파하는 등 다른 곳을 지원하는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 서대문로에서 사직터널을 거쳐 효자동 내자로터리와 옥인동길로 돌아온 2만여명의 행진단이
 밤 11시경, 정공법처럼 광화문로를 거쳐 들어와 경봉국 거리에 흩어져 와있던 일부의 행진단과
 경복궁 거리에 도착해 경복궁 촤측(효자동) 도로로 합류 했다.
이어 12시전 종로뒤로 해 안국동으로 돌아온 수만여명도 뒤이어 경복궁 우측 도로에 합류했다.

 

 
△ 경복궁 근처거리 청화대 진입로 좌우를 점거한 촛불행진단은 각각 맡은 자리를 사수하면서
산발적으로 청화대 앞 길을 향해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자 경찰들은 방패로 밀치고 11시 50분경 물대포까지 쏘며, 왕강하게 진입을 막아 섰다.
이에 행진단이 다급하게 대형 비닐루를 구해 물대포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 경복궁 우 인접거리에선 어떤 용감한 중년 시민 몇이 시민이 걸쳐준 사다리를 타고
전경차에 올라타 살수차와 맞서다 몇분후 기습적으로 달려온 경찰에 의해 먼저 연행됐다.

 

 
△ 한편 한참 물대포가 오가는 다급한 대치 속에 경복궁 우측도로에 있던 대부분의 진보신당원은
 좀 하다가 더 이상의 진입은 포기한 듯 대치장소 40미터밖에서 구경하거나 쉬기 시작했다.
또한 대부분의 인터넷동호회 회원들과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탄핵운동본부, 정책반대시위연대, 다음아고라, 민주노동당의 열성적인 일부 회원들과
소수의 급진적인 대학생과 재야단체 회원들만이 열심히 (심지어 어떤 회원은 교대도 없이)
힘이 다 빠지도록 경찰과 대치하며 저지선을 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또 한편 민주노동당원과 다함께 회원은 선봉에서 줄곳 대치는 하고 있었으나 공세적이지 못했다.
이유인즉 대다수의 시민의 의견과 시민을 보호한다던 예비군들의 지시를 수렴하다보니 그랬다는데,
그 예비군들 대다수가 우유부단한 상태로 더 이상의 진입은 삼가하고 이 상태로 대치해 농성하고 있자는 기조인지라, 오히려 그런 의견에 호통을 치고 진일보한 투쟁을 독려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하여 앞에서 선봉역활을 하던 인터넷 회원들은 경찰보다 인원이 2배인데도 단결이 않돼 사수하는데만
급급한 현 상황을 한탄하고, 선봉에 끼여 있던 예비군복 시민들을 향해 "너희들도 프락치이더냐?
마치 경찰의 나팔수인거 같다"며 저 프락치를 끌어내자고 하는 돌발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듯이 이렇듯 뭉치지 못하고 진일보하지 못한 투쟁으로 말미암아
경찰은 6월 1일 새벽 4시를 넘어서 오히려 시민들의 저지선을 뚤고 시민들을 도로코너로 밀쳐냈다.

 

 
△ 6월 1일 새벽 5시경 경복궁 근처 양거리에 있던 촛불행진단은
경찰의 물대포와 방패로 동원된 밀쳐내기식 진압으로 근처 길 밖으로 밀려났다.

 


△ 확실히 이날도 보여준 경찰의 모습은 민주경찰이 아니었다.
그만큼 막무가내 과잉진압을 했음을 증명하듯 시민들은 저만치 밀려나 있는데 경찰들끼리
뒤석이다 못해 서로 채여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들에게 고립당하는 해프닝이 연출됐다.
 
 


 
△ 이날 경찰의 폭력적인 과격진압으로 인도로 밀려나 있던 시민들을 비롯해 남녀 여려 명이
중상을 입었다. 부상자도 수십 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 오후 7시경 안국동 거리에서 경찰은 사복체포조에 이어, 아예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하여
토끼몰이식 진압을 강행, 촛불행진단을 인도로 밀쳐내고
저항한다 싶으면 미란다도 고지하지 않고 인도에 있는 사람 할 것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연행했다.
이로 인해 도망가던 시민들과 인도에 있던 시민들 일부를 비롯해 50명 이상이 연행되는 등,
5.31 밤부터 시작된 이번 촛불투쟁에 200여명 가까이 연행됐다고 한다.

한편 촛불행진단 중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6월 1일 오전 8시 이후 서울역광장 및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못쉬던 휴식을 잠시 취하며 자유발언과 함께 ��이 문화제를 이었다.



출처 : 미디어다음 , 미디어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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