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청와대 앞 분신
'1988년 우리마당 피습사건' 진실 규명 요구해
민중의소리  윤보중 기자    메일보내기  

  "민주와 통일을 사칭하며, 당국의 음모에 타협과 협잡을 일삼는 자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십시요" - 김기종 대표의 유서 中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19일 오후 1시 28분경, 청와대 앞 사랑방 부근 분수대 근처에서 분신을 기도해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이다.
  
  당시 김 대표는 인화물질을 휴대하지 않고 플래카드 등에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했으며, 이를 본 경찰들이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끈 뒤 곧바로 병원에 이송했다. 병원측에 따르면 김 대표는 온몸에 2∼3도의 화상을 입어 수일 경과를 지켜봐야 소생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지난 1988년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였던 우리마당 사무실에 북파공작원이 침투해, 자고 있던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서류를 훔쳐 달아났다며 이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줄 곧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12월 <시사저널>(788호)은 5.6공 시절 야당 정치인과 재야 인사의 정치테러에 가담했던 북파공작원 출신 이종일씨의 증언을 통해 이 사건이 이종일 씨를 비롯한 북파공작원들의 소행임을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9주째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김 대표는 이 사실을 주목받기 위해 결국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다다랐다.
  
  김 대표가 분신한 청와대 앞은 인화성 물질을 반입하는 것이 검문검색 등을 통해 사전에 차단되는 까닭에, 김 대표는 플랜카드 등 불에 잘 붙는 물품을 이용하여 몸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25년간 명맥을 유지해 온 우리마당은 80년대 초 창립해 역사 단절을 문화적 측면에서 극복하고자 민속문화 연구 및 보급 활동을 했다.
  
  특히 우리마당은 '풍물','탈춤','국악','판소리' 등 우리 문화의 보급 속에서 자연스럽게 분단으로 빚어진 남북문화의 이질화를 해소하고자 문익환 목사를 위원장으로 '통일문화큰잔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마당은 '2차 통일문화큰잔치' 준비 도중 보안사부대가 보낸 북파공작원들에 의해 사무실을 피습당하면서 2차 대회가 좌절됐다.
  
  한편, 김 대표는 평소 노무현 대통령,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마당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진실 규명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비판해 왔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이 집필한 저서 중에는 우리마당 주최로 열렸던 강연의 교재인 <제2기 새터주민교실 강연- 법의 사법및 입법과정,1993.9.13>이 있으며 김칠준 사무총장 또한 우리마당에서 주최한 생활법률교실에서 여성과 법문제로 강연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기종 대표의 유서 전문>

  
  지난 실천 되짚으며, 남는 실천을 여러분께
  
  ‘놈’과 ‘사람’이라는 전라 경상의 지역 갈등에서 새롭게 깨달은 분단의 아픔을 씻고자, 전래 민족문화를 통한 동질성을 확보, ‘통일’ 꿈을 실천해 본 지난 과정은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공동 개최 주장은 무산되었지만, ‘통일문화큰잔치’ 행사 준비는 국위선양 못지않게 파생될 남북 갈등을 염려하며 마련한 소중한 자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문화큰잔치’ 준비 과정에서 당한 8월 17일 새벽의 ‘우리마당 피습사건’.
  
  그 사건 발생 후 수사 기관과 언론, 국회는 웬일인지 사건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고, ‘우리마당’을 폐쇄시키려는 음모와 더불어 자행되는 당국의 끊임없는 탄압은 숱한 사업과 활동을 막바지에 거듭 무산시키고, 결국 많은 회원들을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버티겠다는 의지로 직간접 압박에 타협하지 않고 버텨온 20년째, 마당지기 어언 25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피습사건’ 진실규명 요구하는 청와대 앞 1인 시위 9주째를 핑계로 분신을 결행하는 저의 마지막 글입니다.
  
  민주와 통일을 사칭하며, 당국 음모에 타협과 협잡을 일삼는 자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4340(2007)년 10월 19일 김 기 종 드림
  
  
  [김기종의 마지막 남기는 글]
  
  광주에서 성장하면서 부모님들 바램처럼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고자 목표했던 서울대 법대, 그러나 입시 실패로 시작된 서울 생활에서 접하는 숱한 사회 모순들은, 청년기에 접어든 저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즉 어떤 학습보다도 입시 실패가, 사회 모순 혁파의 뜨거운 실천 의지를 갖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막연했던 전라, 경상의 지역 갈등 모순에 대해 일찍 눈 뜨고, 아예 삼수 시절에는 함께 공부하는 아우들이 ‘놈과 사람’이라 호칭하면, 왜 썼는지 따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이용하는 세력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함께 ‘북한 놈’ 호칭을 대신하는 용어로써 "우리”라는 말을 찾아내고, “우리”를 통한 실천 의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광화문 일대의 유신정권 유지를 위한 모습에서 “통일”이 더욱 멀어져 가는 걸 목도하였고, ‘동서’ 지역감정이 존재하면 ‘남북’ 분단 역시 해소될 수 없다는 각성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과, 공동체 구현의 실천을 체득하였습니다.
  
  물론 고시를 통해 사회지도자로써 실천하려는 명분을 다짐, 후기 성균관대 법대에 우선 입학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사회 모순을 헤쳐 나가겠다는 다짐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켜보았으나, 막상 제가 접하는 모순의 심각함은 보다 실천적인 책무를 가져주었을 따름입니다.
  
  결국 입시 실패에 대한 자책감에 치를 떨며 대학생활과 함께 오기(?)로 꾸렸던 소위 네번째 재수 생활, 여기에서 만난 아우들, 이들과 함께 ‘바회’ 모임을 결성하여 모순을 토론하며 구렁텅이에 함몰되지 말고 보다 나은 앞날을 설계하자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논하면서, 사회 현장 곳곳을 직접 찾아 다니게 되었고 우리문화 찾기, 야학교사, 청소년 상담교사, 예술소모임 간사활동 등등을 꾸준히 실천해보는 가운데, 명문대, 고시를 통한 실천 만을 모색했던 저에게, 새로운 방식의 현장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삼 확인되는 고향 광주의 민주화투쟁 아픔은 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성찰케 하였고, 모두가 하나되는 ‘우리’와 모두의 만남과 나눔이 있는 터 ‘마당’을 확실히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며 반만년의 한겨레를 상징하는 ‘배달’이라는 필명을 사용, 구체적 여러 실천을 하게 됩니다.
  
  결국 외세에 의존하며 그 첨병 역할을 하는 소위 시민사회단체들이 갖는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았고, ‘신라화랑 어디가고 스카웃이 판을 치고, 보부상은 어디 가고 라이온스 판을 치나’라는 구호를 만들며,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자고 결심했던 실천이 오늘까지 “마당지기”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는 날 부모님까지 속이고 고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과다한 용돈을 요구, 신촌에 공간을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우리마당”을 개설, ‘마당지기’ 25년을 보낸 것입니다.
  
  이 “우리마당”과 ‘마당지기’의 못다한 실천이 많은데도, 제가 삶을 마감하게 됨은 어인 일일까요?
  
  물론 “우리마당”을 통해 그동안 이룬, 우리 사회 민주화와 통일에 기여한 여러 값진 성과와 보람은, 오늘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 저에게 아무런 여한이 없음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특히 제 스스로 구체적 책임과 실천을 직접 맡고 나서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환경연합, 경실련, 민예총,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태동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역할)
  
  하지만 민주화와 통일, 노동해방을 외치다 산화한 분들의 뜻을 잇는 활동에 매몰된 지난 시절을 되새기며, 저는 그 바탕인 “사회 정의”의 아쉬움을 절감하며, “통일문화열사”로써 제 삶을 마감해야 되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제가 그나마 조그마한 바램들을 여쭈고 싶습니다.
  
  약간 건방질지 모르지만 아래의 세가지로 나누어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냉전 시절 당시의 ‘놈’과 ‘사람’이 아닌 남북동포 모두 한겨레인 “우리”가 하루빨리 될 수 있도록, 우선 풋내기 정치인들의 놀음에서 비롯된 ‘동서’, 즉 영호남의 지역적 갈등을 풀고 화합되어 봅시다!
  
  민족 통일에 전념하고자 미력한 제가 전래 민족문화의 동질성 유지와 확보를 통해 하나됨을 실천하였고, 소중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부탁, 아니 자신 있게 당부 드리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자신들의 생활 현장에서 말이나 노래로만이 아닌 실천을 직접 모색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동서화합 차원에서 보다 확실히 통일을 준비하고자, ‘전라도’에서 “경상도” 독도로 호적을 옮기고, 우리 가슴의 38선을 걷어내기 위해, “독도 38번지”라도 일본으로부터 확실하게 지켜내고자 합니다. 또한 북녘의 청소년들을 정기적으로 “독도”에 초청하는 행사를 준비, 당국과 논의 중에 있었습니다)
  
  둘째, ‘우리마당 피습사건’ 진상이 공개되었는데도 진실이 사회 일반에 공개되기를 꺼려하는 조바심으로,“우리마당”의 열정적 활동을 곳곳에서 직간접으로 조여왔던 공안 세력들의 음모는 타파되어야 합니다.
  
  사건 발생 20여년째를 맞이한 오늘까지도, 수사결과에 대해 입 다물며 사회정의를 논하는 사법 당국, 사건을 열렬히 취재했던 언론인, 그리고 정국 변환에 따라 대응하자던 정치인, 인권변호사들 모두 오늘 저의 죽음을 계기로, 그 음모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깊이 각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피습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며, 양심있는 시민들의 동참도 요구 드립니다.
  
  특히 범인이 공개적 자백을 하였기 때문에 사건 규명보다도, 진실을 공개시키지 못한 이면에는 과연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확인하여 주십시오. 이는 후세에 절대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규명이 아니라 대충 넘기려는 기회주의(당시 모월간지 편집실 습격사건, 모일간지 부장 피습사건)가, ‘우리마당’ 김기종에게는 20여년 되도록 안 먹혔음을 오늘 이렇게 죽음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안 당국이 스스로의 과오는 인정하고, 시대에 맞는 자기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확립하여,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역할 만을 수행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셋째, 마당지기를 하며 보낸 지난 25년간의 활동, 집안 장손의 역할은 못했지만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마당”이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문화적으로 달성한 소중한 활동 가치를 인정하신다면, 비록 저처럼 모든 걸 투신하지 못했을지라도, 청년학창 시절에 “우리마당” 회원으로 활동했었던 국회의원들만이라도 집결하여,“우리마당 설립에 관한 법” 같은 것을 입법해주시기를 감히 청원드립니다.
  
  즉 “우리마당”이 당국의 엉터리 탄압을 벗어나 보다 합법적인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사회변화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로써 실천을 할 수 있는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덧붙이는 말
  
  민주화되었다는 국민, 참여정부 시절에도 제가 ‘우리마당’ 운동을 실행하면서 당했던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의 분신을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면, 그 협작과 공작 과정들에 참여한 분들의 양심선언을 유도해 주십시오.
  
  (참고로 9월 10일 ‘만남과 나눔’ 호외2에 실린 의문점들만 파헤쳐도 그 사연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1980년대 중반 ‘우리마당’같은 열린공간 없던 시절, 일반 활동가들의 분신을 상담하던 이들에게 왜 죽느냐, 죽는 목적이 무엇이냐며, 그들을 1인 시위, 단식농성 등을 지도했던 제가, 우연찮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단식농성 없이 곧바로 분신하는 아픔을 잘 이해하고, 진실규명에 동참해 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1987년 고생하고 촬영한 이한열 열사 장례식 필름 압류 아픔 속에서도 꾸준히 이북영화를 연구하였고, 1997년 ‘고구마 3개의 사랑’을 제작, 이북동포돕기에 실질적 기여한 ‘영화마당’ 대표 이경화 님과 충남 대천 ‘우리마당’ 지회장으로 활동했던 신돈 님에게 “우리마당‘ 운동의 제2대 마당지기로써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 두 분에게 모든 권한과 의무를 맡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분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행을 달리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 때문입니다. 1988년 8월 ‘피습사건’ 원인에 대한 언론보도 등으로 ‘보안사’가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시던 노무현, 이해찬 님 등도 군부의 짓이 명백하니까, 사건 진상규명은 시기를 적절히 대응하자는 말로 저를 달랬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배경은 당시 6월항쟁 이후 ‘우리마당’ 사무실을 비교적 수월하게 드나들었던(?) 경찰, 안기부와는 달리 올림픽을 목전에 둔 군부가 정보 수집 단계에서 문책 당하면서 이같이 엉뚱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이후 ‘국회’ 국정조사 출석 요구에 응하는 등 꾸준히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결국 활동에 여러 제약, 예를 들면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고집으로 ‘민예총’ 창립에 동참 못한 아쉬운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소위 통일관계 시민단체연합 ‘민화협’, ‘615남측위’, ‘통교협’ 등의 창립과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군부정권 시절 관변 단체보다 더욱 심한 조직 간의 암투 탓에, 통일사업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이 연이어지고 있으며, 이에 격분한 저는 회의장에서 발언 도중 흥분하여 실신하는 등 심각한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김기종은 그같은 소외와 냉대에도 통일운동을 하는 문화운동가로써, 통일관계 회의와 행사에 꾸준히 ‘우리마당’ 또는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를 대표해서 참가(가장 우수한 출석 등), 자신의 역할을 끝끝내 수행하고 있었음을 정말 마지막으로 자랑스럽게 부언합니다.]
  
  
  


2007년10월19일 ⓒ민중의소리

트랙백 주소 : http://www.jinbocorea.org/bbs/tb.php/hq/118

 

남은 농산물 제값 받기가 어렵고, 북은 식량난을 겪고 있다. 남과 북이 겪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국농민회총연맹은 '통일 농사 짓기 운동'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섰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이에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그 시작을 오는 7월 4일(수), 오전11시, 평택에서 '통일 농사 짓기 운동본부 발족식'으로 할 예정이다. 이날 운동본부는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열고 통일 농사 짓기 운동에 대한 취지를 밝히고 사업방식, 주요사업 등을 대내외에 발표할 예정이다.

운동본부는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을 보다 계획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범국민운동으로 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국민적 통일의식을 고취하고 남과 북 상호 협력적 농업구조를 통한 통일농업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방식은 ▲ 농민은 운동본부와 연계하여 통일 쌀 경작지를 확보, 생산하고 생산된 수확물을 국민이 사들여 대북지원으로 전용 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 통일농사짓기 운동본부는 광범위한 국민적 모금과 통일 쌀 짓기 생산과정에 참여 보장 ▲ 이와 함께 참여와 모금운동을 통해 수매를 위한 기금을 확보하고 생산된 쌀은 도정을 거쳐 농민들과 국민들이 직접 북에 전달 ▲ 대북식량지원 법제화 서명운동 등 다양한 여론작업을 병행 실시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주요사업은 □ 경작지 확보 □ 국민참여형 통일농사 □ 모금 및 서명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며, 7월초 운동본부 구성을 시작으로 7~8월 통일농활 및 대국민캠페인, 9~11월 통일쌀을 수확하고 북에 지원한다는 시기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통일 농사 짓기 운동본부 발족식 및 기자회견

일시 : 2007년 7월 4일(수), 오전11시
장소 : 평택 소지 농촌
출발 : 4일 오전9시 민주노총 앞
문의 : 02)2631-5027/010-9981-2656




 

수추사(수도권 추모단체 대표자회의) 출범식이 6월 17일 오전 11시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수도권지역에는 약 100여 개의 열사사업회가 존재하는데, 3여 년 전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유대.연대 하는 준)수도권추모연대(이하 추모연대)가 결성되어 활동해오다, 지난 2월 9일 추모연대 공덕동 사무실에서 13개 추모단체들이 모인 가운데'수도권 추모사업회 연대회의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날 17일 수추사 출범식을 가졌다.

 

열사 유가족들과 추모단체들은 근 20여 년간의 투쟁으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의문사 당한 열사들의 진상규명을 위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1,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년 여 조사과정을 통해 민주화운동과 관련 사망 인정된 열사, 희생자들에 대해, 의문사진규명법상의 구제조치의 일환으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이하 명예회복심의위원회 =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로 사건을 신청.이첩하였으나 사건 처리가 미완.답보 상태이다.

이 심의위원회는 제대로 된 심의기준 없이 심의를 진행. 김창수, 정은복, 정연관, 최온순, 장석구 열사 등 민주열사 5인에 대한 심의에서 불인정 결정을 하더니, 2007년 4월 7일에는 장준하 선생과 박태순 열사에 대해 민주화운동 사망이 아니라며 불인정 결정을 하였다.

이에 5월 21일 추모연대 및 관련 추모사업회와 의문사유가족대책위원회와 함께 불인정 결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회의록 공개, 사과와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진행해 오다,  5월 28일 공식면담이 이뤄졌으나,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는 불성실한 면담 태도와 수용안도 내놓지 않고 있어 유가족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추모단체와 유족들은 광화문 연합뉴스 건물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에서 28일째 무기한 농성 중이며, 투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17일 이날 수추사(수도권 추모단체 대표자회의) 출범식을 거행한 것이다.

수추사는 이날 출범식을 통해 열사사업회간의 연대 강화와, 마석 모란공원 관리 및 중앙사업의 한 축을 담당해 민주화운동 불인정 철회와 명예회복 법안 개정 투쟁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하였다.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한마당이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는 제7회 통일한마당을 구로.금천지역에서 16~17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구로지역에서는 ‘우리학교’ 영화상영을 16일 오후 3시에 구로구민회관에서 진행하고, 통일노래자랑을 구로중학교에서 오후 3시부터 예선을 치루고, 오후 7시부터 본선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천지역에서는 동일한 ‘우리학교’ 영화상영을 16일 오후 3시에 금천청소년수련관에서 진행하고, 통일노래자랑을 17일 금천체육공원에서 3시/본선 7시에 진행합니다.
아울러 통일을 주제로 한 동영상UCC 발표 및 시상을 통일노래자랑 본선 때 진행하며, 당선 가작은 1 . DMZ를 넘어 (이재만) 2 . 우리 모두 백두산으로 (주연테크분회) 입니다.  

 


△ 혹가이도 조선학교(우리학교) 사진

 


△ 혹가이도 조선학교(우리학교) 교내 사진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우리학교' 기념티를 판매하고 있다.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우리학교’ 영화상영을 기획하였다.

 


통일노래자랑 행사장 포스터

 


△ 구로지역에서는
통일노래자랑을 16일 오후 3시부터 구로중학교에서 예선을 치루었다.

 


통일노래자랑에 동포들도 지역주민과 함께 참관하였다.

 



도라산역 대선후보 정책토론회, 방송 4사 중계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7년06월14일 18시27분

민주노동당 세 예비후보의 통일, 외교 분야 정책토론회가 오후2시부터 약 1시간 40분간 진행됐다.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들이 지난 4월부터 통일, 외교 분야 정책을 제시한 후에 열리는 토론이어서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격론이 예상되기도 했다. 방송 4사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열린 이날 정책토론회는 후보간 공방 외에도 민주노동당의 해당 정책을 대중적으로 알려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정책토론회는 정관용 사회자의 진행으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의 모두발언과 사회자 공통질문 및 개별질문, 상호토론, 방청석 질문 등으로 이어졌다.

권영길 의원 모두발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여러분!
그동안 살림살이는 좋아지셨습니까?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권영길입니다.
그때 여러분들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랑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대선에 도전하려는데 검찰과 수구보수언론이 합작해 권영길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수세력 중심의 대선판을 짜기 위한 음흉한 공작이며 저 권영길과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적 탄압입니다.
민주노동당 노동자들의 돈으로 창당됐고 노동자들의 돈으로 선거치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공개적으로 때묻은 돈 5천원, 만원 모으고 공개적으로 보낸 돈입니다.
저 권영길 일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은 비열한 음모와 탄압에 맞서 싸워이겨내 명예를 지키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승만 정권 때 진보당을 창당했던 죽산 조봉암 선생은 평화통일을 외치자 간첩으로 몰려 목숨을 뺐겼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은 남북이 손잡지 않으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진정한 평화, 통일을 말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가고 죽어갔습니다.
그 희생위에 오늘의 평화와 통일 바람이 불게 된 겁니다.
한데 평화와 통일 이야기하면 국가보안법으로 걸어 잡아 가두고 죽이던 세력이 재빨리 변신, 평화와 통일의 사도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평화와 통일의 길에 매진해왔습니다.
그길을 함께 뛰어온 훌륭한 두 동료들과 함께 오늘 이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노회찬 의원이 누구입니까. 삼성 떡값 검사를 만천하에 공개한 그 의원입니다.
심상정 의원이 누구입니까. 진보적 재정경제를 개척한 개척자입니다.
모쪼록 싸움하는 정치에 지친 국민여러분께 아름다운 경선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노회찬 의원 모두발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 노회찬입니다.
6.15 기념일을 하루 앞둔 오늘 이곳 도라산역에서
민주노동당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정책을 말씀드리게 되어 무한히 기쁩니다.
대통령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겉으론 차분하지만 민심은 들끓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6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못 살겠다 갈아 보자라는 절규가 천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한사람이 바뀐다고 세상이 좋아지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집권정당이 달라진다고 해서 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십년 이상 일한 미화원의 월급이 칠십오만 원입니다.
사교육비 부담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습니다.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6.15 선언이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후퇴했습니다.
남북관계의 달력은 유월 십사일에 멈춰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여러분들과 더불어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겠습니다.
갈아엎지 않은 밭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제대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세상 민주노동당이 갈아엎겠습니다.
물론 많은 국민들은 민주노동당도 변화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저 노회찬이 민주노동당 변화와 혁신의 견인차가 되겠습니다.
서민들에게 다가서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새로운 민주노동당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상정 의원 모두발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선 심상정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 대장정의 첫 출발을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넘쳐 나는 도라산 역에서 시작하는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국민여러분
얼마나 고단하고 힘드십니까? 직장은 불안하고 장사도 안 되고, 아이들 졸업시켜놓아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이제 양극화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정치가 필요합니다. 수십년간 지속돼온 기득권 정치를 끝내고 서민의 정치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우리사회에 유일한 서민정당입니다.
그러나 국민들께서는 우리 민주노동당이 서민의 삶을 책임지기엔 미덥지 못한 모양입니다.
민주노총당, 친북당, 운동권정당이 아니냐고 걱정하거나 혹은 따끔하게 지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한계를 과감하게 혁신해서 서민 정치시대를 기필코 열어낼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이제 한반도의 평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냉전과 색깔에 기대어 왔던 한나라당조차도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논의하는 평화는 단지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넘어서서 대륙의 관문으로서 한반도의 새로운 비젼을 열어나가는 평화입니다. 또한 평화는 7천만 국민에게 먹고사는 희망을 열어 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의지를 담아 한반도 평화경제론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당원여러분
오늘 토론회를 통해 민주노동당야말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끌어 나갈 유일한 평화정당임을 확인해 주십시오.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

사회자는 첫 번째 공통질문으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무엇을 설정할 것인지를 물었다.

노회찬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이미 평화의제로 되어있다고 환기하고 "대통령이 되면 가장 빨리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현존하는 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지대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의 공통점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노회찬 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해 "전쟁불사당이며, 유력 대선 후보조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지가 없다"고 지적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평화체제, 군비 축소로 코리아연합 구상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북미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남북이 주체적으로 평화체제를 천명하는 자리"라고 말하고, "한반도평화경제추진합의서를 작성하고, 경제협력을 총괄하는 상설기구로서 한반도평화경제위원회를 만들겠다"며 "평화선언과 평화경제추진합의서는 한반도 평화경제공동체로 향해가는 두 개의 축이 될 것"이라고 요약했다.

권영길 의원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고사하고 장관급회담도 성과 없이 끝난 점을 짚고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인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는 것으로 "6자회담과 북미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이 6.15 공동선언을 훨씬 능가하는 진정한 평화선언을 내와야 할 것"이라 말했다. 아울러 "첫째 평화실현 방안, 둘째, 경제협력 민족경제공동체방안, 셋째 민족통일 방안을 의제로 다루어야 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사회자의 후보별 개별 질문이 이어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제시한 '경제통일 후 정치통일 노선'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 심상정 후보는 수구세력의 일관된 주장인 흡수통일을 의미한다고 일축했다. 심상정 후보는 박근혜의 주장에 대해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자신의 평화통일론은 "첫째, 남에 의한 흡수통일 아니라 남북한 차이를 인정하는 통일, 둘째, 경제와 정치가 단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는 것, 셋째, 한미동맹에 의존한 공세적인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 공존으로 나아가는 평화통일방안"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사회자는 권영길 의원에게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과 관련 이를 극복할 대안을 물었다. 권영길 의원은 대답에 앞서 "대북 쌀 지원 바로 시작하십시오. 먹는 것 갖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권영길 의원은 "미국 중심의 정책을 남북관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남북 당사자의 직접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군사훈련 같은 게 북 심기를 건드리고 군사긴장을 조성한다"며 한미동맹에 기반한 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의 한계를 비판했다. 아울러 "내년이 정부 수립 60주년 되는 해이고 남북공동행사를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며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가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코리아연합을 제시한 노회찬 의원에게는 한나라당이 제시한 비핵개방3000과 관련 두 방안의 차이와 남북경제협력방안에 대해 물었다. 노회찬 의원은 특유의 말솜씨로 "처음에 무슨 음료수 이름인줄 알았다"고 일갈하고 "이명박 예비후보가 밝힌 대북정책 방향은 반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다. 양이 적어서가 아니라 철학의 빈곤, 비전의 결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핵개방3000이 "외국 자본과 더불어 3천불 경제 만들겠다는 건데 이는 북을 적대적으로 인수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노회찬 의원은 "중요한 것은 북 경제협력은 북 스스로 경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한 정치군사적 환경 만드는 것이 선차적인 과제"라고 강조하고, "돈을 써서 하는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써서 돈을 절감하는 통일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통일과 정치개혁의 관계와 방향은 무엇인가

이어 평화통일과 정치개혁의 관계, 개헌 등의 문제가 다뤄졌다.

권영길 의원은 "자신이 걸어온 길과 민주노동당이 걸어온 길이 정치개혁의 길"이라고 환기하고, 지역주의 해소만으로, 투명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에게 서민의 권력을 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길 의원은 "진정한 정치개혁은 오늘날 진보와 보수가 양분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며,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정치권력을 돌려드리겠다. 낡은 법과 제도를 바꾸어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겠다"며 자심감을 피력했다.

노회찬 의원은 제7공화국의 평등헌법, 통일헌법을 강조했다. 노회찬 의원은 "지난 60년을 뛰어넘는 새세상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 정책으로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올해 제헌절을 맞아 제7공화국 헌법에 시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제7공화국 헌법은 "평등헌법이자 통일헌법이어야 하고, 주거권 노동권, 교육권, 건강권 등 4대 기본권과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헌법에 담고, 영토조항 삭제와 전략적 유연성 금지 및 한반도 평화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압축했다.

심상정 의원은 헌법의 문제보다 현실 정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심상정 의원은 "민중의 권리를 강화하는 개헌이 되어야 하지만 노무현정부의 실패가 헌법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에 시장만능주의, 승자독식사회, 양극화 등이 헌법이 잘못 되어서냐 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심상정 의원은 "나쁜 정치 바꾸고 빈부 문제를 해결할 힘의 원천은 서민에게 있다"며 근본적인 개혁은 "서민정치를 확대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발전이고,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당, 집 없는 서민의 당, 여성 장애인 농민의 당, 생태 가치를 존중하는 환경의 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호토론, '코리아연합' '친북정당' '기금 100조 원' 등 예비후보자간 가벼운 공방

상호토론이 이어졌다.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 간에는 '코리아연합'과 '한반도평화공동체'를 둘러싸고, 노회찬 의원과 권영길 위원 간에는 '전략적 유연성' 대처 방안을 두고 상호토론이 이어졌다. 권영길 의원은 전략적 유연성 대응 등 그동안의 실천을 묻는 질문에 대해 "통외통위 소속 의원 26명이 항상 25:1이 되는 구도"라며, "민주노동당 의원을 많이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심상정 의원과 권영길 의원 간에는 '친북정당' 시비가 다뤄졌다. 심상정 의원이 일심회 사건 등을 들어 친북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물었고, 권영길 의원은 "오늘 국민 여러분께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 통일을 만드는 것이며, 북을 적대시하고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수구세력의 매도에 의해 친북정당이 되고 있다"며 정공법으로 맞서야 한다고 답했다.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 간에는 평화기금이 쟁점이 되었다. 심상정 의원이 펌프물을 끌어올릴 마중물로 비유한 평화기금 100조 원에 대해 노회찬 의원도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노회찬 의원은 북일간 배상금을 포함하는 문제는 북이 결정할 문제라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가 사설로 이를 문제삼은 해프닝에 대해 노회찬 의원은 "중앙일보가 2000년 1월 사설을 통해 대한민국 GDP 1%를 북에 주자고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이는 8조 원 규모로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 정말 기억력이 없구나 생각했다"며 비꼬았다. 두 의원 간에는 코리아연합 도달 시기를 2012년으로 명시한 데 대한 우려와 답변이 쟁점이 되기도 했다.

권영길 의원과 노회찬 의원 간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통일정책 비판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고, 심상정 의원과 권영길 의원 간에는 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의 한계를 중심으로 상호 질의와 답변이 이루어졌다.

이어 정관용 사회자는 미리 주어진 후보들의 신상 관련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고, 계속해서 제2 주제인 현 정치상황과 민주노동당과 관련한 토론을 이끌었다.

권영길 의원과 노회찬 의원은 진보대연합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하년서도 민중참여경선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권영길 의원이 11월에 100만이 모이는 민중대회를 조직하자고 강조한 데 대해 노회찬 의원은 민중참여의 일상적인 노력과 정책 개발과 정책연합 과정에 무게를 두는 편이었다.

방청객은 북의 개혁개방 문제, 선군정치 문제, 북 인권 문제 등을 질문했다.

노회찬 의원 마무리 발언
며칠 전 저는 강원도 원주에 가서 비정규직 노동자 한분을 만났습니다.
대한민국 유수의 사립대학에서 25년간 근무를 한 그분은
얼마 전 6월 30일 부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근속 25년이면 다른 직원들은 표창장도 받고
금반지도 받지만 이분에게 돌아온 것은 사실상 해고통보서였습니다.
25년 동안 근무한 사람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종이 한 장 으로 관계를 끊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비정규 악법이
7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을 해고의 위협 없이 편안히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민 여러분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시냇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됩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뜻이 민주노동당으로 모아지면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 세상을 바라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한다면
민주노동당은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세상을 바꿉시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는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그 길에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심상정 의원 마무리 발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여러분.
토론 어떻게 보셨습니까.
올 국방비 예산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습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군비 감축을 하는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국방비를 대폭 증액했고, 향후 2020년까지 6백20조원을 투입하려 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이제 우리 아들들의 귀중한 청춘을 희생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도한 국방비 지출로 낮은 복지를 감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평화가 곧 복지이고, 우리아이들의 희망이며, 대한민국의 힘찬 미래입니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평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평화는 군사력에 의존하는 분단 고착형 평화입니다.
민주노동당만이 오직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실현해 갈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 함께하는 평화통일 열차는 7천만 겨레에 밥과 미래를 싣고 달릴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여러분들께 평화.통일을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영길 의원 마무리 발언
2005년 8.15였던가요? 북한 정부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찾았습니다. 그 때 그 분들이 현충원을 찾아서 한 말이, “광복절에 왔는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한 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그래서 참배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맞는 말 아닙니까?
우리는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마음대로 가질 못합ㄴ다. 불법이고, 합법이고를 떠나서 불안해서 못 갑니다.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의 마녀사냥이 무서워서 가질 못합니다.
전쟁은 비극이었습니다. 그걸 뛰어넘지 못하면, 이 땅의 평화도 통일도 없습니다.
두 분 후보께 제안합니다. 우리 언제 평양가면 손잡고 혁명열사릉에 갑시다. 가서 꽃 한다발에 마음 담아 봅시다. 제가 대선후보가 된다면, 북한을 방문해, 보수정치와 언론이 보란 듯히 혁명열사릉을 찾겠습니다.
그 길이 화해, 상생의 길이고, 분단을 이기고, 평화를 여는, 통일을 여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 권영길이 앞장 서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