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파킨슨병 지병이 있어 10여년간 요양병원에 계시다, 올해 2월하순경, 홀연히 하늘로 떠나신 모친께, 삼가 뒤늦은 속심말 천상의 편지를 띄웁니다.
우리 가엽고 안타까운 어머니, 그곳 하늘에서는 몸편히 안녕하신지요?
제가 귀촌시 잠시 모친이 요양병원에서 외출해 고향에 머무를때 어느날 모친이 혼자말로 "전에 만호가 수십년동안 고향에 오지도 않고 내게도 안부가 없었던건, 나도 만호에게 무슨 잘못한것이 있어서인가?" 하고 반문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그말을 우연히 듣고 인기척없이 그냥 흘렸으며, 그냥 마음속으로 울었어요. 객지에 있었을때나, 귀촌했을때나 옛날 그사건을 생각할때면 그렇게 속으로 울었어요. 어머니는 이제 떠났지만 제기억은 (약5세때) 모친께 칼맞음을 당한 기억이 아직도이어요. 모친 살아 생전 모친은 제게 그땐 내가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도 않하셨지요. 생각하면 당시 칼을 맞아 생사가 오갔기에 좀 서운할뿐, 그렇다고 원망은 아니어요. 원인은 부친으로 모친에게 자주 술주정을 부리고 그사건전 지어 칼부림까지 했으니까요. 모친은 어느날 무얼 작심하듯하고 제게 막무가내로 부엌칼을 던지셨지요. 그 작심은 "그래 남편이 막장으로 그리 나온다면, 이판사판으로 자식들 죽이고 나도 죽을란다." 일거라 생각하고, 그리 이해할뿐입니다.
아무래도 유아기때의 충격적 사건에, 삶의 고통도 있었기에 마음의 응어리가 있지만서도, 모친이 중증희귀질환까지 있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과거 사건으로 서운했다느니 내비치는건 도리가 아닌듯하였어요. 하여 모친 생전에 그다지 내색않고 그냥 내가슴속에 묻어 두었어요.
어머니 그거 아세요? 이승에선 별의별 위선과 모략이 판치고있어요. 2010년 전후를 비교해볼때 음주운전이나 미투나 사회관념이 달랐어요. 한편 가정폭력 문제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가정인권이 확대됬지만서도요. 10여년전엔 가부장적인 사회로 과한 음주운전이 문제이지, 약한음주는 좀 문제일뿐 그렇다고 죽을죄는 아니라했어요. 더민당 대선 이후보도 2004년으로 면허취소까지는 않됐다해요. 그런데 상대진영은 면허취소 수치라 주장하며, 뒷돈을 줬으니 취소않됐겠지해요. 이건 고인이된 모친보다도 이글을 보시는 지성인과 국힘 상대진영에게 좀 여쭤볼게요.
종편보도에 당시 의혹을 제기하는 국힘 제보로 이후보가 2004년 면허취소 수치의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만원의 법원 약식기소됐으며, “초범 치고는 벌금이 높다”며 의혹을 제기해왔다.해요.
과거 당시 판결엔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나 사고가 났다해도 약식형의 벌금 150만원이었다함. 당시 처벌수위가 낮아 국힘전신이 당시 이후보에게 고작 약식기소 150만원이 뭐냐고 하거나 "면허취소 됐어야"라는 주장을 (사회관념상)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당시 법리를 뻔히알면서 초범 치고는 벌금이 높다느니, 혹은 뇌물줘서 약식기소로 됐겠지하는자는 또 뭐랍니까?
상대진영의 논리로따지면, 이재명 대선후보는 영악하기도 했다던데, 그럼 당시 음주운전 단속될시 경찰에 뇌물주면 없었던걸로 해주는 사례가 많았던바, 그 영리했던 이씨가 멍청하게 단속된후에야, 뇌물주고 음주경력은 그냥 놔둔체 면허취소만 만회했다고요? 당시 단속된 다음에도 뇌물주고 면허취소수치를 조작해 지울수도있던 시절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음주운전도 상대진영 국힘 전신이 더 많았으며, 뇌물로 무마조치 또한 그러했지요.
그럼 역지사지로 다시 질문해볼게요. 어찌됐든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며 불용서 사항이라한다면, 모친이 제게 칼을던져 사경을 해매게 했으니 불용서 사항이겠네요? 난 어느쪽이든 타부사항이 아니라보는데, 혹자는 모친사건 그건 그렇지만서도라고요? 왜요, 논리적 모순은 인정하고 싶지않은 이중잣대가 좀 캥기면서도입니까? 만일 그리 생각한다면, 상대진영 국힘 댁네는 위선자이며 모략꾼인것입니다. 어떤이의 과거 음주운전은 어떤이를 위해할수있는 위험행위라한다면, 칼던짐사건은 이미 벌어져서 죽을직전까지갔던 결과가 발생된 사건입니다. 경중으로 따지면 제가 당한 사례가 더엄중한것입니다.
이후보는 그 음주사실에 누누히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모친에게 직접적인 사과는 받은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친이 제게 대하는 모습에서 어떤 미안함이 비취기에, 저는 마음의 응어리는 있지만서도, 털어내고 용서하는 마음인것입니다. 이후보가 성남 유세현장에서 상대진영에게 나좀그만괴롭히라고 흐느껴 울었을때, 나도 만감이 교차하며 눈시울이 불거지면서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김순덕모친 2.27(입관), 28(발인) 모습이며, 우측 조문객은 큰집장손입니다.
아무튼 저는 모친이 중증희귀질환까지 있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과거 사건으로 서운했다느니 내비치는건 도리가 아닌듯했습니다. 하여 모친 생전에 그다지 내색않고 그냥 내가슴속에 묻어두었습니다.
이제 천상에 보내는 첫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이승에서 중년시기에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쳐 (외가)가족력 파킨슨이 되살아나, 사는내내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셨던 어머니,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어요. 아무튼 어려운 형편에 자녀들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고맙고 감사했어요. 하늘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길 빌어요.
사람에 있어 좋지않은 습관중 하나가 서두르거나 덜렁대다 실수하는것입니다. 지난 코로나효정요양병원 사태때 각각의 서두룸 실수 3박자가 있었으니..
제 모친이 지난 1월 3일 효정요양병원에서 코로나 무증상확진으로 이날 강진의료원으로 이송 격리요양중이다, (2차검사) 1월 21부터 코로나 무증상 음성~1.28 최종음성 완치판정됐습니다. 최종완치 결과로 29일 무조건 퇴원해야한다기에, 늦은오후 퇴원절차를 마치고, 모친을 자차에 모시고 고향에 귀가했습니다. 귀가중 모친의 발음이 정확치않음을 이상히 여겨 여쭤보니 여태 틀니가 없었습니다. 분명 몇년전 고려치과에서 새틀니를 해주었는데 말이지요. 왜 틀니가 없는 상태였는지 기막힌 아래와같은 각각의 실수가 확인됩니다.
당시 효정요양병원에서 코로나확진시 격리시설로 이송전 환자들에게 마치 피난상황을 방불케하듯 간소한 짐만 챙겨 좀 급히 이송케했다합니다. 짐을 좀 챙겨가봤자 가게될 격리시설에서는 그 짐을 거의 버린다는 잘못된정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1월 3일 제 모친은 격리시설에 가기위해 틀니를 사물함에서 꺼내놨다고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다그쳤는지 꺼내놓고는 깜박놓고 왔다합니다. 그러면 모친이 깜박했다치더라도 그 병원관계자는(요양보호자등) 제 모친이 틀니를하고있는것을아는바, 아무리 급하더하도 틀니는 챙기고가는지 확인했어야했는데 아래처럼 그러지를못합니다. 정황상 병원도 고의가 아니라 전에 없었던 갑작스런 상황이라 환자의 중요필수물품을 나름 챙겨주려 노력은 했지만, 그 손길이 제 모친에게는 운이없게 빗나간것입니다. (당시 다들 정신이 없는 상황, 특히 제 모친은 나름 자기것을 잘간수하는편이라 신경을 끄고, 좀더 일일히 케어해줘야하는 환자들에게 집중하다보니, 뜻밖의 착오가 생긴듯 보였습니다.)
그럼 틀니없는 상태서 강진의료원에 이송됐으면, 분명 모친은 도착한후인지 강진의료원 관계자에게 틀니를 놓고왔다 예기했다합니다. 1월3일 오후에 강진의료원에서 전화와 모친이 이송격리조치됐으며 개인필요물품을 예기하며, 먹을간식거리도 예기하면서 정작 틀니 예기는 않합니다. 틀니도 없는데 잇몸으로 간식거리는 무슨 필요가 있겠으며, 지금도 생각해보면 말인지 막걸리인지.. 당시 간식도 예기하기에 틀니는 챙겨온 모양이다 안심한게 오산인지 싶습니다.
그후 1.19 강진의료원에서 경과보고차 연락에서도 틀니 예기는 없습니다. 생각컨데 격리질병예방센터 시스템이 전쟁터 적십자 상황을 방불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지라, 이 또한 고의가아니라 깜빡 있은게 역력했습니다. 의료원에 퇴원후 되물어보니 이제야 틀니 생각이 난다며 예기할려다 깜박했다합니다.
한편 고향집을 재건축한지 수십년이 지난 구옥 가까이된 집터를 귀촌후 일부 수리를 거쳤습니다. 그런데 수리할 당시에는 이의를 제기않던 윗집 주인이(이사간 471 빈집주인) 이상하게 꼭 그 타이밍에 불난집에 부채질하듯 제 집에 찾아와 따지고 갔습니다. 제 모친을 받아준다는 요양병원도 없는상태로 1.29 강제퇴원되 제가 시골에 모시며, 좀더 요양병원을 알아보는등 전전긍긍중인데 말이지요..
△ 첨부사진 좌측은 이웃과(472) 주고받은 문자중 마지막 문자 일부입니다. △ 위첨부사진 우측은 자연요양병원에(신가동) 간곡히 부탁해 2월 2일 모친을 겨우 요양입원시키고, 2월 3일에 가족 자매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나의 모친은 파킨슨병으로 효정요양병원에(광주 삼거동) 입원했었습니다. 지난 1월 2일 본 요양병원서 종사자와 입원환자 등 최초 7명의 코로나 확진 이후, 3일에는 지금까지중 다수의(58명)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제 모친도 포함됩니다. 이날 오후에 본 요양병원서 확인차 알림문자가 온 이후, 이날 저녁 강진의료원에서 제 모친을 강진으로 격리수용중이라 연락옵니다. 격리상태라 병원매점도 이용하면 않되고 보호자가 별도로 택배등을 보내야한다기에, 필요 물품을 구비해 강진에 직접 내려가(5일 오전에)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강진의료원서 1월11일경 모친의 코로나 1차 PCR검사서 무증상 양성, 1월 21일경 코로나 2차 PCR검사서 무증상 음성으로 다행히 완치 판정입니다. 정부지침상 코로나 감염병 전문지정시설서 2주 이후엔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곤 퇴원이 원칙이라 제 모친의 퇴원준비를 해야한다했습니다. 그러나 퇴원할 형편이 않된다고 부탁해 다행히 퇴원시기가 다음주 이후로 늦춰졌습니다. 제 모친이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한 고위험군(파킨슨) 중증환자라서, 만일 무작정 퇴원조치하면 시골 자택서 자가격리생활해야할진대, 제가 옆에서 케어해준다한들 1주 간격으로 발생하는 트라우마는(심한 떨림) 대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땐 급히 앰블란스 불러 광주시내 대형병원으로 급히 이송해 진정조치요해야함, 하여 강진의료원 의사님도 이 사정을 미리 짐작해 감사히 배려해 주셨습니다.)
한편 효정요양병원에 제입원 요청하였으나, 병원 사정상 제입원 불가하다합니다. (재입원중 모친에게 불쌍사가 발생하더라도 보호자가 감수하겠다해도 않된다고함.) 대신 제휴중인 다른 병원을 안내해줍니다.(광주시립제1요양병원) 그런데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선 남성병실만 있지 여성병실은 없어 불가하다합니다. 효정에 다시 연락해 그곳말고 다른곳은 없는지하니, 우리도 여기저기 알아보고있으니, 최대한 강진의료원서 버티라는조입니다. 그 여기저기라는곳이 어디인지 잘 알려주지않으시니, 나름 알아보게됩니다.
헤아림요양병원에(광주 일곡동) 문의해보니 감염병 전담병원은 맞으나, 제 모친이 이제 음성판정이라 입원 불가하다합니다. (코로나 전담이라 PCR검사서 아직 확진인 양성판정일시 입원가능)
나름 앞서 문의한 즐거운요양병원은(나주시 노안면) 확실한 음성이 아니라 않된다합니다. 감염병 전담병원이 아닌 일반 요양병원이라서 그러했습니다. (확실한 2차례 음성 완치일시 입원 가능대상이며, 일단 대기대상정도로 포함됨)
모친의 코로나 소견서에 음성 판정이나 아직 1차 음성으로 차후 PCR서 양성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쉽지않다는 소견이라, 일반 병원 입장에선 좀 염려스러운 부분인것입니다. 아무튼 원무직원께 삼가 차후 모친의 좋은 PCR 판정시 잘 부탁하신다했습니다.
귀촌후 2017년 요양원서 잠시 외박한 모친과 잠시 노안성당을 방문. (전에 모친이 가끔 다니시던 노안성당) 영화 배경장소; 설행_눈길을 걷다
한편 코로나 전문학자의 소견으로는 무엇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점이 있어 참고로 수록합니다. 코로나 1차,2차에서 유증상 진단 환자이면 모르나 무증상 환자일시, 양성->음성과 음성->음성중 후자가 확실해보이나 꼭 그렇지만은않다합니다.
예컨데 무증상에 한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시 2~3일 사이에 증식하면서 염증을 일으키다가 일주일정도 되면 활동이 멈추게 되고 더이상 반응을 하지않는다 합니다. (한편 증상이 없는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10명 중 8명은 완치될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일본에서 나왔다함.)
하지만 이때도 (분자진단법)PCR검사를 통해 바이러스가 검출되기 때문에 증상은 없지만 양성판정을 받는 이른바 위양성이 나타날수있다 합니다.
완치판정을 받아도 바이러스 사균이 남아 있어서 코로나 시험지판독에는 계속 양성반응이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무증상 완치중인 환자중 양성이 뜨는 이유는 몸 안에 그 바이러스가 죽은 이후에도 찌꺼기가 된 상태에서 아직 몸 밖으로 다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이기에 검사를 해도 양성이 뜬다고 하셨다.)
PCR 양성중 활성코로나로 인한 양성과 코로나사균에 의한 양성 두가지가 있다는것이지요. 한편 유증상 환자일시 차후 PCR 양성중 어떤 양성인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상이하다고합니다.
- 참고 자료 - 무증상 양성판정 완치판정 받고 재확정 위양성 논란 2020.09.11 blog.naver.com/bussel5/222086534717 자신감을 엮는 남자의 썸타기 좋은날 무증상인데 양성판정을 받거나 음성이 나와 완치 받은 이후 재확정판정을 받는 경우가...
코로나19 양성 무증상 치료 후기 2020.12.13 blog.naver.com/guitarjeus/222172650910 기타치고 사진찍고 리뷰하는 놈 여러분 정말 조심하세요. 무증상이리고 해도 육체,정신적으로 피곤해 지는건 마찬가지..
코로나 양성 후기 / 코로나 무증상 확진 / 생활치료센터 퇴소 / 퇴소... 2020.12.10 blog.naver.com/iii0815/222168631262 China Southern 의 블로그 어쨌든 포함되어서 양성이 뜬다면 내가 양성이 떴을 때 바이러스가 지금 활동하고... 이거에 대한 답변은 1.아직 이게 완치라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완치자라는 표현...
1# 나의 모친은 파킨슨병으로 광주 삼거동의 효정요양병원에 입원중이십니다. 지난 2일 공중파에서 비공개로(모자이크처리) 광주 시골의 요양병원서 종사자와 입원환자 등 7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라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됐다고 보도합니다. 모자이크 영상이 모친이 요양중이신곳인듯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맞았습니다. 이후 3일 언론이 효정요양병원을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하며, 코로나에 3일 58명, 4일 15명, 5일 5명 등 총 8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나옵니다. ∇ 제 모친도 불행히 3일에 확진판정되었다고 이날 오후에 요양병원서 알림문자가 옵니다.
가족중 본인 다음으로 출가한 여동생이(예비 부양의무자) 모친을 좀 신경쓰는데요, 3일 저녁에 염려의 전화를하길래 침착히 대처하려하니 과한 염려는 말라했습니다. 모친이 기저질환이 있으나 아직 무증상감염 상태이고(지금까지), 인생사에 예측이라는게있는데, 모친이 갑자기 운명할 확율은 적을듯하다 했습니다. 요양병원이 시골에 있다하나 병원 총직원이 무려 150여명이고 대부분 시내인근에 사니, 좀 일찍 확진자가 발생해서 문제일뿐 언젠가는 발생될 상황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안심했으면한다해서 여동생도 침착히 받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런 모친의 코로나 확진이라, 마음이 아프며 먹먹했습니다.
현 코로나사태 시대에 연세든 부모가 코로나 확진일시, 자녀는 마음이 아플뿐아니라 때론 눈시울마저 불거질것입니다. 가정에 버림받다시피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스스로 일찍 자립한 저로서는, 눈물까지 나온다는 그 자녀가 한편으론 그저 부럽기도합니다.
그냥 친지 어머니일이듯 먹먹하기만할뿐인 속사정은, 생전에(소년기까지) 제게 칼부림까지하며 학대를 일삼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뿐아니라, 모친도 제가 5세때 제게 고의적으로 칼을 던지어 목숨을 위태롭게한 중대한 실수를 하여서입니다. 이 만극한 사건 이야기을 자서전식의 나의 생활수기에서 대략 밝혀서 아실분도 있을것입니다.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됩니다.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아래에 그때의 사건을 다시 재구성해 자초지경을 기록해봅니다.
2#
나의 부친의 고향은 지금의 큰집터인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금동마을입니다. 신씨 집성촌에서 동네 유지에 속하는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평산신씨 사간공파 신종식공의 후손, 차계 신태술가문(둘째고조의 장손댁)
제 부친은 한국전쟁전 장계 첫째고조의 몇째가문인 작은종손댁 막내아들이다,
전쟁후 구한말에 벼슬을 했던 차계 신태술가문 장손댁에 입양됨 인근 성산에(광주시 신동 산55) 고인돌이 있는데, 조선후기때부터 제 조상이 관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sdsms/2R8A/12 그런데 한국전쟁때 저희 할아버지는 북한무장공비에게 납치.실종을 당하셨다고 하며, 할머니는 전쟁 후유증에 지병까지 겹쳐 끝내 일찍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하여 제 아버지는(작은 아버지) 어렸을때 동쪽마을(내기) 고씨네의 부농에 의해 자랐고,
(모친이 고씨이며, 신가 첫째고조 작은종손댁의 인척이며, 친할아버지 친구집안) 후에 (광주 벽촌)내기마을에서 독립은 하셨으나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어떤 문중은 가문의 재산을 본가 큰아버지가 대부분 물려 받은터라 그런듯하다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실상은 문중이(특히 당숙들) 큰집의 유산을 편취해가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더 기막힌것은 유산편취 사건 공모자중 제 부친도 가담된것이었습니다. 즉 큰형을 배신하고 배다른 당숙에 빌붙어서 유산을 일부 할당 받으려다, 결국은 당숙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된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친은 그리 당한것을 당숙에게 추궁해 해결받거나 하려하지않고, 아무 상관없는 가족에게 풀었습니다. (모친에게 술주정을 부리면서 자주 시비 걸었으며 폭력행사도 종종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학대를 일삼았는데, 특히 제게 더심했으며 칼부림까지했었습니다.) 또한 적반하장으로 큰집에 가서 재산을 더 떼달라 때를쓰는 패악질을 부렸드랬습니다.
아무튼 부친으로 인해 집안 부부싸움이 잦았는데, 약5세때 어느날 부부싸움 며칠후였습니다. 집에서 어머니는 잠시 무엇을 각오한듯하더니, 갑자기 저에게 맞아 죽거나말거나 막무가내로 부억칼을 던지었습니다. 하여 그칼이 그대로 머리에 맞아 꽂히어 피가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황망하게도 어머니 칼에 맞아 사경을 해맸으며, 거의 죽다살아났더랬습니다. 당시 머리부상인데도 치료도 제대로 못받고, 머리에 쑥이나 지혈제, 연고를 몇번 바른게 전부였고, 그때부턴가 뇌의 일부가 기능상실되어, 사고후 머리부상은 아물었으나, 한동안 기억상실증, 앞면장애, 정신착란증까지 겹쳐 꿈과 현실을 구분못하기도했습니다. 하여 어릴때 정신적 충격으로 부모님 모두에게 마음문을 닫고 가족을 가슴에 묻은지 오래입니다. 자매에게도 서운함은, 상식적으로 제 부친은 분명 가정파괴범이 맞은데, 불의에 타협하는자마냥 막내남동생과 여동생마저도 그래도 부친이라며 좀 두둔하며,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의 기일을(제사) 거의 해마다 챙긴다고합니다. 이 사실만 생각하면 조만간 그 한심한 자매와도 인연을 끈고, 귀촌생활을 접고 고향을 등지고 영영 떠나야겠구나하는 생각이 수차례입니다. (역술로볼때 이번의 갑작스런 모친의 코로나 확진도 제 큰집의 유산을 편취하는 못쓸짓을 하고 떠난 당숙과 거기에 빌붙은 부친도 구천에서마저도 업을 씻기는커녕 악귀가 되어, 이승의 모친도 괴롭히고 있는듯하다고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
3# ∇ 한편 또 어떤 문중삼촌은 저희 증조신태술가문에 맡기었던(조상땅찾기 최초 단독명의), 큰종손성산을(큰부산;나주시 양천리 산8-1), 현제 증여된 공동명의인 의사와 달리 개판으로 관리했습니다. (아래 고추대 중간묘가 문중조상대표묘인데, 조상턱밑까지 로터리쳐 밭만들어 놓는등의 엽기행각을 벌임. 원래 이 대표묘가 옛날엔 무등산,금성산 봉우리가 보이는 북동쪽 명당에 위치해 있었는데, 유신시대때 당숙들이 아래처럼 아무 봉우리도 않보이는 아래 서쪽 졸당으로 이장시킨 누를 범함)
하여 본인이 나서서 본 신태술가문과 힘을 합해, 아래와 같이 현 공동증여.명의인을 설득시켰습니다. "원래 이 성산은(큰부산) 잔디 추모공원 형태로 큰종손과 작은종손이 명의등기하에 종손들만 묘를 쓰거나 땅을 쓰는게 원칙이었으며, 큰종손이 본 작은종손 증조신태술 가문에 맡기었고(조상땅찾기 최초 단독명의), 줄곳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이곳도 당숙이 끼어들어 작은종손댁 신태술후손 신철수를 등기해준다고 농락하고는 결국 배제하고 당숙이(신용섭) 슬쩍 등기입적했습니다. 이러한 사실 증언을 문중과 친지들에게서 녹취로 확보한바, 변호사도 이 임야가 임의등기된 정황이 확인된다고하니, 조상땅찾기를 준비중에 있으며, 다만 큰집 늦장남을(신태주) 공동명의인으로 포함해줄것을 바랄뿐입니다. 그러나 조상땅찾기 소송보다 현 공동명의인에게 유리한 아래와 같은 협상을 원합니다. 현제 성현삼촌이 여러 문중땅을 쓰는 대신 큰부산 성산을 잘 관리해야하는 조건이건만 그렇지를 않았으며, 시정하려는 의지도 없습니다. 문중땅을 쓰면서도, 문중.조상을 위해 해야할 의무는(문중기금 기탁) 뒷전인것이지요. (그 삼촌은 이제 큰부산에서 손떼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미련을 못버리고 간보고다님) 하여 이제 그 삼촌을 배제하고 대타로 본 신만호가 본 성산을 관리하고자하며, 이미 본인은 귀촌후 몇년전부터 시간있을때 댓가없이 큰부산내 쓰레기제거와 잡목제거를 해오고 있습니다. ∇ 또한 대표묘가 싼티나는 풀묘인것을 2020년 겨울에 아래와 같이 잔디입힘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차후 대표묘를 예전의 명당인 윗자리로 이장시켜주고, 현 너저분한 상태의 성산 중앙을 모두다 잔디작업해줄터이니, 대신 제 큰집 신태주를 공동명의인으로 등기해주셨으면합니다. 그렇다고 예전의 이상한 삼촌처럼 큰부산을 쓸 생각은 없으며, (등기상 임야이기에 밭은 불법임) 다만 명의인과 공동으로 따갈수있는 관상용 공동과일나무 정도만 가상에 식재하고자합니다."
이에 큰부산 공동명의인은 알았다며, 상의해 나중에 되도록 긍정적인 답변을 주도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삼촌은 큰부산주가 화난것을 알고 이 큰부산에서 잠정 철수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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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앞에서의 본인 성장기때의 이야기를 이어가고자합니다. 아무튼 어릴때 머리다침 사고 이후 사고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였기에 정신착란증은 가셨으나, 건망증이나 일시 앞면장애는 휴유증마냥 좀 있서, 그것도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친에게 한편으론 지금도 조심스레 그 모진행동의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되묻고싶기도하나, 귀촌후 모친과 첫 재회에서도 모친이 스스로 입을 열지않는한 생애 한번도 묻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짐작하기를 아마 부친이 가족과 큰집에게도 패악질을 저질르니, 자녀들을 죽이고 자신도 이생을 하직하려는듯한 것이라 생각할뿐입니다..
5# 1월 3일 저녁 강진의료원에서 제 모친이 이곳으로 격리이송됐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격리상태라 생필품과 간식사러 병원매점도 이용하면 않되고 보호자가 별도로 택배로나마, 챙겨줘야합니다. 4일 모친에게 필요한 의류,생필품,간식등을 사서 박스를 꾸리어, 5일 오전에 강진에 직접 내려가 의료원에 모친 물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