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변이 주최하는 '고시위헌 헌법소원 청구인단 공개 설명회'가 7월 14일 오후 5시 30분부터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설명회에서 고시 및 촛불집회 관련 민변 활동(헌법소원 및 구속 시민 변호 등) 진행 상황 보고와 헌법소원의 쟁점과 향후 계획 등이 진행됐다.



△ 이날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국민주권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 이날 오후 6시 30분경, 청계광장에서는 '비정규직 철폐 토론회'가 진행됐다.



△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청계광장에 삼삼오오 모이고 있는 시민들



△ 방학을 맞이해 촛불현장에서 설문을 참여하며 일정을 함께하고 있는 학생들

 △ 이날 17일 오후 8시경부터 청계광장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가 차벽에 막혀 주위를 빙 돌아 찾아온 2만여명의 시민과 함께 개최됐다.

 

 △ 아스팔트농활대의 율동공연

 

 

7월 12일 주말 예고치 않은 기습호우가 내린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전국에서 열렸다.
서울집회는 당초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여느때 처럼 인근에 차벽을 세우고 진입을 원천 봉쇄해, 참가자들은 국가인권위 앞, 청계광장, 종각 등으로 산발적으로 모여 시위를 한후, 7시30분께부터 자정까지 서울 중심가를 행진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2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촛불집회를 가진 뒤, 을지로 -> 종각(종각에서 수천여명의 다음아고라 및 각 네티즌 모임과 합류 -> 조계사 앞 (8시 10분경, 조계사에서 은신 농성중인 대책회의.촛불단 9명을 잠시 격려) -> 안국역 (9시경) -> 종로2.3가 -> 동대문 (10시경) -> 을지로1가 (11시경, 국가인권위.시청로.남대문 인근에서 시위중인 팀과 합류) -> 남대문 우회 ->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12시경 도착해 태평로를 따라 세종로.시청 우회도로로 진출하려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진입이 무산) 가두행진을 벌였다.
국민대책회의가 빠져나간 자정(13일 새벽 0시) 태평로에 도착한 천여명의 촛불단은 원천봉쇄중인 경찰과 잠시 대치하다 서울역 방향의 YTN사옥 앞으로 이동해 '방송독립' 지지 시위를 벌였고, 새벽 1시 30분경 태평로에 돌아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던 일부 촛불단과 시위를 합류했다.
이어 태평로 앞에서 밤샘 대치하다, 경찰이 �아 달려와 강제해산 시도를 해, 참가자들은 남대문 방향으로 떠밀리다 다시 돌아오는 등을 13일 새벽 4시까지 반복했고, 새벽 6시를 넘어 경찰이 먼저 차벽을 치우고 철수를 한뒤에 잠시 도로에 머물다 자진 해산했다.
 


△ 7월 12일 주말 차벽으로 원천 봉쇄된 서울시청 주위

 


△ 이날 전국한우협회는 서울신문사 앞에서 한우 살리기 캠페인을 열었다.

 


△ 12일 이날 촛불교회 기도회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오후 5시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여느때 처럼 인근에 차벽을 세우고 진입을 원천 봉쇄해, 국가인권위 앞에서 진행됐다.

 


△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청계광장에 모여 들고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참가자 2만여명) 이날 오후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가졌다.


 


△ 한편 이날 독립문 근처 자하문터널 입구는 길가에 전경차가 좀 배치된체 인적이 드물었다.

 


△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별개로 수천여명의 다음아고라 및 각 네티즌 모임들은
종각 인근에 모여 산발 시위를 벌이다, 7시를 넘어 청계에서 행진해오던 촛불단과 합류했다.


 


△ 참가자들은 동대문 (10시경) -> 을지로1가를 거쳐 시청을 향해 행진했고,
국가인권위.시청로.남대문 인근에서 시위중인 팀과 11시경 합류했다.


 


△ 차벽으로 막힌 시청방향

 


△ 시청방향이 차벽으로 막혀, 남대문으로 우회 -> 태평로 대한문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자정(13일 새벽 12시경) 태평로에 도착해 세종로.시청 우회도로로
진출하려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진입이 무산됐다.


 


국민대책회의가 빠져나간 자정, 천여명의 촛불단은 태평로에서 원천봉쇄중인 경찰과
잠시 대치하다 서울역 방향의 YTN사옥 앞으로 이동해 '방송독립' 지지 시위를 벌였다.


 


새벽 1시 30분경 태평로에 돌아와, 태평로에 그대로 남아 있던 일부 촛불단과 시위를 합류했다.

 


이어 태평로 앞에서 밤샘 대치하다, 경찰이 �아 달려와 강제해산 시도를 해,
참가자들은 남대문 방향으로 떠밀리다 다시 돌아오는 등을 13일 새벽 4시까지 반복했다.


 


△ 13일 새벽 4시를 넘어 전경차들이 삼삼오오 시청 앞 차벽 원천봉쇄를 풀고 귀가를 했다.
이에 남대문 인근에 있던 일부 촛불단이 가는 차량을 세우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12일 밤
조계사 앞에서 전경차 1대가 촛불단에 포위되기도 했으나 큰 불쌍사는 없었다.

 


△ 인도로 떠밀려 대치중인 모습

 


새벽 6시를 넘어 경찰이 먼저 차벽을 치우고 철수를 하자
촛불단은 잠시 도로에 머물다 자진 해산했다.


 
출처 : 네띠뉴스미디어 ,  미디어다음  



 


△ 2008년 6월 2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촛불광장 토론회가 열렸다.

 


△ 6월 2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는 민주노총 등 각계단체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  6월 21일 서울 시청앞 광장 옆에서는 따로 촛불콘서트가 밤늦게 진행됐다.

 


△ 6월 21일 오후 5시 30분경, 48시간 비상국민행동의 일환으로 대학로 국민대행진이 진행됐다.

 


△ 지난 코스와 같이 진행한 이날 국민대행진에 약 천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 한편 차벽과 전의경으로 원천봉쇄된 광화문 일대

 


△ 21일 이날 시청광장과 광화문 곳곳에서 산발 문화제.집회가 병행됐다.
이날 저녁 동아일보 앞에서는 민주노총(서울본부, 전교조, 공무원 노조) 등이 함께하는
'미친 교육 미친 민영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 이날 같은 시각 보수단체로 구성된 애국시민대연합은 '스톱 거짓촛불 시국 안정 및 경제안정 촉구 애국 시민 문화제'를 열었다. 이들은 "거짓촛불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고, 이를 주시하러 온 일부 촛불.네티즌들은 보수인의 구호에 맞춰 "이명박은 물러가라"며 맞구호를 외쳤다.

 


△ 경찰 앞에 있는 촛불들에게 항의하고 있으나 명분이 약해서인지 수척해보이는 '반촛불' 보수들


 


△ 그도그럴것이 보수의 반촛불 집회에 몇천명이 참가한 반면,
민주시민의 촛불 행사에는 시청 앞 및 광화문 일대에 6만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촛불 참가자들은 임기응변식 대통령 담화문 및
속빈강정식 결과의 미쇠고기 추가협의에 맞서, 미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을 외쳤다.





△ 미국 수입쇠고기 문제만큼 심각한 비정규직 현실을 알리는 피켓

 


△ 태평로 뒤 광화문 거리 앞 촛불들


 


△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9시 20분경 곧바로 세종로 앞 광화문을 향해 행진했다.

 


△ 차벽으로 원천봉쇄 된 광화문거리

 


△ 차벽을 마주하고 서 있는 촛불들.

 


△ 이날 건설계 노동자들은 촛불참가자들에게 모래를 공수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한 트럭운전사가 경찰에 의해 차 키를 빼았기다 다시 되찾았고,
또 한 운전사는 세종로 사거리에 모래를 내려놓고 돌아가다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고 한다.

 
 



촛불행진단은 차벽에 맞서 건설계 노동자에 의해 모래를 공수해 와 모래주머니에 모래를 담아 디딤 계단(모래토성)을 만들어, 밤 11시경 차벽위에 100여명이 올랐다.


 


△ 차벽위에서의 포퍼먼스



△ 이날 줄곳 경찰은 채증을 진행했고, 깃발든 시민들은 항의차 깃발로 채증을 가로막았다.

 


△ 한편 이날 참가자들은 청와대 방면을 막고 있는 전경버스 여러대에 밧줄을 여러개로 묶어 대동제를 하듯 끌어당겼다. 그중 1대가 22일 새벽 1시경 태평로 사거리로 끌려나왔다.

 


△ 그 끌려나온 전경차 안에는 9명의 전경들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3갈래의 긴 인간띠를 만들어 전경을 평화적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사진 우) 좀처럼 전경들이 나오지 않아, 전경을 돌려보내는데 무려 1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 약 1시간(22일 새벽 2시)이후 시민예비군의 호위로 갖힌 전경을 평화적으로 돌려보냈다.
이 장면을 통해, 이날 촛불행진단은 필사적인 청화대 진입 투쟁보다,
상황에 따라 느긋히 대처하는 방식으로 여유롭게 진행했음을 알수있다.

 


△ "뭐 아니면 말고식 투쟁이려거든, 너나 열심히 하세요! 이제 지쳤고 이만 잘련다..."
이날 진입투쟁은 적당한 진입만 예고했다면 이날 방식이 차선이었겠지만, 새벽 1시에 전경차가 끌려 나올 때가지만 해도 약 4만여명의 참가자가 남아 있음을 감안하면 평화적인 방법에 입각한 좀더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했다면, 진입 성사가 가능했을거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어떤 성봉대 왈 "이날 투쟁도 시간 허성하는 참 지혜롭지 못한 조압한 투쟁이었다."고 전해진다.

 


△ 산발적인 비와 함께 중앙로에 펼쳐진 촛불들

 


△ 이날 밤늦게 조선일보 건물 앞에서는 안티조선일보 시위가 진행됐다.

 


△ 6월 22일 아침 6시경 경찰은 차벽에 올라 시위하는 시민을 연행보다는 일단 해산을 종용하고,
뒤로 빠졌다. 이 시각에는 연행 시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전 7시쯤 대부분 시청 앞으로 행진한 후 해산했을 즈음,
행진을 뒤로 하고 여전히 남아 버티던 100여명의 참가자중 10여명이 해산작전중 연행됐다.

 


△ 22일 아침 6시 이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비축제하듯 놀았다.

 


△ 이날 끝까지 남은 1500여 명은 애국가, 아리랑을 부르며 세종로 사거리에서 남대문까지 행진했다.

 



 


△ 참가들은 오전 8시10경 서울광장으로 돌아와 흩어져, 다음 일정을 기약했다.


출처 : 미디어다음, 미디어몹(민중의소리 베타블로그 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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