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가수 한대수씨에게 특별한 해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그는 지난 5월31일 딸 ‘양호’를 얻었다. 게다가 ‘자유로운 보헤미안’으로 소문난 그가 난생 처음으로 단체의 수장(首將)까지 맡았다. 오는 10월 서울 및 경기 이천 등지에서 개최되는 ‘원 월드 뮤직페스티벌’(One World Music Festival)의 추진위원장 자리다. 페스티벌의 캐치 프레이즈는 ‘나눔과 배려’.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쿠바, 세네갈, 노르웨이 등 각지의 월드 뮤직 음악가들이 모여 ‘음악 다양성’의 축제를 한바탕 펼쳐보자는 취지다. 지난 27일 이 페스티벌의 추진위원장 한대수씨와 예술감독 송기철씨(38·음악평론가)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득녀(得女)의 기쁨으로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빠 한대수’는 “한국의 음악 문화는 영·미 계통으로 획일화돼 있다”며 “세상은 넓고 음악은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송씨는 “한국에선 월드 뮤직이 고급 문화로 변질된 감이 없지 않다”며 “이번 페스티벌은 5000원에서 1만원의 입장료로 세계적 뮤지션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열린’ 페스티벌”이라고 덧붙였다.

추진위원장 한대수씨(오른쪽)와 예술감독 송기철씨(왼쪽)

-장르 예술이나 생활 문화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지나친 문화 획일화’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별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 아닙니까?

한대수=그 ‘획일화’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저는 이렇게 봐요.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자본주의가 훨씬 단단해졌잖아요. 그러면서 모든 게 ‘상품’ 가치로 바뀌었어요. 게다가 신용카드가 등장하면서, 그 요상한 괴물이 사람들 주머니 속을 쪽쪽 빨아가잖아요. 이제 ‘문화=돈’인 시대죠. 자본이 문화를 지배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획일화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음악은 영국과 미국의 지배력이 막강하죠. 영국이 세계를 250년간 지배하다가 그 바통이 미국으로 넘어갔잖아요. 대세를 바꾸는 건 이젠 틀렸어요. 하지만 뜻 있는 사람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야 해요. 록스타 피터 가브리엘이 만든 워마드(WOMAD) 페스티벌이라고 있잖아요. 말하자면 한국에도 그런 월드 뮤직 축제가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죠. 세상에는 영국과 미국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송기철=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야 해외여행 다니면서 제3세계 음악을 접해볼 기회가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낼 수가 없어요. 국내에서 이런 행사를 치르려면 결국 예산이 문제죠. 의미는 있지만 채산성이 없으니까요. 다행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행사가 치러지게 됐습니다. 한선생이 말씀하신 ‘워마드’처럼,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게 중요하죠. 워마드는 1982년 처음 생겼어요.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월드 뮤직 축제죠. 이번 행사에 예산이 10억원가량 소요될 예정입니다. 유료 관객 입장료는 1만원을 넘지 않을 거고요. 그 수익도 전액 기부할 생각입니다. 또 사회복지시설 이용자라든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추진 위원장 한대수’와의 인터뷰는 어째 좀 낯설다. 그의 데뷔앨범 ‘멀고먼 길’의 1977년 재발매반 재킷에는 가방을 둘러멘 장발의 젊은이가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것도 정면이 아닌 뒷모습이다. 그 뿌연 흑백사진의 주인공은 물론 한씨 자신일 터이다. 그렇게 그는 20대부터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영원히 정박하지 않을 것 같은 방랑자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당신은 ‘기질적으로’ 아나키스트가 아니냐?”는 질문에 펄쩍 뛰며 두 손을 내저었다. 그는 “노(No)”를 연발하면서 “나는 평화주의자”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근원적 욕심과 질투를 줄이고, 거기서 비롯되는 싸움과 전쟁에 반대하면서 다같이 평화롭게 살자는 게 나의 희망사항”이라고 부연했다. 아무래도 그의 뇌리에는, 존 레논이 ‘이매진’에서 꿈꿨던 ‘공상적 사회주의’의 영상이 선명히 각인돼 있는 듯하다. 40년 가까운 그의 음악활동에서 꾸준히 드러났던 세계관도 역시 ‘현재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것은 때로 ‘바람과 나’ 같은 ‘허무주의’로, 또 때로는 ‘행복의 나라로’ 같은 유토피아 지향으로 나타났다.

그런 맥락에서 한씨의 2세 출산은 뜻밖이다. 세간에서는 예순살의 그가 22년 연하의 몽골계 러시아인 아내 옥사나와 자식을 낳았다는 ‘육체적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한씨는 “각종 매스콤으로부터 정말로 많이 시달렸다”며 껄껄 웃었다. 물론 ‘그 나이에, 모델 출신 외국인 아내와 자식을 낳다니!’라는 관심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보다 궁금한 것은 “X 같은 세상”을 연발하면서 “자식 낳을 생각 없다”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됐다는 점이다.

-최근에 2세를 얻은 것, 정말 축하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생각이 바뀌었나요?

한대수=아시다시피 저는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마이 와이프, 옥사나가 서른 두살 되던 해부터 아기를 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오케이해 버렸죠.

한씨는 여기까지 말해놓고 파안대소했다. 이어진 그의 말은 ‘섹스’에 대한 것이었다. “난 이제 늙어서 섹스 횟수가 아주 적다”며 “그 때문에 아이를 갖는 데 5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옥사나가 아이를 갖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며 잠자리에서의 체위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씨는 그렇게, 가끔 ‘오버’한다. 그런 ‘오버 액션’으로 주변 사람들을 한바탕 웃겨 놓는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가족’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이 있었잖아요. 3년 전 인터뷰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제대로 된’ 밥상이 그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한대수=저는 태어나서부터 거의 고아처럼 살았잖아요. 와이프도 마찬가지예요. 옥사나는 아버지 없이 컸어요. 제가 요즘 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그저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살다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니까. (웃음) 아이 때문에 책임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죠.

-이제 다시 페스티벌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 ‘월드 뮤직’이라는 것이, 한국에선 고급스러운 문화로 인식된 측면이 있어요. 희한한 일이죠.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를테면 영미 대중문화의 꽃이랄 수 있는 뮤지컬쇼가 ‘고급 명품’으로 인식된다든가, 재즈가 ‘세련된 취향’이라는 일종의 ‘기호’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송기철=예, 얼마 전에 강남 라틴바에 갔다가 그런 걸 심각하게 느꼈어요.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원래 빈민가에서 시작됐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정체성을 가진 음악인데, 한국에선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포장돼 있어요. 저도 공연제작·기획을 하고 있지만, ‘비싸야 잘 팔린다’는 인식이 정말 문젭니다. 제작사와 기획자들이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조장해요. 재즈 연주자 윈튼 마셜리스가 한국에 공연하러 왔다가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내 공연은 입장료가 3만원이 넘으면 안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자기가 연주하는 무대와 객석이 왜 이렇게 머냐며 불만이 대단했었대요.

한대수=맞아. 나는 뉴욕에 있는 150석짜리 공연장에서 펫 메스니 공연을 봤어. 그 유명한 메스니 공연을 말이야. 가격? 오래 돼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나라처럼 몇십만원하는 그런 공연은 뉴욕에 거의 없어요. 메스니도 아마 50달러 이하였을 거고요.

송기철=그래서 이번 페스티벌에서 월드 뮤직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아보려는 거죠.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보자는 취지도 있어요. 미국이나 영국뿐 아니라 아프리카, 쿠바, 몽골 등지의 음악을 접해보면서 말이죠. 한국에도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음악에는 그런 편견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어요.

한대수=인종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건 그동안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자꾸 접하면 바뀌거든요. 뉴욕에는 적어도 150개 인종이 같이 살아요. 마음이 넓어질 수밖에 없지. 제가 뉴욕에 가면 사진 스튜디오 매니저로 일하잖아요. 유태인, 자마이카인… 정말 다양한 인종하고 같이 뒤엉켜서 일해요.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고.

얘기의 주제는 오는 10월 내한하는 뮤지션들의 면면으로 넘어갔다. 라틴 그래미를 2회 수상한 브라질의 이방 린스, 삼바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조르지 아라거응, ‘쿠바의 비틀스’로 불리는 로스 방방, 세네갈의 월드 뮤직 스타 이스마엘 루 등등. 한씨와 송씨는 “아직 초정 뮤지션 명단이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들 외에도 몽골, 중국, 미얀마, 베트남 연주자들과 한국 연주자들을 더 섭외 중”이라고 밝혔다. ‘원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10월4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7일까지 경기 이천의 설봉공원을 중심으로 열린다. 서울 도곡동 EBS스페이스홀에서도 내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글 문학수·사진 이상훈기자〉

▲ 월드 뮤직이란?

현대화된 형태의 민속음악. 오랫동안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영미 중심의 대중음악에 대한 대안적인 성격을 띤다. 특정한 장르를 지칭하기보다는 서구의 팝이 아닌 음악을 통칭해 음반시장에 소개하기 위한 용어에 가깝다.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가 특히 월드 뮤직 시장에서 강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281731001&code=9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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