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 경계해야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노동자)의 범죄를 성토하며 추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 등 온라인 카페가 결성되었고 각종 게시판에서도 성폭력, 살인 등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강력범죄를 부각시키며 공포와 혐오감을 부추기는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13일 ‘양주 여중생 피살사건’을 보도하면서 이러한 풍조는 더욱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불법체류자’는 강력범죄의 온상? 편견에 불과
 
‘불법체류자’ 추방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은 “인권단체와 종교단체 등의 비호아래 외국인불법체류자들이 온갖 범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미등록이주노동자는 각종범죄의 온상일까?
 
2007년 형사정책연구 중 <외국인의 불법체류와 외국인범죄>를 연구한 최영신 연구위원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범죄발생의 위험요인으로 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비율이 높은 국적의 외국인은 불법체류자의 비율이 낮은 선진국 국적의 외국인이나 내국인에 비하여 체류자수 대비 범죄발생자수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한국 성인 10만 명 당 평균 범죄자수와 비교해도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방글라데시,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국적 외국인의 경우 범죄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적 외국인의 범죄비율은 한국의 1/5에도 못 미친다.
 
최영신 연구위원은 “통상 '불법체류자'는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내의 다른 실정법도 쉽게 위반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존재라고 위험시”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경우 강제 출국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문제가 되는 행동을 자제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범법행위를 할 가능성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운 것이 ‘이주노동자 집단’의 현실이다.
 
최영신 연구위원은 연구결과를 통해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가 우리 사회구성원의 일부를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 불법체류자수의 증가로 인한 외국인범죄 발생인원의 증가를 단순히 문제시하는 시각은 외국인 범죄를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접근하고 본질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과 집단을 동일시하는 오류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보도된 양주 여중생 피살사건은 끔찍한 범죄였다. 가해자인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곧 ‘미등록이주노동자’ 전체를 문제 있는 집단으로 혐오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집단이 모두 위험하다는 식의 접근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공격일 뿐이다.
 
일본에서 강력범죄 사건이 전파를 타면,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는 어김없이 ‘범인은 재일이다’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일본 내 외국인 범죄는 재일조선인들이 일으키는 것이고, 문제집단인 재일조선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일본인들이 있다. 이들은 강력범죄가 생겼다 하면 무조건 재일조선인의 소행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어느 집단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개인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재일조선인 중에도 ‘범죄자’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일조선인 전체가 모두 ‘위험인물’이거나 일본인들에 비해 더 쉽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재일조선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재일조선인 전체가 우범집단이자 위험대상으로 공격을 당하는 것은,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차별 받는 소수자이자 철저한 이방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 집단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갈등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사회
 
지난 해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고의 범인이 한국계 이주민 ‘조승희’ 임이 알려지자 한국사회는 일순 긴장감에 휩싸였다. 미국 내 한인사회와 한국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하는 한국인들에게 미국 사회는 오히려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총기난사사건은 ‘조승희’라는 개인이 저지른 일이고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총기소유 허가와 같은 미국사회 내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미국사회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이 가졌던 공포감은 거꾸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개인의 죄를 전체 집단에 묻는 것, 그게 민족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한국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이 처음 ‘중국계’라고 알려졌을 때 한국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중국인’에 대한 비난을 가했다.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기 전에 혐오와 공격이 우선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가 갈등을 이성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성숙함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2008/04/15 [12:57]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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