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입력: 2008년 05월 18일 22:43:13
 
ㆍ‘불법파견’ 첫 공론화…사측 500만원 벌금내고 ‘나몰라라’

2005년 8월부터 시작된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이 19일로 1000일을 맞는다. 비정규직 사업장으로서는 최장기 파업이고 불법파견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사례이다.

기륭전자 파업은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노조 결성 및 처우 개선 요구→계약 해지’라는 국내 비정규직 분규의 첫 ‘공식’이 시작된 곳이다. 노조원들의 삭발·단식·점거·고공시위 등이 이어졌지만 해결 전망은 여전히 흐릿한 상태다.

파업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가 발단이 됐다. 2005년 기륭전자 파견업체 직원들의 월 급여는 64만1850원. 그 해 최저임금 64만1840원보다 10원 많았다. 평일 잔업과 주말·명절 연휴의 특근을 합해도 세금을 떼고 나면 월 100만원을 손에 쥐기 힘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상시적인 해고 위협이었다.

김소연 노조 분회장은 “옆자리 동료와 작업 중 대화를 나눴다고 해고하고 몸이 아파 휴가를 내려고 하면 ‘영원히 푹 쉬라’는 말이 나왔다”며 “관리자에게 말대꾸를 했다고 해고통보를 받은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기륭전자의 직원은 정규직 16명, 계약직 40명, 파견직 240여명으로 생산은 사실상 비정규직이 전담했다. 명목상으론 파견직이지만 기륭전자에 직접 고용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대부분 기혼 여성 노동자들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협상을 요구했다. 사측은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조에 가입한 계약직·파견직 직원을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했다.

노조원의 부서를 임의로 바꾸고 백지탈퇴서를 요구하고 생산현장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했다. 노조는 사업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2005년 8월 노동부는 기륭전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현행 법상 생산직에 파견 업무를 쓰는 것은 불법이다. 문제는 불법파견이라고 해도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 사측은 벌금 500만원을 물고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이와 함께 생산의 전 라인을 도급으로 바꿔 계약기간이 남아 있던 계약직과 파견 직원을 도급업체 소속으로 전환시켰다. 노조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가 하면 54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신청했다.

노조원들은 삭발·단식농성 등을 하며 격렬하게 맞섰다. 파업 1000일이 흐른 지금은 조합원 200명 가운데 36명만 남았다. 나머지는 “사직서를 쓰면 손배 가압류를 풀어주겠다”는 사측의 회유로 노조를 떠났다.

김 분회장은 “미안해서 노조에 말도 못하고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며 “대부분 파견업체를 통해 재취업했는데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남은 조합원 가운데 파업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노조원은 10명 남짓. 나머지는 생계를 위해 짬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노사는 지난 16일 재교섭을 시작했다. 지난 11일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 진행 중인 서울시청 앞에서 조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것이 사측을 압박한 결과다. 재교섭에서 노조는 파업 조합원의 직고용을 요구했고 사측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접점을 찾지 못한 노사는 22일 2차 교섭을 가질 예정이다.

<정제혁기자>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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