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016년경,  “북한 핵 포기할 수 있는 인도적인 상황 만들자.”며,
고김대중선생에 이어, 제2의 신햇볕정책을 제시했습니다.

 <한반도는 이제 묵은 냉전 이념을 벚어나, 서로 상생해 남북경협을 활성화하자.
물류교역과 에너지협력 슈퍼그리드도 활성화해 동북아경제네트워크를 이루자.> 입니다.

 

이지사는 지난 여시재포럼에서 “유럽에서 독일, 프랑스 간의 탈석탄을 두고 경쟁을 하는 것을 기초로
상생 경제공동체에서 안보 협력체도 이룬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제사회가 상생해 합리적으로 교류할때 비로소 자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것입니다.

 


------------------------------------------------

세상의 이치가 주는것이 있어야 오는것이 있듯이, 세상사가 다 이와같다 할수있습니다.
아래는 하나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소개하며,
모조록 이 나라에 좋은 세상이 밝히 오시길 소망합니다.

 

제 고향 인근 금동마을에 가장 인색한 나이든 여인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인성이 나쁜 악인은 아니며, 단지 구두쇠일뿐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마을회관을 좀 이용하면, 먹거리를 가끔이라도 챙겨와야하는데,
거의 그런게없고 무전취식한듯하다며, 평소에 무얼 나누는게 인색하다. 불만입니다.
(그 여인은 저희 친척에 속하는 명철모친입니다.)

 

인색한것은 친척에게도 마찬가지며, 그 모친에게 제부친이 해꼬지한 과거가 있기에,
제집에 무얼 가져다준적인 없는것은 물론이었고, 귀촌초까지 그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사람에게는 몰라도, 이제 저희 집안에게는 그렇지않습니다.

 

그 모친은 제 큰집의 장녀(지금은 출가외인)로 출가후 일찍 남편과 생이별하듯 되어,
(남편이 객지로 돈벌러 떠난후 감감 무소식) 혼자서 시골에 남아,
가사를 책임지고 살아서인지 상남자 스타일로 부지런했습니다.

자택이 나주시내이나 간혹 시골에 들러 야산밭을 찾아 텃밭을 일구곤했습니다.

 

저희 작은집이 고인돌야산에 세운 비닐하우스를 쓰게 허락하셨는데,
사는곳이 나주라서 바쁠때는 비닐하우스에서 주무시는데, 좀 안스럽고 그랬습니다.

 

 

 

하여 녹녹치않은 큰집을 위할겸, 비닐하우스 말고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가시라고,
황량한 큰집터에 아래와 같이 컨테이너 쉼터를 무상으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큰집 유산이던 이고인돌 야산중 큰야산밭에 속하는 아래 사진상의 밭을,
저희 집이 무상임대해 여지껏 경작해왔지만, 이것도 이 명철모친네에게 양보했습니다.

 


저희집안에서는 밭이라면 위 야산밭이 유일하기에 그밭을 누구에게 양보하는것을 반대했으며,
저 또한 넉넉한 자산가도 아니었지만, 가족의 반대를 무마하고 전격 양보한것입니다.
사연은 작고한 큰집어르신이 약속하시길 그 고인돌산중 그 야산밭을 절반으로 나눠 그 기점에서
좌측은 신갑례장녀네에게, 우측은 제 신길웅 작은집에게 각 몇백평 이상 주겠다 구두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70년초 부동산특별법조치때 등기 시점에 당숙네가 끼어들어 법을 잘아는 자기가 등기해주겠다며
말 장난을 치고, 등기하기를 당숙이 들간 공동갑 3인으로 둔갑해 놨습니다.

(공동갑; 큰집 부친 신철주와 당숙2인으로, 약속된 작은 갑인 신갑례와 신길웅이 아예 배제된 상태)
하여 당숙에 대한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은 제작은집뿐아니라 큰집출가 장녀네에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제부친은 그야산밭 전체를 빌려서 쓰기라도했지만, 큰집출가 장녀네에게는 없었습니다.
하여 귀촌후 그 야산밭 사용을 중단케하고, 바로 이 명철모친네에게 전부 양보한것입니다.

 

∇ 고인돌야산 과일나무 인식표를 자세히보면, 야산 약력을 알수있습니다.

 

 

그후 저희 집안에 대한 태도가 180도 달라졌으며, 더욱 나에게는 친자식처럼 챙겨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주는 아니지만 마을회관에 가끔 먹거리를 챙겨온다합니다.

∇ 큰집 출가외인 명철모친이 챙겨주신 농산물입니다.


∇ 심고 가꾸시는분은 그 모친이지만, 조금씩 소출을 챙겨가는걸 허락하시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 가족외엔 어느누구도 못가져가게했지만, 이제 저에게만은 예외입니다.

 

 


그리고 제 모친이 희귀질환인 파킨슨병으로 요양병원에 오랫동안 계시지만,
가족외 제 친지중 말만은 몰라도 어느누구도 요양 문안 온 집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 명철모친이 요양병원 문안을 말로만이 아닌,
감사하게도 처음 방문객으로 요양병원에 찾아와 문안해 주셨습니다.

 

 

∇ 제 모친이 요양병원에서 그 큰집모친도 많나시고,
이후 병세가 잠시 호전되어 하루 외출한 모습입니다.

 

 

 


한편 집안에 우환이 겹쳐 있고, 귀촌의 계기도 그리하여,

상경생활처럼 많은 기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기적으로 할곳을 생각하던차 작게 후원한곳이나, 격한 감사를 표한 '꿀잠'이 떠오릅니다.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http://cool-jam.kr)은 언론에 간혹 보도되어서,
서울지하철노조를 비롯 독지가들이 도와주어 나름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리 넉넉치 않은 제정 형편이라고합니다.
은행대출를 끼고 센터용 건물을 매입한 상태이니, 아직 채무가 남은 상태입니다.
하여 작은 보탬이나마 소소한 후원금과 후원물품을 기탁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나름 후원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도대체 '꿀잠'이 뭐기에.. 무보수 막노동꾼 몰렸다.  2017.05.22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327435&CMPT_CD=P00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