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을 넘어 중년되기전 귀향해 정착준비중인 모습입니다.
고향 위치는 광주시 광산구 신동입니다. (나주경계 시골마을)
(귀향동기는 이전에 쓴 수기를 참조하세요.
나의 귀향수기 http://cafe.daum.net/mmnix/5SuV/199674 )


 

 ∇ 집안 모두 도외로 나가 집관리가 않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 일단 귀향후 가장 먼저 집앞 울타리를 보수했습니다.아래는 급히 폐깔망으로 망을 친 모습입니다.



∇ 일단 망을 친후 긴갈대발로 마무리한 모습입니다.집앞에 이웃집 텃밭이 있는지라, 일조량을 위해 벽돌이나 블럭으로 담장을 쌓을때 낮게해야하며, 나무도 심는다면 아래처럼 갈대발 높이까지의 낮게자라는걸로 해야합니다.벽돌보다 비용이나 밭 일조량을 위해선 일반적으로 철망을 치고 낮은 나무를 심어놓는데,야산에서 그런 나무를 구할수없으면 이또한 비용이나 시간이나 마찬가지이기에,일단 갈대발로 마무리하고 몇년후 발교체시 철망만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  검은망을 칠때는 농가에 활용치 않는 망으로 했기에 비용이 들지 않았으며,

 갈대발도 (120,150cm x 180cm) 6묶음하여 총3만원으로(넷홈쇼핑) 싸게 마무리했습니다.

 


 

∇ 왼쪽문은 집 입구중 하나인데, 얇은 비닐에 거의 투명인지라,가져온 남은 자제인 두꺼운 비닐과 커텐천으로 마무리했습니다.

 

 

 


∇ 이어서 집수리중 대공사인 지붕보수를 하였습니다.

 

 

∇ 지붕 페인트를 칠하기전 깨진기와는 접착마감제로 이어붙이거나 남은 기와로 교체하고,

두꺼운 사포로 기와사포질을 하는데 장장 이틀이나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하고보니 시행착오를 격었는데, 아래와같이 10년이 지난 기와의 경우

기와청소를 이틀이 아니라 삼일정도는 해야겠다는 결론입니다.

 

 

 


∇ 페인트 1차작업을 완료한 모습으로 2차를 않해도 될정도로 뽀대가 나는 모습입니다.

 


∇ 그래서 페인트 2차칠까지 굳이 않해도 되는가보다고 냅두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이것은 방심이었네요.

 


∇ 한달이 지난후 지붕을 보니 지붕하단 기와에 녹이 조금식 올라와 있던것입니다.

 

 

 

 ∇ 하여 페인트가게에 자문을 자세히 구하니,

오래된 기와는 굵은 사포와 경우에 따라 쇠솔도 동시에 사용하여, 오랜시간을 거쳐 잘 문질러줘야하며,

청소는 빚질을 한후 꼭 물청소를 하여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후 마른다음에 하라였습니다.

페인트칠은 2차까지 꼭 하되, 1,2차를 떡칠을 하듯 해야하며

그리아니할경우 3차까지 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던데, 실제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아래사진은 다시 사포질을 하고 물청소하기전 모습인데, 아직도 녹이 좀 남아있습니다.

잘해놓으려면 지붕청소하는데만 1주일 걸릴판입니다.

그래서 청소는 이쯤까지만 하고 포기했습니다.

 


 

∇ 페인트 2차칠 완료후 모습입니다.

또 한달이 지나면 전번보다는 덜하겠지만 미세하게나마 또 녹이 올라올거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쯤하여 자족하고 그러려니 해야할거같습니다.

 

 


 

∇ 메인 지붕페인트칠후 서브 헛간도 페인트 칠한 모습입니다.

비용은 메인 기와페인트 4리터 4통(총 10만원), 소부신나 4리터 3통(총4만5천원),

서브 헛간 페인트 1리터 3통(1만8천원), 에나멜신나,휘발유 8리터(총1만5천원)

 

 

 ∇ 이리하여 집앞 울타리와 지붕보수를 왼료한 모습입니다.

 

 

 

 

 

 ∇ 아래사진은 집뒤 담벼락이며, 이곳도 수리에 들어갔습니다.

 

 

∇ 송정시인근 영광방향국도에 위치한 철망도매상에서 울타리철망을 싸게 구매했습니다.

(PVC능형망 높이 120cm X 길이 5m 짜리 2묶음 ; 총28,000\)

 


∇ 시골집에 남은 아시바로 지지대를 만들고 PVC망을 연결중인 모습입니다.

 

 

 

 

 

 

∇ 마무리는 이또한 갈대발(120cm x 180cm) 고급형 4묶음하여 3만원선에 싸게 마무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mmnix/Dpgu/11872  짠돌이카페
http://cafe.daum.net/refarm/8EDD/1925    [Daum우수카페]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

 

 

 

하늘자산;5천만원이상, 땅자산;1억원이상 달성

짠돌이카페 베스트선정 원문 : http://cafe.daum.net/mmnix/7mn8/7890

 

 

 


1# 하늘자산
: 약5천만원이상 달성.

안녕하세요. 
생활수기에 붙여 저의 소개를 잠시 할까해요.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이며, 1971년생에 가난한 농가의 전쟁고아 집안입니다.
2013년에 개봉된 '마이리틀히어로'에서 저와 닮은 주인공 김영광의 스토리처럼
환경은 다르지만
집안이 여의치않고 화목치 않아 순탄치 않은 유년시기를 보내었어요.
가문의 옛 고향은 격동기때까지만해도 뒷마을 나주시 노안면 금동마을로
성산에 조상때부터 관리했던 고인돌이 있으며, 집성촌 당시부터 동네 유지에 속하는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http://cafe.daum.net/sdsms/2R8A/12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생때부터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으나, 유년기시절에 불미스러운일로
갑자기 머리를 다쳐 후에도
후유증이(편두통,기억상실증) 있어 사회생활이 원만치않았어요.
회사에서 일이 서툴다고 종종 짤리기도 해서, 기술과 자산을 모으는게 더디었지요.

그래서 절망과 고독의 삶이 연속이었지만, 분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어요.(사고장애 극복함)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현대판 생계형 이산가족상봉기-꿈에본 내고향 방문..http://cafe.daum.net/mmnix/FDjK/125416)


 

1993년 군복무이후부터 ~ 2006년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푼돈으로
기독교(교회) 신앙활동을 하며 헌금도 꾸준히 하였어요.

1993 ~1995(광주에서 서울로 정착시기) 매월5만원선 = 헌금 약200만원,

서울정착시기 ~ 2001년까지 일반교회 다니면서 매월10만원선 ; (약6년) = 헌금 약1000만원

2001년~2006년까지 동포.이주노동자선교교회 및 단체 (약5년) 후원금; 약1천5백만원
활동내역
2001년 여름부터 2002년 11월까지 서울조선족교회에서 주일날 자원봉사를 시작,
2004년 ~ 2005년 '조선족의친구들'(동북아신문 내조 및 동포후원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을 함,
또한 서울조선족교회 후원언론 '동북아신문'에서 객원기자로 활동을 겸함.
2003년 ~ 2004년까지 가리봉중국동포타운에서 사이버팀장으로 자원활동 참여함.

2006년 ~ 2009년 이주인권단체 및 지역신문시민기자 활동; 후원금; 약1천200만원
예)2009년 한해; 후원금 약400만원 (비공식통계까지합산함)
(2009년 MY사회기부 통계- http://blog.daum.net/chmanho/16883623)
주요 활동내역
2006년 ~ 2007년 서울경인이주노조에 연대활동차 이주노조미디어활동가로 참여함(이후 후원회원)

이후 커널뉴스(팩트티브), 네띠(NTM)뉴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으로 자원취재 활동.

(http://www.ntmnews.co.kr/, http://facttv.kr/facttvnews/, http://www.ohmynews.com/)



 

 

△ 위사진 좌측에 함께하신분은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해외협력단에 참여하셨던 재미한인이십니다.

 

 

 

 △ 비정규직 투쟁 후원회 취재현장에서(중앙좌측; 이상규 전 통진당 의원, 중간:엔티엠뉴스 대표)




 2010년 ~ 2015년 ; 후원금 약1천200만원

 ∇ 최근 후원내역 관련 이미지동영상


 

 2# 땅(바닥)자산 : 약 1억원이상 달성
(부동산보증금+생활저축;약9천만원 + 자동차 및 생필품,생활가전품등;1천만원이상)

가사난으로 중퇴후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히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대입검정까지(고졸) 마치었습니다.

저의 경제활동 주수입은 금속가공업에 1998년까지 한동안 종사하였고(당시 월급70~90만원선), 
2015년 11월까지 매일경제.구로보급소에서 신문보급업 일을 했어요.
수입: 2004년까지 100만원선, 2013년까지 125~135만원선,
불황으로(구독자 900부에서 600부이하로 급격히 감소) 2013년 7월부터 110만원으로 삭감.

그리고 신문일을 하며 (2013년 이후)부업으로 잠시 빌딩건물 관리 등을 겸했어요.(수입 25~35만원선)

 



   ∇ 월급통장

   ∇ 각종저축통장들 (청약저축은 이자표기가 없으나 150만원이상 이자적립됨)

 

 



 

각종저축통장들중에서 주저축통장 저축내역일부

 


∇ 생활통장



혹자는 제가 수입이 잘해야 140만원선인데 매월 후원금 10만원 이상 하고,
생계용 차(다마스) 유지비까지 있는데도 어찌 100만원까지 저축이 가능할지 의아해할것입니다.
물론 일반인에게는 택도없는 소리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알뜰히 살려한다면 80만원까지 저축을 문안하게 할수있습니다.
일단 자동차 유지비에 대해 예기해보겠습니다.
자동차 유지비를 최대한 아끼는 방법이 첫째는 연비이며,

또한가지는 사고않나게, 차 고장않나게 잘타는것입니다.
 안전운전을 하다보면 종합보험까지는 필요가 없으며 책임보험만으로도 충분하게됩니다.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상대편이 냈으면 냈지 내편이 아니고,

부득히 과실로 냈더라도 경미한 사고가 일반인바
책임보험으로도 충분히 다 물어주고, 할증 또한 낮습니다.
연비에 있어서 출발은 차분히 하고 과속을 않내게 하여 타는거지만,

실업무에 있어서 바쁘다보니 그게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리하시면 됩니다. 바쁠대 출발은 약간만 빠르게 하고

과속은 무리하지않게 적당한선(속도제한 상한선)으로 하고,
가다 신호가 바뀌면 유독 신호가 더디 바뀌는 큰 교차로가 있을시

시동을 끄고 기다리다 다시켜서 차분히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것이 차를 놓고 최대한 걸을수 있다면

한쪽에 놔두고 가까운거리는 걸어서 움직이는것입니다.
(예로 저의경우 다마스로 밤12시에 출근하여 오전 6시경에 배달일이 끝나고,
바로 빌딩건물관리 장소로 이동해 잠시 일한후 퇴근하며(9시경),

주말에는 청계천까지 다마스로 장을 보고도 LPG값이 한달에 8만원 안팍밖에 않나옵니다.

그 이유는 배달일할때 걸을수있는 단거리는;총30% 최대한 걷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처럼 뚜벅이 정신이 없다면 이또한 연비 절감은 택도없는 소리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활비를 알뜰히 사용하며 절감하고 살기에 가능합니다.

지금의 난방비 절약법은 '초절전 난방법 전격 공개, 자린고비 체험수기'를 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아래 사진을 보시면 청계천벼룩시장에 군바리용품을 파는곳에서 전투식량 3봉을 천원에 샀습니다.

(요세는 전투식량은 잘 내놓지 않고 깡통류나 식품류 등이 보이니, 갈때 참고하세요.)
그리고 전자랜지용(210g) 즉석공기밥을 시중보다 싸게 2팩에 1천원에 있기도합니다.

그리고 청계천벼룩시장에는 각종식품 및 물품등이 저렴히 판매합니다.

 

 

 

 

 

 위 사진은 주로 라면해먹을때 사는 라면사리이며 대형마트나 식품할인점에 보면,

5봉에 1500원에 지금도 판매하는곳이 있습니다.

라면스프는 청계천에서 조미료(다시마)를 싸게 사시거나, 혹은 진라면 5봉에 2천원하는데요,

 

라면1봉지당 나오는 스프를 다 사용하지마시고 많아야 70%정도 사용하고 나머지는,

따로 조미료통을 준비하여 그곳에 담아놓거나 아니면 남은 스프봉지를 묶어놓습니다.

그리고 또 라면을 개봉할때도 스프를 좀 남겨놓으면 다음에 라면사리만 넣고 끌여도 충분한 스프량이 확보됩니다. 어차피 라면을 드실때 라면만 달랑 드시는게아니라 김치나 반찬을 곁들여먹기에

그리하게되면 나트륨(소금)량이 초과되니, 스프는 적당히 넣고 라면에 김치나 양념류를 끌인 1분후

넣으면 맛도 일품이고, 이만한 저염분 웰빙라면이 없는것이지요.

 

 

 그리고 위 사진은 초당두부가 아니라 제가 즐겨먹는 400~500원하는 판두부입니다.

솔직히 두부 사드실때 1천원부터하는 초당두부를 사먹는등, 먹고싶은거 괜찬은거 다사다먹노라면,

생활비 절감은 고사하고, 무슨 후원은 염두도 안나옵니다.

또한 식비절약 예로 가끔 편의점중에서 본사밀어내기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도시락을 반품시키지 못하고 떠않고 폐기하는곳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한 편의점을 유심히 봐뒀다가 점주나 종업원에게 조심히 가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반값에 챙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반값이하로 쳐줍니다. 이리하여 2~3일에 한번꼴로 염가로 사서 전자랜지에 돌려 해먹으면 됩니다.
유통기한은 도시락의 경우 여름이면 며칠안에도 괜찮으며,
겨울이면 3~5일이 되도 되는것이 있습니다.
(참 자주오면 종업원 입장에서도 귀차니즘이고 하니 며칠 간격을 두고 찾아가거나 ,
점주가 상주를 잘않하는곳이면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비용을 종업원 용돈하라고 몰래 주는게 나음)

이렇듯 좀 짠한삶을 감수하고 인내하고 하면 못해도 생활비 절감은 됩니다.

저의 경우 박봉이지만 저렴한 식품 및 외식이나 문화생활등 이리 절감하고 저리 절감하여

월90만원안팎 저축과 함께 10만원 이상 불우이웃후원도 가능하였습니다.

저의 생활 신조는 '진리와 의로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자'입니다.

아래 고양이뮤직등을 끝으로 이만 줄이오며, 긴 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영수증(최근용)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8934



마이리틀히어로, 인생의 출세.가치기준에 대해 생각케하며, 삶의 교훈이 되네요.

최근 2013년 봄에 개봉된 한국영화 '마이리틀히어로'는, 필리핀 혼혈소년이 주인공이며,
뛰어난 가창으로 케스팅 되어 뮤지컬 진출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혼혈에 대한 차별을 넘어 다문화가정을 이해하고,
사회의 한구성원으로서 서로 자연히 어울려 살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만능주의나 학력우선주의와 기회를 위해 비열함이 존재하는 사회,
언제부터 진심은 없고 허상만 존재하는 모습 이런 부분도 이야기되며,
우리 인생의 출세나 가치의 기준은 무엇이어야되는가를 생각케하는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보면, 허세의 뮤지컬 음악감독 유일한이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차,
국내 대규모 아역 뮤지컬 오디션 행사를 맞이하게됩니다.
그래서 한번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가창력있는 순수한 이주소년 김영광과 함께 파트너가(멘토) 되어 시작하는
이 영화는, 130여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김영광과 유일한이 함께하고 가까워져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입니다.
오디션 장면을 보면, 보이스코리아와 슈퍼스타K의 요소가 어느정도 섞였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노래실력 빼고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비주얼, 춤실력, 빽, 어느 하나 잘난 것 없는 영광이.
한편 최종예선에서 ‘조선의 왕, 정조’의 주연 배우를 뽑는 오디션에 얼굴색까지 다른 영광이 못내 탐탁지 않은 유일한은
일등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강훈련식 하드트레이닝을 시키고, 영광은 묵묵히 교습을 견뎌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주로 이지수편곡에 천상의 목소리 성태현군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며, 지대한군의(스리랑카 다문화가정으로 현12세이며,
다니던 안산이주민센터에http://www.migrant.or.kr 찾아온 영화기획사를 통해 케스팅됨)
실제 노래목소리로 착각할정도로 가창묘사가 완벽합니다..

참, 주인공 김영광의 스토리를 보면, 환경은 다르지만 나의 삶이 오버랩되는듯합니다.
배두나처럼 저도 약간 이국적인 외모여서, 참한 김영광군의 외모를 보면 저하고도 약간 닮았어요.
특히 목소리와 성격(행동)이 어렸을적 저와 거의 비슷하여,
아마 김영광군이(지대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저와 같지않았을까 생각도 되네요.
영화스토리에 김영광군은 혼혈인에 아빠는 무슨사유가 있어 자식을 외면하고
회피한체 따로 살고 있는등해 상처를 안고 자란 불우한 환경이었듯이,
저또한 배경은 다르지만 집안이 여의치않고 화목치 않아 순탄치 않은 유년시기를 보내었습니다.

고향하면 심신을 달래주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야하겠지만, 저에겐 그러지아니했습니다.

 

△ 좌측은 나의 20대때, 우측은 30대때의 사진입니다(300만화소 스냅사진)
(우측에 함께하신분은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해외협력단에 참여하시는 재미한인이십니다.)

 

제 소개를 자세히 하자면 1971년생에,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내기마을),
3남2녀중 장남으로 가난한 농가의 전쟁고아 집안입니다.
부친이 집안 과거에 대해 예기 잘 않하셔서 자세히는 모르나 어림짐작해 대략적인 정황으로보자면,
원래 본 고향은 한국전쟁전후까지만해도 나주시 노안면 금동마을로
당시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집터만해도 마을에서 좀 큰편에 속했었고, 아름드리 감나무가 수십그루 이상에 텃밭과 작은야산등으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조상땅찾기기준;논밭 40~50마지기, 야산임야 60마지기, 실제; 논밭 20마지기미만, 임야 2천평 수준)
그런데 한국전쟁때 어느날 저희 할아버지는 북한무장공비로 추정되는 괴한에 의해 납치.실종을 당하셨다고하며,
할머니는 전쟁 후유증에 지병까지 겹쳐 끝내 일찍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하여 제 아버지는 어렸을때 뒷 마을(내기마을) 고씨성의 부자농가에 의해 자라났고,
후에 내기마을에서 독립은 하셨으나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훗날에 추측해 알았지만 가문의 재산을 본가 '금동마을'의 (큰형)큰아버지가 대부분 물려 받았으나,
문중이(특히 당숙들) 큰집의 유산을 편취해가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모르나 지금은 고인이된 아버지는 어렸을적 당시 친지나 이웃에게는 좋게 다정히 대했지만,
어머니나 자녀들에겐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KBS2 아침드라마 '삼생이'에서 나오는, 사기진이 삼생이를 하대하듯
자식들에겐 무뚝뚝하거나 좀 쌀쌀하게 대하였고, 자주 학대를 하며 칼부림까지 하기도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부부 싸움도 잦았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간혹 자녀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등 가정이 오붓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유년시기에) 집안의 부부싸움 며칠후, 제가 어머니에게 무슨 투정을 한것도 아니었는데,
(당시 어렸을적 좀 의젖하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투정같은건 잘 않했고요, 우리 친동생들도 대략 그랬어요.)
집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뭐라 짜증을 내며, 저에게 맞아 죽거나말거나 막무가내로 부억칼을 던지었고,
그칼이 그대로 머리에 맞아 꽂히어 피가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하여 갑작스런 어머니의 칼던짐에 머리부상이 돼 사경을 해매야 했으며, 부상 휴유증과 적지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머리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머리에 쑥이나 지혈제, 연고를 몇번 바른게 전부였고,
그때부턴가 뇌의 30% 가까이가 죽거나 기능이 마비되다시피하여, 사고후 머리부상은 아물었으나
기억상실증, 앞면장애, 정신착란증까지 생기기도해 꿈과 현실을 구분못하기도했어요.
어느날 꿈에서 아버지가 이웃마을 '장등'으로 심부름 시킨것을 현실로 착각하여,
잠결에 일어나 맨발로 비몽사몽 장등으로 걸어가 생판모르는 낮선집을 서성이는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달려온 누나에 의해 등에 업혀 다시 되돌려온 기억이 아련히 납니다.

그이후 정신착란증은 가셨으나 기억상실증이나 앞면장애는 휴유증마냥 간혹 있어서,
그러다보니 사고와 기억력에 있어, 지금까지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면서 자녀를 학대하며 괴롭히기 일수였고,
어머니는 그러지않으셨어야하는데 어느날 칼을 맞는 극단적인 경우를 격고나니,
정신적 충격으로 그때부턴가 어느덪 부모님 모두에게 마음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한편 다녔던 초등학교나(삼도남) 중학교에서도(평동)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가관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중 일본순사마냥 스파르타식 막무가네 교육을 시키었는데,
학생들이 좀 맘에 안든다싶으면 회초리가 아닌 어떨때는 몽둥이까지 들고 학생을 후려치며 하대하듯 체벌을 했습니다.
어느날 회초리로 머리까지 후려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의 경우 머리를 빗나가 맞아서 다행이었지
까닥하면 다친곳을 맞아 큰일 날뻔도 했어요.
중학교 2학년쯤 되자 집안에서 자녀들 등록금을 다 내기가 버거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고(학교 다니는 남매가 여렇인지라),
아버지는 누나와 동생의 학비를 미루는한이 있더라도 저를 끝까지(고등학교) 가르치려했으나, 제가 고사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도 때리니까 못다니겠다는 사유로 자퇴서를 쓰고 그만두었어요.
(당시 사건으로 그 평동중학교는 맹붕이 되어 체벌이 줄어들었다고도합니다.)
속내는 가정의 불화도 끈이지않으니 너무 힘들어서,
이래저래 얼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겠다며 생각하던차,
86년 그때 어느날(여름) 그렇게 결정하고,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기구한 운명인건지 유신의 잔재가 남아있었던건지,
스팩을 위해 형편상 간혹 옮기어 다녔던 업종 대부분(90년대 중반까지),
직장 상사들이나 사장이 아랫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거의 깡패와 비슷하는등 이회사 집단 또한 가관이었습니다.
인간사는 냄새나 삶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삭막함과 착취, 무한경쟁속,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사회였고,
어느덪 그 한복판에 서서 막닥뜨리고 홀연히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직업은 금속가공업에 98년까지 한동안 종사하였고, 이후 매일경제 보급소에서 차로 신문보급업무를...)

 

명절이 되면 직장생활에 찌든 맘을 달래주는 고향이 되야하지만,
이미 집안 또한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전에 잘살다 전쟁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서라한다해도, 오붓한 정감이 오가야되는데,
아버지는 별로 반기지 않으셨고, 돈이나 많히 벌어왔는지 하는 눈치였습니다.
88년 설명절때 일단 번돈 약50만원 정도 아버지께 드렸었는데, 별로 탐탁치 않으셨고
"이것도 돈이라고 벌어 왔느냐?"며 뒤로 돌아서서는 핀잔을 주었어요.
누나도 중졸후 바로 취직했는데, 명절때 누나에게도 돈이라도 벌어왔는지 하는 눈치였고,
돈을 얼마 않가져 온것을 보시고는, 어머니마저도 등뒤에다 대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어머니만큼은 차마 저에게 아쉬운소리를 잘 않하는편이었는데,
누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게되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올게요.
만일 돈 못벌어오면 앞으로는 오지 않을게요.."

 

이후 오래전(2002년) 어머니와 누나의 매형과 전화통화한것 그것이 마지막 통화로,
그후 만나지도 못한체 어느덪 10년이 지났습니다..

"만호야, 명절에 집에 좀 자주와"
"어머니 죄송해요, 돈이 없어서요.. 그리고 반기는 사람이 없어서요.."

"...매형, 죄송해요. 고향에 자주오고 싶지만 심적으로 힘들구요,

위안보다는 마음이 힘들어 피로만 쌓여서요..."

 

 

당시 초라한 초가집이었던 고향집이 90년대후 기와집으로 새로 지으면서 진빚이 좀있었는데요,
"고향집에는 못가지만 돈부치는걸로 대신할게요"하고, 300만원 정도 송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는 편지로 "앞으로는 고향에 영영 못 올지도모르니 내 장자권을 둘째 (경호)남동생에게 이양하고자한다.
얼마 않되는 집안 재산이겠지만 부모님 사후 이거라도 너희끼리 물려받아 고향을 책임졌으면 해"
하는
마지막 서신을 보내고, 고향을 마음속에 묻었습니다...

87년 이후 몇년에 한번씩 명절때 고향에 들리다, 이후에도 고향땅에 왔지만 차마 집에 들어갈 엄두가안나,
금동마을 저수지 정류장 인근에서 혹은 복굴과 고향마을 사이에 있던 신동교(삼형제다리) 근처에서 고향집을 바라만보다,
눈물만 흘린체 상경하곤 했습니다. 이렇듯 부모든 친지든 세상사람이 다 남남이라는걸 막딱드린체, 쓸쓸함과 고독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으니 그 희망으로 근근히 삶을 버티어오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어렸을적 노안성당을 다니던 송계에 살던 이기현친구를 통해,
그리고 송학장로교회에 다니던 윗집의 이숙경 할머니, 이숙경,이홍섭 후배, 송학에 살던 김준택 친구를 통해,
주님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되었고,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존재함을 희미하게나마 느낄수있었습니다.
이후 군복무때(92년) 생활정보지사에 일이있어 광주시를 들리다
거기서 근무하는 서부침례교회에 다니는 열정적인 집사님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사랑을 자세히 알게되었고 그 이후로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서민이지만 형편이 되는데로 불우한 이웃을 돕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삶에 있어 알뜰히 아끼며 나눔과 봉사를 소중히 여기면서 잔잔히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 2009년 커널뉴스(현 팩트티브 http://cafe.daum.net/facttv) 취재 현장에서

(긴 사연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28호 소식지>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기자, 신만호 후원인
http://cafe.daum.net/supportingworkers/5nKc/75 (http://blog.daum.net/chmanho/16883506)

자린고비 생활수기 전격공개- 박봉 자수성가기
하늘자산;5천만원이상, 땅자산;1억원이상 달성
짠돌이카페 베스트선정 원문 : http://cafe.daum.net/mmnix/7mn8/7890


*2009년 MY사회기부 통계(NGO,복지기관,인터넷언론 후원)
http://blog.daum.net/chmanho/16883623

*초절전 난방법 전격 공개, 자린고비 수기
( 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 cafe.daum.net/mmnix/5SuV/166883 )

*진보여 민주시민이여, 대성찰(대각성)를 하여 빛이돼 나아갑시다!
http://blog.daum.net/chmanho/16883705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https://cafe.daum.net/10in10/DrC3/396087

http://cafe.daum.net/CS11/9bMl/2627

 

 

구글 맵스  http://maps.google.co.kr/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구)삼도남초교
(현; 새날학교(http://www.saenalschool.com/)

출처 ; http://cafe.daum.net/CS11/9bMi/1316 


2008년전 삼도남초교 사진 (현; 새날학교) 


(*교정의 벚꽃 벚꽃 이미지 모음.오후수업 받던날의 웃음소리 들리는듯)

*이종섭선생님이 친필로 쓴 삼도남교 윤판현교장선생의 공헌비 (윤판현교장선생님은 6.25전후 삼도남교를 지켜낸 분으로 유명하다.) http://cafe.daum.net/CS11/9bMk/1015
 

  추억따라 G사랑가족 병풍산행(4.9토)  (2011.04.12 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039

    대산3거리로 돌아와 남초교앞에 이르러 걸어온 병풍능선을 봅니다.


 

# 성골롬바노중학교  http://cafe.daum.net/CS11/9bMi/2436   2013.09.30
       빛고을주보에 실린 노안성당(1908~ 105년)의 역사와 성모중학원(1961~1984)

노안성당가는길 성모굴(루르드성모발현을 기념 1958년) http://cafe.daum.net/CS11/9bMi/2475


◑천주교성지◑ 걷고, 사색하고, 느끼는 나주성지(노안성당)   2014.09.29

blog.naver.com/greenjeonnam/220136132944   전라남도 공식 블로그 

나주가볼만한곳]100년 넘은 성당이 있는 농촌체험휴양마을  2015.01.28

 

산타마을 나주 이슬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축제  2014.12.26

blog.daum.net/huhasim/1954   simpro의 반 백년이야기

 

 


  #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중학교  www.pdong.ms.kr 

 

평동저수지 (http://kwkm38.blog.me/60188608328) 2013/03/29 
[사진출처] 삼남길. 12구간. 광주광산구 송산유원지~전남나주 노안(양천리 성당)|작성자 시리우스

 

http://postfiles8.naver.net/20130329_71/kwkm38_1364530392876m6rhy_JPEG/%BB%EF%B3%B212.jpg?type=w2 

 

 2006년 6월초의 석문산 (http://cafe.daum.net/CS11/9bMi/2245)

 정상에서 본 석문저수지

 

 석문산 둑방길


석문산 (163.3m)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 2014.01.02 blog.daum.net/8306/1508   파도의 흔적

 

 

 

 # 구글위성에서 본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하  http://maps.google.co.kr/

출처 ; 성골롬바노중학교 동창회  http://cafe.daum.net/CS11 (2009)
http://cafe.daum.net/CS11/9bMm/873?docid=1964584506&q=%BB%EF%B5%B5%B3%B2%C3%CA%B1%B3&re=1 

 

병풍산, 망 산, 뿔바위봉, 채알봉, 구절봉, 외 5산, 光州/羅州

http://blog.daum.net/chosk33/481  (출처 ; 조삼국의 산행기)

 

 



 

 

 

 

 

2013년 스마트한 세상과 소통하다.. 2013.01.07(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301

 

 

2010년 새해 고향 풍경입니다. 2010.01.04 cafe.daum.net/dangjinhonam/Njm0/3   당진호남향우회

병풍능선에 오르다 병풍능선에서 올라서면 고향(광주시 광산구 송학동,나주시 노안면 양천리)산하는 한눈에 들어온다 눈덮힌 능선과 뿔바위 정상으로 가는 데크계단길 금성산(나주시)을...

 

고향산 능선길을 걷다 (가산임도-망산-뿔바위-이별재-옥산-매봉-울음재)
2010.01.19  blog.daum.net/rhqkrtk/30   고박사

 

6월이 열리고~ 병풍의 이별재까지 2012.06.02.(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234
골사모천사회 발대식,교정에서 이별재까지 2012.02(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k/1533
12월의 마지막 밤과~새해 첫 아침사이 2012.01(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164

▲ 고향산 병풍능선을 달리다~| 2011.02.19.(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021

개교60주년기넘금성산일주 2011.04.04(김용환) http://cafe.daum.net/CS11/9bMi/2033

* (병풍산 종주와 병풍의 향기)   출처: http://cafe.daum.net/CS11/9bMi/1037 (2007.05.21)




*뿔바위 정상에서 본 고향..계량,송계,장등,금동,복굴,덕림..(2013년)

 

 

http://borihouse.new21.net/zboard4/data/borigrium/521bp07sds68.jpg
*활강장에서 본 석문산,남초교
*활강장에서 본 고향..봉학,국룡,신광,회룡마을이..
*송계뒷편산에서 본 고향..송계,금동,장등,복굴,덕림이..
*옥산가는 길에 본 고향..오정리,영천,솟다리,덕림..

 

 

* 정초..설국의 고향을 가다~ 2013.01.01(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300

평동삼거리

회룡마을 입구

능선에 올라 바라보는 고향산하

일출은 없어도 정초에 보니 더욱 새롭습니다 


 



 * 병풍의 설경

 

 

     뿔바위가 보이는 병풍능선에 푸르름...  (http://cafe.daum.net/CS11/9bMi/2398) 2013.07.14.


 

양천리 입구, 나주 IC를 막 나와 좌회 하여 본교 진입하던 길(장등)에서
바라본 금성산
나주의 영산이... (http://cafe.daum.net/CS11/9bMi/2397) 2013.07.14


  "금성산" 이 끝나고 서울 향해 가는데 ,..

  아쉬움 뒤로 하고 무등산과 일별 하며. 서울을 향해..


 

   ☆. 또 하나의 병풍산과 고향야경 11.07.11 (http://cafe.daum.net/CS11/9bMi/2100)

무안간 도로가 보이는 신동 내기마을  

회룡마을 뒤로 송정리방면의 불빛


○시월의 고향산 일출과 야경 2013.10.14(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448

* 멀리 송정리와 광주의 불빛이고 우측으로 무안함평간 고속도로 불빛 (2013년)

  * 왼편은 무등산 마루금 (2013)

 

  * 아침 6시30분경 동편산 마루금에 고개를 내미는 태양 (2013)

 

   * 새벽6시경 이별재에서 뿔바위를 (2013)

 

   * 뿔바위 정상 (2013)

 

 

# 햇억새..9월의 담양병풍산 2013.09.09 (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2429

9월의 하늘이 열리고..

담양 병풍산.삼인산 마루금도 맑아 보입니다.

용전다리에서 본 담양 병풍산

담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북풍을 막아주고 있기에 병풍산입니다.

 

병풍산 정상(깃대봉)에서 본 삼인산

멀리 운해에 쌓인 무등산도 한눈에 들어 옵니다

 

정상에서 본 불태산 방향

머지않아 저곳에도 붉게 물이 들겠지요



 

오늘은 내가 고향을 보여줄께..짠~(고향이야기 세번째) [26] 
이정숙21  06.07.01  http://cafe.daum.net/CS11/1eCy/407 

 

집중탐구 - 전라남도 바윗길 2005.11.28

 ★유월..고향의 밤불빛 따라서~ 07.06.03   김상문  http://cafe.daum.net/CS11/9bMi/1053
http://borihouse.new21.net/zboard4/data/borigrium/602kh01hd2s64.jpg
*진등..학동위 덕림과 복굴의 갈림길
*복굴마을입구 신동보건지소의 가로등
*복굴에서 본 내기마을과 병풍산 절재배경
*회룡다리방향에서 본 회룡마을
*마을앞 보리밭삼거리에서 본 회룡마을1
*마을앞 보리밭삼거리에서 본 회룡마을2
*봉학마을과 병풍산 절재

 ★송년특집/고향사랑 새벽야경2(복굴∼내기∼덕림)05.12.15
http://borihouse.new21.net/zboard4/data/borigrium/2khyk1pdsujis66.jpg
*평동저수지(명화리) 뚝방길

*골뫼삼거리..좌로가면 학동,복굴,덕림  우로가면 삼도방향
..옛적 합승버스가 이곳까지 운행되어 많은 이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던 곳

*2005 내기마을 방향(신동) (옛날 마을앞엔 삼형제다리가 있었는데..)

☆○고향야경(夜景) 05.03.09 *삼형제다리의 전설을 안은 내기마을
*구정봉에 올라 월출을 품에 안다..천황봉까지 1.5km 
(http://cafe.daum.net/CS11/9bMi/2403) 2013.07.23



cafe.naver.com/hanback/185 한백오름산악동호회 -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도남초교 앞에서 관 음사 방향으로 10분쯤 걸으면 관음사와 석문암장으로 나뉘는 갈 림길이다. 여기서 오른쪽 길의 저수지 제방길을 지나면 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석문산으로 오르는 길을 10분쯤 따르면...
 
광산구 삼도동 촌명유래 https://blog.naver.com/jjpal0852/221352079831


 광산구 신동 내기마을 소개 cafe.daum.net/sdsms/2R8A/12  출처: 석문산  2002.12.18.  
마을형성 당시 한학자였던 최재형공(崔在衡公)이 촌명을 「내기(內基)로 지어 불렀다가 후에 내기(內己)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내기마을의 형성과 변천
17세기말의(1690년) 숙종말기때 평산신씨 신종식공(申鍾植公)이
이웃마을 복동에 거주할 당시 이곳에서 밤마다 북소리가 들리고 뒷산의 해오라기가 밤을 새워 울어대자,
그것을 진기하게 여겨 자손을 이끌고 이곳에 이주 정착하였다.

 인구 및 성씨 분포
남자 34명 여자 38명으로 총 46명이며 평산신씨 5호, 전주이씨 4호, 김해김씨 2호, 기타 10호 총 21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산업경제 : 주업은 경종농업이며 수박, 고추, 채소, 과일 재배등으로 소득을 올린다.  

 자생조직 : 1976년에 조직된 위친계가 있다.  

 문화유적 : 마을뒷산에 고인돌 형태를 갖춘 고인돌바위가 있다. 
 



 회룡마을 촌명의 유래 
마을뒷산이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형국으로 「회촌」또는「월산」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마을서쪽에
"검바위"라 일컫는 기암이 서있고 앞에는 검바위들이 펼쳐있어 용이 다시 돌아온다하여 "회룡(回龍)"
이라 칭하였다.
 
 회룡마을의 형성과 변천
1700년대말 나주군 다시면에 살던 흥성장씨 장경수공(張京洙公)이 이곳의 지형이 '회룡 고조'의 좋은
형국이라하여 이주정착하였으며 송음 장현규공(張賢奎公)의 송음정(松陰亭) 을 나주에서 이마을
뒤편으로 이축했다.  
 인구 및 성씨 분포
총 178명중 남자 80명, 여자 98명이며 성씨별로는 흥성장씨 32호, 함평이씨 9호, 김해김씨 10호,
기타 5호가 거주한다. 
 산업경제 : 주업은 경종농업이며 수박, 담배, (딸기) 시설원예재배등으로 높은 소득을 올린다. 
 자생조직  : 상부계 및 부녀회가 조직되어 있다 
 문화유적
마을 뒤 야산에 학자 장현규공이 소축장수(所築藏修)한 송음정과 장동진공, 덕암 장동택공의 공적비가
마을 뒤 군막사 앞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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