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하청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수십 년을 묵묵히 일하다 사내 하청으로 쫓겨나고, 그마저도 구조 조정되어 일자리를 빼앗기고,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가 해고되고, 삼성SDI가 900억 원 흑자를 기록한 그 다음해 한두 달 어렵다고 폐업된 하청업체에서 또한 쫓겨난 노동자들입니다.’
지난 5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 계열사 등에서 일하다가 정리해고 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로 결성된 ‘삼성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공동투쟁’단이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삼성생명 해고자들과 삼성SDI 하이비트 해고자들, 삼성코레노 민주노조추진위원회, 삼성에버랜드공연단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이 참여했으며 다산인권센터와 이주노조 등도 자리에 함께 했다.
이들은 삼성 측의 노동자 탄압에 대해 고발하면서, 삼성 측에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경고했다.
해고노동자들,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
금속노조 울산지부 삼성SDI 하이비트 최세진 대표는 삼성이 내건 ‘가족 경영’과 ‘도덕 경영’에 빗대어 “삼성의 가족 경영은 가족을 성추행하고 해고하는 것인가?”, “삼성의 도덕 경영은 미행하고 협박하는 것인가?”라며 삼성이 해고노동자들에게 보여 온 비윤리적 행태를 꼬집었다.
지난 3월 말, 삼성SDI(울산사업장)가 휴대폰 액정을 만드는 사내 하청기업인 하이비트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업체는 폐업됐다.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하이비트 노동자들은 “우리는 일하고 싶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삼성 측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세진씨는 ‘지난 달 6일 밤 11시 58분경 울주 경찰서에서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 3층 정보1과 문 앞에서 대기하던 중, 삼성SDI 노무팀의 건장한 5명의 남자가 여성노동자들의 팔을 잡아끌고 두 손으로 가슴 정면을 밀치고, 뒤에서 옆구리와 허리를 잡아채는가 하면 어깨와 겨드랑이 사이로 가슴을 밀기도 했다.’고 고발했다.
‘노무팀 중 한 사람은 술에 만취가 되어 있었고 그 사람은 폭언, 욕설을 하며 뒤에서 여성들을 안기도 했다. 이 과정을 찍은 디카를 빼앗으려고 삼성 직원이 여성들의 가슴 쪽으로 손을 넣기도 했다. 팔꿈치로 목과 얼굴도 내려쳐서 얼굴에 상처도 나고 팔에 멍이 들기도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
하이비트 노동자들이 집회신고를 하려고 경찰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삼성 측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성희롱, 성추행까지 자행했다는 주장이다.
삼성SDI는 올 들어 ‘교통안전 기초질서 및 사내 청결’을 이유로 65차례 이상 정문 앞 집회신고를 내는 등 해고자들의 집회를 조직적으로 봉쇄해 왔다.
최 대표는 “이러한 상황이 울주 경찰서 안에서 벌어졌음에도 경찰관들은 구경만 할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왜 보고만 있느냐고 경찰에게 항의하자 ‘자기 업무가 아니다’라며 수수방관했을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의 폭력에 대해 고소하려 하는데 경찰 측은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곳에 가보라 저곳에 가보라는 식으로 1시간여를 기다리게” 했고, “고소장 양식도 지금 없다면서 A4용지를 준 게 다였고, 작성 양식도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적으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삼성SDI 하이비트 해고자들은 현재 삼성 노무팀 직원을 성추행과 폭행으로, 울주 경찰서 경찰관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조치한 상태다.
“삼성 본관 앞이 청와대 앞보다 집회신고 어려워”
공동투쟁단은 “삼성 본관 앞은 성역이라는 통념이 있다”며 “집회 신고하기가 청와대 앞보다 힘들다”고 비판했다. 삼성 측이 집회 훼방을 위한 ‘유령 집회’ 신고를 내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공동투쟁단은 삼성 본관 앞 집회를 위해 수차례 집회신고를 했지만, 관할경찰서인 남대문서는 “삼성생명 인사 지원실에서 제출한 민원과 시간 장소가 경합하여 상호방해와 충돌 우려가 있기에 정상적인 처리가 어려워 반려한다.”며 집회를 계속 금지해왔다.
남대문서는 집시법 상 집회신고 과정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것을 이유로, 새벽 0시 기준으로 회전문을 먼저 밀고 들어오거나 소파에 먼저 앉아있는 사람에게 집회신고의 우선권을 주어 왔다. 그런데 다툼이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신고 자격을 주지 않는다며, 삼성 측과 노동자들의 집회를 모두 반려하는 방식으로 삼성본관 앞에서는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지난 달 25일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와 동 조합 한국합섬 HK지회는 삼성의 반민주주의적 폭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남대문경찰서장을 피청구인으로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 제11조 평등권, 제21조 집회결사의 자유 침해 사실을 확인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공동투쟁 참가자들은 “삼성 무노조 경영의 파렴치한 인권유린과 노동탄압으로 삼성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헌법상 노동 3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의 입을 틀어막는 무노조가 어째서 자랑일 수 있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