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묶인 비정규직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회원과 홈에버 월드컵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이랜드 본사앞에서 이랜드 비정규직을 위한 예배를 열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 예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회사 직원들이 출입문에 천을 내걸어 회사쪽을 볼 수 없도록 가리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동자들을 80만원에 고용해서 부려먹다가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자 해고시킨 것은 기독교 정신이 아니다."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10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이랜드 그룹 본사 앞. 한국 기독청년학생 연합회(한기연) 소속 학생들은 "주님의 가르침이 박성수 이랜드 사장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며 기도문을 낭독했다.

이날 이랜드 본사 앞에서는 '이랜드 비정규직을 위한 예배'라는 이름의 기도회가 열렸다.
한기연 소속 학생 20여명이 마련한 이날 기도회에는 이랜드 노동자 1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일하고 싶다"는 말에 눈물을 훔쳤고, 학생들 역시 말을 잇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십자가에 못박혀


▲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온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기도회는 처음부터 삐걱댔다.
이랜드 노동자 10여명이 "이랜드 본사에서 예배를 하고 싶다"며 들여보내줄 것은 요청했다.
하지만 이랜드 관계자는 "안 된다"며 가로막았다.

현우(24) 한기연 연대사업국장은 "예배·종교집회는 어디서나 할 수 있다"며 "기독교 정신으로 경영하는 이랜드에서는 왜 못하게 하느냐"고 외쳤다.
이에 대해 강상백 이랜드그룹 대외협력실장은 "(노사가 교섭하는)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며 끝내 문 열기를 거부했다.

이날 기도회에서 한기연 소속 학생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비정규직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분한 이희원(22)씨가 '해고' '야간수당 포함 월 80만원' '설 추석 연휴 무조건 근무' 등의 표어를 몸에 붙인 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은 "일하고 싶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였다.

- 한기연은 어떤 곳인가?
"한기연은 서울대·경희대·이화여대·숙명여대·서울여대·고려대 등 6개 학교의 기독교 동아리 연합회다. 회원은 총 50명이고, 오늘은 20명 정도 왔다.

한기연은 공동체의 마음과 세상과의 만남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2005년 하이텍 노동자들과 연대했고, 작년엔 평택에 다녀왔다.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는 기독교 동아리로는 우리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 '이랜드 사태'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홈에버·뉴코아 노동자들의 모습이 뉴스에 많이 나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6월말 수련회가 끝난 후, 7월부터 홈에버 월드컵몰점에 이틀에 한번씩 나갔다.
그곳에서 노래 부르고 발언을 한다.
한번씩 목사님도 섭외해서 기도도 드린다.
저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힘든 사람들 함께 하려 하고 있다."

-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이라 더욱 관심이 갔을 텐데.
"기독교 정신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랜드는)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한다면서 노동자들을 80만원에 고용해서 부려먹다가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자 해고시켰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이라 할 수 있나?
그런 것들에 항의하고 싶다."

- 기도회에서 발언 도중 눈물을 흘렸는데.
"지난 일요일(8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주재로 기독교인 10만 명이 모여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열었다.
불꽃이 쏘아올려졌다.
하지만 경기장 아래에서는 홈에버 월드컵몰점 노동자들이 경찰에 둘러 쌓여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랜드의 비정규직 해고는) 기독교 전반의 문제다.
기독교 정신을 가졌다면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1000만명이라고 하는데, 이랜드 노동자와 함께하는 사람이 저희밖에 없는 것 같다.
너무 죄송하다."

"박성수 사장, 노동자들과 같이 천당 가기를"

- 오늘 기도회는 어떤 마음으로 열었나?
"박성수 이랜드 사장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같이 화해하고, 대화하자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수단이나 규탄대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스스로 회개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노동자들과 같이 천당 갔으면 좋겠다."

- 기독교인이기 전에 학생이다. 요즘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우리가 저 분(이랜드 노동자)들처럼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데, 아직은 학생이다 보니 거리가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매장 바닥에서 열흘째 있는 농성하는 분들은 모두 어머니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가슴 아파할 것이다.
실제로도 어머니가 비정규직인 가족이 많이 있다."

-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고용의 형태가 점점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을 용역으로, 용역을 일용직으로 이동되고 있다.
사람이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자본이 쓰는 일회용품처럼 되는 것 같다.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람이 일회용품이 되는 시대가 더 빨리 온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노동자분들을 위로해드리는 것 밖에 없다.
그분들은 현재 많이 위축되고 경직돼있다.
싸움이 길어지고 열흘 동안 매장에서 지내다보니 그렇다.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 것들을 상담해주고 마음에 맺힌 한, 슬픔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적은 수이기 때문에, 세상이 실질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분들에게 같이 했던 시간들이 옳지 않은 것에 저항하고 일하는 권리를 위해서 싸웠던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 때 이랜드 노동자들의 옷에도 '해고' 딱지가 붙여졌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에서 물기를 닦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되뇌었다.

한기연 소속 학생들도 눈물을 보였다.
특히 사회를 맡은 박보름(21) 한기연 연합회장은 이랜드 노동자들의 눈물에, 기독교(기업)에 대한 야속함에 몇 번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 박보름 한기연 연합회장.  

ⓒ2007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독교 동아리 학생들이 차가운 길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박보름 연합회장은 "기독교가 소외된 사람을 되돌아봐야 하는데, 자기의 부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의 말에서 젊은 '기독교 학생'들이 '기독교 기업 이랜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담은 학생들의 연극을 지켜보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회원과 홈에버 월드컵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쪽으로 편지글이 담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권우성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