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서 사라져가는 것
     
논과 밭, 마을공동체, 그리고 사람들

유가현 기자
2007-11-08 22:52:12

<필자 유가현님은 평택에 살고 있으며, 현재 다른 주민들과 평택지역의 환경, 인권,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평택은 노을의 고장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동요 ‘노을’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작곡가 안호철 선생님은 나에게 처음 노래를 가르쳐 주신 은사님이기도 하다. 이렇게 동요는 오래도록 사람들 마음에 있을지라도 저 노을 물드는 들판은, 가을 언덕은 사라질 것 같다.

2005년 건교부는 대추리 주민들의 고뇌 어린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택시 서정동, 모곡동, 지제동, 장당동, 고덕면 일대 528만평(1천746만1천㎡) 규모의 국제화계획지구에 대한 개발 방침을 확정했다. 또 2006년 6월 행정자치부는 미군기지 확장에 따른 정부의 특별지원비 18조8천억 원으로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른 연차별 투자계획을 확정하여 이른바 ‘평택 수퍼 플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2년 전부터 친환경 농업 시범지구, 농악마을.농촌체험관 건립, 레저 시설 확충 건립 등을 통한 평택호 관광지 개발지구, 골프장.공원 건설 등 미군기지 주변 활성화, 교육연구단지, 도시첨단산업단지 등으로 평택시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앞으로 미군 확장부지뿐 아니라 평택시 전역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미군 확장부지 349만평에 앞으로 결정될 개발사업 면적까지 합쳐 3천만 평이 ‘개발’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표어 앞에 서있다.

평택시 전체 면적 452㎢(서울의 약 4분의3)의 22%에 해당하는 땅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감탄처럼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앞으로 불과 5년 안에 추진된다. 덕분에 개발기대심리에 기대어 평택의 집값,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현재 사업지구 주변이 토지거래 허가구역, 주택.토지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개발행위 및 건축허가 제한지역으로 설정된 탓에 투기 단속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열기를 식힐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미 지난 해 민간단체(평택발전전략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서도 등 떠밀려 삶의 터전에서 떠난 후 농사지을 땅을 사지 못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이주민들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미 평택의 가제동, 장안동 일대의 토지수용이 마무리 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떠나게 될까?

“뭐가 좋겠어. 정든 땅 대대로 살던 땅인데. 하지만 시위 해봤자 뭐 되겠어? 나라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되잖어. 그러니까 다만 돈이라도 많이 줘서 어디 가도 살 수나 있게 해달라는 거지. 어디 다 땅을 또 얻어서 농사져야지. 시내로 나가면 집도 못 사지만, 뭐 하고 살어?”

집성촌을 이루며 사는 마을의 한 60대 여성의 말이다. 개발이 된다고 ‘땅값 오르겠지. 돈 좀 벌겠구나’ 하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장사가 잘 되려나 하고 기대하는 주민도 많다.

이제는 사라진 마을, ‘대추리’의 사람들 중에도 보상금 챙겨서 떠난 이, 부자가 된 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네 농촌이 어디 땅 많이 가진 사람만 있나. 남의 땅 부치는 고령인구가 많다. 그런 분들은 보상금으로 새집 얻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대추리에 끝까지 남아 있던 분들은 보상금 때문에 남으셨던 것이 아니다. 그 분들의 자식들은 제발 이제 그만하라고 노인들에게 하소연을 하였더랬다. 그 분들의 눈물 어린 땅을 도대체 누가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 2월 13일, 기나긴 4년 동안의 싸움을 닫으면서 대추리 주민들이 국방부에 요구한 것 중의 하나도 대추리 공동체를 보존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송화리 빌라촌에 모여 살면서 함께 끼니를 잇고, 가끔 들어오는 공공근로 일당을 받기 위해 벽보를 떼거나 쓰레기를 주우러 나가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개발’인가 되묻게 된다.

농사꾼이 허리 굽혀 일하고 아이들이 뛰놀고 개가 짖고 불 피우는 연기가 휘돌던 마을에는 이제 무너진 집터와 파헤쳐진 논, 건설중장비들이 보인다. 가난하지만 서로 함께 웃고 울고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칸칸이 굳게 잠긴 대도시에서 초라한 살림살이를 푼다. 교실이며 운동장, 들길을 황홀하게 물들이던 노을은 이제 으리으리한 건물들에 가리워져 그 누구의 가슴 안에도 들어오지 않게 될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군사도시를 만들면서 평화도시라는 간판을 내거는 것은 기만이다. 우리의 마을을 해체하면서 지역경제 성장을 추구하려는 태도는 미국 군사문화에 종속되는 삶을 가져온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클 것인가. 노을은 빙산의 일각이다.

어둠 속으로 우리의 들녘이 다 사라지기 전에 평화를 위한 불씨가 피워지길 바란다.

ⓒ www.ildaro.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