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친일인명사전은 역사의 심판”

[한겨레신문 조정래칼럼] 미래를 향한 발걸음

 

조정래(작가.동국대 석좌교수)

 

 

부부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부친의 병을 낫게 하는 산삼을 구하려면 아기를 호랑이한테 바쳐야 한다고 산신령님이 말했다. 부부는 괴로웠지만 그 길을 따르기로 했다. “부모님은 한 분씩일 뿐이지만 자식은 얼마든지 또 낳으면 된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 효심에 감복한 산신령님이 아기도 무사하게 지켜주었고, 산삼도 구하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극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끈질기게 반복되고 있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 없이 온갖 고생을 다하며 장성한 아들이 용감무쌍하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나간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충·효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었던 유교국가 조선의 대표적 미담이다. 정치 지배집단들은 지배 이념으로 그런 미담들이 필요했고, 요즘 말로 소설가라 할 수 있는 그 시대 ‘이야기꾼’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배자들과 말쟁이들은 조선 500년에 걸쳐서 그런 이야기들을 줄기차게 주입시키고 반복해대서 마침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최면상태에 빠지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부터 그것은 오로지 따라야 하는 절대가치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거창한 논리 동원할 것도 없이 상식적으로 따져보자. 생자필멸로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고, 어제 핀 꽃은 오늘 지고 오늘 핀 꽃은 내일 지는 것은 어김없는 자연법칙이고 순리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 만큼 다 산 노인을 위하여 아이를 죽여야 하겠는가, 아이를 위하여 노인이 죽어야 하겠는가. 조선 500년 동안에 주입된 효는 이렇듯 억지고 비이성적이다.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아 나가는 이야기도 일방적이고 비논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효를 강조하다 보니 자식은 부모의 잘잘못을 따져볼 것 없이 무조건 원수를 갚는 것이 가장 훌륭한 자식된 도리라는 강압에 떠밀리고, 그 책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입맛이라는 것이 단순히 미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유전인자처럼 영혼의 일부가 되어 버리듯 기나긴 세월에 걸친 말의 대중 최면도 영혼에 아로새겨지는 고질병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날 늙은 부모를 위하여 어린 자식을 호랑이에게 바칠 젊은 내외는 없다. 왜냐하면 현대교육은 그런 비이성을 당연히 배척하고 극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우리 속담이 갈파한 대로 오늘날 젊은 부부들은 종족보존의 본능인 내리사랑에 너무 빠져서 부모 경시가 사회문제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부모의 원수갚기, 무조건 부모 옹호하기는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질병으로 남아 있어서 문제다.


그 살아 있는 증거가 친일파 자식들의 행태다. 그들은 무작정 부모를 감싸려 들고, 무조건 부모의 잘못을 감추려고 든다. 물론 알고 있다. 그들이 전래의 효심에 사로잡혀 그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자기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친일 죄상이 부끄럽고, 그 피해가 자기에게 끼칠까 봐 그러는 면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냉정하게 이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민족에 대해 저지른 범죄에는 그 시효가 없다. 그 원칙에 입각해 역사 진실은 움직이기 때문에 친일 죄상을 개개인들이 덮고 감추려 한다고 덮어지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그 역사의 힘에 따라 내년 8월쯤이면 그동안 꾸준히 준비되어 온 ‘친일파 인명사전’(가칭)이 나온다. 그것은 민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심판이다. 그것은 과거를 정리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결의다. 그 후손들은 이제 이성을 찾아 그 심판 앞에 겸허히 침묵함으로써 미래로 함께 걸어가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3일자 조정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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