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워크 코리아, '이시우 석방' 기원 순례
4일 서울구치소 방문... 15일 판문점에 입석
텍스트만보기    이민선(doule10) 기자   
▲ 6월 15일 판문점에 세워질 스톤워크 코리아 비석.
ⓒ 이민선
국제 반전평화순례단 '2007 스톤워크 코리아'(stone walk korea)가 5일 의왕시를 떠나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4일 오후 6시께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46일째 단식투쟁 중인 사진작가 이시우씨의 석방을 '묵도'로 기원했다.

이씨는 '민통선 평화기행'이란 책을 출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반쪽짜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찍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이씨의 죄명은 국가보안법상 기밀누설죄.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을 촬영해 책으로 출간 했다는게 기밀누설이 됐다. 이씨는 구치소 안에서 "국가 보안법을 안고 죽겠다"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이씨의 안녕을 비는 평화순례단의 묵도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 모두가 수레에 실린 돌에 손을 얹고 기를 모았다. 돌에 손을 얹지 못한 사람은 돌에 손이 닿아있는 주변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묵도했다. 약 40명의 평화순례단은 묵도를 하며 전쟁으로 희생된 피해자를 추모하고 이씨의 안녕을 기원했다.

평화순례단은 저녁 7시부터 안양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숙소인 청계산장에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안양지역 대표들은 환영의 뜻을 전달했고 스톤워크 코리어 참가자들은 "한국 사람들이 욕할 줄 알았는데 친절하게 맞아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태평양 전쟁 사죄, 첫 출발지 한국

▲ 2007 스톤워크 코리아 평화순례단이 안양에 도착해 행진하고 있다.
ⓒ 이민선
▲ 평화순례단의 서울구치소 앞 묵도 장면.
ⓒ 이민선
국제 반전평화순례단 '스톤워크 코리아'는 전쟁 피해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가꾸기 위해 한국, 일본, 미국 평화활동가와 시민들이 모인 순례단이다. 국적을 넘어, 특정 정당, 종교단체에 의지하지 않고 취지에 찬성하면 누구든지 참가 할 수 있다. 전쟁으로 고통당했던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대형 비석을 특별 제작한 손수레에 싣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약 600여Km 순례길에 나선 것이다.

이 운동을 맨 처음 시작 한 것은 미국 평화 단체 'peace abby'(평화를 위한 수도의 집)와 'peaceful tomorrows'(미국 정부가 9·11사태를 구실로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민들을 살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당 할 것을 요청중인 9·11희생자 유족모임)다. 지난 1999년 이들은 여러 나라 시민들이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평화운동을 시작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지에서 많은 시민들이 스톤워크에 참가했다. 그리고 피스아비의 제의에 일본인 1500명이 뜻을 모아 지난해 7월에는 '스톤워크 제팬'이 일본에서 행해졌다.

스톤워크 제팬 행사에는 일본인들과 세계 각지 참가자들이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총 600Km를 길이1.6m, 폭 1m, 중량 1톤가량의 비석을 운반했다. 원폭 희생자들과 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추모한 이 비석은 최종 목적지인 히로시마에 세워졌다.

2007 스톤워크 코리아는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계획됐다. 이들 대부분이 일본인들로 태평양 전쟁으로 고통 받고 숨져간 아시안인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해 첫 출발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여기에 피스아비를 비롯한 미국 참가 그룹도 적극 동참했다.

스스로 일본이름 버린 재일교포 2세

▲ 재일교포 2세 조소환 스님.
ⓒ 이민선
스톤워크 한국 순례단은 미국인 2명, 일본인 14명을 포함해 총 16명이다. 그 중 2명은 재일동포다.

재일동포 2세인 조소환(74)씨는 승려다. 일본 이름은 오래전에 스스로 버렸다. 일본 땅에서 한국 이름만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조씨가 일본이름을 버린 이유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폭거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조씨는 "이 때문에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을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스님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만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조씨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74년 전 어머니 뱃속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처음이다. 어머니의 고향은 경남 밀양. 조씨는 스톤워크 일원으로 한국으로 올 때 어머니 골분을 갖고 왔다. 고향인 밀양에 뿌려주기 위해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가 만나서 결혼한 곳에 절반을 뿌려 줬어요. 나머지는 다시 가지고 가려고 하다가 부산 앞바다에 뿌렸습니다."

감회가 새로운 듯 그는 눈을 반짝였다. 그가 스님이 되기 위해 입적한 것은 18세 되던 해다. 그 후 승려 신분으로 52년 경도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동양사학 연구소에 비상근 강사로 근무했다. 그는 자신의 신상 명세를 작은 종이에 인쇄해서 가지고 다닌다.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아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며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더듬거리며 하는 한국말은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배웠다.

"미국인 2명과 학교 동창생처럼 친해요. 2년 전 나가사키, 히로시마를 함께 걸은 사람이에요."

조 씨는 참가자중 연세 지긋한 미국 여성 2명과 친하다고 말했다. 두 명의 미국인은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이다. 2년 전 일본을 순례한데 이어 이번에는 한국 순례길에 올랐다.

6월15일 판문점에 비석 세울 예정

▲ 안양중앙성당 출발 행사
ⓒ 이민선
5일 오전 9시 30분께 스톤워크 참가자들은 안양중앙성당에 집결했다. 이곳에서 출발식을 했다. 성당에는 안양지역 시민 사회단체 회원들과 성당 신도들을 포함 약 150명이 모였다.

각 단체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묵도가 또 한 번 이어졌다. 비석에 손을 얹고 있는 사람들과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사람들 간에 말없는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묵도가 끝나자 곧바로 출발했다. 순수하게 사람의 힘만으로 수레에 실린 1톤의 비석은 안양시내를 거쳐 서울 쪽으로 행했다. 수레는 스톤워크 참가자들과 안양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끌었다.

지난 4월29일에 부산 민주공원을 출발한 순례단은 김해, 밀양, 창녕, 합천, 평택, 수원을 거쳐 4일 안양에 입성했다. 오는 6월15일에는 판문점에 도착해서 평화로운 남북문제 해결을 기원하며 비석을 세울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장소를 배정받지 못했다.

스톤워크 코리아 순례단은 오는 6월 25일 금강산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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