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7년 12월 21일 18:26:39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죽마루 공원에서 한 중년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영등포 일대에서 3년간 노숙을 해 온 진모씨(41)였다. 진씨의 사인은 저체온증. 진씨가 숨진 날 밤, 눈이 내린데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5도까지 떨어졌다.

‘거리죽음’추모제 서울역광장에서 21일 열린 ‘2007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참가자들이 노숙인 인권과 생활실태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진씨가 노숙인으로 전락한 것은 2004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애가 생겨 취직이 힘들어지자 진씨는 거리로 나왔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마셨던 진씨는 결국 외로운 죽음을 맞고 말았다.

지난 1월에는 남모씨(60)가 서울역 앞에서 잠을 자다 얼어죽었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남씨 시신을 인도하지 않았다. 남씨의 동료 조모씨(54)는 “가족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 규정대로 3개월 후 병원에서 시신을 처분했다”고 전했다.

한 해에 300명의 노숙인이 거리에서 객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1일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에 따르면 노숙인 주민등록번호를 통계청에 조회한 결과 올해만 300여명의 노숙인이 만성질환이나 추위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 및 지방정부의 무관심 속에 노숙인들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숙인의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하 노실사)은 이날 오후 1시쯤 서울역앞에서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를 열고 비참한 노숙인의 현실에 대해 고발했다.

노실사 상임활동가 이동현씨(33)는 “서울시가 거리노숙을 없애기 위해 노숙인 쉼터 입소를 권유하고 거리급식 근절을 추진하고 있다”며 “노숙인의 자활은 뒷전인 채 거리 미관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추진하던 노숙인 쉼터 입소정책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5년간 노숙인 쉼터생활을 했던 박모씨(50)는 “식사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만 해야 하며 먼저 입소한 노숙인의 텃세로 편안히 잠자기도 불편하다”며 “차라리 지하보도에서 자는 것이 편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거리급식 중단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청 자활정책팀 김영기 팀장은 “노숙인도 인권이 있기 때문에 거리급식보다 가급적 실내급식을 권유하고 있다”며 “거리급식이 노숙인들의 길거리 생활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역 앞에서 10년간 무료거리 급식을 한 최성원 목사(60)는 “급식 때마다 300명의 노숙인이 몰리지만 서울시의 지원이 전무하다”며 “전기세·가스세가 3개월치나 밀려 실내 급식 전환은 꿈도 못꾼다”고 서울시의 탁상행정을 비판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노숙인 박모씨(33)는 “노숙인 3명 중 1명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서울시는 뭐 하나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나는 더이상 서울시민이 아닌 것 같다”고 자조했다.

〈심혜리·유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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