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백 주소 : http://www.jinbocorea.org/bbs/tb.php/free/2437

 

백골단이 부활하면, 화명병도,개량한복 입은 오월대,녹두대,시월대,장산곶매,백골단체포전담 사수대등도 부활한다!!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반대급부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용어 2개가 있다. 바로 백골단과 화염병이다.

백골단은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이 들어선 이후 늘어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보다 강력하게 진압할 목적으로 탄생된 사복 경찰을 이르는 말이다. 원래는 경찰 내에 특수기동대와 형사기동대 사복기동대를 만들었는데, 특수기동대는 대테러 진압용 경찰 부대를 말하는 것이고, 형사기동대는 말 그대로 형사 업무를 주 기능을 하는 경찰 조직이다. 그리고 사복기동대는 정복을 입은 전.의경과는 별도로 조직된 시위 진압 경찰 부대다.

이 사복기동대가 이른 바 백골단이다. 백골단은 각종 무술 공인 2단 이상의 유단자로 구성됐으며 전.의경 중 시위진압의 경험이 있는 이들을 채용한다. 하지만 실제 당시 백골단은 체육대학에서 유도나 태권도 등을 전공한, 공인 3~4단 이상의 유단자들을 주로 채용했다. 또 해병대나 공수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군필자들도 특채한 경우가 많았다.

백골단이 80년대 시위현장에서 공포의 대명사로 불린 것은 이렇듯 그들의 출신이나 특기에서 기인한다. 또 일반 시위 진압 전.의경이 주로 방어적 시위진압 위주로 한 반면 백골단은 무거운 장비를 몸에서 데어낸 기동성을 생명으로 하면서 공격적인 시위 진압은 물론 시위대 깊숙이까지 밀고 들어가 시위 주동자 또는 지도부에 대한 폭력적인 체포를 주 임무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공포감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백골단을 백골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시위대에서다. 원 명칭인 사복기동대의 복장 때문이었다. 백골단이 처음 시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까지만 해도 시위대는 그들이 경찰인지 몰랐다. 하얀색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경찰복이나 군복이 아닌 청바지에 청자켓를 입고 있는 그들은, 요즘으로 치면 마치 오토바이 퀵서비스 종사자 같은 복장이었다. 다만 그들의 손엔 다부진 쇠파이프 같은 무기가 들려있었고, 군화가 아닌 하얀색 운동화를 신어서 오히려 시위대 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이면서 목표물을 정확히 가격한 후 체포하는 민첩성을 자랑했었다.

그래서 이후 시위현장에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백골단의 존재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백골단이 나타나는 즉시 시위대는 일대 혼란을 빚었고, 특히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부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상태라면 즉시 시위현장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또 백골단이 등장하고 나면 반드시 도로 위에 선혈이 낭자하기도 했고, 사방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가 하면 백골단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연약한 시위대의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던 백골단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도 시위대와 마찬가지의 폭력을 휘둘렀고, 1988년 이후 한겨레신문의 사진 기자들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하얀색 헬멧을 착용하기까지 했다.

웃지 못할 일은 김영삼 정권 때는 이른 바 ‘짝퉁 백골단’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백골단의 존재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너무 폭력적인 이미지 때문인데, 그래서 문민정부 때 백골단의 해체가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 수뇌부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절대 불가”를 외쳤다. 백골단을 해체할 경우 시위를 효과적으로 진압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백골단의 규모를 축소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경찰에서는 실제 백골단의 숫자를 줄이는 대신, 백골단이 아닌 전.의경에게 백골단의 복장을 하게 해 시위 현장에 투입했던 것이다. 이미 백골단의 공포에 대해서 잘 아는 시위대는 백골단 복장을 한 일반 전.의경만 봐도 흩어지는 일종의 ‘파블로프의 개’가 돼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위현장의 맹위를 떨치던 백골단은 1996년 이른바 ‘연대 사태’ 이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하긴 군사 독재 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문민정부가 끝나고 DJ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는 백골단이 존재할 수도 없었겠지만.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반민주 철권통치의 또 다른 상징물이 백골단이었다면, 민주화투쟁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것은 바로 화염병이다. 유리병에 시너 등을 넣고 천으로 심지를 삼아 불을 붙여 공격하던 무기인 화염병은 원래 세계2차 대전 때 맹위를 떨치던 독일을 전차를 공격하던 무기였다. 그러던 것이 전세계 시위현장에서 무기를 지니지 못한 시위대가 경찰에 대항하는 무기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물론 화염병은 비폭력 시위에서는 철저히 금지되던 물건이지만 군사독재의 폭력적인 폭압에 대해 민중들이 들 수 있었던 유일한 자기 방어 수단이기도 했다. 시위의 양상이 과격했던 때 대학의 학생 지도부는 하루에서 수백 개의 화염병을 만드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또 화염병 공격에 의해 경찰이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던지기도 전에 시너가 흘러넘쳐 제 손에 화상을 입는 시위대도 있었고, 채 깨지지 않은 화염병을 경찰이 되던져 시위대가 상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경찰이야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에 대비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무방비였기 때문이다. 또 화염병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학생회 사무실에 불이 나는 일도 간혹 일어나곤 했다.

재밌는 것 하나는 화염병의 재료가 나라마다 조금 씩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염병엔 주로 소주병이 이용됐다. 가장 구하기 쉬운 병인데다가 병이 얇아서 효과적으로 깨지기 때문이다. 병이 부족해서 혹이라도 콜라병으로 화염병을 만들면 던졌을 때 안깨지고 구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언젠가 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드리머’에서 프랑스 파리의 68세대 대학생들은 와인병을 화염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이 소주의 나라라면 프랑스는 와인의 나라, 자연히 화염병의 재료도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을 쓴다는 평범한 이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칫 화염병에 대한 이야기를 추억에 젖어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21세기 대한민국 경찰이 백골단을 부활하겠다는 업무보고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것이다. 폭력시위 발생율이 0.54%(2007년 기준)에 불과한, 세계에서도 폭력 시위 발생 빈도수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 왜 갑자기 백골단이 부활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다.

참여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어청수 경찰청장은 무슨 생각으로 80년대 반민주화의 악몽인 백골단을 만들려고 하는지. 자칫 0.54%인 폭력 시위 발생율을 ‘혁명적’으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백골단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시위엔 반드시 화염병이 동반됐다. 민주적이고 정당한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려는 행위에 대한 방어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2008년 새 정부의 경찰이 백골단을 되살리는 판에 자신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헌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시위대도 화염병으로 무장을 해야만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80년대 함께 대학을 다니며 몇 날 몇 일을 화염병 제작에 밤을 보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대학생들, 화염병 제조법도 모를 거 아냐? 이거 우리가 제조법 강의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

이제는 화염병도 백골단도 지난 추억의 이야깃거리로만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