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공공.운수.건설노동자 투쟁결의대회 결의문 낭독

 2월 28일 오후 2시경 서울시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건설노동자 조합원들이 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를 앞두고, 사전 '공공.운수.건설노동자 투쟁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렇듯 전국노동자대회에 앞서 (오후 2시부터) 같은 시각에, 공공운수연맹과 건설연맹은 여의도 문화마당 본무대에서, 금속노조는 전경련 회관 앞에서, 사무금융연맹은 금융감독원 앞에서, 언론노조는 여의도역에서, 시설연맹은 산업은행 앞에서, 일반노조협의회는 문화마당 인근에서 각각 연맹별 사전대회를 개최했다.

 


  투쟁사 - 인천건설전기분과, 건설산업연맹, 화물연대, 공공운수연맹 등 

 


 △ 공연 - 해고 철회 투쟁중인 '공공노조 국립오페라단지부'

 

 △ 28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등 3만 여명이 모여 ‘용산참사 살인정권 규탄! MB악법 저지! 경제파탄 책임전가! 이명박 정권 심판! 전국노동자대회’가 개최됐다. 

 

 △ 대회사 및 결의문 낭독- (좌)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임성규 위원장,

 

  △ 대회사 중 - 용산참사 유가족들


 


 △ 늦은오후 5시경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각 연맹별로 거리시위에 나섰다.

시민사회단체 및 촛불시민들은 대부분 지하철로 이동해 서울도심 거리시위를 이었다.

 △ 한편 여의도 교가에서는 서울 도심으로 이동하려던 각 단체차량을 막아서기도 했다.

 운수노조 화물연대와 건설연맹 소속 조합원 1만여 명은, 국회 앞을 향해 행진하려다 원천봉쇄로 우회하여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근처로 향했으나, 앞서온 경찰들에 의해 행진이 저지됐다.

 

 △ 국회방향으로 간 조합원들은 저녁 6시 넘게 국민일보 빌딩 근처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무리한 진입은 자제하고 대부분 해산하여 서울도심 거리시위 장소로 향했다.
일부는 봉쇄를 뚤고 국민은행 앞까지 진출했으나 앞서온 경찰들에 의해 저지됐다. 이렇듯 국회 진출 과정에서 상호 마찰을 빚기도 해 연행자와 부상자가 일부 발생했다.

 

  △ 봉쇄중인 서울도심 광화문과 청계천광장

 

 △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는 총파업중인 전국언론노조에서 늦은 오후부터 내내 총파업 결의대회 및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




 △ 저녁 7시경 명동(을지로입구) 현장

금속노조 조합원 및 촛불시민 1만여 명은 지하철 신길역과 서울역, 태평로, 광화문, 시청, 명동 순으로 이동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역에서 청계광장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막아서자 남대문 방향에서 다시 명동 -> 명동성당으로 이동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 뒤에 여의도역에서 출발한 일반시민과 다수 네티즌이 합류해 거대한 대오를 형성했다.  

 

  

 △ 가두시위 인원수 만큼이나 시위 저지에 투입된 경찰들은 행진 10여분 쯤에 도로를 각각 차단하고 진압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태평로, 명동, 종로 일대에서 20여 명이 경찰에 연행돼거나 상호 부상자도 발생됐다.

 

 △ 명동 일대의 진압작전으로 저녁 7시 40분경 시위대 대부분이 인도로 밀려났다.

 

 

  △ 저녁 9시경 종로2~3가 일대

 

 

△ 밤 10시경 종로1가 일대

 

 △ 종로 일대에는 경찰에 의해 행진이 저지된 촛불시민이 횡단보도를 이용해 시위를 이었다.

 

 

 △ 밤 10시 30분경 종로 일대에서 가투를 벌인 참가자 대부분은 이날 일정을 마치고 귀가를 했다.

일부는 남영동->용산이나 서울역으로 이동해 이날 마무리 투쟁을 이었다.

 

 

 

 

2.21 오후 4시에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용산참사 5차 범국민추모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시경의 청계 인근까지 원천봉쇄로 인해 예정된 본대회는 무산됐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는 장소를 이동해 pm 4시 30분경 인근 시청 6번출구(서울플라자호텔 앞) 인도에 모이기 시작하여,

유가족과 함께 청화대 방향으로 행진하려 하였으나, 청화대 방향 주위 봉쇄 및 방패를 들고 따라오는 경찰들에 의해 저지됐다.

이 과정에서 상호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영전이 파손되거나 경찰과 유족이 다치는 등 했다.

행진이 무산되자 참가자들은 인근의 동화면세점 앞과 덕수궁 대한문 앞 및 서울시청광장 한켠에서 수백여 명씩 약식으로 5차 추모대회를 치르며, '용산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후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서울 도심으로 흩어져, 남대문 (구)한국은행 앞-> 명동성당,  종로2~3가, 충무로 대한극장 앞-> 동대문운동장 등 산발적인 시위를 이어갔다.

이날 종로에서는 일시적으로 도로를 점거하는 등, 게릴라식 기습 시위를 하면서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9명이 연행됐으며, 밤 10시 35분경 자진 해산했다.

 

범국민대책위는 '평화적인 추모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탄압'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신고를 불허한 체 '승인되지 않은 집회는 불법이요 원천 봉쇄는 합법적'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1 #  경제파탄 국정실패 이명박정권심판 내각 총사퇴 촉구대회
(2008년 11월 15일 오후 3시 / 서울역에서)

▷ 경제파탄의 책임자인 강만수 경제팀을 비롯한 내각 총사퇴  거국민생내각 구성 촉구

http://www.jinbocorea.org/data/file/hq/598949865_7a829cbb_1115-1.jpg

 

 

 



2 #   촛불 탄압중단과 수배해제, 양심수 석방촉구 등 민주수호- 종로경찰서 앞 항의방문


 

 

 

 

 3 # 오후 6시경 청계광장 거리에서 촛불시민들 침묵시위 진행- 경찰의 해산작전으로 을지로로 이동

 

 


4 #  저녁 8시경 명동거리에서 300여명 촛불시민들 골목가투 진행

 
50여명의 사복형사들 명동거리에 투입

 
명동역 근처에서 해산작전으로 한바탕 소동 - 이날 명동 가투에서 10여명의 촛불시민 연행

촛불시민들 밤늦은 시간, 홍대근처로 이동해 밤새 촛불시위 이어..

 

 


 

 △ 8월 9일 저녁, 통행제한이 이루어진 보신각 촛불집회 입구 근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가 시작된지 100일째를 맞은 9일 도심 곳곳에서 집회가 잇따라 열리는 가운데, 이날도 어김없이 집회가 열리는 주위의 산엄한 통제가 있었다.
경찰은 통행제한을 하며, 가두시위를 적극 저지해 이날 가두시위는 뜸했다.

 


△ 8월 9일(토) 5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통일청년학생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국민이 주인이다, 자주독립의 촛불을 들자 문화제가 열렸다.
이에 앞서 서울통일연대 소속 `미군없는 아름다운 서울대행진' 팀은, 이날 낮 12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자전거 행진' 발대식을 갔고, 자전거를 이용한 거리행진(기념관~명동~인사동~조계사~청계광장~보신각)을 벌였다.

 

 이날 소나기가 내린 가운데 민예총 회원이 율동을 하고 있다.

 △ 연이은 통일청년학생들의 몸짓공연

 △ 서울지역자주통일선봉대들이 6시경 마무리 공연을 하고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저녁 7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1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공안탄압 저지! 이명박 심판!'이라는 주제로 94차 `집중'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공안탄압 규탄! 방송장악 저지! 이명박 정권 심판!' 등을 외치며, 오는 15일로 예정된 `100차 촛불집회'를 집중 홍보해 대거 참석키로 하였다.

 

 

 
촛불문화제가 끝난 뒤 대부분 참가자들은 귀가를 했고, 일부 참가자들은 소규모로 인도를 따라 종로2가를 거쳐, 밤 9시경 명동성당 일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밤새 대치했다.


 

 

 

 

 

 

 

 

 

 

 

 

 

 

 

  

 

 

 


 

 

 

 

 

 

 

 

 

 


 

 △ 8월 2일 6시 30분경 종로1가 근처에서 신설된 경찰특공대가 완전복장을 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가 폭력 시위를 할 경우 경찰특공대를 함께 투입해 검거작전을 펴고,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사용하겠다고 밝혔었으나 시위대와 큰 충돌은 없었다.


 △  청계광장에 일찍부터 나온 촛불 어린이들

 △ 8월 2일 저녁 7시 30분경 경찰은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청계광장 입구쪽을 완전 봉쇄하였다. 이는 당초 7시전 입구 봉쇄와 달리 촛불시민을 약간 배려한 차원이었으나, 이날 늦게 온 촛불시민들이 많았다.

 △ 경찰은 그래도 좀 배려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듯, 늦게온 촛불시민을 못들어오게 막고 차벽쪽에 있는 촛불시민을 밀쳐내었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다.)

 8월 2일 저녁 7시경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87차 “부시반대! 집중촛불문화제” 모습

 

 △ 저녁 8시경 촛불시민은 행진을 골목.인도를 향해 하려 했으나 경찰이 차벽을 터주지 않아
비가 오는 가운데 계천(천계천변)을 따라 행진했다.

 

  △ 청계3가 근처

 △ 청계3가 근처에서 경찰이 종로 방향을 막고 있는 상황

  △ 촛불행진단은 명동역을 향해 행진했다.

 

 △ 밤 9시경 명동역에 도착한 1만여명의 촛불시민들

  △ 밤 9시 20~30분경, 촛불단이 상호 의견이 잘 나오지 않아 행진의 방향도 못잡고 우왕좌왕 하고 있을때, 경찰특공대를 포함한 전경들이 시위대 해산을 시작했다.

 

 △ 우르르 몰려온 전경에 의해 해산되고 있는 촛불시민들

  △ 기습 해산작전으로 시민들과 기자(한겨레사)까지 연행됐다.
기자들이 연행차량에 몰려와 좌초지경을 알려고 취재왔으나 사유 확인은 불가능 했다.
연행된 기자는 풀어준다고 했으나 그냥 출발해 버렸고 한참후(3일?) 풀어줬다고 한다.
연행당한 한겨레기자의 말에 의하면 "여러차례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특공대 및 경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내 자신의 목을 잡고 막무가내로 호송버스로 끌고갔다"고 한다.

 

 △ 밤 10시 20분경 촛불단은 명동성당을 향해 행진하여,
10시 30분견 명동성당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 이어 자정을 넘은 8월 3일 새벽, 촛불단은 여전히 인도까지 부분 봉쇄된 보신각 앞에
도착해 이곳에서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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