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원짜리 유기농 점심 식사를 할수 있는 '문턱 없는 밥집'.
ⓒ 송성영
일반 농산물보다 상대적으로 값 비싼 유기농산물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진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재배하지 않고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게 또한 유기농산물이다.

20년 전, 한국의 유기농이 농산물 직거래 등을 통해 물꼬를 텄을 때 그 근본정신은 농민을 살리고 농약에 찌든 농토를 살리는 데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기농은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 '값비싼 유기농산물'을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 지난 5월 13일 문을 연 '문턱 없는 밥집'(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이 바로 그곳이다.

'문턱 없는 밥집'은 말 그대로 문턱이 없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밥집이다. 밥값은 단돈 천 원, 천 원 이상 내놓아도 상관없다.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형편 닿는 대로 밥값을 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곳

▲ 천연조미료를 사용한 청정한 유기농산물들을 먹을 만큼 가져다가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다.
ⓒ 문턱없는 밥집 제공
주방 배식대 언저리에 놓인 청정한 유기농산물에 천연조미료로 만든, 열무김치, 콩나물, 무생채, 오이채, 상추채 등을 가져다가 먹고 싶은 만큼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농산물 직거래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고자 문을 연 '문턱 없는 밥집'에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과 '변산 공동체'가 있다. 전북 부안에 자리한 '변산 공동체'는 1996년 대학교수직을 접고 농부로 전업한 윤구병 선생과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함께 만든 '생태교육공동체'.

문턱 없는 밥집의 식탁에 오르는 유기농 곡류와 가공식품 나물들은 바로 이곳 '변산 공동체'에서 공급하는 먹을거리들이다.

점심시간은 낮 12시부터 2시까지. '문턱 없는 밥집'의 총괄 책임자인 홍경화씨는 문은 연지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밥집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만, 주변 건물의 경비아저씨들이나 종이박스를 주어 하루하루 생활하시는 분들도 찾아오고,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더러 찾아오십니다, 녹번동에 사시는 50대 중반의 한 아저씨는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문턱 없는 밥집'에서는 절집에서의 발우 공양처럼 고춧가루 하나 남김없이 말끔히 먹어야 한다. 고춧가루 하나라도 남기면 벌금이 만원이다.

밥집 벽면에는 '국이나 숭늉으로 그릇을 헹구어 마시고, 그래도 고춧가루가 묻어 있으면 빵으로 깨끗이 닦아 먹자'는 빈 그릇 만드는 법과 함께 '그릇에 고춧가루 하나도 남기지 않는 까닭'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붙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귀신을 '아귀'라고 합니다.
굶어 죽은 넋들이지요.
죽어서도 구천을 떠도는 이 넋들은
목구멍도, 밥통도 바늘귀처럼 줄어들어서
자그마한 고춧가루 하나만 그릇에 묻어 있어도
목에 걸리고 밥통이 뒤틀려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린다지요.
이 귀신들을 천도하는 길은
음식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데서 열린다고 합니다.
배불리 드시되 귀한 음식 남기지 않아
이 세상 아귀들, 굶주리는 형제들 다 같이 함께 삽시다.


56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4인 좌탁 14개) '문턱 없는 밥집'의 천 원짜리 유기농 식사는 점심때에만 제공되고 있다.

'기분 좋은 가게'도 있다

▲ 4인석 좌탁 14개 56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다.
ⓒ 문턱없는 밥집 제공
천 원짜리 유기농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저녁 식사(저녁 6시∼ 밤 10시까지)는 제값을 받는 유기농 한정식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리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식사(만두전골, 보쌈, 황태구이, 두부김치, 녹두전, 파전, 연밥, 전통주(백초술, 산국술, 솔잎술, 쑥술)와 일반 주류)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문턱 없는 밥집' 옆에는 5월 30일 문을 연 '기분 좋은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는 유기농 농산물을 비롯한 재활용 의류와 학생이나 숨은 장인들이 만든 생활용품, 장식품들과 함께 제3세계 사람들이 만든 수공예품(생활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다(이 수공품들은 제3세계 빈민들을 돕는데 한 몫을 하게 된다).

또한 옷(가방 구두를 포함) 책(엄선된 출판사의 좋은 책들만), 옛 물건들, 건강 음료 등을 판매하는 한편,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배달할 주곡 중심의 각종 유기농 식품들이 있다.

'기분 좋은 가게'에서는 호주머니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계층의 사람들은 품질 좋은 재활용품이나 재고품을 주머니 사정에 걸 맞는 값으로 살 수 있고, 돈이 없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물물 교환 형태로 상징적인 값만 스스로 알맞다고 정한 액수로 치르면 된다. 이곳은 쾌적한 북 카페 형태의 휴식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전통차나 발효식품, 약초 술 등을 간단히 나눌 수도 있다.

▲ '문턱 없는 밥집'과 '기분 좋은 가게'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도시 빈민,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 송성영

'문턱 없는 밥집'과 '기분 좋은 가게'에서 생기는 수익금은 농민들의 생존 보장기금, 밥집과 가게 주변의 망원, 성산, 합정 등 마포구 지역 빈민들의 자활사업 기금과 더불어 넝마 공동체,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에 실패한 제3세계 여성들을 돕거나 교육 시키는 기금으로 쓰이고 있다. 아울러 이들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가들의 활동공간을 여는 데 사용하게 될 예정이다.

* 문턱 없는 밥집, 기분 좋은 가게 가는 길

합정역 2번 출구, 망원역 1번 출구, 홍대역 1번출구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
망원역 2번출구에서 9번 마을버스를 타고 형제 수퍼 앞에서 내리거나 홍대역 2번 출구에서 15번 마을버스를 타고 서교가든 앞에서 내리도 된다.

* 문의- 문턱 없는 밥집 02-324-4190, 기분 좋은 가게 02-324-4191

[오마이뉴스 2007-05-31]

송성영(sosuyong)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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