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는 분열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진보가 권력을 잡으면 더 이상 진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보는 영원한 소수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단병호와 권영길이 갈라선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권영길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다수를 택했고, 그보다 좀 더 진보이고자 하는 단병호는 탈당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진보, 그 속에서도 다시 소수진보의 길을 택한 단병호의 이후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오래 전 사무직 노동자의 대표였던 권영길과 현장직 노동자의 대표였던 단병호가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던 사진 두 장을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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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약 17~8년 전에 제가 직접 찍은 겁니다. 아마 1990년이나 91년 겨울일 겁니다.

권영길 의원의 당시 직책은 언론노련 위원장으로 사무직 노동조합 중심 조직이었던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의 의장이었고, 단병호 의원은 생산직 노동조합이 뭉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위원장이었습니다.

 

단병호 의원이 신고 있는 빨간양말 보이나요?ⓒ김주완

지금이야 사무직-생산직의 구별없이 민주노총으로 모두 뭉쳐 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사무직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의 괴리감은 요즘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그것만큼이나 멀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노동계의 최대 과제는 생산직과 사무직을 묶는 일이었고, 권영길과 단병호 두 사람이 ‘총대’를 메야 했습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작업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그 해 겨울 두 사람이 나란히 지리산 등산길에 올랐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두 사람이 진주지역 노동운동가들과 산청의 한 식당에서 소주를 마셨는데,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흥에 겨운 두 사람이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고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습니다.

이날 술자리를 계기로 두 조직의 통합논의가 본격화됐고, 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가 권영길·단병호 공동대표 체제로 출범하게 됩니다. 전노대는 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게 되는 가교가 됐죠. 이후 두 사람은 번갈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17대 국회에서 나란히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참 질긴 인연이라 할만 하지요.
 
그런 그들이 올해 들어 각자의 길로 헤어졌습니다. 당장 누구의 길이 바른 길이라고 판단할 순 없지만 씁쓸한 건 사실입니다. 이들이 다시 만날 계기가 또 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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