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리유는 명목상으론 프랑스에 포함돼 있으나 실질적으론 각종 권리와 지위 등에서 배제되는, 더 정확하게는 배제를 조건으로 해서만 포함되는 사회적 장소를 지칭하는 유적(類的) 이름이다. 이 역설적 공간에 거주하는 주변인, 소수자, 이방인 등에 대한 포함·배제의 통치술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첫번째 과제다.”
프랑스를 흔들고 세계를 놀라게 한 2005년 10월 말의 ‘68혁명 이후 최대 소요사태’가 일어난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주 특별한 ‘현장 보고서’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공존의 기술-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그린비). “방리유자르(방리유 주민들)에 대한 표상, 치안불안과 그것을 활용하는 권력메커니즘, 여성학적 접근, 새로운 저항형태로서의 재조명, 정책 차원의 비판, 그리고 프랑스 이민역사와 노동시장 및 이민노동” 등 다각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450쪽짜리의 방대한 보고서다. ‘진짜 전문가’들이 만든 21세기형 ‘대안언론’일 수 있다.
필자는 모두 9명. 그들은 1만대에 가까운 자동차들이 불타고 3천여명이 체포된,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공화주의의 치부와 민주주의 위기 징후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태 당시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8명은 한국의 프랑스 유학생, 한 명은 에티엔 발리바르 파리10대학,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교수.
지난 11~12일 〈공존의 기술〉 출간작업을 이끈 이기라(35·파리4대학 정치학·유학 6년차·왼쪽)씨, 양창렬(29·파리1대학 철학·유학 5년차·오른쪽)씨와 통화하고 전자메일로 접속했다.
프랑스 유학생들이 체험한 방리유 ‘체험보고서’
정치무능 결과 ‘내부 적’ 조작 전가하는 권력고발
이주노동자 40만 한국도 피할 수 없는 논쟁거리
배제·포함의 통치술보다 조화로운 통합이 해답
“우리의 작업은 소요 발생 전인 2005년 초에 이미 시작됐다. 그때 철학공부모임, 재불 사회과학회, 라빌레트 건축학교 한인학생회를 주축으로 재불 유학생단체협의회가 결성됐고, 가장 중요한 연간사업으로 연합학술회의를 기획했다. 이때 채택된 학술행사 주제가 바로 ‘공존의 기술: 포함/배제의 동학’이었다. 다양한 인종 및 국적자들이 모여 사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봉합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른바 ‘시테’(게토, 방리유의 또다른 이름)의 문제를 이방인에 대한 표상과 공간적 배치 등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해 보려 했다.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던 10월 말에 전국적인 소요가 발생했고 이 주제는 현실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됐다.” “부유하는 이방인의 정체성”을 지닌 그들에게도 사태의 조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완연했던 모양이다.
책을 낸 의도는? “한국에서도 크게 보도됐지만,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한국에 사건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진 못했다고 봤다. 그래서 작업을 더 발전시켜 한국에 좀더 풍부한 고민과 논쟁거리들을 던져주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때늦은 책일 수 있지만, 한국 상황에서 보면 ‘때이르게’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이주 노동자도 40만을 헤아리지 않는가. 배제당하고 싸우는 광범한 비정규직들을 보라.
방리유란? 사전적 의미는 “대도시를 둘러싼 (외곽의) 밀집지역 전체”를 가리키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배제를 조건으로 해서만 포함되는” 역설적 공간 방리유 주민 대다수는 2차대전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의 ‘제3기 이민물결’을 탄 프랑스의 옛 식민지 출신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마그리브 지역 무슬림과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말리 출신과 프랑스 국적의 2, 3세 자손들이다. 호경기로 노동력이 부족할 때 환영받았던 그들은 불경기 때마다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 따위의 구호들이 상징하는 극우담론 속에 실업 등 모든 불행의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혔다.
“이민 1, 2세대는 경기침체 뒤 은퇴하거나 실직한 상태고, 3세는 청년실업에 처했으니 거의 유폐된 공간이다. 이들이 모여 살면서 박탈감은 더욱 확산된다. 이전의 아프리카 식민지 도시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형국이라 할까?”
지난 20여년간 권력자들은 저항하는 그들을 범죄자로 몰았다. “사회적 갈등 해결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적 무능력이 낳은 불안, 공포, 두려움 등을 역으로 반대자, 나아가 ‘내부의 적’을 제조해서 그런 정치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했다.” 공화국 보호를 내건 치안담론은 “빈곤, 실업, 불평등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불안요소들을 감추고,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들 개인 책임으로.
이민자들은 “이전에 프랑스 노동자와 식민지 대중이 담당했던 최하층 계급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결국 계급문제가 인종문제와 중첩되면서 문제의 본질이 전이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이민자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이질적인 자들, 즉 내부의 이방인으로 바라봐야 문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풍성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중심부-주변부 관계 해체를 둘러싼 식민지 쟁점과도 겹친다.
그렇다면 ‘공존의 기술’은? “방리유 청년들이 보여준 반란의 형태, 자생적 사회운동, 히잡 착용을 통한 주체성의 정치화 등은 기존 통치방식의 틈새를 벌려 새로운 공존의 기술을 세우기 위한 단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말로도 바꿔 놓을 수 있다. “궁극적인 사회 안전은 결코 치안강화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자유·평등·박애가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혁명정신의 회복과 사회안전망의 재구축을 통한 온전한 사회통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존 아닌 통치 기술은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