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는 4월 4일 오후 6시 20분경,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10차 범국민추모대회 및 용산 희생자 위령미사를 개최했다.
500여 명이 모인 이날 추모제에서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는, "추모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집회 자체를 불허하거나 원천봉쇄 하는 등, 공안 탄압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며, '정부의 조속한 사건 진상 규명과 대책위 탄압 중단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는 4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범국민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오는 18일 5만 명을 목표로 고발인 대회를 열 계획이며, 이미 3월부터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대상으로 특검 청원 및 고발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09.4.3 용산참사 현장, 레아 갤러리 및 촛불미디어센터 개소식

용산참사 희생자 '故 이상림' 님이 운영하던 철거현장의 근처 호프집 '레아'가, 철거민과 민주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했다.

2009년 4월 3일 오후, 용산범대위 주최로 용산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로 4가 남일당 건물 뒤편에 위치하는 '레아'건물에서 레아갤러리촛불미디어센터 개소식이 열렸다.

위 문화공간의 1층은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재개발의 야만성을 고발함이 주목적으로, 이 달 동안 용산참사와 관련된 예술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며, 5~6월에는 작가 8명이 작품전시회를 매일 열 예정이다.

2층 '촛불미디어센터'는 기자들을 위한 브리핑룸 및 미디어센터로, 미디어활동가들과 인터넷 생중계팀이 상주하게 되며, 촛불뉴스, 용산4가 철거민방송, 용산 외국어뉴스 등을 제작할 예정이다.

 

 

 

 



 

 

 

 

 

 

 

 

 

 


 

 

 

 

 

 1#

 오는 4월2일 개최될 런던 G20(주요20개국) 금융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럽각지의 영국, 프랑스 및
남아메리카와 아시아권에서도 G20정상회의에 대한 항의시위가 잇따랐다.

대한민국에서는 G20 및 정부를 성토하는 집회가, 주말인 3월 28일 서울역 광장 앞에서 수천여 명이
참여하는 등 서울 도심 곳곳 및 지방의 강원, 전북, 대구 등에서 각계각층의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아 28일 이날 오후 3시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사전 노동자대회 겸 
신자유주의 반대 G20정상회담 규탄, 용산 살인폭력 정권 규탄,
경제위기 고통전가 분쇄, 비정규법 개악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
를 개최했다.

 

 △ 민주노총 비상대책위 지도부들이 새로운 노투 및 대정부 투쟁의 각오를 밝히고 있다.

 

 

 △ 힘찬 문화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 문화공연과 함께 판매된 용산철거민대책위의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 을 조합원들이 읽고 있다.

 

       △ (좌)비정규직 현장 증언에 이어 (우)투쟁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결의문을 통해 △세계 경제 위기의 주범인 G20 정상회담을 반대하고,
신자유주의를 끝장내는 투쟁에 함께 할 것 △경제위기 고통 전담 이데올로기를 분쇄하고 임금삭감,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힘차게 투쟁할 것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권의 비정규법 개악에 맞서 총력 투쟁할 것 △반노동, 반민중 이명박 정권 심판 투쟁을 위해
5.1절 노동자 총궐기를 성사하기 위핸 전조직적인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 퍼포먼스 - 비정규 개악 대형 천 찢기

 

 △ 이날 민주노총은 5월 1일 노동절을 시민과 학생이 함께하는 투쟁의 날로 만들고 5, 6월 경제위기에
맞선 큰 투쟁을 만들 것이라 밝히고, 오후 5시경 대회를 마치며 다음 일정을 기약했다.

 

   2#

 3월 28일 저녁 7 용산참사 현장 앞에서, 10차 범국민추모대회 및 1차 고발인대회가 개최했다.

 

 △ (좌)3월 4째주에 용산참사 건물에 철거민이 걸어 놓은 현수막이 철거되고,
용산 4구역 철거 또한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우) 이에 각계 시민단체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앞서 가졌다.



   △ 용산참사 고발인 대회사 - 이수호 선생

 

 

                                 △ 추모공연 - (좌) 아줌마부대, (우)박준 민중가수

 △ 추모 영상 - 용산참사 경과 상황

 

 △ 이날 저녁 8시 25분경, 문정현 신부의 범국민호소문 낭독과 함께 10차 범국민추모대회가 마쳤다.

 

 

  3#

 △ 한편 참가자중 400여 명은 종로1~2가 먹자골목으로 이동해 밤9시부터 골목 시위를 이었다.

 

    △ 시위를 우려해 골목까지 봉쇄된 종로거리

 

 △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봉쇄된 어수선한 시내 분위기에 씁쓸한 모습이었다.

 

 △ 밤 10시경 종로1가 골목 앞, 평화적인 대정부 시위 현장

 

 △ 촛불.민주시민들은 밤10시 30분까지 종로 골목에서, 평화 시위를 하고 자진 해산했다.

 





 

                              △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용산 4구역 철거 진행 현장.

  '용산 철거민 농성장 화재참사'  두달째가 되도록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하는 전통 의례굿이, 3월 20일 저녁부터 용산참사 현장(
남일당) 앞에서 진행됐다.

 △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2월 20일 집중 애도의 날을 가진데 이어, 3월 20일 이날
제주극단 한라산의
 '차사영맞이' 원혼위령제와 함께 추모문화제를 이었다.


  '용산 철거민 농성장 화재참사' 두달째가 되도록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전통 의례굿
'진오귀굿'이, 3월 21일 낮부터 용산참사 현장(남일당 건물) 앞에서 진행됐다.


 △ '진오귀굿'은 망자가 죽은 지 그 시기가 오래된 경우에 치루는 추모굿으로,
죽은 자를 저승으로 천도해 줌으로써, 극락왕생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

이날  원혼 위령제는 황해도굿 한뜻계 보존회[김매물 만신]에서, [1부]12:00 - 16:00,
[2부]
18:00-21:00 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였다.


 

 △ '만신'님이 '진오귀굿' 서막인 영실부정놀이 '자정굿'을 하고 있다.

 △ '만신'님이 '진오귀굿'의 서막식을 치루자 마자, 고인들이 상처투성이에 추운 상태임으로
영안이 밝혀오자, 마음이 미어져서 갑자기
혼절하기도 했다.

 △ 각 '만신'님이 번을 돌아가며, '진오귀굿'을 진행하고 있다.

 

 

 △ '진오귀굿' 1부를 마치고, 마당놀이 '삼터'에서 철거현장 길놀이 굿을 하고 있다.


 

 △ 21일 이날 오후 4시경,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참사 현장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했다.

 △ 참가자들은 이날 희생자를 추모하고, 무분별한 개발이권 중단 및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는 추모대회 이후 연이은 2부 추모굿으로 밤 9시경을 넘어 잘 마무리 되었다.

일부 참가자는 추모대회를 마치자마자 경기도 부평시로 이동하여 잠시 가두시위를 이었다.

 

                   △ 추모 발언 - 용산참사 유가족 및 범국민대책위 공동대표

 

                                                   추모 공연

 

 

                                                              분향 및 추모

 △  황해도굿 한뜻계 보존회에서 원혼위령제 [2부]18:00-21:00 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3/14(토) 2시부터 서울시 명동 일대에서, '범국민고발운동 집중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 캠페인은 '용산 살인진압 특검청원과 책임자 고발을 위한 5만인 범국민 서명운동'이다.



 △ 또한 '안티2MB 경인연대'와 '홍익원로회'도 같은 일시에 탑골공원 앞에서, '안티 뉴라이트 및 2MB 정책반대 홍보전'을 펼쳤다.



 △ 3월 둘째주부터 재 철거가 가시화 되고 있는 용산 4구역 철거 진행현장.

 

 

용산참사 제8차 범국민추모대회가 3월 14일 저녁 6시, 서울시 서울역 광장에서 5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추모 대회사 - 용산세대위 회원, 용산참사 유가족

                                △ 추모 공연 - '바닥소리 판', 전국학생행진


 

 △ 추모 포퍼먼스 - '소원 꽃무더기'

 참가자들이 용산 희생자들의 가상무덤을 만들어, 추모의 글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글을 담은 색종이를 꽂고 있다.

 

 


 

 △ 이날 참가자들은 저녁 8시경 추모대회를 마치고 대부분 해산했다.

일부는 저녁 8시를 넘어 서울역 광장 주변 곳곳에 배치돼 있는 경찰을 피해, 홍대입구역으로 이동 하차하다 이미 봉쇄된 상황에, 다시 압구정역으로 이동해 밤 10시경 잠시 거리시위를 이었다.

 

[시사큐비즘] 대만이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버티는 이유(1)

대만은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지 않고 있다. 대만과 일본은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 개방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오로지 국민건강 때문이다.
 
PD수첩에 대한 수사는 재개되었다. 번역을 도왔던 분도 이미 검찰에 소환되었고,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무능의 총체적 책임을 져야할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도 지난 3월 2일 검찰에 소환되었다. 3일에는 PD수첩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 USTR ‘2009 무역정책 아젠다 및 2008 연례보고서’
 
지난 3일 발표된 USTR 보고서는 한미 FTA 말고도 쇠고기관련 의미있는 정보가 담겨있다. 우리는 이미 쇠고기수입을 결정했기에 특별한 언급이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일본, 대만, 홍콩,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언급했다. 아직까지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보복한다고 했을까? 

WTO에 제소하였다거나 제소할 예정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2009년에도 계속 수입개방을 시도하겠다는 정도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어땠나. 우리가 거절하면 미국 정부가 당장 WTO로 끌고가고, 당장 자동차에 대해 보복하고, 이런 식이었다.
 
# 대만과 일본의 협상을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
 
지난해 5월 8일로 되돌아 가자. 당시 쇠고기 협상의 법적․행정적 책임자였던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이 가까운 장래에 대만, 일본과 체결한 협상에서 우리 조건과 다른 내용이 담길 경우, 달라지게 된 경위를 따져보고 당연히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논리는 정부여당의 일관된 논리였다. 그리고 미국과의 재협상 요구를 차단하는 핵심논리였다.
 
그보다 앞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4일 국회에서 긴급 당·정·청 대책회의를 가진 일이 있다. 머니투데이 5월 5일자는 정부여당이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의 미국 쇠고기 협상 내용을 봐가며 미국에 추가 협상을 요구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보도했다.
 
당시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2중, 3중의 방어막을 치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며 "대만, 일본의 협상 내용이 우리와 다르면 재논의가 가능한 것 아니냐. 정부가 미리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다시 이 문제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유일한 재협상의 고리이기 때문이다.
 
# 이미 들통난 거짓말
 
노컷뉴스 지난해 5월 28일자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7일 ‘대만이 OIE 기준에 맞춰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끝냈지만 집권 초기인 상황을 감안해 공식발표는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도 ‘공식적으로는 아직 미국과 대만간 협상이 진행중’이라면서도 ‘OIE 기준에 따라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대만의 협상 결과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역시 ‘대만과 미국의 협상에 OIE 관계자도 참여하고 있다’고 말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오보일까. 거짓말일까.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일관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일본은 2007년 8월 2일과 3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미일간 제2차 기술적 회의 이후 공식적 움직임은 전혀 없다. 공식회의가 없었다.
 
대만 역시 2007년 여름 이래 어떠한 특별한 움직임도 없다. 그런데 협상이 다 끝났었다고? 그리고 OIE 관계자가 참여한다고? 국제기구 관계자가 양자협상에 참여한다고? 그리고 공식적인 협상이 진행중이었다고? 도리어 정운천 전 장관은 이런 부분에 대해 검찰에서 진술했어야만 한다. 지난 일은 다 잊혀진 일이니까 거짓말해도 상관없다고?
 
#대만이 결정하고 있지 않은 것도 재협상의 근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 근거는 오로지 대만과 일본의 협상에 있다. 두 나라의 조건이 우리보다 유리하면 우리에게 재협상 근거가 생기는 것이고, 우리보다 불리하면 미국에게 역시 재협상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이것이 정부 논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덧붙일 것 한가지. 일본과 대만이 계속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개방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기 때문에 재협상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 대만은 버티고 있다. 국민건강을 이유로
 
미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07년 5월 OIE로부터 ‘광우병위험 통제국’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이유로 대만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개정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에 대해서처럼 사실상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이 현재 적용하고 있는 수입위생조건은 2006년 1월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준은 미국이 내세우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보다 더 엄격하다.
 
대만 정부는 2007년 이후 미국의 계속된 개정요구에도 불구하고 입장은 여전하다. 특히 지난해 5월 경 미국은 대만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조건으로 협상재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대만은 양국 공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연구만을 진행할 뿐이다.
 
같은 해 9월 대만은 미국 현지조사를 실시하는 등 수입위험분석 절차는 진행중이다. 하지만 2009년 2월 현재까지도 대만은 여전히 2006년 1월의 수입위생조건에 따라 수입하고 있을 뿐이다.
 
# 미국의 보복은 없다
 
그러면 미국의 보복이 있을까. 없다. USTR 보고서도 보복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WTO 제소조차도 언급이 없다. 만일 대만의 버티기가 계속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정부는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만의 협상팀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미-대만 간 무역분쟁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김종훈 본부장,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에게 묻는다. 질문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최재천 
 
원문글 바로가기 ☞ http://blog.ohmynews.com/cjc4u/ <신문고펌>

동대문 가투에서 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무언가 울컥~ 합니다.

저는 그 날 그 현장에서 전혀 다른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 제가 본 것, 찍은 것을 그대로 올려 드립니다.

 

동대문으로 이동하면서도 사실 여러 상황이 있지만,

제가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찍은 사실만으로 올리겠습니다.

동대문에 도착한 인원은 정말 백여명 남짓,

소수의 인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곳에는 경찰들이 와 있었습니다.

사복경찰들과 함께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서울역에는 저희보다 많은 사복경찰들이 함께 있었고, 지하철에도 미리 내려가 계셨죠.

저희는 길을 걷기도 전에 종로방향 첫 사거리에서 막혔습니다.  

저희는 그들과 마주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뜨거운 마음이었죠.

그 때 저희들 중의 몇분이 무전기를 꺼냈습니다.

보이십니까? 저기 있는 이들이 바로 소수의 우리들이고

뛰어오며 찻길을 장악하고 계신 분들이 바로 사복경찰님들이십니다.

정말 끝도 없이 달려 오시더군요.

얼마나 되는 인원인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달려오고, 달리고...

나중에 오시는 분들은 저희 숫자를 보고 안심하셨는지 뒷짐까지 지고 천천히 오시더군요.

그 와중에도 길건너에서도 사복경찰님들은 오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도 상황을 보고 안심했는지 걸어 오시더군요.

아마 숫자상으로 1인당 10명의 사복경찰님들이 계셨습니다.

저희가 폭력을 휘둘러요?

아뇨, 제가 찍은 사진에는 주먹을 휘두르는 사복경찰님이 먼저 보입니다.

...당당하셨거든요.

너무 많은 숫자에 가투를 하던 이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저 중에 기자들을 빼고 몇몇을 제외하면 전부 경찰님들이십니다.

저희들이요?

너무 황당해서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도로를 가득 메운 분들이십니다.

누군지는 다들 아시겠죠?

저희는 인도에서 그 분들이 자리 정리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것은 인도에 있는 저희들이었다구요...

수백명의 경찰들이 도로에 있는 장관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우리가 경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가투는 불가능하겠다고 내려온 전철역...

그 곳 어느 곳에도 보이는 것은 경찰밖에 없던 동대문과 종로였습니다.

저는 비폭력주의자입니다.

그저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촛불 드는 시민입니다.

 

하지만 나의 현실의 기록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으며 그저 발로 뛰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아마 제가 직접 보지 않았고,

멀리서 사진을 찍으며 관망하지 않았더라면

저도 오늘의 기사를 보며 '폭력'이라는 단어에 분노했을 지도 모릅니다.

저역시 경찰님들이 이 추운날 고생하시는 것을 보며

무슨 죄가 있어서 저리 뛰나,,, 때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경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언어에 쉽게 동의하지는 못하지요.

 

하지만,

이건 왜곡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무엇을 진실이라 착각하고 있는지 알고는 살아야 합니다.

 

진실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을 바랍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367157

출처 :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글쓴이 : 동심회장 원글보기
메모 : 촛불시위자 솜방망이 처벌? 난 억울하다!
미디어스 연예 | 2009.03.13 (금) 오후 6:25
내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고 확신하듯이 이야기했다. 아무리 당시 정황을 이야기해도 막무가내였다. 최근 “촛불집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묻기에,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되는 것을 보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촛불집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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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공공.운수.건설노동자 투쟁결의대회 결의문 낭독

 2월 28일 오후 2시경 서울시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건설노동자 조합원들이 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를 앞두고, 사전 '공공.운수.건설노동자 투쟁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렇듯 전국노동자대회에 앞서 (오후 2시부터) 같은 시각에, 공공운수연맹과 건설연맹은 여의도 문화마당 본무대에서, 금속노조는 전경련 회관 앞에서, 사무금융연맹은 금융감독원 앞에서, 언론노조는 여의도역에서, 시설연맹은 산업은행 앞에서, 일반노조협의회는 문화마당 인근에서 각각 연맹별 사전대회를 개최했다.

 


  투쟁사 - 인천건설전기분과, 건설산업연맹, 화물연대, 공공운수연맹 등 

 


 △ 공연 - 해고 철회 투쟁중인 '공공노조 국립오페라단지부'

 

 △ 28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등 3만 여명이 모여 ‘용산참사 살인정권 규탄! MB악법 저지! 경제파탄 책임전가! 이명박 정권 심판! 전국노동자대회’가 개최됐다. 

 

 △ 대회사 및 결의문 낭독- (좌)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임성규 위원장,

 

  △ 대회사 중 - 용산참사 유가족들


 


 △ 늦은오후 5시경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각 연맹별로 거리시위에 나섰다.

시민사회단체 및 촛불시민들은 대부분 지하철로 이동해 서울도심 거리시위를 이었다.

 △ 한편 여의도 교가에서는 서울 도심으로 이동하려던 각 단체차량을 막아서기도 했다.

 운수노조 화물연대와 건설연맹 소속 조합원 1만여 명은, 국회 앞을 향해 행진하려다 원천봉쇄로 우회하여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근처로 향했으나, 앞서온 경찰들에 의해 행진이 저지됐다.

 

 △ 국회방향으로 간 조합원들은 저녁 6시 넘게 국민일보 빌딩 근처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무리한 진입은 자제하고 대부분 해산하여 서울도심 거리시위 장소로 향했다.
일부는 봉쇄를 뚤고 국민은행 앞까지 진출했으나 앞서온 경찰들에 의해 저지됐다. 이렇듯 국회 진출 과정에서 상호 마찰을 빚기도 해 연행자와 부상자가 일부 발생했다.

 

  △ 봉쇄중인 서울도심 광화문과 청계천광장

 

 △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는 총파업중인 전국언론노조에서 늦은 오후부터 내내 총파업 결의대회 및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




 △ 저녁 7시경 명동(을지로입구) 현장

금속노조 조합원 및 촛불시민 1만여 명은 지하철 신길역과 서울역, 태평로, 광화문, 시청, 명동 순으로 이동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역에서 청계광장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막아서자 남대문 방향에서 다시 명동 -> 명동성당으로 이동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 뒤에 여의도역에서 출발한 일반시민과 다수 네티즌이 합류해 거대한 대오를 형성했다.  

 

  

 △ 가두시위 인원수 만큼이나 시위 저지에 투입된 경찰들은 행진 10여분 쯤에 도로를 각각 차단하고 진압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태평로, 명동, 종로 일대에서 20여 명이 경찰에 연행돼거나 상호 부상자도 발생됐다.

 

 △ 명동 일대의 진압작전으로 저녁 7시 40분경 시위대 대부분이 인도로 밀려났다.

 

 

  △ 저녁 9시경 종로2~3가 일대

 

 

△ 밤 10시경 종로1가 일대

 

 △ 종로 일대에는 경찰에 의해 행진이 저지된 촛불시민이 횡단보도를 이용해 시위를 이었다.

 

 

 △ 밤 10시 30분경 종로 일대에서 가투를 벌인 참가자 대부분은 이날 일정을 마치고 귀가를 했다.

일부는 남영동->용산이나 서울역으로 이동해 이날 마무리 투쟁을 이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1076315&PAGE_CD=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 종교행사가 서울 도심에서 잇따라 열렸다.

지난 2월 2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추모 시국미사에 이어, 2월 5일부로 불교와 기독교계까지 전격 가세한 것이다.

 

기독교계는 '용산철거민참사기독교대책회의'를 구성하고 2월 5일 오후 5시 서울시 연지동 기독교회관서 추모 기도회를 갖은데 이어,

이날 2월 24일 오후 6시경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광화문 빌딩)앞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기독교단체가 공동주최하는 `용산참사 추모와 시국기도회'를 개최했다.

이날 시국기도회를 연 범기독교계는 앞서, 오후 1시경 민생민주국민회의와 함께 명동 향린교회 3층 예배당에서 '용산참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각계 시국회의 및 시국기자회견'도 참석하고, 200여명이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까지 인도를 따라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500여명이 모인 이날 저녁 동화면세점 앞 시국기도회에서,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2월 5일 추모기도회 2월 5일 오후 5시 서울시 연지동 기독교회관서 '용산철거민참사기독교대책회의'가 추모 기도회를 갖았다.
ⓒ 신만호
추모기도회

 

  
▲ 진보기독교단체 공동주최 `용산참사 추모 시국 행진' 2월 24일 늦은오후, 진보.기독교단체가 명동에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까지 인도를 따라 용산참사 추모 시국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신만호
추모 시국 행진

 

  
▲ `용산참사 추모 시국 행진' 진보.기독교단체가 명동에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까지 인도를 따라 용산참사 추모 시국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신만호
추모 행진

 

  
▲ `용산참사 추모 시국 행진' 진보.기독교단체가 명동에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까지 인도를 따라 용산참사 추모 시국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신만호
추모 시국 행진

 

  
▲ `용산참사 추모와 시국기도회' 2월 24일 오후 6시경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기독교단체가 공동주최하는 `용산참사 추모와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 신만호

 

 

  
▲ `용산참사 추모와 시국기도회' 기독교인들이 용산 희생자를 위한 추모를 하고 있다.
ⓒ 신만호
추모

 

 

 

 

 

 

 

 

 

 

 

 

 

 

 

 

 

 

 

 

 

 

 

 

 

 

 

 

 

  
▲ `용산참사 추모와 시국기도회' 무속인도 참여하여 추모 살풀이를 진행하고 있다.
ⓒ 신만호
추모

 

  즐보드 생활속발견 에서 퍼옴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9&articleId=6883

 

 

  

 

 

 

    10만 컷 찍고 또 찍고, 1천장에 1장 꼴로 골라 115컷의 사진을 담았다.

     

      시민운동가·사회학자 등의 글에 한겨레 현장사진 담은 2008년 여름에 관한 비망록
      기획 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사진 <한겨레> 사진부, 한겨레출판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대규모 촛불시위를 촉발한 에너지가,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수위 시절의 영어몰입교육과 강부자 내각 파동, 출범 초기 각종 규제완화 조처와 학교자율화, 대운하 논란 등을 거치며 누적된 시민사회의 불만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라는 ‘스파크’를 만나면서 ‘주류 시스템이 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폭발했다는 게 글쓴이들의 분석이다.

 

 

“촛불은 확연히 새로운 저항의 주체를 탄생시켰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성찰에 뒤이은 창조적 저항, 그리고 대안의 물꼬를 트는 행보를 시작했다.”
“10대 소녀들의 촛불이 386 기성세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 부끄러움으로 새로운 촛불을 들게 했다.” 박영선 참여연대 기획위원장


수백만의 시민이 “주권자로서 분명한 자의식을 갖고 그토록 오랜 기간 거대한 하나를 이룬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신진욱 중앙대 교수

 

 

 

 

“시장원리를 철칙으로 배워온 구성원들이 교육·의료·물·공영방송·공기업 등 공공성의 차원으로 의제를 넓혀간 것 역시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컨테이너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광장에 머무르고자 했던 사람들은 비폭력 노선의 견지가 촛불의 정당성을 지켜주며, 컨테이너를 넘어선다고 어떤 실질적 변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촛불이 켜질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았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들의 대의(代議)에 대한 선천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거짓 보도와 말 바꾸기를 일삼는 언론도, 어디 하나 믿을 구석이 없는 정당도, 지식인, 전문가들, 그리고 특정이념으로 굳어버렸거나 무기력한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진보운동이나 시민운동단체도 필요치 않았다. 밤을 새워 지속되는 아고라와 인터넷의 토론 과정을 통해 일반 시민들은 기자나 전문가 이상으로 광우병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 지식인, 전문가도 참여자들 가운데 하나로 자기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22쪽)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대다수는 경찰의 폭력 진압이 아무리 부당할지라도, 시민들 자신이 ‘비폭력 평화주의’를 견지하는 것이 집회의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반해 계속되는 경찰의 폭력을 수수방관하고 무력하게 노출되는 것이 과연 참된 저항의 태도인가라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특히 차벽 앞에서 시민들은 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기존에 했던 방식대로 대치를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97쪽)

 

 

지난밤의 악몽 같은 폭력의 공포로 밤낮을 시달린 뒤끝, 서울광장에서는 흰옷 입은 신부님들이 ‘촛불소년’이 되어 구불구불 사람들 사이를 지리산 자락의 오솔길 거닐 듯 지나간다.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욕 받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자존감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198쪽)


“물러섬이 없는 믿음으로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생명과 평화의 길임을 사무치게 깨달아 새기면서 백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촛불이 부처님임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참회하고, 인간중심주의가 생명공동체를 파괴한 것을 깨닫지 못함과 막지 못함을 참회하고... 108번의 참회. 그리고... 다시, 생명평화의 길. (210쪽)

 

촛불에도 생명이 있다면, ‘이미 승리했다’는 그 말은 이런 뜻이리라. 촛불소녀의 작은 몸짓이 나비효과처럼 태풍이 되고, 국민들 마음속에 희망의 등불이 되고, 비관하던 시인과 평론가에게 새로운 꿈이 되고, 좌절한 사회운동가에게 대안의 전략이 되는 바로 그것.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215쪽)


4월 18일에 불을 밝혀, 5월 민심의 파도와 참여의 폭발을 지나, 6월에는 거대한 바다를 이룬 촛불의 대장정은, 7월 5일 스스로의 의미를 ‘국민승리’라고 선언했다. 8월 15일에는 100일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렇게 장장 100일이나 촛불은 광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광장의 촛불은 잦아들어갔다. 당연한 순차였다. 점화하고 폭발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오히려 폭발한 민심이 ‘100일’이나 광장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차음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해갔다. 기말고사, 쌓인 집안일, 밀린 업무 등 잠시 미뤄두었던 일상의 과제를 풀기 위해 각자의 삶의 공간을 향해 갔다. (233쪽)

 

 

씽씽 바람이 되는 이여,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있는 촛불은, 폭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230쪽)

 

촛불집회 현장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편파왜곡 보도하는 보수언론에 대한 배신감은 단순한 고통거리에 불과하다. 기존 질서에 안착한 기성세대와의 논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이다. 촛불이 불러일으킨 정치적 각성의 크기만큼, 고통도 크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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