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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컷 찍고 또 찍고, 1천장에 1장 꼴로 골라 115컷의 사진을 담았다.
시민운동가·사회학자 등의 글에 한겨레 현장사진 담은 2008년 여름에 관한 비망록
기획 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사진 <한겨레> 사진부, 한겨레출판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대규모 촛불시위를 촉발한 에너지가,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수위 시절의 영어몰입교육과 강부자 내각 파동, 출범 초기 각종 규제완화 조처와 학교자율화, 대운하 논란 등을 거치며 누적된 시민사회의 불만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라는 ‘스파크’를 만나면서 ‘주류 시스템이 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폭발했다는 게 글쓴이들의 분석이다.
“촛불은 확연히 새로운 저항의 주체를 탄생시켰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성찰에 뒤이은 창조적 저항, 그리고 대안의 물꼬를 트는 행보를 시작했다.”
“10대 소녀들의 촛불이 386 기성세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 부끄러움으로 새로운 촛불을 들게 했다.” 박영선 참여연대 기획위원장
수백만의 시민이 “주권자로서 분명한 자의식을 갖고 그토록 오랜 기간 거대한 하나를 이룬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신진욱 중앙대 교수
“시장원리를 철칙으로 배워온 구성원들이 교육·의료·물·공영방송·공기업 등 공공성의 차원으로 의제를 넓혀간 것 역시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컨테이너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광장에 머무르고자 했던 사람들은 비폭력 노선의 견지가 촛불의 정당성을 지켜주며, 컨테이너를 넘어선다고 어떤 실질적 변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촛불이 켜질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았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들의 대의(代議)에 대한 선천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거짓 보도와 말 바꾸기를 일삼는 언론도, 어디 하나 믿을 구석이 없는 정당도, 지식인, 전문가들, 그리고 특정이념으로 굳어버렸거나 무기력한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진보운동이나 시민운동단체도 필요치 않았다. 밤을 새워 지속되는 아고라와 인터넷의 토론 과정을 통해 일반 시민들은 기자나 전문가 이상으로 광우병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 지식인, 전문가도 참여자들 가운데 하나로 자기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22쪽)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대다수는 경찰의 폭력 진압이 아무리 부당할지라도, 시민들 자신이 ‘비폭력 평화주의’를 견지하는 것이 집회의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반해 계속되는 경찰의 폭력을 수수방관하고 무력하게 노출되는 것이 과연 참된 저항의 태도인가라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특히 차벽 앞에서 시민들은 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기존에 했던 방식대로 대치를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97쪽)
지난밤의 악몽 같은 폭력의 공포로 밤낮을 시달린 뒤끝, 서울광장에서는 흰옷 입은 신부님들이 ‘촛불소년’이 되어 구불구불 사람들 사이를 지리산 자락의 오솔길 거닐 듯 지나간다.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욕 받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자존감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입니다.” (198쪽)
“물러섬이 없는 믿음으로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생명과 평화의 길임을 사무치게 깨달아 새기면서 백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촛불이 부처님임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참회하고, 인간중심주의가 생명공동체를 파괴한 것을 깨닫지 못함과 막지 못함을 참회하고... 108번의 참회. 그리고... 다시, 생명평화의 길. (210쪽)
촛불에도 생명이 있다면, ‘이미 승리했다’는 그 말은 이런 뜻이리라. 촛불소녀의 작은 몸짓이 나비효과처럼 태풍이 되고, 국민들 마음속에 희망의 등불이 되고, 비관하던 시인과 평론가에게 새로운 꿈이 되고, 좌절한 사회운동가에게 대안의 전략이 되는 바로 그것.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215쪽)
4월 18일에 불을 밝혀, 5월 민심의 파도와 참여의 폭발을 지나, 6월에는 거대한 바다를 이룬 촛불의 대장정은, 7월 5일 스스로의 의미를 ‘국민승리’라고 선언했다. 8월 15일에는 100일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렇게 장장 100일이나 촛불은 광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광장의 촛불은 잦아들어갔다. 당연한 순차였다. 점화하고 폭발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오히려 폭발한 민심이 ‘100일’이나 광장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차음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해갔다. 기말고사, 쌓인 집안일, 밀린 업무 등 잠시 미뤄두었던 일상의 과제를 풀기 위해 각자의 삶의 공간을 향해 갔다. (233쪽)
씽씽 바람이 되는 이여,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있는 촛불은, 폭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230쪽)
촛불집회 현장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편파왜곡 보도하는 보수언론에 대한 배신감은 단순한 고통거리에 불과하다. 기존 질서에 안착한 기성세대와의 논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이다. 촛불이 불러일으킨 정치적 각성의 크기만큼, 고통도 크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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