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의 망령이 무덤에서 뛰쳐나와 백주에 대한민국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1910년 8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 101년,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6년이 지난 2011년 가을, 바로 오늘 이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한 세기 전 대한제국의 주류집단이 '매국 친일파'들로 넘쳐났다면, 2011년 지금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은 '신판 친일파'로 득실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여당 정치권, '뉴라이트' 간판 아래 모인 각종 극우 정치·시민단체들, 그리고 낙성대사단·교과서포럼 등이 주도하는 극우역사학계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한마디로 '배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2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단체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건의안'에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넣자고 주장했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한마디로 말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일본 극우파들의 역사관이자 극우 정치인들이 '망언' 때마다 단골로 사용해온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이걸 일본 역사학계도 아닌 한국의 역사학계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넣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대체 이들의 국적은 어느 나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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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철도 건설에 동원돼 작업을 하는 모습 |
ⓒ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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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2009 개정 역사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데 앞장섰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깡그리 뭉갠 것은 물론 심지어 대한민국이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졌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유엔'의 실체는 곧 '미국'을 말하는 것일진대 그들은 '친일'에 이어 '친미'로까지 사대·종속을 외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사나 미국사로 우리 근현대사를 기록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인데 그들의 눈물겨운 사대주의에 서글픔을 넘어 연민마저 들게 하는군요.
보도에 따르면,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 5월 20일 출범했으며, 여태 학술행사나 변변한 학술지 하나도 발행한 적도 없는 신생 학술단체라고 합니다. 학문적 경륜도 업적도 없는 이런 신생단체가 역사교과서 개정과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사편찬위원회를 압박해왔다고 하는데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단체의 주요멤버는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현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해 박효종(서울대), 이영훈(서울대), 이인호(서울대), 강규형(명지대) 등 이른바 '교과서포럼'의 주요 회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의 모태가 된 '뉴라이트'의 핵심인사들입니다.
시대에 따라 역사교과서도 필요하다면 개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럴 경우에도 조건은 있습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해야 하며 아울러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말썽이 된 '한국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 계열 역사단체의 주장은 되레 한민족의 자긍심을 훼손하고 나아가 후세 교육에 치명적 결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특히 이들은 역사교과서에 학술 논리보다는 현 집권세력이 추종하는 극우 논리 관철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학자적 양심마저 내팽개친 작태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주장 두 가지, 즉 '식민지 근대화론'과 '유엔 건국론'에 대해서만 간략히 따져보겠습니다.
일제가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그럼 이승만 정권은?
우선 '식민지 근대화론'. 여기서 지칭하는 '근대화'란 당시 근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후진국가들이 서구의 선진 물질문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이 발전한 상황을 말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국가들은 당시 조선(한국) 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지구상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 나라들도 점차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정치·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산업적으로도 '근대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 오늘날 한국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이 마치 일제의 식민 지배가 토대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흔히 일본의 극우파들은 철도 가설을 큰 은덕인양 자랑하는데 이는 일제가 중국대륙 침략의 수송로 겸 본국으로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가설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조선에서 대량의 인적·물적 수탈을 자행하였음에도 조선땅에 이렇다할만한 공장 하나 지은 게 없습니다. 해방 당시 조선땅에 있었던 공장이라면 신발공장, 누에고치(제사)공장, 성냥공장, 종이공장 등 기술 수준도 낮고 영세한 가내공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박흥식이 1944년 2월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안양에 세운 '조선비행기공업(주)'의 경우 그마나 근대식 공장이랄 수 있는데, 이는 일본군 군납업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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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내공업의 수준의 소규모 제사공장에서 조선인 여성노동자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 |
ⓒ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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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일제는 일선학교에서도 선진 고급기술은 조선인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1924년에 개교한 경성제국대학의 경우 초기에는 법문계(인문계)만 두었을 뿐 이공학부가 개설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일제말기인 1943년이었습니다. 생필품의 경우 오히려 조선을 소비처로 전락시켜 일제 예속을 강화시켰을 뿐인 판국에 대체 일제가 조선의 경제발전을 위해 기반을 닦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일제 초기에서 중기-말기로 세월이 흐르면서 몇몇 경제통계의 수치가 증가한 것을 두고 일제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인구가 증가한 것도 일제의 은덕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랄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가증스런 궤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가지려면 다음의 가설을 만족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즉 '일제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으므로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 때부터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뤄졌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같은 통계나 주장은 여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경제성장은 제3공화국 이후 급속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 토대는 박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며, 이는 이미 제2공화국 때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추진된 중화학 및 전기전자산업이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무역흑자를 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한국 경제성장의 요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하는데 그 실체가 대체 무엇일까요?
"유엔의 도움을 받아 건국"...국체 뿌리째 흔드는 망동
다음은 '유엔 건국론'. 한국현대사학회가 교과부에 낸 건의안에 따르면, 기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있던 "대한민국 정부는 3·1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이해한다"는 내용 대신에 "대한민국은 유엔의 도움을 받아 건국하고 공산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였음을 이해한다"는 내용으로 고쳐달라는 요청이 나옵니다(물론 이같은 요청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는 '수용불가'방침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한 역사단체의 '주장' 정도에 그치는 그런 사안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 대한민국의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부인)하는 행위로, 이는 국기(國基)를 뿌리째 뒤흔드는 망동(妄動)입니다. 이와 같은 투의 주장을 진보진영 학자들이 했다면 보수진영에서는 아마 이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라고 난리를 떨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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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 요인 신년 축하모임(1921.1.1). 붉은 원내는 이승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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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현행 헌법은 이승만 일파도 참가하여 만든 것으로, 그 뿌리는 대한민국 임시헌장(1944년)에 두고 있습니다.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1948)은 전문, 총강, 국민의 권리와 의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경제, 회계, 헌법 개정 및 부칙 등의 골격이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거의 동일합니다.
또 구체적으로 들어가 내용면에서도 두 헌법은 3.1운동의 독립정신 계승, 민주공화국, 국민주권, 기본권 보장, 권력분립 등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부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그 근간과 골조가 사실상 임정 시기에 만들어진 셈입니다. 따라서 현행 헌법에서 '임시정부 법통론'을 담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이승만·박정희도 손대지 않은 '임시정부 법통론'
제헌헌법이 제정된 지 63년이 흘렀고, 그간 수차례 개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때도, 박정희의 '3선 개헌' 때도 손대지 않은 것이 바로 '임시정부 법통론', 즉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입니다. 역대 어느 정치지도자들도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또 한국인 대다수가 이에 대해 이견이 없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대한민국 법통의 주체로 임시정부 대신 유엔, 즉 미국을 세우자는 것은 대체 무슨 연유에서인가요?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법통의 주체로 세우기에 부적합한 무슨 중대한 사안이라도 발견된 것일까요? 한마디로 이들은 대한민국의 법통과 역사를 미국 동아시아사(史)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국체(國體)의 뿌리를 뒤흔드는 '헌법위반 행위'입니다.
한국이 해방과 1948년 정부수립 과정에서 유엔의 도움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족된 유엔은 세계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결성됐으며, 당시 유엔이 한국을 도운 것은 설립 목적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유엔의 도움으로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한국 이외에도 수없이 많았지만 건국의 주체 가운데 하나를 유엔이라고 쓰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유엔은 회원국들의 가입대상이자 협력대상이지 신봉과 종속의 대상은 아닌 것입니다.
유엔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마땅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권국가 국민으로서의 처신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것입니다. 문득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이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청원했다가 1925년 탄핵된 사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이광수, 최남선, 현영섭의 행위보다 더 추악한 반민족 행각
이제 긴 글을 끝맺고자 합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한국사회에 등장한 이른바 '뉴라이트그룹'은 정치적으로는 극우,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일제 식민지배와 미국의 패권주의를 찬양·신봉하고 있는데 골간은 일본의 극우세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인들의 자주·민족적 역량을 헤아리기보다는 일제 침략사관의 포로가 된 나머지 친일파 변호 등 역사왜곡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독립투쟁가와 임시정부 폄훼, 이승만·박정희 등 독재자 찬양·미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마침내는 역사교과서 개악에까자 이른 것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일제 때 창씨개명을 앞장서서 선전했던 춘원 이광수, 조선인 학도들에게 학병 나가라고 권유했던 육당 최남선, '조선어 전폐론'을 주장했던 현영섭, '일본인이 되지 못하면 죽음을 달라'던 이영근보다 더 추악한 반민족 행각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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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에 부활한 이승만 지난 8월 25일 서울 남산 자유총연맹 광장에 들어 선 이승만 동상. 1949년 4.19혁명 때 동상이 헐린 지 51년만의 일이다. |
ⓒ YTN 화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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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진영의 이같은 '작업'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종착역은 '이승만·박정희 우상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주장하는 친일과 친미, 개발과 독재는 비로소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그간 단계별로 계획을 추진해 왔는데, 현 정부 들어 우익사관의 역사교과서 개정작업을 시작으로 지난 8월 서울 남산 자유총연맹 광장에 4.19혁명으로 헐린 지 51년 만에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웠습니다. 또 금년 11월경에는 서울 상암동에 건립중인 '박정희기념관'이 문을 열 예정이며, 내년 중에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서울 세종로에 개관할 예정입니다. 한마디로 뉴라이트의 보수 물결이 망망대해를 이룰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물의를 빚은 '백선엽 특집방송'에 이어 KBS는 '이승만 특집방송'을 오늘(28일)부터 3일간에 거쳐 방영될 예정인데요, 내년에는 '박정희 특집방송'이 나올 것이라는 추측이 벌써부터 언론계 주변에는 나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내년 대선에서 보수진영의 정권 재창출전략과 관련돼 있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습니다. 결코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닌 듯 싶습니다.
법률적, 역사적으로 이미 평가가 내려진 '5.16 군사쿠데타'를 '5월 혁명'으로 고쳐 부르고,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이 서울시민들을 내려다 볼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2011년 가을, '제2의 매국·반역'의 기운이 지금 서울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습니다. 100년 전, 망국(亡國)의 그해 가을 하늘도 바로 이러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