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의 정신, <통일뉴스>가 이어가겠다”
<통일뉴스> 창간 7주년 행사, “민족의 평화통일 위해 매진하겠다” 밝혀
 
대자보 김철관
 
인터넷 <통일뉴스>가 창간 7주년을 맞아 <민족일보>의 얼을 잇겠다고 선언했다.
 
<통일뉴스> <www.tongilnews.com>(대표 이계환)는 1일 저녁 서울 명동 세종호텔 3층 연회장에서 창간 7주년 기념식을 갖고 힘찬 도약을 다짐했다.
 
이날 인사말을 한 이계환 대표는 “4월혁명 때 <민족일보>가 있었다면 6.15공동선언시대에는 <통일뉴스>가 있다”면서 “강산이 4번 바뀌었지만 <민족일보>의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이라는 사시가 <통일뉴스>와 일맥상통한 것을 보더라도 맥을 이은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민족일보>의 맥을 잇겠다는 <통일뉴스>의 창간 7주년 행사모습. 민족일보 관계자들과의 기념촬영     © 대자보

이어 “식민지, 쿠데타 등 나쁜 역사를 이어오고 있지만 이제 <민족일보> 등 좋은 역사를 계승할 필요가 있다”면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통일뉴스>가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4.19 시기 <민족일보>와 함께 했고 <통일뉴스> 창간 발기인인 노중선 선생은 여는 말을 통해 “<민족일보>와 <통일뉴스>가 만나는 창간 7주년은 정말 의미 있는 날”이라면서 “지령 92호로 마감된 <민족일보>의 대를 이은 <통일뉴스>는 6.15시대 시대정신을 반영한 진정한 언론”이라고 밝혔다.
 
<민족일보> 기자를 역임한 복간추진위원장인 전무배 선생도 “<민족일보> 민족자주통일 정신이 이 땅에 계속 실현되길 바란다”면서 “<민족일보>를 이어받아 새롭게 출발한 <통일뉴스> 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정희가 미국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을 제물로 받쳤다”면서 “천인공로할 만행에 분개하면서 국가권력의 잘못 짓으로 폐간됐으니 국가권력이 원상회복시킬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4.19 혁명 시기 통일언론을 지향, 짧은 시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민족일보> 당시 보도 내용     © 대자보
 
<민족일보> 기자를 지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자동 선생은 “어려운 시대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통일뉴스> 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민족일보>를 계승할 <통일뉴스>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일용 기자협회장은 “힘들게 살아온 정의로운 선배들을 위해 우리가 뜻을 이어 통일사업에 매진하겠다”면서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중기 <통일뉴스> 후원회장은 “젊은 <통일뉴스>가 다시 이어갈 <민족일보> 창간정신을 다짐한 이 자리에 선 것이 뿌듯하게 느껴진다”면서 “4.19가 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밝혔다.
 
정해랑 경기대민주총동문회 회장의 사회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고, <민족일보> 전 기자들이 <통일뉴스> 대표 및 기자들에게 지난 3년에 걸쳐 찾아내 제작한 <민족일보> 영인본 전달식을 가졌다. 이날 <민족일보> 역사 영상물과 <통일뉴스>의 <민족일보> 다시보기 영상물도 상영됐다. 이기형 민족시인의 축시 낭송도 이어졌다. 이날 통일뉴스는 매주 <민족일보> 칼럼과 기사들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어려운 한자나 의미해석을 위해 기사 해설도 덧붙일 예정이다.

▲통일뉴스 창간 7주년에 함께한 우리 사회 통일 원로인사들     © 대자보
 
<통일뉴스>는 2000년 8월 15일 첫선을 보였다. 2001년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8.15만족공동행사에 참여했고, 2007년 3월 19일 통일부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승인 및 기사교류를 시작, 인터넷언론으로서는 드물게 남북한 및 통일관련 전문뉴스 사이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민족일보> 1961년 2월 13일 첫 창간했다. 그해 5월 19일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92호 발행을 끝으로 폐간됐다. 그해 12월 21일 조용수 사장이 교수형을 당했고, 2007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재심을 결정한 상태다.
 
<민족일보>는 61년 2월 13일 창간하면서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통일을 절규하는 신문 등 4대 사시를 표방했다.
 

2007년 11월 1일 (목) 18:12   민중의소리

 

 

△31일 새벽 서울우유지회 고철환 조합원과 박태순 조합원은 자신의 차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했다. ⓒ화물연대 출처



31일 새벽 1시 30분경 동료와 함께 분신을 시도한 고철환 서울우유 유제품 운반기사. 올해 들어 3번째 노동자 분신이다. 생명엔 다행히 지장이 없다. 현재 한강 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고씨와 함께 분신을 시도한 박태순씨는 현재 안산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경찰에서는 현재 고씨와 박씨가 분신한 것이 아닌 '방화'를 시도했다고 판단,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우유의 홍보팀 관계자도 "정문 앞에 설치한 CCTV 녹화 내용을 관찰한 결과, 고씨는 냉동탑차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며 "분신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방화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방화가 아닌 분신'이라며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은 노동자의 절망이 분신으로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태의 본질은 방화냐, 분신이냐가 아닌 고씨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는 것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합장 나와 대화하자... 2시간 동안 정문 앞 농성해

고씨가 분신을 한 시각은 31일 새벽 1시 30분, 그가 천막 농성장에서 사라진 시간은 30일 밤 11 30분경으로 알려졌다.

31일 오후 6시 정신을 깬 고씨의 증언에 의하면 박씨와 함께 자신의 차를 몰고 11시 30분경 회사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에 차를 주차한 뒤, 차 지붕 위에서 휘발유를 차에 뿌리며 "조합장 나와라, 안 나오면 여기서 죽겠다"고 외쳤다고 한다.

△서울우유 안산공장 앞에서 조합원들이 집행부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조합장은 나오지 않았고, 이들의 심야 농성은 2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새벽 1시 30분경 서울우유 노조의 부위원장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오지 말 것을 종용했지만 부위원장은 이에 불복, 계속 접근하자 휘발유를 뿌린 자신의 화물차에 불을 붙였다.

박씨는 불길이 일자 급한 마음에 차 지붕에서 뛰어내렸고 고씨는 뛰어내리지 않아 팔과 다리에 3도의 화상을 입었다.

그는 왜 분신했는가 - ① 회사의 노조 불인정

그는 그럼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까. 생명과도 같은 자신의 운반차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기고, 거기다가 자신의 몸에도 불을 놓는 일을 왜 했던 것일까.

서울우유지회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파업이 16일이 지났음에도 교섭 한번 응하지 않는 회사의 무대응 전략을 지적했다.

서울우유지회에서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체협약 체결'과 '노조활동 보장' 2가지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운송차주는 개인 사업자로, 노조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운송업자들은 서울우유와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 자회사와 계약을 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서울우유와 계약을 맺은 자회사, 즉 운송차주들과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들은 '단체협약권을 운송차주와 맺을 경우 서울우유에서 우리와의 계약을 해지 할 것이기 때문에 단협을 맺을 수 없다'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서울우유의 하청업체 압박과 노조 무시전략이 파업 15일 동안 대화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었다.

그는 왜 분신했는가 - ② 회사의 노조탄압 정책

그렇다고 회사가 노조에 무대응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 노조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당시엔 조합원이 350명이었다. 파업에 참가한 거창, 안산, 양주, 용인 지역 조합원들이 대략 500여명인것을 비춰본다면 상당한 참여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합원들의 참여율은 파업 보름이 넘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행합의서에는 앞으로 조합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노조측은 이를 두고 노조와해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무엇보다도 회사측의 노조와해 공작이 컸다. 서울우유지회 거창분회 전장운 조합원은 "며칠 전 회사에서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거창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을 관광버스로 대절해 서울까지 데리고 온 적도 있다"며 "회사측에서는 가족들을 회유해 지속적으로 노조를 와해시키려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외에도 일정 기간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조합원들 집에 사측이 계약이 해제됐다는 내용증명서를 반복해서 보내는 것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가족들에겐 증명서를 받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우유지회 장규호 조합원은 "사측의 회유에 의해 빠져나가는 조합원들을 지켜보면서 고씨는 매우 속이 상해했다"고 했다. 화도 많이 나고 섭섭해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그는 왜 분신했는가 - ③ 사측과 동일한 서울우유 노조의 활동

사측이 앞에서는 교섭 불응으로 일관하고, 뒤로는 노조 와해 공작을 자행하자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고씨가 이러한 일을 벌였다고 동료들은 판단했다.

그렇담 왜 서울우유노조 부위원장이 나타나자 불을 댕겼을까.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 이봉주 본부장은 "한국노총 소속의 서울우유 노조 부위원장은 그동안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며 "이 사람이 나타나자 그동안 쌓인 분노를 참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화물노조원들은 파업에 돌입하고서도 회사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지 못했다. 서울우유 노조에서 미리 집회신고를 11월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31일 오후 6시에는 500여명의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참석, 오후 2시 30분경 자행된 경찰의 노조탄압을 규탄했다. ⓒ민중의소리



장규호 화물연대 서울우유지부 조합원은 "우리들이 회사 앞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게 서울우유노조는 자신들이 집회를 하지 않지만 집회신고를 냈다"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 서울우유노조의 방해로 인해 고씨가 분신한 날인 31일 회사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려던 서울우유지회 조합원 91명은 불법집회로 경찰에 강제연행 당했다.

당시 자리에 있던 조합원들에 의하면 앉아 있는 상태임에도 경찰들이 진입, 방패로 노동자들을 내리치는 등 폭력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1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서울우유지회는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1일 오후 3시에도 '단체협약 체결'과 '노조 인정'을 외치며 집회를 진행한다. 험한 노동환경 속에서 죽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살기 위한 싸움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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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사태 규탄하던 서울우유 조합원, 마구잡이 폭력 연행
/ 참세상 허환주 기자

2007년 10월 31일

오늘(31일) 오전, 조합원 두 명을 분신으로 몰아간 서울우유 사측을 규탄하기 위해 집회를 열던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2시 30분 경 전원 연행되었다
"근조! 네이버·선관위, 근조! 민주주의"
당국·포털, 선거법 들이대며 온라인 대선논의 누리꾼 입에 재갈
 
인터넷저널 임동현 기자
 
"MBC(명박씨),  동영타일, 국현우리옷... 모두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 선관위는 서둘러 이들의 이름을 바꾸는 조치를 취해라. '민주주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 말도 특정정당이 연상되나?"
 
선관위 게시판에 남긴 한 누리꾼의 글은 최근 누리꾼들의 분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대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려는 누리꾼들은 지금 사방의 벽에 가로막혔다.
 
우연의 일치인가? 누리꾼을 막은 벽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선거법 93조를 비난하는 누리꾼들의 글로 가득하다.     ©인터넷저널

포털 1위라는 네이버는 정치관련 기사의 댓글을 차단했다. 조중동의 정치기사는 메인톱으로 버젓이 올라가고 특정 후보에 불리한 기사는 메인에 오르지조차 않는다. 실리더라도 한참 지나서야 실린다. 누리꾼에게 '조용히 하고, 주는데로 보라'는 격이다.
 
선관위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을 게시할 수 없다'는 선거법 93조를 들이대며 누리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다. 포털이든 언론사이트든 누리꾼들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만 하면 바로 경찰의 '출석요구서'가 날아온다.
 
선거법 93조로도 모자라 한나라당은 지난 5월 선관위뿐 아니라 정당도 포털이나 언론사에 글을 올린 이용자의 신원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제강화 법안을 발의했다. 누리꾼들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이 누리꾼의 입을 막으면 이번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일까?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포털과 당국의 재갈에 누리꾼들은 대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빼앗긴 것이다. 사방에 벽을 쳐놓은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  "젊은 사람들은 대선에 관심이 없다", "대선이 인터넷에서는 크게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 관련기사 스크랩도 선거법 위반"

김모씨는 얼마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자신이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서 수모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온라인으로 기사를 보다가 맘에 드는 게 있어 이걸 자신의 블로그에 옮기기만 했을 뿐인데 선거법위반 혐의로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며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2~3주 전 김씨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대선과 관련된 기사가 재미있어 10개 가량을 자신의 블로그에 옮겼다. 문제가 될까봐 자신의 생각을 배제한 채 기사 내용과 날짜, 언론사 이름, 기자 이름 등 출처도 밝혔다. 그가 옮긴 기사 중에는 '이명박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그림 화일도 있었다. 며칠 뒤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직접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명박 괜찮은가?'라는 그림 화일이 화근이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특정 후보를 비난한 것도 아닌 신문기사를 스크랩했을 뿐이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뒤 바로 삭제를 했는데, 자신이 왜 선거법 위반자이고 범죄자가 되어야하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안내글을 보니 제가 한 일이 별 문제될 게 없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날 범죄자 취급을 하니... 뒤통수를 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시민을 범인으로 만드는 유신체제로 돌아간 것도 아닐테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런 취지의 글을 선관위 게시판에 남기고 "바로 답변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선관위의 답변은 아직까지 없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라', 누리꾼들의 외침 
 
특정 후보에 대한 자랑과 비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선거법 93조가 누리꾼들의 입을 막는 악법으로 전락하고 있다. '후보 이름 올리는 것조차 선거법 위반이라면 천심을 거스르는 일이다', '언론사 사장도 선거법 위반한거다. 전원 구속시켜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기에 헌법소원을 내자'는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커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게시판이 지나친 욕설과 근거없는 후보 비난 혹은 칭찬의 글들로 도배가 되기 때문에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며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갈수록 그런 누리꾼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포털 다음에 실린 정치 관련 댓글들을 보면 누리꾼들의 의식이 성숙해져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전처럼 무조건적인 깎아내리기나 띄우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근거를 제시하며 나름대로의 분석을 적고 있다. 특정 후보에 대한 칭찬이나 비판도 감정적인 글보다 논리적인 글들이 많아지고 있다.
 
댓글이 단순히 감정을 내뱉는 배출구가 아니라 대선에 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토론 매체로 자리잡은 것이다. 분명 누리꾼의 의식은 성숙해졌다. 하지만 그 성숙함을 보여주는 토론의 장이 막혔으니 누리꾼들의 답답함이 오죽하겠는가? '제2의 언론통폐합', '유신시대의 부활'이란 말을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안티네이버 운동, 헌법소원 제청 호소..."

지금 다음 아고라, 티스토리(블로그사이트) 등은 누리꾼들의 '안티 네이버' 운동으로 뜨겁다. 네이버에 접속하지 않고 회원으로만 있어도 포털 1위가 유지된다면서 탈퇴 선언을 하고 네이버와 선관위,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글들을 남기며 탈퇴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센 비난에도 네이버의 게시판은 굳게 닫혀있다. 선관위는 '법 제정은 국회가 하는 것'이라고 남의 탓을 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언론(포털) 권력은 '침묵의 카르텔'을 구성해 누리꾼들의 항복을 받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열망으로 이뤄져야하는 대선. 하지만 지금의 대선은 이런 열망들을 죽이는 분위기다. 그 열망이 죽는 순간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그래서 누리꾼들은 온라인을 떠돌며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근조 네이버, 근조 선관위, 민주주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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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빈민, 고양시장.한나라당 규탄
“11일 총궐기로 빈민이 주인 되는 세상 만들자!”
민중의소리 차성은 기자    메일보내기

  

전노련, '반민생정당 한나라당 규탄' 집회
  
  
  
  촬영/편집 최재덕

  
  
△"이근재를 살려내라" 한나라당 규탄집회에 참석해 팔을 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이 땅 민중의 삶이 읽혀진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노점상인 등 도시빈민들이 노점상 故 이근재씨의 죽음과 관련해 한나라당 소속 고양시장의 사과를 촉구하고, 노점단속 등으로 빈민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한나라당을 규탄했다.
  
  전국노점상총연합(이하 전노련) 소속 노점상과 도시빈민 및 시민단체회원 300여명은 2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노점생존권 말살, 반민생정당 한나라당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지난 10월 11일 고양시의 강력한 노점단속에 비관 자살한 노점상 故 이근재씨의 죽음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고양시장의 사과를 촉구하고,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의 노점단속 등 생존권 위협에 항의하는 자리였다.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심호섭 의장은 “한나라당 소속 시장과 구청장들은 서민들 복지에 써야 할 어마어마한 돈을 노점상과 빈민들을 때려잡기 위한 용역깡패를 사는데 사용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노점생존권 말살, 반민생정당 한나라당 규탄한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서울지역가판점총연합 나주봉 의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3625명의 서울지역 가판점 회원들에게 3년간 영업을 보장해 주겠다며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을 밀어달라고 해서 가판점 회원들이 한나라당에 집단 입당도 하고 5만여 표를 몰아줬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이명박과 오세훈은 약속을 어기고 600여명의 회원들을 내년 1월에 강제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며 이명박 후보와 오세훈 시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김진환 전노련 서울 송파지역장은 ““이근재 동지의 죽음에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하라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고양시장이 거절해 20일이 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는 우리의 투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더 조직적이고 강력한 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노점상과 빈민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11일 민중총궐기 투쟁으로 세상을 확 바꿔 빈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노점상 대표 4명은 故 이근재씨의 죽음에 대한 고양시장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한나라당 중앙당 민원국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민원국장은 “고양시에 잘 해결하라고 했지만 고양시장이 이씨의 죽음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는 답변만 할 뿐 적극적인 문제해결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전노련은 오는 5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故 이근재씨의 죽음과 노점생존권 대책 마련을 정부에 직접 촉구하기로 했다. 또 같은 날 경기도 고양시청 앞에서 2천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다.
  
  
△유독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노점단속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노점상인 등 도시빈민들의 한나라당 규탄 집회가 이근재씨 죽음이후 세번째를 맞았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이근재를 살려내라!" "노점생존권 말살, 반민생정당 한나라당 규탄한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2007년11월02일 ⓒ민중의소리

다국적 노동자밴드, 버마 민중 위해 나섰다
11월 4일 손현숙&스탑크랙다운 버마 헌정 콘서트 열어
오마이뉴스 김대홍 (bugulbugul)

버마 '강요된 침묵' 속 6000명 구금상태 - <경향신문>(10월30일)
미얀마 민주화 시위 이끈 승려 태국으로 탈출 - <한국일보>(10월26일)
유혈사태 한달째…미얀마 군부, 양곤 시내에 군경 수백명 배치 - 뉴시스(10월26일)

 

   
손현숙과 스탑크랙다운이 함께 만드는 '울타리 없는 세상을 위한 콘서트'. 11월 4일 열리는 이번 공연 주제는 '버마를 위한 기도'다.
ⓒ 스탑크랙다운
손현숙

사망자가 최대 1천명에 달한다고 알려진 지난 9월 버마 민주화 시위. 국내에서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을 이들은 다국적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 탄압을 중단하라)'이다.

 

이 밴드는 버마 출신인 소모뚜(기타), 소띠하(베이스)를 비롯해 네팔 출신인 미누(보컬), 인도네시아 출신인 해리(키보드), 한국인 송명훈(드럼) 등 다섯 명으로 이뤄져 있다.

 

단원 중 두 명이 버마 출신인데다, 송명훈을 빼면 모두 이주노동자 출신들로 버마 문제에 대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11월 4일 서울 홍대 클럽 타에서 '울타리 없는 노래 콘서트-버마를 위한 기도'를 펼친다.

 

세 번째 공연을 버마 민중에게 헌정하기로 한 그들은 지난해 5월 인권콘서트 공연장에서는 그 당시 사망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에게 노래를 바친 바 있다.

 

2005년 '울타리 없는 세상을 위한 콘서트'부터 스탑크랙다운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온 손현숙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버마 노래를 번안한 '어머니의 집'을 비롯해 스탑크랙다운 2집 <자유>에 실린 '월급날' '베트남아가씨',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를 예정이다.

 

더불어 버마 가수 와이맷쵸가 나와서 버마 민주화를 염원하는 노래 '뚜에띳사' '하아도 쩡따' 등을 들려주며 버마의 투쟁을 그린 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이번 콘서트는 버마민중학살규탄과민주화지지긴급행동, 버마국민운동촉진위원회, 이주노동자의방송(MWTV),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이 같이 준비해 더욱 뜻깊다.

 

   
스탑크랙다운 단원들. 이번에 한국인 송명호씨가 들어가면서 이주노동자 밴드에서 다국적노동자밴드로 탈바꿈했다.
ⓒ 스탑크랙다운
스탑크랙다운

 

스탑크랙다운을 이끌고 있는 미누씨는 "벌써 움직여야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며 버마 사태에 대해 말문을 연 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공연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행사를 기획한 이종수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 대표는 "몸으로 하는 항의도 필요하지만 문화를 통한 항의도 필요하다"고 공연의 의미를 나타냈다.

 

한번 이번 콘서트 기금은 버마 민주화 운동에 쓰이며, 2집 <자유> 판매 기금은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에 쓰인다.

 

스탑크랙다운과 손현숙은 누구?

스탑크랙다운은 2003년 11월 15일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시작된 미등록노동자 단속에 맞서 결성됐다. 당시 이주노동자 천막농성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즉석에서 만든 그룹이 스탑크랙다운이다.

 

천막 안에서 1집을 만들어낸 이들은 전기부품공장, 종이공장, 철판공장, 봉제공장 등에서 일하며 주말에 모여 연습을 한다. 각 지역 노동자센터 및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공연한 이들은 대학축제, 종교축제, 노동단체 연대행사 등에 출연했으며 최근 2집 <자유>를 내놓았다.

 

록그룹 '천지인'에서 '청계천8가'를 불렀던 손현숙은 1998년 1집 <아름다운 약속>, 2004년 2집 <그대였군요>, 2007년 싱글음반 <손현숙 노래이야기1 : 문답무용 (問答無用)>을 내놓았다.

 

6·10민주화운동기념 386콘서트, 콘서트 '자유', 김광석 추모 콘서트, 일본 오사카 손현숙 포크콘서트, 한반도 상생과 평화를 위한 한국문학평화포럼 주최 여주문학축전 '손현숙 작은 콘서트' 등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노총 어느선까지 알았나?

정해진씨 죽음에 드러난 자본-용역과의 기이한 삼각편대
 민중의소리  문형구 기자    메일보내기

  

△지난 19일 인천 전기분과 농성장을 침탈한 한국노총 경인전기원노조 ⓒ사진제공=전국건설노동조합

  
  건설노동자 정해진(48)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노조 파괴공작에 한국노총이 깊숙이 관여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신선대 부두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사건 이후 잠잠했던 한국노총의 정체성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 전기분과(민주노총)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지 만 4개월째이 되던 지난 19일, 한국노총 조끼를 입은 30여명의 신원미상자들이 농성장에 들이닥쳐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민중의소리> 취재 결과 이들은, 소수의 사측 관리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부천 소재의 경비업체인 'ㅊ'시큐리티 대원들이었음이 확인됐다. 이 경호대원들이 한국노총에 가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있다.
  
  그러나 정해진 씨가 일했던 영진전업을 비롯한 업체에는 실제로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가 설립되어 있다. 인천 전기 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만들어진 '한국노총 경인전기원노조'는 사용자의 이익 대표자가 포함된 전형적인 어용노조다. 유해성 사장의 사촌 황모 씨와 친형인 해철(영진전업 전무이기도 함)씨가 각각 노조 위원장과 사무장을 맡고있다. 이들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협박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 노조로써 관제집회도 벌여왔으며, 무력동원도 잦아져 분신 당일인 27일 아침에도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용역 고용에 대해 한국노총 내의 어느 선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 안개속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으로서는 정 씨의 분신사망 사건에 대해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업별노조도 아닌 경기인천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업종노조가 버젓이 사용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실로 사용자와 용역경비업체에 더해 한국노총이 파업파괴에 가담한 듯한 모양새 때문이다.
  
  한국노총 강익구 홍보선전본부장은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개입됐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한국노총은 27일 정 씨의 분신사망 사건에 일절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본지 기자에게는 사태의 진상을 알았다면 (경인전기원노조에 대해)사전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고 정해진 씨 동료들의 반응은 다르다. 한강성심병원을 지키고 있던 한 조합원은 "노노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한국노총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지역에서 일하는 한국노총 소속의 한 관계자도 "(경인전기원노조는)노총 소속이고 한국노총 조합원들이라고 보면 된다"며 "용역이 개입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정 씨의 분신사망은 진상규명이 다 되지 않았다. 정 씨는 자세한 유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다만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인천전기원노조 파업 정당하다. 유해성을 구속하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때문에 묵묵하게 노조활동에 앞장섰던 정 씨의 분신 원인은, 파업의 요구와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을 토대로, 또한 최근의 정황들을 통해 밝혀져야 하는 상황이다. 열쇠는 사측인 유 씨 일가와 한국노총이 쥐고 있다.


2007년10월28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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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오늘 오후 인천 부평구 창천동 영진전업사 앞에서
집회 도중 분신한 정해진 건설노조 조합원이 7시간 여 만인 오후 9시경 끝내 숨졌다.
"파업투쟁 정당하다, 유해상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인 정해진 조합원은
분신 직후 부천 순천향병원에서 1차 응급치료를 거쳐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 등 치료를 받았으나 전신 40%정도에 3-4도의 화상으로 상태가 위독해 끝내 숨을 거두었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현재 한강성심병원에 모여
대책회의를 진행중이며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이 병원으로 모이고 있다
[참세상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 2007년10월27일 21시44분]


전국건설노조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투쟁경과

- 2007년 2월 28일 1차 교섭 시작.
- 2월부터 5월까지 10차례 교섭 진행.
- 6월 7일 지방노동위원회 조정 신청.
- 6월 12일 총파업 찬반투표 진행, 찬성 88%로 가결.
- 6월 18일 한전 인천사업본부 배전협력업체 13개 업체 중 2개 업체가 조정안 거부해 지노위 조정중지 결정.
- 6월 19일 전기분과 총파업 돌입.
- 한전 인천사업본부 앞 천막농성 돌입 후 한국전기공사협회 인천시회 앞으로 이동해 진행 중.
- 총파업 진행 중 사측의 교섭 및 체결권을 위임받은 사측 대표 유해성 사장((주)대진전설 대표, 부인 명의 (주)영진 운영, 인우회 대표 - 인천지역 단가업체 사용자모임)과 몇 차례의 면담과 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점 없이 결렬됨.
- 9월 3일 영진전업, 대진전설 앞 ‘노동조합 파괴주검 유해성 규탄과 인천전기원 투쟁파업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개최
- 9월 11일 전국 전기원노동자 인천 집결, 지역 전기공사업체 집중투쟁 돌입
- 9월 13일 사측 대표 유해성 교섭 및 체결권 철회해 10개 단가업체들과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사측은 10월 초에 다음 교섭을 하자는 등 교섭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확인시켜 줌
- 9월 20일 인천시청 기자실에서 ‘전국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 한국전력 인천사업본부 앞 ‘불법하도급 철폐! 노동안정 보장! 한국전력 규탁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 개최
- 10월 2일 천막농성장 전기공사협회 인천시회에서 영진전업 앞으로 이동, 단협 체결하지 않은 11개 업체 집중투쟁 돌입
- 10월 16일 인청시청 기자실에서 ‘노동자 부당전적, 급여 축소 신고를 통한 사업주 책임 회피, 허위 근로대장을 통한 탈세 등 인천지역 전기공사업체 위법행위 사례발표’ 기자회견
- 10월 19일 새벽 6시경 한국노총 조끼 입은 구사대 30여명 영진전업 앞 천막농성장 침탈 폭력 행사
- 10월 27일 낮 1시54분경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정해진 조합원 영진전업 앞 집회 도중 분신, 저녁 9시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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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정해진 열사 관련 한국전력 앞에서 집회

건설노조 “원청인 한국전력공사가 문제”,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실시

참세상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7년11월02일 11시27분

 

오는 6일, 정해진 열사가 원청인 한국전력공사 앞에 선다.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는 어제(1일) 긴급 중앙위원회를 열고 정해진 열사 관련 투쟁계획을 확정했다. 건설노조는 한국전력공사과 영진전업, 산업자원부 등을 대상으로 집중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 첫 번째로 한국전력공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 개최를 결정한 것. 이에 집회는 건설노조의 상급단체인 건설연맹의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다.

건설노조와 건설연맹은 “정해진 열사가 분신에 이르게 된 중심에 영진전업의 실권자이고 인천지역 27개 전기업체 단체교섭권을 위임받은 유해성 사장이 있고, 이 뿐 아니라 한국전력공사라는 원청이 있다”라는 판단을 했다.

이런 한국전력공사의 협력업체 관리의 문제점은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임종인 의원은 “실제 한국전력의 배전공사를 낙찰받기 위해 무정전업체로 등록한 후 낙찰되어 실제 시공할 때는 전기공사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있는 실정”이라며 “무정전업체의 난립은 업체들의 시공능력 저하, 안전사고의 증가, 불법적인 하도급, 기능자격증의 불법임대 등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오늘(2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계획을 마련한다.

한편, 노동부는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이번 사태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편견’지우고 화해·상생 한마당…이주 사망노동자 천도재
입력: 2007년 10월 25일 17:52:38      경향신문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네팔 출신 삼세르 바하두르 타칼리는 2001년 한국에 와서 5년간 노동일을 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철거를 앞둔 자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수첩에는 일했던 회사, 노동 시간, 월급, 송금한 돈의 내역과 함께 ‘한국이 지옥 같다’는 등의 아픈 사연들이 가득했다. 이처럼 한 이주 노동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지만 동료들은 알고도 신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타칼리뿐 아니라 그의 동료들 역시 불법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서울 종로 조계사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수계법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들이 합장하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2만명을 웃돌고 있다. 최근 들어 불법체류가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인권단체들은 지난 20년간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3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종교계가 사망 이주노동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마련한다. 28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는 산업재해 등으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천도재가 열린다. 형식은 불교의식인 천도재이지만 네팔, 필리핀, 스리랑카, 버마, 방글라데시, 몽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 출신의 성직자들이 참여, 각 나라의 전통과 종교 관습에 따른 고유의 추모의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천도재에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 등 여러 종교단체가 참여했다. 화계사와 조계종 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조계종 중앙신도회, ‘화해상생마당’, 정토회(평화재단), 네팔불자모임 등이 공동 주관한다. 천도재봉행위원회에는 월주 스님, 도문 스님,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 김동환 천도교 교령 등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했다. 화계사 회주 설정 스님과 박종화 경동교회 목사가 봉행위원장을,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과 네팔 불자모임 나렌드라 회장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은 “산업재해와 과로사 등 사망 원인은 다양하지만 사망에 대한 보상이나 가족에 대한 배려 없이 죽음을 훼손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종교계가 힘을 합쳐 불행한 이주노동자들의 망령을 위로하고 해원, 상생, 참회를 함으로써 이주노동자 인권 개선의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는 각 나라별 천도·추모의식, 참가자 분양 및 헌화, 이주노동자 영화 상영 등으로 이루어진다. 화계사는 추모재가 끝난 뒤 이주노동자 등 참가자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추모재에 맞춰 이 땅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명단을 담은 이주사망노동자 실태·현황 자료집이 발간된다. 현재 사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파악해 관리하는 곳이 없다. 주최 측은 이번 천도재를 함께 준비한 7개국 이주노동자공동체와 중소기업청, 노동부, 이주노동조합의 자료를 취합해 1000여명의 사망자 명단을 작성했다. 자료집 발간작업을 맡고 있는 화계사 중원 스님은 “이 숫자는 사망 이주노동자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그것도 사망 경위, 사후 처리 등의 기록은 찾지 못했다”면서 “이 명단은 우리 사회에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는 소중한 근거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부영 화해상생마당 운영위원(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보편적 인권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 땅의 부조리는 다민족 다문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편견과 차별의 뿌리를 잘라내 그들이 동등한 인격의 주체로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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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일) 한국 땅에서 사망하신 이주 노동자들의 넋을 달래고
그 동료들과 함께 해원하는 <이주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를 열고자 합니다.

지난 10 여 년간 한국사회에서 산재 및 여러 가지 사연으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수가
3000명이 넘는 현실 속에 이들 죽음을 위로하고,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부당한 대우를 사회적 참회를 통해 개선하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 동안 사회 각계에 계신 분들의 성원과 조언을 바탕으로 천도재가 준비되고 있으며,
특히 네팔, 방글라데시, 필리핀, 몽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이주노동자 공동체 대표와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행사준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금번 천도재 봉행으로 우리사회가 인종, 국가, 언어,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여
보다 성숙하고 열려있는, 인류애 실현의 터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에 각계 각층 사회의 모든 분들과 이주노동자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자 하오니
바쁘시더라도 이번 천도재 행사에 참석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습니다.

행사명 : 이주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
일   시 : 2007년 10월 28일(일)  오후 2시 - 5시
장   소 : 서울 수유동 화계사 (우천시 대적광전)
주   최 : 이주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 봉행위원회

  
봉행위원장 : 설 정(화계사 회주)    
집행위원장 : 수 경(화계사 주지)  두 손 모음



이주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 봉행위원회  
서울 특별시 강북구 수유1동 487 화계사 내  
전  화: 02) 902-2663, 762-0530 Fax:  02)990-1885  
(직  통:  총괄팀장 중현 (011-9838-4230), 김경화(016-721-0530)

 

 

 


 

 

★방송 계획(2부작)

- 1부 <끝나지 않은 유랑> : 2007. 10. 19(금) 18:50~19:45  [ 다시보기 ]

- 2부 <다시 조상의 땅에서> : 2007. 10. 26(금) 18:50~19:45
 

 [시청자 의견 바로가기]

                                                                                                           

■ 기획의도

연해주 고려인 강제이주 70년을 맞아 현재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 이 연해주로 복귀 재정착하는 프로젝트를 휴먼 다큐로 구성함. 고려인 70년의 영광과 좌절, 조상의 땅 연해주로 귀향하는 고려인들의 삶과 사연을 통해 오늘 의 한국인들에게 고려인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일깨우고자 함.

특히, 본 프로그램은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 14명(4가족)을 중심으로, 그들 이 조상의 땅 연해주를 찾아 떠나는 애달픈 사연과, 70년 전 조상들이 눈물로 지나왔던 6천 킬로미터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고난의 여 정, 연해주에 도착해 척박한 여건에서 새로운 희망을 개척하는 고려인들의 불굴 의 집념을 담는다.

 

 

♠ 프로그램 배경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는 약 54만 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 1860 년대부터 굶주림을 피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로 옮겨 간 고려인들은 1937년 18만 명 전원이 영문도 모른 채 수 천 킬로미터 떨어 진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역경 을 극복하고 특유의 생명력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농업혁명을 이루어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신화 창조의 주역이 되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중앙아시아의 여러 독립국가에 흩어져 살 게 된 고려인들은 신생국의 민족주의 정책으로 소외된 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무국적 상태에서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다. 과거의 부와 지위를 잃 은 채 곤궁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고려인들 중에는 새로운 삶을 찾아 이웃 나라로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제 1부, 끝나지 않은 유랑>

 

- 프롤로그

 9월12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역은 눈물 바다였다.

 

- 고려인 청년의 꿈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사는 고려인 3세 최 아르까지(20세)의 꿈 은 태권도. 태권도 2단인 그는 국내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지만 태권도를 계 속할 형편이 못 된다. 또, 경찰의 감시를 피해 영화 음반 해적판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는 7년 전 헤어져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누나와 이별해야 한다. 하지만, 연해주에 가서 태권도의 꿈을 이루 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아들 딸의 미래를 위하여

 우즈베키스탄 쉬린 시에 사는 전기 기술자 정 사샤 (43세)는 연해주로 이 주하는 것에 반대한다. 자신의 기술로 직업을 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 문. 그러나, 아내 김 옥산나(36세)는 딸(16세)과 두 아들(13세, 2세)의 미래 를 위해 연해주로 떠날 것을 고집하며 남편과 대립한다. 결국, 남편을 설득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옥산나는 이제 진짜 고민이다. 임신 7개월째인 몸으 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9일 동안의 6,000Km 기차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 다민족 가족의 고민

 반찬 장사를 하는 고려인 2세 유 예브게니(47세)는 우즈베키스탄인 아내 므흐따바르(42세)를 설득해 연해주로 가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장인 장모에 게 허락을 받지 못했다. 큰 아들 유 세르게이(19세)는 타타르인 애인 레나 (17세)를 두고 떠날 수 없어 고민한다. 두 사람은 고려인 1세대 할머니의 반 대를 무릅쓰고 우선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막내 아들 유 스타니 슬라브(12세)는 학교 친구들과 이별을 슬퍼한다.

 

- 70년 만의 귀향

 70년 전 수만 명의 고려인들이 연해주를 떠난 지 40여 일 만에 도착해 첫 발을 디뎠던 낯선 역. 이제 그들의 3세, 4세 후손들이 다시 ‘떠나는 자’와 ‘남 는 자’로 나뉘어 이별의 고통을 나눈다.

 

 

 

<제 2부, 다시 조상의 땅에서 >

 

- 시베리아 행 고난의 6천 킬로미터 여정을 떠나다.

 

- 70년 전의 비극

 1세대 고려인들의 고통스런 강제이주 증언

 

- 국경을 넘다

 삼엄한 검색 속에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 러시아 3개국을 지나며, 고려인을 실은 열차는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향한다.

 

- 고난의 여정

 임신 7개월의 김 옥산나의 고통. 가족을 두고 떠난 어린 신부 레나의 슬픔. 두고 온 손자를 잊지 못하는 이순생 할머니는 창밖만 바라보고...

 

- 아! 바이칼호

 타슈켄트 역을 떠난 지 7일째, 고려인 14명의 열차 여정은 갈수록 힘겹다.

그러나, 처음 낯설었던 4가족은 어려움을 나누며 점차 한 가족처럼 정이 깊어간다.

 

- 애타는 연해주 마을

 연해주 고려인들은 가족들 맞을 준비로 바쁘다. 그러나, 금년 농사가 흉작 이라 이주자의 집을 장만할 형편이 못 된다. 장비와 일손도 부족해서 애만 탄다.

 

- 유랑의 끝은?

 연해주 우스리스크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실망 실망이다. 들어가 살 집은 아직 수리가 안 끝났고, 국적도 없어 일자리도 얻을 수 없다.

 

- 고려인은 울지 않는다.

 실망과 좌절로 누워 있는 남편... 그러나, 김 옥산나는 강한 고려인이다.

“나는 울면 안 된다. 내가 울면 우리 가족이 다 무너진다”며 이를 악문다.

 

- 조상의 땅에서 희망찾기

 최 아르까지는 북한식 태권도를 배웠기에 태권도장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고려인 태권도 사범과 고려인 지원단체가 길을 제시한다.

유 예브게니는 아내와 함께 젖소 기르기에 열중이고, 정 사샤는 농장 건설 현 장에서 전기공사를 맡게 된다. 좌절하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한국의 기업과 고려인 지원단체에서 트랙터와 가축 등 농사 기반을 제공하며, 고려인들은 농장 건설에 일자리를 찾게 된다.

 

- 또다시 고려인으로

 현지 러시아인들과 어울리는 축제를 열고, 한글과 풍물을 배우며, 부지런하 고 끈질겼던 옛 조상들의 모습으로 다가간다.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청와대 앞 분신
'1988년 우리마당 피습사건' 진실 규명 요구해
민중의소리  윤보중 기자    메일보내기  

  "민주와 통일을 사칭하며, 당국의 음모에 타협과 협잡을 일삼는 자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십시요" - 김기종 대표의 유서 中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19일 오후 1시 28분경, 청와대 앞 사랑방 부근 분수대 근처에서 분신을 기도해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이다.
  
  당시 김 대표는 인화물질을 휴대하지 않고 플래카드 등에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했으며, 이를 본 경찰들이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끈 뒤 곧바로 병원에 이송했다. 병원측에 따르면 김 대표는 온몸에 2∼3도의 화상을 입어 수일 경과를 지켜봐야 소생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지난 1988년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였던 우리마당 사무실에 북파공작원이 침투해, 자고 있던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서류를 훔쳐 달아났다며 이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줄 곧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12월 <시사저널>(788호)은 5.6공 시절 야당 정치인과 재야 인사의 정치테러에 가담했던 북파공작원 출신 이종일씨의 증언을 통해 이 사건이 이종일 씨를 비롯한 북파공작원들의 소행임을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9주째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김 대표는 이 사실을 주목받기 위해 결국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다다랐다.
  
  김 대표가 분신한 청와대 앞은 인화성 물질을 반입하는 것이 검문검색 등을 통해 사전에 차단되는 까닭에, 김 대표는 플랜카드 등 불에 잘 붙는 물품을 이용하여 몸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25년간 명맥을 유지해 온 우리마당은 80년대 초 창립해 역사 단절을 문화적 측면에서 극복하고자 민속문화 연구 및 보급 활동을 했다.
  
  특히 우리마당은 '풍물','탈춤','국악','판소리' 등 우리 문화의 보급 속에서 자연스럽게 분단으로 빚어진 남북문화의 이질화를 해소하고자 문익환 목사를 위원장으로 '통일문화큰잔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마당은 '2차 통일문화큰잔치' 준비 도중 보안사부대가 보낸 북파공작원들에 의해 사무실을 피습당하면서 2차 대회가 좌절됐다.
  
  한편, 김 대표는 평소 노무현 대통령,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마당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진실 규명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비판해 왔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이 집필한 저서 중에는 우리마당 주최로 열렸던 강연의 교재인 <제2기 새터주민교실 강연- 법의 사법및 입법과정,1993.9.13>이 있으며 김칠준 사무총장 또한 우리마당에서 주최한 생활법률교실에서 여성과 법문제로 강연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기종 대표의 유서 전문>

  
  지난 실천 되짚으며, 남는 실천을 여러분께
  
  ‘놈’과 ‘사람’이라는 전라 경상의 지역 갈등에서 새롭게 깨달은 분단의 아픔을 씻고자, 전래 민족문화를 통한 동질성을 확보, ‘통일’ 꿈을 실천해 본 지난 과정은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공동 개최 주장은 무산되었지만, ‘통일문화큰잔치’ 행사 준비는 국위선양 못지않게 파생될 남북 갈등을 염려하며 마련한 소중한 자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문화큰잔치’ 준비 과정에서 당한 8월 17일 새벽의 ‘우리마당 피습사건’.
  
  그 사건 발생 후 수사 기관과 언론, 국회는 웬일인지 사건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고, ‘우리마당’을 폐쇄시키려는 음모와 더불어 자행되는 당국의 끊임없는 탄압은 숱한 사업과 활동을 막바지에 거듭 무산시키고, 결국 많은 회원들을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버티겠다는 의지로 직간접 압박에 타협하지 않고 버텨온 20년째, 마당지기 어언 25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피습사건’ 진실규명 요구하는 청와대 앞 1인 시위 9주째를 핑계로 분신을 결행하는 저의 마지막 글입니다.
  
  민주와 통일을 사칭하며, 당국 음모에 타협과 협잡을 일삼는 자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4340(2007)년 10월 19일 김 기 종 드림
  
  
  [김기종의 마지막 남기는 글]
  
  광주에서 성장하면서 부모님들 바램처럼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고자 목표했던 서울대 법대, 그러나 입시 실패로 시작된 서울 생활에서 접하는 숱한 사회 모순들은, 청년기에 접어든 저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즉 어떤 학습보다도 입시 실패가, 사회 모순 혁파의 뜨거운 실천 의지를 갖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막연했던 전라, 경상의 지역 갈등 모순에 대해 일찍 눈 뜨고, 아예 삼수 시절에는 함께 공부하는 아우들이 ‘놈과 사람’이라 호칭하면, 왜 썼는지 따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이용하는 세력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함께 ‘북한 놈’ 호칭을 대신하는 용어로써 "우리”라는 말을 찾아내고, “우리”를 통한 실천 의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광화문 일대의 유신정권 유지를 위한 모습에서 “통일”이 더욱 멀어져 가는 걸 목도하였고, ‘동서’ 지역감정이 존재하면 ‘남북’ 분단 역시 해소될 수 없다는 각성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과, 공동체 구현의 실천을 체득하였습니다.
  
  물론 고시를 통해 사회지도자로써 실천하려는 명분을 다짐, 후기 성균관대 법대에 우선 입학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사회 모순을 헤쳐 나가겠다는 다짐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켜보았으나, 막상 제가 접하는 모순의 심각함은 보다 실천적인 책무를 가져주었을 따름입니다.
  
  결국 입시 실패에 대한 자책감에 치를 떨며 대학생활과 함께 오기(?)로 꾸렸던 소위 네번째 재수 생활, 여기에서 만난 아우들, 이들과 함께 ‘바회’ 모임을 결성하여 모순을 토론하며 구렁텅이에 함몰되지 말고 보다 나은 앞날을 설계하자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논하면서, 사회 현장 곳곳을 직접 찾아 다니게 되었고 우리문화 찾기, 야학교사, 청소년 상담교사, 예술소모임 간사활동 등등을 꾸준히 실천해보는 가운데, 명문대, 고시를 통한 실천 만을 모색했던 저에게, 새로운 방식의 현장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삼 확인되는 고향 광주의 민주화투쟁 아픔은 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성찰케 하였고, 모두가 하나되는 ‘우리’와 모두의 만남과 나눔이 있는 터 ‘마당’을 확실히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며 반만년의 한겨레를 상징하는 ‘배달’이라는 필명을 사용, 구체적 여러 실천을 하게 됩니다.
  
  결국 외세에 의존하며 그 첨병 역할을 하는 소위 시민사회단체들이 갖는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았고, ‘신라화랑 어디가고 스카웃이 판을 치고, 보부상은 어디 가고 라이온스 판을 치나’라는 구호를 만들며,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자고 결심했던 실천이 오늘까지 “마당지기”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는 날 부모님까지 속이고 고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과다한 용돈을 요구, 신촌에 공간을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우리마당”을 개설, ‘마당지기’ 25년을 보낸 것입니다.
  
  이 “우리마당”과 ‘마당지기’의 못다한 실천이 많은데도, 제가 삶을 마감하게 됨은 어인 일일까요?
  
  물론 “우리마당”을 통해 그동안 이룬, 우리 사회 민주화와 통일에 기여한 여러 값진 성과와 보람은, 오늘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 저에게 아무런 여한이 없음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특히 제 스스로 구체적 책임과 실천을 직접 맡고 나서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환경연합, 경실련, 민예총,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태동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역할)
  
  하지만 민주화와 통일, 노동해방을 외치다 산화한 분들의 뜻을 잇는 활동에 매몰된 지난 시절을 되새기며, 저는 그 바탕인 “사회 정의”의 아쉬움을 절감하며, “통일문화열사”로써 제 삶을 마감해야 되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제가 그나마 조그마한 바램들을 여쭈고 싶습니다.
  
  약간 건방질지 모르지만 아래의 세가지로 나누어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냉전 시절 당시의 ‘놈’과 ‘사람’이 아닌 남북동포 모두 한겨레인 “우리”가 하루빨리 될 수 있도록, 우선 풋내기 정치인들의 놀음에서 비롯된 ‘동서’, 즉 영호남의 지역적 갈등을 풀고 화합되어 봅시다!
  
  민족 통일에 전념하고자 미력한 제가 전래 민족문화의 동질성 유지와 확보를 통해 하나됨을 실천하였고, 소중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부탁, 아니 자신 있게 당부 드리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자신들의 생활 현장에서 말이나 노래로만이 아닌 실천을 직접 모색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동서화합 차원에서 보다 확실히 통일을 준비하고자, ‘전라도’에서 “경상도” 독도로 호적을 옮기고, 우리 가슴의 38선을 걷어내기 위해, “독도 38번지”라도 일본으로부터 확실하게 지켜내고자 합니다. 또한 북녘의 청소년들을 정기적으로 “독도”에 초청하는 행사를 준비, 당국과 논의 중에 있었습니다)
  
  둘째, ‘우리마당 피습사건’ 진상이 공개되었는데도 진실이 사회 일반에 공개되기를 꺼려하는 조바심으로,“우리마당”의 열정적 활동을 곳곳에서 직간접으로 조여왔던 공안 세력들의 음모는 타파되어야 합니다.
  
  사건 발생 20여년째를 맞이한 오늘까지도, 수사결과에 대해 입 다물며 사회정의를 논하는 사법 당국, 사건을 열렬히 취재했던 언론인, 그리고 정국 변환에 따라 대응하자던 정치인, 인권변호사들 모두 오늘 저의 죽음을 계기로, 그 음모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깊이 각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피습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며, 양심있는 시민들의 동참도 요구 드립니다.
  
  특히 범인이 공개적 자백을 하였기 때문에 사건 규명보다도, 진실을 공개시키지 못한 이면에는 과연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확인하여 주십시오. 이는 후세에 절대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규명이 아니라 대충 넘기려는 기회주의(당시 모월간지 편집실 습격사건, 모일간지 부장 피습사건)가, ‘우리마당’ 김기종에게는 20여년 되도록 안 먹혔음을 오늘 이렇게 죽음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안 당국이 스스로의 과오는 인정하고, 시대에 맞는 자기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확립하여,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역할 만을 수행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셋째, 마당지기를 하며 보낸 지난 25년간의 활동, 집안 장손의 역할은 못했지만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마당”이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문화적으로 달성한 소중한 활동 가치를 인정하신다면, 비록 저처럼 모든 걸 투신하지 못했을지라도, 청년학창 시절에 “우리마당” 회원으로 활동했었던 국회의원들만이라도 집결하여,“우리마당 설립에 관한 법” 같은 것을 입법해주시기를 감히 청원드립니다.
  
  즉 “우리마당”이 당국의 엉터리 탄압을 벗어나 보다 합법적인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사회변화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로써 실천을 할 수 있는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덧붙이는 말
  
  민주화되었다는 국민, 참여정부 시절에도 제가 ‘우리마당’ 운동을 실행하면서 당했던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의 분신을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면, 그 협작과 공작 과정들에 참여한 분들의 양심선언을 유도해 주십시오.
  
  (참고로 9월 10일 ‘만남과 나눔’ 호외2에 실린 의문점들만 파헤쳐도 그 사연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1980년대 중반 ‘우리마당’같은 열린공간 없던 시절, 일반 활동가들의 분신을 상담하던 이들에게 왜 죽느냐, 죽는 목적이 무엇이냐며, 그들을 1인 시위, 단식농성 등을 지도했던 제가, 우연찮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단식농성 없이 곧바로 분신하는 아픔을 잘 이해하고, 진실규명에 동참해 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1987년 고생하고 촬영한 이한열 열사 장례식 필름 압류 아픔 속에서도 꾸준히 이북영화를 연구하였고, 1997년 ‘고구마 3개의 사랑’을 제작, 이북동포돕기에 실질적 기여한 ‘영화마당’ 대표 이경화 님과 충남 대천 ‘우리마당’ 지회장으로 활동했던 신돈 님에게 “우리마당‘ 운동의 제2대 마당지기로써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 두 분에게 모든 권한과 의무를 맡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분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행을 달리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 때문입니다. 1988년 8월 ‘피습사건’ 원인에 대한 언론보도 등으로 ‘보안사’가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시던 노무현, 이해찬 님 등도 군부의 짓이 명백하니까, 사건 진상규명은 시기를 적절히 대응하자는 말로 저를 달랬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배경은 당시 6월항쟁 이후 ‘우리마당’ 사무실을 비교적 수월하게 드나들었던(?) 경찰, 안기부와는 달리 올림픽을 목전에 둔 군부가 정보 수집 단계에서 문책 당하면서 이같이 엉뚱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이후 ‘국회’ 국정조사 출석 요구에 응하는 등 꾸준히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결국 활동에 여러 제약, 예를 들면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고집으로 ‘민예총’ 창립에 동참 못한 아쉬운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소위 통일관계 시민단체연합 ‘민화협’, ‘615남측위’, ‘통교협’ 등의 창립과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군부정권 시절 관변 단체보다 더욱 심한 조직 간의 암투 탓에, 통일사업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이 연이어지고 있으며, 이에 격분한 저는 회의장에서 발언 도중 흥분하여 실신하는 등 심각한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김기종은 그같은 소외와 냉대에도 통일운동을 하는 문화운동가로써, 통일관계 회의와 행사에 꾸준히 ‘우리마당’ 또는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를 대표해서 참가(가장 우수한 출석 등), 자신의 역할을 끝끝내 수행하고 있었음을 정말 마지막으로 자랑스럽게 부언합니다.]
  
  
  


2007년10월19일 ⓒ민중의소리

  철군 계획 대국민 사기극 규탄 및 연내 철군 촉구 기자회견
  글쓴이 상황실 글쓴날 2007-09-28 11:58:03 조회 214
  첨부파일 기자회견문0928.hwp (32768 Bytes) 분류 단체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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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반대국민행동
서울특별시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346-1 한강로빌딩 405호 전화 02-795-4337 / 팩스 02-749-3537 / antipabyeong@empal.com


수 신 : 각 언론사 사회부
발 신 : 파병반대국민행동(담당 : 김광일 011-9972-1968, 지은 011-9395-0958 )
제 목 : 철군 계획 대국민 사기극 규탄 및 연내 철군 촉구 기자회견
날 짜: 2007. 9. 28(금)


철군 계획 대국민 사기극 규탄 및 연내 철군 촉구 기자회견문

1. 어제(9월 27일) 청와대 백종천 안보실장은 정부의 임무 종결 계획서 제출을 10월 중순으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는 6월까지 제출하기로 한 임무 종결 계획서를 9월로 연기했고, 또 다시 10월 중순으로 연기했다. 임무 종결 계획은 사실상의 2007년 철군 계획이다.
지난해 김장수 국방장관은 올 상반기까지 임무 종결 계획서 제출을 약속하며 "정부는 내년 말까지 자이툰 부대 철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6월말에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2007년 말에 파병 활동을 마무리한다는 정부의 의지에 변함이 없다”도 말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연내 철군 계획 제출을 또 다시 연기함으로써 두 번씩이나 철군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짓밟았다.

2. 우리를 더욱 분노케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철군 계획 제출은 거듭 연기하면서 사실상 파병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9월 7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파병 연장 협조 요청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동맹국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파병 연장 요청을 받아 들였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9월 6일에는 자이툰 7진 1차 교대 병력 545명이 이라크로 떠났다. 통상 6개월 단위로 임무를 수행하는 교대 병력의 출병은 사실상 내년까지 주둔을 염두에 둔 것이다.

3.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파병국 가운데 사단급 부대가 주둔한 나라는 미국 외에 영국, 폴란드, 한국 세 나라뿐인 상황에서 한국군의 완전 철군은 한·미 동맹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파병 연장을 추진하려 한다. 파병국이 줄었다는 것은 철군의 이유이지, 파병 연장의 이유가 아니다. 이미 이라크 파병 국가 중에 거의 절반이 철군했다. 심지어 부시의 핵심 동맹국인 영국군도 주둔 부대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정부는 또한, “아르빌에 있는 유엔 사무소와 미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 사무소에 대한 경계 및 경호 활동이 자이툰 부대 철수의 걸림돌”이라 한다. 이라크에서 유엔 사무소가 중요한 경호 대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유엔이 이라크인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유엔은 이라크에서 경제제재로 100만 명의 이라크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이라크인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미 국무부 산하 기구를 경호하는 것이 파병 연장의 명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이툰 파병 연장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파병 연장은 패배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자이툰 파병 연장은 국민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대국민사기극이자, 패배하고 있는 부시의 패권을 “재건”하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자이툰 파병 연장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2007년 연내 철군 계획을 즉각 제출하라.

4. 자이툰 부대의 철군과 더불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의 모든 파병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동의․다산 부대 철군 약속은 지켜져야 하며,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지역재건팀(PRT) 참가 고려도 중단돼야 한다. 이는 또 다른 점령 지원일 뿐이다. 레바논의 특전사 동명 부대도 철군해야 한다.

5. 노무현 정부에게 경고한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을 비롯한 한국의 반전평화세력은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철군을 위해 우리의 온 힘을 바쳐 투쟁할 것임을 천명하는 바다.

파병 연장 대국민 사기극 중단하라
자이툰 부대는 철군하라
레바논 파병 동명 부대 철군하라

2007년 9월 28일 파병반대국민행동


철군을 위한 파병반대국민행동 활동 계획

(1) 철군을 위한 각계 선언: 10월 11일

(2) 대중 집회

자이툰 파병 연장 반대와 이라크 점령 종식을 위한 한·미 공동 반전행동

자이툰 파병 연장 반대! 이라크 점령 종식! 레바논 파병 철군! 이란 공격 반대!

일시: 10월 27일(토) 오후 3시
장소: 대학로(광화문까지 행진)(가)
주최: 파병반대국민행동

-당일 미국 반전평화단체 평화정의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의 미국 10개 권역의 집중 집회가 열림.
-10월 27일 집회 이후에도 11월과 12월 철군을 위한 대중 집회를 개최할 계획임.

(3) 대국민사업

- “철군을 위한 보고서” 제작.
- 철군을 위한 버튼 달기
- 철군 리플릿 반포 및 포스터 부착 캠페인
- 매주 거리 홍보전: 매주 목요일 저녁에 거리 홍보전 진행. 10월 4일(목) 저녁 7시 홍대 앞 첫 홍보전.

(4) 대선 대응

-10월 중순 각 당 대선 후보 공개 질의 및 면담 요청 기자회견, 기자회견 직후 대선 후보에게 공문발송.
-입장을 내지 않거나 파병 연장 찬성 입장을 내놓을 경우 기자회견 등의 항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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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반대 한미 공동행동

파병반대국민행동 "세계평화 위해 이라크 침략 전쟁은 종식돼야"

참세상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 2007년10월29일 11시41분

 

파병반대국민행동 주최로, 이라크 전쟁 종식을 위한 한미 국제 공동행동이 28일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됐다.

갑작스런 빗속에서도 5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자이툰 부대 파병연장 반대와 이라크 점령 종식을 위한 한미공동 반전행동'을 진행했고, 집회 후 서울시민들에게 파병연장의 허구성을 알려가며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선 후보의 한반도 문제 해결과 석유 채굴, 기업 활동을 위한 파병 연장안을 비판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이라크의 침략 전쟁은 종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가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침공 40여 일만에 이라크에서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라크에서는 오히려 전쟁이 더 격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의원은 "현재 이라크의 민주정부는 친미정권으로, 이라크 내전은 미국의 식민지화를 막기 위한 격렬한 이라크 민중의 저항"이라며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점령군 미군을 추방하기 위한 해방 전쟁"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의 결정은 '부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이라크 민중의 해방 전쟁을 지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정책실장은 이라크 현실을 폭로하며 더 이상의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2800만 이라크 인 중 800만 명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고, 아동 22%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못으며, 아동 92%가 심각한 학습장애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살아가고 있고, 수도인 바그다드에서조차 하루에 3시간 밖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며 전쟁에 의해 파괴된 일상의 참담한 현실을 전했다.

이어 "정부가 말하는 이라크 재건은 이라크 민중들이 살아가기 위한 기반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도소, 군대, 석유를 파내가기 위한 채굴 시설에 불과하다"며 "이라크에서의 점령이 계속되고 있고, 학살군 동맹군의 일부로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라며 '조속한 철군'을 주장했다.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은 "중동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오히려 유가가 인상되고 경제적으로 불이익이 오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명박 후보는 이런 불안전성을 돕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이툰 부대 주둔이 경제적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며 "경제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라는 반전 청소년 단체에서 참가한 김도연 학생(중학생)은 "이라크에서는 내 또래의 친구들도 총을 들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현재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파병연장 반대 선언문'을 소개, 주위의 청소년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홍보를 부탁했다.

국민행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자이툰 파병 연장안이 국회에 상정된다면 국회의원들은 이를 반드시 부결시켜야 하며 파병 연장에 또 다시 찬성한다면 그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라는 것을 의원들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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